하나로 통일한 역사 교과서를 만들려는 국가의 시도에 대한 반대 움직임도 멈추지 않고 있다. 한국역사연구회는 국정교과서에 맞서는 대안적 역사서 (가칭) 편찬 작업을 시작했다. 은 하일식 기획·편찬위원장과의 단독 인터뷰를 통해, 대안 역사서 편찬이 어떻게 추진되고 있는지를 취재했다.
아울러 한국역사연구회의 추천을 받아 역사가 무엇인지 다시 조망하고, 역사를 흥미롭게 접할 수 있는 11권의 책을 소개한다. 1988년에 창립한 한국역사연구회는 한국사 전체를 연구하는 국내 최대 역사학회다. 연구회원만 650여 명에 이른다. 5개 분과(고대사분과·중세1분과·중세2분과·근대사분과·현대사분과)로 나눠 해당 시기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한국역사연구회는 에 시대별로 읽을 만한 역사책을 추천해주었다. 책에 대한 추천사는 해당 시기별 연구자들이 직접 썼다.
여기에 더해, 역사 교과서 국정화 정국에서 재조명된 이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왜 이것이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고 있는지를 심층적으로 살폈다.
취재 홍석재·송호진·전진식 기자, 편집 신소윤 기자, 디자인 장광석</font>
국내 최대 역사학회인 한국역사연구회(한역연)가 대안적 역사서 편찬 작업을 본격화한다. 정부가 주도하는 국정 역사 교과서에 맞서는 역사책이다. 책 제목은 (가칭)로 잠정 결정했다. 이를 위해 한역연은 이 책의 기획·편찬위원장을 임명했다. 전 한역연 회장인 하일식 연세대 사학과 교수가 책임을 맡았다.
하일식 기획·편찬위원장은 11월13일 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역사 교과서가 이념 논쟁, 정치 싸움의 대상이 되는 것은 미개한 나라에서나 있는 일이다. 정부가 시작한 국정 역사 교과서 논란은 나라를 50원짜리로 만들고 국민들의 혼을 비정상적으로 만드는 행동”이라고 말했다.
특히 “정부가 끝내 국정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것을 염두에 두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대응책을 고민해왔다. 어떤 내용으로 시비를 걸더라도 과학적·역사적 근거를 제시할 수 있는 역사책을 만들겠다. 책 이름은 일단 로 정했다”고 밝혔다. 정부가 국정 역사 교과서 발행 의지를 굽히지 않자, 역사학계가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대응에 나선 것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역사 교과서 이념 논쟁, 미개한 일”</font></font>지난 11월11일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여론조사를 보면, ‘국정 역사 교과서가 균형 있고 올바른 역사 서술을 할 것으로 기대하냐’는 질문에 ‘그렇다’는 응답이 35.8%에 불과했다. ‘그렇지 않다’는 58.6%였다. 내년 총선에서 국정화 반대 후보에게 투표하겠다는 의견이 52.9%에 이른다는 결과(11월13일 ·여론조사기관 에스티아이)도 있다. 11월14일에는 역사학계와 정치·종교계, 시민사회단체, 학생들이 참석한 가운데 대규모 교과서 국정화 반대 집회가 서울 광화문에서 열리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역연의 역량이 편찬에 총집결될 것으로 보인다. 한역연은 1988년 당시 대표적인 역사단체였던 망원한국사연구실, 한국근대사연구회, 고중세사연구자협의체 등이 함께 ‘과학적·실천적 역사학’을 표방하며 결성했다. 현재 연구회원 650명, 일반회원 120여 명 등 770여 명이 활동 중인 국내 최대 역사 연구 단체다.
한역연은 교육부가 국정 역사 교과서 발행을 공식화한 지 나흘 만인 지난 10월15일 국정교과서 반대와 집필 참여 거부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헌법이 보장한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역사교육의 목적, 그리고 유엔 인권이사회 보고서가 명시한 역사교육의 세계 보편적 기준에 어긋난다. 정부가 만약 국정화를 강행한다면 연구회는 국정교과서 제작과 관련된 연구·개발, 집필, 수정, 검토를 비롯한 어떠한 과정에도 참여하지 않을 것을 결의한다.”
당시 한역연은 “혹시라도 이런 상황이 올 것을 예상하며, 연구자의 소임을 다하기 위해 대안 한국사 도서의 개발을 준비해왔다. 교과서 집필 불참 선언으로 역할을 끝내는 무책임한 처신을 결코 하지 않을 것”이라며 역사서 발간을 시사한 바 있는데, 인터뷰에서 그 구체적 계획을 처음 밝힌 것이다.
국정 역사 교과서와 달리 집필진은 투명하게 공개될 예정이다. 하일식 기획·편찬위원장 외에도 현재 한역연 회장을 맡고 있는 정용욱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 전 한역연 회장인 정연태 가톨릭대 국사학과 교수가 기획·편찬위원회 일원으로 포함됐다. 이들 외에도 6명의 기획·편찬위원이 결정되면, 모두 9명의 학자가 집필을 책임지게 된다.
아울러 한역연 소속 역사학자 50~60명이 실무 필진으로 참여하고, 필요할 경우 외부 인사도 참여시킬 방침이다. 집필진의 초고에서 논란이 될 만한 부분은 편찬위원들의 집중 검증과 공개 토론을 거쳐 최종 원고로 채택하기로 했다. 하 위원장은 “기술 내용에 조금이라도 논란이 되는 부분은 편찬위원들이 엄격하게 검증을 할 것이다. 집필자를 불러 집중 토론을 벌일 수도 있다. 사실상 집단 집필 시스템이다. 연구회 안의 모든 역량을 끌어내 신뢰도를 최대로 끌어올리겠다”고 설명했다.
한역연은 최근 경기도 파주에 있는 한 출판사에서 구두로 의 출판 계약까지 마쳤다. 하 위원장은 “역사학계는 박근혜 정부가 국정교과서를 언젠가 강행할 것으로 예견하고 준비를 해왔다. 편찬을 위해 편찬위원회와 집필진 구성, 책에 담겨야 할 내용의 근간, 분량도 이미 구체화했다”고 말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국정교과서 발행 시기에 맞춰 출간 계획</font></font>책의 분량은 기존 역사 교과서의 2배 규모로 잡았다. 근현대사와 전근대사 분야로 나눠 각 1권씩 총 2권으로 만들 계획이다. 특히 근현대사 분야의 비중을 절반 이상으로 잡기로 했다. 하 위원장은 “근현대사가 가장 중요하다. 가까운 시대의 역사가 지금의 현실을 더 잘 반영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2권의 책으로 펴내는 것에 대해선 “우리 교과서가 대개 학생들이 보기에 딱딱하고 재미가 없다. 교과서 내용이 모두 시험과 연결되기 때문에 무작정 분량을 늘릴 수 없기 때문이다. 는 기존 역사 교과서보다 정확하고 정교하면서도 더 재밌게 만들기 위해 분량을 늘리기로 했다”고 말했다. 고대사와 중세사 부분은 기획 단계의 윤곽이 나온 상황이라고 하 위원장은 설명했다. 근현대사 분야의 세부 목차와 내용 구성은 집필진이 어느 정도 꾸려진 뒤 확정할 계획이다.
한역연은 이 책이 교사용 지도서 구실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예를 들면, 국정교과서가 “박정희 대통령 당시 유신은 빠른 시일 내에 방위산업과 자주국방을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해 1972년 단행한 정치 개혁”이라고 미화하더라도, 에선 ‘대통령 임기 6년, 중임 제한 철폐, 긴급조치 발동권’처럼 좀더 객관적이고 엄밀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 위원장은 “정확한 사실관계뿐 아니라 학계의 서로 다른 견해도 확인할 수 있도록 풍부한 내용을 담으려고 한다. 학생들이 국정교과서의 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손쉽게 판단할 근거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연구회 쪽은 의 출간 시기를 국정교과서가 학교 현장에 적용되는 2017년 봄께로 내다보고 있다.
하 위원장은 의 지향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이념 대립처럼 낡은 걸 가르쳐서는 안 된다. 특히 학생들에게 역사책이 가르쳐야 할 가치관은 보편적 휴머니즘, 공정하고 배려하는 민주시민의 태도, 지금의 역사를 만든 것은 독재자가 아닌 다수 민중이었다는 자신감 등이다. 는 한국사에 가장 정통한 학자들이 철저한 상호 검증과 합의를 거친 사실과 통설로만 담길 것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국정 역사 교과서는 국민의 기억 지우려는 것”</font></font>‘한역연이 대안 교과서를 발행한다’는 일부 보도와는 선을 그었다. 하 위원장은 “언론이 쓰기 쉬운 말로 ‘대안 교과서’라고 보도를 해왔지만, 교과서는 우리 같은 연구자 단체가 섣불리 할 게 아니다. 현장 교사들이 보기에는 ‘꼴값하는 것’으로 비칠 것이다. 실제 이 문제의 주인공은 현장 교사들이다. 우리한테 ‘같이해달라, 힘을 보태달라’고 얘기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를 ‘대안적 역사서’로 부르고 있다”고 말했다.
하 위원장은 정부가 국정 역사 교과서를 추진하는 이유에 대해 국민의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과거가 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그러나 권력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가려내 엮은 것은 역사가 아니라고 그는 말했다. “를 통해 우리 역사가 곡절을 겪었지만, 민중의 힘으로 건강하게 시대를 헤쳐왔다는 걸 보여주겠다. 또 우리 역사의 교훈이 ‘박정희에 대한 자부심’이 아니라 ‘박정희식 독재를 이기고 현재의 역사를 이룩한 민중’이라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 그렇게 역사가 일러준 방식으로 노력해야 세상이 나아진다는 것을 알려주려고 한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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