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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담이 아닌 ‘접촉’ ‘비정상 사태’ 규정 필요

남북 고위급 접촉 ‘공동보도문’ 뜯어보기… 대북전단이나 로켓 발사 가능성 관리해야 ‘1항과 6항’ 두 바퀴 굴러간다
등록 2015-09-01 13:27 수정 2020-05-02 19:28

남북 고위급 접촉을 통해 8월25일 타결된 합의는 최근 고조된 남북의 긴장 열기를 식혔다는 데 의미가 있다. 6개 항으로 구성된 합의 내용에서 2~4항은 최근의 긴장을 해소하는 ‘사태 수습’에 해당된다. 여기에 향후 남북관계를 좌우할 두 축(당국 회담과 민간 교류, 1항·6항)에 바탕하여 이산가족 상봉(5항)을 우선적으로 실천하자고 합의했다. 일단 “대화 창구가 열리고”(문정인 연세대 교수), “남북관계 복원의 토대가 마련됐다”(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 교수)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1항(당국 회담)과 6항(민간 교류)의 두 바퀴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으면 남북관계가 다시 얼어붙을 수도 있다. 애초부터 회담이 아닌 ‘접촉’이란 표현을 쓰며 만난 남북은 서명이 들어간 공동합의문을 작성하는 대신 남북 언론에 발표하는 ‘공동보도문’ 형식으로 합의 내용을 공개했다. 공동보도문의 합의 조항을 4개 영역으로 들여다보았다.

① 전문

접촉 대상자와 목적만 간결하게 적어놓았다. 7·4 남북 공동성명(1972년), 남북 기본합의서(1991년), 6·15 남북 공동선언(2000년), 10·4 남북 정상선언(2007년) 등 기존 남북 합의서에 담긴 정신 등이 전문에 반영되진 않았다. 이번 만남에서 양쪽이 당면한 군사적 대치를 긴급히 해결하기 위한 논의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한 대북 전문가는 “(기존 합의서 정신의 계승과 같은) 민감한 부분까지 이번에 다뤘을 경우 협상이 더 어려워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② 향후 남북관계를 좌우할 조항

2~4항이 현재의 수습이라면 1항과 6항은 남북관계의 미래를 결정짓는 요소다. 양쪽이 당국회담을 다시 개최하기로 한 합의를 1항에 올려 대화 의지를 강하게 보인 것은 인정받을 만하다. 당국회담(1항)을 통해 2008년부터 중단된 금강산 관광 재개와 2010년부터 실시된 5·24 조치의 해제에 대한 논의가 진행돼 민간 교류가 활성화(6항)하면 남북관계가 좀더 진전될 수 있다.

당국회담이 어떤 형태로 진행될지도 관심사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선 통일부 장관이 주축이 된 장관급 회담이 21차례, 차관급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가 13차례 진행됐다. 노무현 정부 말기엔 10·4 정상선언의 합의 사항을 지키기 위해 남북 총리회담을 진행하고, 그 산하에 부총리급 남북경제협력공동위원회를 두기로 했으나 이명박 정부 이후 폐기됐다.

현재 우리 정부는 이번에 합의를 이끈 4인(남한 김관진·홍용표, 북한 황병서·김양건)으로 구성된 ‘2+2 회담’의 정례화를 포함해 여러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북한을 자극하는 국내 보수단체의 대북전단(삐라) 살포, 10월10일 열리는 노동당 창건 70주년 기념일을 즈음한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가능성 등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할 경우 ‘1항과 6항’의 두 바퀴가 덜컹거리거나 굴러가지 못할 수 있다.

③ 현 사태 수습 조항

2~4항은 최근 3단계로 진행된 위기 고조 상황(목함지뢰 폭발→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북한의 준전시상태 선포)을 푸는 조처를 담았다. 북한이 ‘지뢰 폭발’에 대해 ‘유감’이라고 표명한 2항을 두고 북한이 도발을 인정하거나 사과한 것이 아니라는 논란도 불거졌다. 반면 지뢰 도발 자체를 부인하던 북한을 상대로 유감 수준의 발언을 이끈 것이 의미 있다는 반론도 있다. ‘유감’이란 표현을 통해 양쪽이 각각 정치적으로 유리하게 해석할 여지를 열어두었다는 평가도 있다.

우리 정부가 지뢰 폭발에 대한 북한의 유감 표명을 수용한 것처럼 북한에 대한 5·24 조치(개성공단 가동 외 모든 남북관계 단절) 해제도 이번과 같은 방식(북한의 유감 표명)으로 풀 수 있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나온다. 정부는 5·24 조치를 부른 천안함 침몰에 대한 북한의 사과가 있어야 5·24 조치 해제를 검토할 수 있다는 태도에 아직 변함이 없다.

우리가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의 조건으로 3항에서 내세운 ‘비정상적인 사태’에 대한 정의를 향후 정확히 규정지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남북이 서로 ‘비정상적인 사태’에 대한 판단이 다를 경우 확성기 방송 중단과 재개를 둘러싸고 다시 한반도 위협이 증가할 수 있다. 양무진 교수는 “당국회담이 열리면 우선적 과제가 비정상적 사태에 대한 개념을 명확히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④ 당장 시급한 남북 문제

‘이산가족 상봉’은 그간 남북 대치 상황을 일부 해소하는 상징적 조처로 진행돼왔다. 우리 정부는 9월 초 적십자 실무접촉을 한 뒤 추석 이후 상봉이 이뤄질 것으로 내다본다. 통일부 관계자는 “모두 400명이 만나는(남북한 100명씩 두 차례 상봉) 방안을 추진하려 한다”고 말했다.

5항의 ‘(이산가족 상봉을) 앞으로 계속하기로 하였으며’란 부분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이 조항이 유효하도록 북한에 인도적 지원(쌀·비료) 등 반대급부를 줄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이명박 정부에선 이것이 잘 이뤄지지 않아 이산가족 상봉이 두 차례만 열리고 중단됐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이산가족 상봉이 우리에겐 인도주의 사업이지만 북에는 체제 부담이 따르는 복잡한 문제다. 만나는 순간 체제 우열(삶의 질)이 극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북이 마지못해 이산가족 상봉에 나설 만한 반대급부가 가야 한다”고 말했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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