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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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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가 있어야 벌 받는 거 아이가

밀양 송전탑 투쟁 뒤 공무집행방해 등 유죄 선고 받은 할머니·할아버지 등 11명 육성 항소이유서 "부당한 공사, 비민주적 공사에 저항한 게 잘못인가"
등록 2015-10-28 18:56 수정 2020-05-03 04:28
<font color="#C21A8D">왜 지금 밀양인가.
밀양 765kV 송전탑 건설 반대 투쟁은 2005년 12월5일 시작됐다. 당시에는 어느 언론도 보도한 곳이 없었다. 한 달 남짓 뒤면 10년을 맞는다. 한국 사회에서 단일 사안을 두고 10년 싸움을 벌인 전례는 찾기 힘들다. 더구나 밀양 투쟁에 참가한 이들의 대다수는 60~80대 노인이었다. “우리는 요대로만 살고 싶습니다”라고 호소하던 할매·할배를 국가권력은 철저히 짓밟았다. 그리고 점점 밀양은 잊히고 있다.
취재는 지난 9월15일 주민·연대활동가 18명에 대한 1심 선고 당일부터 시작됐다. 이후 10월6~7일 이틀간 밀양에서 11명을 만났다. 18명 가운데 한국전력공사와 합의했거나 벌금형 선고유예를 받은 이들을 뺀 전부다. 항소심 재판을 앞둔 그들의 육성으로 송전탑 건설의 부당함, 검경의 수사·기소와 법원 판결의 정의롭지 못함을 들었다. 또 하나의 ‘항소이유서’다. 6시간30분에 이르는 녹음 분량을 지면에 모두 싣지는 못했다. 밀양 송전탑 반대 10년 투쟁을 되돌아봤고, ‘시즌3’를 준비하는 움직임도 살폈다.
그렇게 한 달간 이어진 취재의 결과를 독자에게 전한다. 송전탑을 막고 싸움을 끝내리라 희망했던 밀양의 할매·할배들은 또 다른 시작을 준비하고 있다. 그들은 “철탑이 있어도 희망이 있다”고 말한다.
취재 전진식 기자, 편집 박수진 기자, 디자인 장광석</font>

지난 10월6일 밤 경남 밀양시 단장면 용회마을에서 바라본 765kV 초고압 송전탑.

지난 10월6일 밤 경남 밀양시 단장면 용회마을에서 바라본 765kV 초고압 송전탑.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모두 옳은 것은 아니다. 악다구니 왜 없겠는가. 그러나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들의 눈물을 마주 앉아 응시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거친 손과 발, 해진 옷을 외면한다면 언론은 어디에 설 것인가. 그래서 옛 언론인은 적었다. “눈물이 메마른 땅에 진실의 꽃은 피지 않는다.”

지난 9월15일 창원지법 밀양지원 형사법정. 머리에 서리가 한가득 내려앉은 노인들이 들어섰다. 피고인석이 터무니없이 적었다. 판결문에 적힌 이들 18명의 죄명은 ‘가. 상해’에서 ‘러.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 위반’까지 18가지에 이른다. 늘어선 피고인들 누구도 선처를 바라거나 죄를 부끄러워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그들은 냉정한 법정에서 외려 웃거나 따뜻하게 손을 맞잡았다. 판사의 양형 선고가 끝난 뒤 피고인 한 사람은 자리에 무너져 울었다. 억울하고 미안하다는 눈물이었다.

그들은 경남 밀양시 ‘765kV 송전탑 반대’ 주민들이다. 그날 법은 그들에게 집행유예 또는 벌금형을 선고했다. 무죄는 없었다. 변호인단은 곧바로 항소했다. 재판은 다시 이어질 것이다. 벽돌 같은 언어로 종이에 쓰인 항소이유서도 마련될 것이다. 지난 10월6~7일 11명을 만났다. 그들의 목소리로 ‘육성 항소이유서’를 들었다. 100m 높이 송전탑들이 박힌 첫해 가을, 밀양 감나무들은 한데 어울려 붉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유죄 선고 뒤 무너져 운 할매·할배들</font></font><font color="#C21A8D">한옥순(64·부북면 평밭마을</font>) 특수공무집행방해 등/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

“우리는 노조도 아니고 데모꾼도 아입니다. 칠십팔십 먹은 할매들이 내 재산 지키겠다꼬, 내 생존권을 지키겠다는데, 우리를 경찰 3천 명이 죽이러 오니까 안 죽을라꼬 발버둥친 거밖에 없는데, 우리를 죄인으로 몰아붙여서 집행유예 때리고…. 이건 아니라고 봅니다. 우리가 총을 들고 칼을 들고 도적질을 하고 남을 죽였습니까? 무슨 싸움을 했습니까? 내 생존권 (침해를) 막겠다꼬, 안 죽을라꼬 서 있는 거뿐인데 이걸 형을 1년씩 2년씩 때리고 집행유예를 한다는 건 우리 무식한 할매로선 이해가 안 됩니다. 우리는 아무 잘못도 없습니다.

10년을 이렇게 했는데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져서 밤에 잠을 못 잡니다. 대구에 정신병원 가서 약을 좀 타먹었어예. 지금도 밤에는 잠이 안 와요. 왜 제가 옷을 벗었노 하면, 그 굴 안에 우리가 있었는데 우리를 죽일라꼬 경찰 이삼천 명이 왔는데, 우린 안 죽을라꼬 옷 홀딱 벗고 쇠줄 감고 있었어요. 안 끌려나갈라꼬. 여자 경찰도 아니고 남자 경찰이 칼을 들고 와서, 우리는 완전 반기절을 했어요. 칼을 들고 우리를 위협해놓고 개 끌듯 끌어내고. 같은 동족끼리 전쟁도 아니고, 할매라도 여잡니다. 경찰 앞에서 나 안 죽을라꼬 옷을 벗었어요.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아죠. 근데 우리는 죄를 지은 게 하나도 없습니다. 죄목이 있어야 우리가 죄를 받을 거 아이가. 국가에서 우리 개인 재산을 이렇게 강탈해가도 되는 법이 있는가. 우리한테 죄를 덮어씌워갖꼬 징역을 살라면 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할매가 돈이 있습니까, 빽이 있습니까?”

<font color="#C21A8D">이남우(71·부북면 평밭마을) </font>상해 등/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

“이게 안전한 사횝니까? 위험한 사회 아입니까? 우리는 이걸 용납할 수가 없는 기라. 공기업이, 정부가 정치를 그렇게 해나가면 청소년들한테 뭘 가르칠 깁니까?

송전탑이 꼭 절대적으로 필요한 거다 카면 내 재산 가치가 몰락해도 돼요. 그런데 그게 아이라. 철탑이 여기서 여기로 갈 거면 바로 가야 철탑 수도 줄어들고 불평불만도 무마하잖아요. 근데 요기엔 특정인의 농장이 있어. 둘러가다보니까 철탑이 7개씩 들어서야 돼. 1개에 30억씩. 4개 마을 거쳐가야 하고. 한 사람만 피해 보면 되는데…. 저기 송전탑 철선은 피복을 안 한 겁니다. 전자파 그대로 노출됩니다. 이렇게 부정하게, 비민주적으로 공사를 하니, 우리가 참을 수가 없다 아이가. 제일 가슴 아픈 게 그깁니다.

여기가 129번 철탑이고, 옥상에 올라가면 130번도 보입니다. 집에 앉으면 또 보이고. 평밭마을이 문제가 제일 크다 카는 건 한전 직원들도 인정하는 겁니다. 요 옆집에 전세 들어온 사람이 900만원 받아먹고 잘 나갔어. 안 그러면 찬성자 수가 줄어들거든. 그런 헛된 짓을 하니까 우리가 볼 때 어찌 한전이 공기업이라. 그런 비민주적인 일이 한두 가지가 아이라. 송전탑보다도 한전의 썩은 경영정신을 타도합니다.

건강이 문제고 재산이 문제지마는 한전하고 정부의 미래를 팔아먹는 전기 정책 때문에 더 가슴 아파하고 반대하고 있다는 거 아입니까. 이라면 안 됩니다. 미래가 없습니다. 경찰들이 손가락 사이에 연필 깎는 칼을 끼워서 할매들 옆으로 지나가면서 쓱 긁어서, 할매들 손에 피가 나고 하는데 즈그들은 모른다 카고. 이 나라가 이래서 되겠어요. 그래서 우리는 더 분노한다 아입니까.

다른 사람들이나 시내 사람들이 볼 때 우리를 졌다 카는데 우리는 이기고 지고가 없습니다. 철탑이 섰다고 진 게 아입니다. 우리의 정신은 한치 오차 없이 변함없습니다. 잘못은 안 고치면 영원히 잘못으로 남아 있기 때문에, 그 사람들 잘못이지 철탑이 섰다고 우리가 진 깁니까? 힘없는 순진한 서민들이 참 불쌍합니다. 비록 형을 받고 감옥에 몸은 들어가 있을지라도 한전이나 정부가 우리의 영혼만큼은 집어넣을 수 없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지 아시겠지예?”

<font size="4"><font color="#008ABD">손가락 사이에 칼 끼워 할매들 긁고 </font></font><font color="#C21A8D">송영숙(59·단장면 용회마을) </font>특수공무집행방해 등/ 징역 6개월, 집행유예 1년

“이 싸움의 시초는 얼마든지 변경할 수 있는 시간이 진짜 있었거든예. 극심한 피해가 있는 덴 돌아갈 수 있었거든예. 그걸 밀어붙인 기라예. 우리 주민들 말은 한마디도 들어준 적이 없어예. 그대로 시행을 한 거예요. 거기서 더 분노가 일어난 거라예. 제가 왜 이 자리에 서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법원에서도 얘기했어예.

하루아침에 국가에서 이거 하겠다고 뺏어가니, 강도나 마찬가지라예. 막상 일을 당해보니까, 다시 볼 수 있는 눈을 뜨게 해준 거예요. 이렇게 주민을 무시하고 하는데, 우리 한두 사람 죽는 건 눈도 껌뻑 안 하는구나. 생명을 중시하지 않는 국가는 경제적으로 발전이 될지 모르겠지만, 그거는 선진국 가는 길이 아니거든예. 텔레비전 화면에서 보이는 게 진실이 다가 아니라는 걸 이번에 알게 된 기라예.

무슨 죄명이냐 하면 특수업무방해죄. 시청에 들어가서 시장한테 면담하게 해달라고 이야기하러 간 거예요. 일이 벌어지면 들어보려고 해야 하는데 무조건 배척하는 거예요. 우리가 얘기하고 싶은 거는 진짜 센 전기가 가면 살 수가 없어요. 떠나야 돼요. 서민들이 이 집 놔두고 집 살 수 있습니까? 살 수가 없어요. 한전 처장 말이 남은 집이 180가구라고. 이주를 시켜달라고 이야기를 했었어요.

우리는 기댈 데가 없고 앞이 캄캄한 거예요. 법에 따라 재판받고 있지만 우리는 형 살라 카면 들어가 살면 되고, 그런 건 겁 안 나예. 이런 식으로 억압하면 안 되는 기라. 힘의 논리로 무조건 밀어붙여가지고 하는 건 정말로 거꾸로 가는 기라예. 민주주의 선진국 될라 카면 이거부터 정리해야 돼요. 우리는 끝까지 싸울 기라예. 우리가 이렇게 형을 받을 만큼 잘못한 게 있나 하면, 공사를 방해할라꼬 엄청나게 불을 지르고 파괴했다 치면 죄를 받을 수 있지만, 우리는 저항을 했다뿐이고 쫓겨난 건데. 너무 더러븐 거예요. 자기들은 우리를 어떻게 했는데…. 대한민국 국민이란 거에 자부심을 가져야 되는데 그게 아닌 거예요. 그게 서글프고…. 어디를 가도 나는 내가 떳떳해지고 싶기 때문에, 한전에도 그랬어예. 모든 사람이 떠나도 내가 혼자 남을 거라고.”

<font size="4"><font color="#008ABD">“길만 막아도, 욕만 해도 업무방해” </font></font><font color="#C21A8D">윤여림(76·부북면 위양마을)</font> 상해 등/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갈등조정위원회 참관위원으로 참석하면서 엄청난 피해가 오겠다 생각했어요. 꼭 막아야겠다는 심정이 들었지. 한전에서 일대일로 만나자는 건 다 거절했어요. 일대일로 만나면 무조건 지는 거야. 응하면 진다는 생각이 들어가지고 지금까지도 일대일로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어요. 김해에서 오래 살았고 2004년에 이사 왔는데 잘못 온 건지는 몰라요. 결과는 지금까지는 고통스러워. 2011년에도 벌금 80만원 맞았어요.

2013년에 암에 걸려갖고 수술하고, 그래서 몇 달 (반대 활동에) 참가를 못하고 있다가 2014년부터 또 참가했지. 2013년 9월에 판결받아가지고 시월 십일월 십이월 몬하고.

지식인들이 양심이 있는 거면 그게(765kV 송전탑 건설) 옳은 게 아니라는 거 알잖아요. 이명박 때부터는 박정희 때보다 더 공권력을 이용할라 카는 거.

판사한테 할 말? 정치논리로 판사도 하는데 거서 뭔 얘기를 할 거야. 할 이야기가 없어요. 저번 재판에서도, 내가 죄가 없다면 무죄로 하고 죄가 있다면 구형보다 더 세게 때려달라고 했어요. 살려달라 그런 소리 필요 없고 판결만 정확하게 하라는 얘기만 햇지. 정치논리가 있기 때문에 안 된다는 이야기라.

누구든지 소수고 누구든지 다수라. 광주항쟁도 다 빨갱이로 몰았잖아요. 누구든 혼자 있으면 소수라. 대통령도 소수가 되면 쫓겨나야 해. 지금도 그렇거든, 없는 죄도 만들어서 쫓아내잖아.”

윤여림 씨(왼쪽), 정임출 씨

윤여림 씨(왼쪽), 정임출 씨

<font color="#C21A8D">정임출(73·부북면 위양마을) </font>특수공무집행방해 등/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

“공권력만 아니었으면 우리 이깁니다. 얼마든지 막을 수 있었어요. 내가 그러거든요, 철탑이 서 있어도 우리는 이긴 거다. 최선을 할 만큼은 다했거든요. 죽을 목슴 내놓고 했거든요. 그래 했는데 공권력이 있고는 못 당하겠더라고요. 사람 몇도 안 되는 거 공권력을 2천 명이나 풀어서 들이닥치니까. 한 사람에 몇이나 달려들어 끄집어내는데 우리가 총칼 들어도 안 되는 기라예.

2013년 오월달에 저놈들한테 끌려나올 때, 끌려나오기 전에 그랬거든요. 내가 화장실 간다고 내려오니까 못 올라가게 길을 딱 막더라꼬. 기어코 길을 막는 기라. 오월달이 덥다 아입니꺼. 우리는 땡볕에 있고 즈그는 차광막 쳐서 그늘에 있고. 우리 움막에 맨 줄을 풀어서 즈가 끈을 매서 쳤더라꼬. ‘왜 느 끈 하지 우리 끈 하노’ 그러고는 끈을 딱 푸는 순간에 ‘이 더러븐 세상에 살면 뭐하노’ 싶은 마음이 딱 들더라꼬. 그땐 아무 생각이 없어. 나뭇가지가 있길래 딱 던지는데 누가 뒤에서 잡더라꼬. 보니까 형사가 ‘할매 이러면 됩니까’ 카더라꼬. 그 자리에서 통곡이 나오더라꼬. 실컷 울었거든요. 그때는 죽고픈 맘밖에 없더라꼬요. 자슥도 생각도 안 나고 내 목숨 하나 눈 감아뿌면 고만이라고.

작년 6월에(6월11일 행정대집행) 수녀님들 둘이 팔 뿌라졌어예. 우리는 길만 막아도 업무방해, 욕만 해도 업무방해. 그라니께 법이 개법 아입니까. 법원에서 집행유예 때리는 게 우리 발목 묶을라꼬 하는 짓이거든예. ‘어데 데모하는 데 가지 마라, 가면 형이 더 붙는다’.

내가 청년들한테 말합니다. ‘우리는 끝까지 죽어도 끝까지 저 철탑 빼낼 때까지 한다. 저거 있으면 후손들이 못 산다. 우리 하다 못하면 후손들이 해야 한다. 우리가 없으면 느가 해야 한다. 그걸 알고 앞으로 선거하면 불참하지 말고 선거해’라고예. 정의롭게, 위에 눈치 보지 말고 판결해줬으면 좋겠어예. 시장이 서민을 외면하면 어째서 시장이 됩니까? 시장이 서민하고 대화를 해야 옳은 시장이지. 이거는 아이잖아요. 서민 없는 나라가 어딨고 서민 없는 기업이 어딨습니까?”

<font size="4"><font color="#008ABD">“더 좋은 에너지로 송전탑 없어질 세상 올 것”</font></font><font color="#C21A8D">서종범(55·부북면 위양마을) </font>업무방해 등/ 벌금 200만원

“민주주의가 뭡니까? 돈 없는 자, 힘없는 자 대신해주는 게 민주주의 아닙니까? 송전탑 선 보이소. 자본의 논리로 해갖고, 임도 옆에 딱 서갖고 마을 가깝게 돌려버렸어. 돈만 벌면 된다는 논리인 기라. 전기가 인간에 의해서 필요하다 아입니까. 그러면 인간에게 피해가 없도록 해야 한다 아입니까. 우리 동네에도 소가 새끼를 못 낳고 유산을 계속하고 있어요. 사람은 괜찮고 소·돼지만 피해가 있다는 논리인 기라. 사람 중심의 세상이 아니고 소 중심의 세상인지….

한전은 항상 피해 없다고 얘기해요. 왜 피해 없다면서 1킬로 반경에 다 보상해주냔 말이에요. 그거는 논리가 안 맞는 기라. 첨엔 저는 정부 비판 안 했어요. 근데 한전, 정부에서 거짓말하는 기라.

솔직히 말해서 우리가 나쁜 짓을 했습니까? 나쁜 짓을 했으면 당연히 벌 받아야 하지만. 마약, 거 뭐 김무성이 사위 같은 놈은 집행유예를 해놓고, 내 생명 내 재산 지킨다는 사람은 벌금, 집행유예 해놓고…. 벌금 나오면 그만큼 살러 들어갈 겁니다.

9월에 판사한테 얘기했어요. ‘일제강점기 시절에 독립군들이 독립운동하고 감옥도 들어가고 그랬다. 세월이 지나면 우리 말이 맞은 거를 언젠가는 역사가 증명할 거다’. 앞으로 더 좋은 에너지 나타날 수 있어요. 그러면 송전탑이 없어지고 그런 세상이 있을 거예요. 정권이 바뀌고 민주화가 되면, 지금도 70년대에 민주화운동 해서 감옥 간 사람들 재심해서 다 무죄받고 정부에서 보상받고 그러잖아요. 우리가 잘못된 일을 하지 않았다는 걸 세월이 증명할 거예요.”

<font color="#C21A8D">문정선(47·전 밀양시의원)</font> 업무방해 등/ 벌금 200만원

“현장들이 생각나고 해서 울어요. 돌멩이 하나도 제대로 던져보지 못하고 목소리만 높이고 그랬는데, 경찰들은 다 특진하고 한 명도 기소 안 되고. 양형 판단도 판사의 양심이 있다고 보거든요. 사법권의 마지막 보루 모습이 안타까워요.

낭떠러지에 전경 아이들이 떨어질 정도로 서 있어서, 걔들 다치지 말라고 주민들이 낫으로 풀도 쳐줬어요. 여경들이 화장실도 못 가고 그래서 화장실 갖다놓게 하고. 우리는 참 인간적이게 했었는데, 우리는 폭행죄고 그 사람들은 아무것도 아니고….

부당한 공사에 우리가 말하는 거뿐이었는데, 칠순 팔순 노인들이 목소리 높이는 게 전부였어요. 국가가 원천적으로 불법이었다는 걸 밝히는 순간 무죄라는 게 밝혀질 거예요. 시간이 지나면 회복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10년, 20년, 30년 지나면 무죄라는 판결 받는 분이 한 분이라도 나올 거라 생각해요. 일단은 패소한 거죠. 법리가 형평성에 맞게 적용돼야 하는데 더 큰 힘에 의해 적용되는 걸 지금이라도 명확히 답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비폭력 투쟁이었거든요. 우리가 돌멩이를 든 거도 아니고. 팔만 쇠사슬로 묶고요. 경찰들 오들오들 떨 때 핫팩 까서 몰래 주기도 하고요. 우리는 그야말로 비폭력으로, 말하기 위한 자리만 만들었고 신부님들이 위로해주는 기도 하고 그게 전부였거든요. 내가 어깨 힘줄 끊어졌을 때도 하청업체 직원들 다 복면하고 있었어요. 폭력을 행사하기 위해서 준비한 거거든요. 앞으로도 폭력은 하면 안 돼요. 주민들도 그렇고, 경찰들도 맞으면 안 돼요.”

<font size="4"><font color="#008ABD">“공무집행방해? 경찰이 왜 산에서 공무를 보나?” </font></font>

<font color="#C21A8D">김영자(58·상동면 여수마을) </font>업무방해 등/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

“집행유예 받을 이유도 없는데, 내가 죄를 지었나 해서 법원에 갔어예. 죄를 짓기는 지었나 본데, 내가 뭔 죄를 지었는지 영 모르겠어예. 사람이 자기 거 뺏들어가면 반항하는 게 정식이잖아예. 반항했다고 징역 때리고….

과연 우리가 뭘 얼마나 잘못했는지, 공무집행방해니 업무방해니 하지만서도요. 경찰이 왜 산에 와서 공무를 보냐고요. 진지한 대화를 안 한 거예요. 참, 우리도 사람인데 대를 위해서 소가 희생되어야 하는 것도 아는데, 대를 위해서 소가 희생되는 것도 경우에 따라서잖아요. 누가 봐도 합리적인 공사가 아니었잖아요.

나는 시골이 너무 좋은데, 지금도 감 따면 힘들지만 밤나무에 밤 달려 있는 거 보면 너무너무 좋아요. 시골에서 농사짓고 사는 게 너무 좋아예. 근데 저 송전탑 때문에 너무 슬픈 상황이 되어버렸다마. 송전탑 싸움 시작하고부터는 옛날 기억이 많이 없어져뿐 거 같아요. 노랫말도 기억이 잘 안 나요.

눈만 뜨면 마주쳤던 마을 사람들하고 (송전탑 찬반으로 갈라져서) 이제 말을 잘 안 하니까 이웃사촌이라는 게 없어졌죠. 이웃사촌. 너무 슬프죠.

난 끔직스러워예, 그 생각만 하면. 그 세월이 10년이라 카니까예. 지나온 세월이 그래 됐구나 싶어서. 참 싸우기도 길게 싸웠다 생각이 들면서 나름대로 뿌듯하기도 해예. 내 생활이 이렇게 힘들어지기는 했지만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을 하나하나 바꿔나가는 데 조금은 보탬이 됐다는 생각에 뿌듯해요. 길게도 싸웠다, 그죠?”

김영자 씨(왼쪽), 장재분 씨

김영자 씨(왼쪽), 장재분 씨

<font color="#C21A8D">장재분(59·부북면 평밭마을) </font>공동상해 등/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

“우리가 아무것도 모르고 뜨거운 물에 발 집어넣고 그런 사람들 아입니다. 공기 좋은 데서 휴양할라꼬 조기퇴직하고 온 거예요. 밀양이 진짜 살기 좋아예. 공기 좋고. 근데 여기서 마음에 병이 들어보니까 좋은 게 하나도 없어예. 우리 집 거실에서 딱 보면 송전탑이 보이거든요. 우리 집은 거실에 앉으면 로켓 발사대처럼 밤에 빨간불 파란불 반짝이면서. 저기로 전기가 정말 흘렀을 때는 여기를 떠나야 돼요. 정말 억울해서….

옆 마을에서 (합의) 도장 받는다 캐서, 그런 걸 우리가 알고 따지러 갔는데 언성만 높여도 폭력을 썼다 카고. 고함만 질러도 그렇다 카고. 너무 억울하니까 얘기하러 간 건데. ‘니 그런 식으로 하지 말라’고 말만 해도 목뼈가 부러졌다 카고. 그게 우리나라예요.

억울해요, 억울하죠. 우리는 정의를 위해서 싸웠고, 그게 진실인데. 나중에 어케 될지 몰라도 생존권을 위해서 한 거예요. 결국 자기들 산천인데, 밀양이 살기 좋고 너무 아름답고 그래서 왔는데요. 정작 밀양 사람들이 종북세력이라며 (우리를) 밀어붙이고….”

<font color="#C21A8D"> 서보명(55·상동면 고답마을) </font>업무방해 등/ 벌금 200만원

“저 같은 경우는 114번 송전탑 저 자립니더. 팔촌 할아버지가 계시는 산소라. 증조부 산소는 113번 쪽이에요. 철탑 세우는 과정부터 보면은 맨날 스트레스라예. 우리 마을은 송전탑이 농토를 관통하기 때문에 더 반항을 많이 했지예.

아버지 연세가 85세, 어머니가 81셉니다. 네 식구가 일해서 1년에 천만원 버는데 수입의 5분의 1을 벌금으로 내놔야 된다 말입니다. 이 부당한 짓을 한 국가에는 돈 10원도 낼 수가 없거던. 차라리 교도소 가서 노역을 했으면 했지 돈은 국가에 보태주기 싫다, 이 말입니다.

세월이 좋아져서 대통령 욕을 하는데, 자기 아버지가 만든 법이 전원개발촉진법이라예. 1978년에 만든 걸로 아는데, ‘이건 우리 아버지 시절 잘못된 법이다, 이거는 잘못됐네’ 말 한마디만 했으면 국회에서 고쳤을 겁니다. 매 그냥 놔두는 거라. 한전 이득사업 아닙니까. 국책사업 아니고. 154kV 송전탑으로 해서 필요한 지역에 보내면 안 됩니까. 왜 고속도로를 닦아가 이럽니까. 우리 아버지 43킬로밖에 안 나가요. 근데 한전 직원하고 경찰들한테 밟혀서 허리를 다쳤어요. 밀양병원에 헬기 타고 후송됐어요. 한 2~3주 계셨을 기라. 성질이 나더라고. 못자리 까는 부직포에다가 ‘한국 경찰은 한전 경비원이가’ 이렇게 써붙이고 있었어요. 한전도 밉지만 우리는 경찰이 국가가 더 미운 기라. 국가가 폭력을 조장하잖아요. 국가가 이건 완전히 폭력 아입니까?

우리 송전탑 주민들은 ‘죄를 더 물어주이소’, 내 같은 경우는 ‘사형시켜주이소’ 카는 게 대한민국에 없는 일 아입니까? 그만큼 우리 주민은 당당하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font size="4"><font color="#008ABD">“당신들이 단죄할 죄를 범한 적 없다” </font></font>

<font color="#C21A8D">이계삼(42·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 사무국장) </font>특수공무집행방해 등/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

“검찰이 제게 징역 3년을 구형했을 때, 주변에서 ‘법정 구속되면 어떡하냐’고 걱정들을 하셨지만, 저 자신은 무죄라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현행법이나 판례를 따지더라도 저는 300만원 정도의 벌금이면 ‘뒤집어쓸’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게 적용된 혐의는 특수공무집행방해, 집시법 위반, 기부금품법 위반이었습니다.

‘특수공무집행방해’는 2012년 6월28일, 밀양 주민들의 밀양시청 점거 농성 사건의 주모자로 기소되면서 적용된 죄목입니다. 당시 밀양시에서 한전이 요청한 밀양 송전탑 공사 야적장 및 진입로 인허가가 곧 떨어질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공사가 곧 재개될 상황이었습니다. 거기에다 당시 밀양시 공보관이 한 언론에 ‘밀양 주민들이 반대하는 이유는 보상금을 더 받아내기 위한 수작’이라는 취지의 인터뷰를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주민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은 것입니다. 당시 저는 현장에서 주민들과 시청 공무원들 사이에 중재를 서면서 폭력 사태로 번지지 않게 하기 위해 모진 애를 썼는데, 뜻밖에도 저는 ‘점거 농성의 주모자’로 지목되었고, 아무런 증거도 없이 (공소장에 적시된 ‘사전 모의 및 지시’는 정말 아무 증거가 없습니다) 저를 기소하였습니다.

‘집시법 위반’은 긴박한 상황에서 집회 신고에 필요한 48시간 전 신고 규정을 지킬 수 없었기에 부득이 기자회견 형식으로 진행한 5건을 저들이 자의적으로 ‘미신고 집회’로 규정하면서 기소한 사건입니다. 헌법은 집회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기자회견을 진행하면서 통행에 방해를 주지도 않았고, 공공질서를 파괴한 일도 없습니다. 단지, 기자회견 마지막에 기자들의 요청에 따라 구호를 몇 차례 제창한 것이 저들이 기자회견을 ‘집회’로 규정하는 유일한 근거입니다.

‘기부금품법 위반’은 저희 밀양대책위 후원계좌를 기부금품 모금 등록처로 두 차례나 신청했지만, 경상남도가 등록된 비영리법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를 반려하면서 자연스럽게 ‘미신고 불법 모금’의 책임자로 계좌 개설자인 저를 기소한 사건입니다. 투쟁 중인 단체에 대해서는 비영리법인 단체 등록을 받아주지도 않기 때문에 사실상 연대기금을 모으는 것은 자연스럽게 불법 모금이 됩니다. 이미 강정마을회도 이런 이유로 기소되어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박희태 전 국회의장은 캐디를 성추행했는데, 검찰은 고작 벌금 300만원을 구형했더군요. 법원은 그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습니다. 입법부의 수장을 지낸 70대 노인이 손녀뻘 되는 여성 노동자를 끔찍하게 추행한 것보다 제 행위가 더 중한 범죄라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저는 하느님 앞에서 죄인입니다. 그러나, 당신들이 단죄할 죄를 범한 적은 없습니다.”

밀양=<font color="#008ABD">글</font>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font color="#008ABD">사진</font>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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