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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힌 정치, 청년이 필요해

새정치연합 혁신위, 8월9일 청년후보 공천 할당제·공천 심사 가산점 부여 등 제안… 정당 노쇠화·청년 문제 해결책은 청년 리더 발굴·육성
등록 2015-08-28 11:36 수정 2020-05-02 19:28
청년 빈곤은 20대가 지나면 자동 소멸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 여파는 30대가 되어서도 끈덕지게 따라붙으며, 그런 불안정한 생활은 그들의 부모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청년 세대의 문제는 이제 장기적이며 복합적인 문제가 됐다. 정치가 더 이상 청년 세대의 문제를 간과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제1075호에서 청년 빈곤을 심층 보도한 은 이번호에서 청년 문제를 가장 잘 아는 세대가 정치의 주체로 설 수 있을지에 대한 가능성을 살펴봤다. 특집에선 청년 세대 내부의 격차가 위험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지표를 분석했다. 은 한국 사회의 문제를 총제적으로 담고 있는 ‘청년 문제’를 앞으로도 연속 보도할 예정이다.
취재 송호진·김선식·신윤동욱·황예랑 기자, 편집 박수진 기자, 디자인 장광석
김상곤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 위원장(가운데)이 지난 8월9일 국회에서 다른 혁신위원들과 함께 청년정치 혁신안을 제안하고 있다.

김상곤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 위원장(가운데)이 지난 8월9일 국회에서 다른 혁신위원들과 함께 청년정치 혁신안을 제안하고 있다.

청년과 정치는 할 수 없이 맞선에 끌려온 남녀 사이처럼 떨떠름한 관계였다. 청년에게 정치는 매력적이지 않으며, 게으르고 낡은 상대처럼 비쳤다. 정치는 청년의 얘기를 듣는 척했지만 그런 시늉은 곧 들키게 마련이다. 청년의 정치 무관심을 탓하지만 정치도 청년에게 정치 참여의 기회를 열어주는 데 인색했다.

하지만 최근 정치권에서 청년들의 정치 참여 확대를 위한 고민이 조금씩 늘고 있다. 심각한 청년 문제의 당사자를 정치 영역의 주체로 끌어들이려는 시도다. 청년과 정치, 둘의 사이는 이제 좀 가까워질 수 있을까.

19대 국회의원 300명 중 40살 미만 9명

지금 정당은 노쇠화를 향해 가고 있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내부에선 “청년이 정당에서 희귀종이 되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에서 ‘청년당원’의 나이 기준은 만 45살 미만이다. 20~30대 당원 비율이 낮아 청년의 기준을 높일 수밖에 없었다.

새정치연합의 대의원 평균연령은 환갑에 가까운 58살이다. 당 대의원 가운데 20~30대의 비율이 9% 수준이다. 새누리당은 당원 현황을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았지만 새정치연합과 비슷한 사정이라고 알려져 있다. 젊은 당원의 유입이 증가하는 정의당은 그래도 사정이 나은 편이다. 정의당은 20~30대가 전체 당원의 36.5%를 차지한다. 당 평균연령은 42.5살이다.

지방의회와 국회에 진출한 의원 현황을 보면 연령대의 편중이 심하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광역의원 당선자 가운데 40살 미만은 전체 789명 중 20명에 그쳤다. 주민과 가장 밀접하게 접촉하는 기초의원 선거에서도 2603명의 당선자 중 40살 미만은 91명에 불과했다. 기초의원 선거는 젊은 후보들에게 도전(공천)의 기회를 줄 수 있는 영역으로 꼽힌다. 하지만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기초의원 후보자 6079명 중 40살 미만은 390명 정도였다. 이마저 2010년 기초의원 선거에 출마한 40살 미만 후보자(495명)보다 줄어들었다. 정당이 젊은 정치인을 키우는 데 둔감했다는 뜻이다.

2012년 총선 당시 국회의원 당선자(옛 통합진보당 포함) 가운데 40살 미만은 300명 중 9명이었다.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의 청년당원 기준인 만 45살 미만(올해 8월 기준)으로 범위를 넓히면 의원 수가 17명으로 조금 늘어난다. 그래도 전체 의원 가운데 5.6%밖에 되지 않는다.

이처럼 정당의 근간(당원)과 의회 구성(의원)에서 20~40대 초반 세대는 거대한 구멍처럼 뚫려 비어 있다. 과거 ‘386 운동권 세대’가 ‘젊은 피 수혈’이란 이름으로 정치권에 들어올 때와 같은 인위적 영입이 중단된지 오래다. 게다가 자발적 유입(당원 가입)까지 두루 막혔다.

새정치연합 전국청년위원장인 정호준 의원은 “그간 정당이 청년의 목소리를 담아내지도 못하고, 선출직의 기회를 주거나 문호를 열어주지도 못했다. 그러다보니 정치 세대가 (386 이후) 뚝 끊겼다”고 말했다. 그는 “표를 달라고 할 때만 청년에게 관심을 갖고, (젊은 정치인이 출마라도 하려면) ‘넌 아직 어리잖아, 젊은데 다음에, (선거 유세 때) 박수나 쳐라’는 대상으로 청년을 여겨왔다”고 했다.

“청년 세대 유입 안 돼 정치권은 1980년대”

이는 청년들이 지역 정치와 정당에서 경력을 쌓아 국가 지도자로 성장하는 외국 사례와는 대조적이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는 43살,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44살,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은 43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47살에 각각 총리와 대통령이 됐다.

‘청년의 정치 참여를 확대한다고 해서 정치가 좋아지겠느냐’거나 ‘니들이 뭘 할 수 있겠느냐’는 인식은 청년정치를 가로막는 무형의 장애물이다. 그러나 정의당 미래정치센터 소장인 조성주 정치발전소 공동대표는 “청년 문제를 잘 아는 정치인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지금 청년 세대가 겪는 문제는 나이 어릴 때 잠깐 겪는 게 아니다. 일자리·주거 등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가 청년에게 폭탄으로 터진 것이다. 한국 사회의 방향을 청년 세대 중심으로 고민해야 한다. 그래서 청년 문제를 잘 아는 정치인이 필요하다. 새로운 세대가 정치에 유입돼 새로운 사회의 문제의식이 정치권에 함께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여전히 정치권이 1980년대 문제의식에 머물러 있다.”

국회연구단체인 ‘청년플랜2.0’의 공동대표인 김상민 새누리당 의원은 청년 세대의 정치권 유입 필요성을 이렇게 보았다.

“과거 컴퓨터에서 가동됐던 ‘도스’ 운영 체제(기존 정치권)와 모바일에서 운영되는 안드로이드 체제(청년 세대)가 충돌하고 있다. ‘도스’ 운영 체제가 구동돼도 (청년 문제 등의) 사회현상을 담아낼 수가 없다. 그런데 사고 체계가 도스로 운영되는 이들이 우리 사회의 결정권을 쥐고 있다.”

이동학 ‘다준다청년정치연구소’ 소장은 정치가 사회 갈등을 푸는 기능을 하려면 훈련된 정치 신인이 지속적으로 공급돼야 한다고 말한다. “사회 갈등이 심해지고 있다. 이 갈등을 중재하는 영역이 정치다. 그런데 고도로 훈련된 정치인이 나오지 않고 있다. 청년들이 곧 우리 사회의 중추세력이 될 텐데 젊은 정치인을 지금부터 양성해야 한다.”

2012년 총선에서 민주당(현 새정치연합)은 공개 오디션 방식으로 청년비례대표 의원(김광진·장하나)을 발굴했다. 두 의원의 의정활동에 대한 평가가 대체로 긍정적이지만, 공개 오디션 선발은 청년정치 확대를 위한 지속 가능한 방안이라기보다 ‘단발성 기획’에 가까웠다.

이를 넘어서자는 고민에서 새정치연합 혁신위원회는 지난 8월9일 ‘청년정치 혁신안’을 발표해 당이 이를 적극 수용하라고 제안했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청년 리더의 지속적 발굴·육성을 위한 ‘차세대리더학교 설립’이다. 정당이 차세대 리더를 배출하는 정치 시민교육의 기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천 할당제 등 청년리더 양성안 ‘꿈틀’

전국대학생위원회를 지역위원회에서 분리해 학교별위원회로 독립·운영할 것도 제시했다. 학생들과 정당 사이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학교별로 새정치연합의 대학생위원회를 두자는 것이다. 현재 새정치연합 전국대학생위원회에는 약 1천 명이 등록돼 있지만 실질적으로 활동하는 인원은 그 절반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혁신위가 정당에 지급하는 국고보조금에서 3%를 떼어 당의 청년위원회에 주도록 제안한 것도 의미가 있다. 그간 정당이 청년 문제에 관심을 두는 듯했지만 정작 당의 청년위원회는 독립적 예산이 없어 청년정책 사업을 펼치기 어려웠다.

이번 혁신위의 제안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청년 후보 1·2·3 공천할당제’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10%, 광역의원 선거에서 20%, 기초의원 선거에서 30% 이상을 청년 후보로 의무 공천하라는 것이다. 젊은 정치인이 가장 작은 단위의 지방의회에서부터 정치 경륜을 쌓을 수 있도록 기초의원 할당 비율을 가장 높게 잡았다.

혁신위는 또 공천을 위한 경선 과정에서 청년 후보에게 가산점을 줄 것도 제안했다. 이미 새정치연합은 당의 전국청년위원회가 청년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 2명을 추천할 수 있는 권한도 부여했다.

정호준 새정치연합 의원은 “청년 정치인이 비전을 갖고 있어도 (공천 과정에서) 기존 정치인에 대항하려면 한계가 있다. 돈도 없고 인지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유명하진 않더라도 청년 정치인의 잠재력을 보고 (공천 할당과 가산점 부여를 통해) 차세대 지도자를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적 약자인 청년에게 기회의 문을 열어주자는 것이다.

김상민 새누리당 의원도 “청년 공천할당제는 의미가 있다. 정치 불신을 야기한 그룹이 기존의 제도권 정치인들이다. 그럼에도 기존 정치권이 (청년정치 확대를 위해) 자생적으로 움직이지 못하니 청년 공천할당제를 통해 인위적으로 젊은 정치인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각 당이 청년 세대를 적극적으로 영입해야 한다는 분위기를 거스르진 못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 다만 청년 공천할당제를 실제로 도입할지, 할당 비율을 어떻게 할지는 당의 내부 사정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원내 3개 정당 가운데 하나인 정의당의 고민은 좀 다르다. 정의당은 청년 공천할당제보다는 청년 정치인 육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젊은 당원이 비교적 많기 때문에 다른 당처럼 소수자 우대 정책이라 할 수 있는 청년 공천할당을 적용하기가 여의치 않은 점도 있다.

조성주 정의당 미래정치센터 소장은 “당에서 청년 리더를 지속적으로 육성하기 위해 조만간 ‘미래리더십스쿨’을 세우려고 한다. 여기에서 공직자로 성장할 사람, 당직자로 나갈 사람, 국회 보좌진이나 정책위원으로 진출할 사람 등으로 구분해 실무교육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미 정의당은 부대표 3명 중 1명을 만 35살 이하 청년당원 가운데서 의무적으로 뽑도록 했으며, 당의 대의기구(전국위원회·대의원 등)의 10%도 청년을 할당하도록 했다. 당의 주요 의사 결정에 청년의 의사가 반영되는 통로를 마련해주자는 의미다. 최근 심상정 대표가 취임한 뒤 당의 주요 당직자도 30대에서 40대 초반의 사람들로 구성했다.

“청년 문제 해결 출발점은 선거제도 개혁”

정당 밖 청년단체도 청년의 정치 참여를 늘리는 제도 개선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 민달팽이유니온, 복지국가청년네트워크, 정치발전소, 한국청년연합 등 10개 청년단체는 지난 8월20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청년 문제 해결의 출발점은 선거제도 개혁에 있다”는 성명을 냈다.

이들은 청년 등 다양한 목소리가 의회에 진출할 수 있도록 비례대표 의석수를 더 확대하고 정당 득표율과 비슷하게 의석수를 가져가는 방향으로 비례대표제를 개선할 것을 요구했다. 또 선거연령을 현행 만 19살에서 만 18살로 낮추고, 청년들의 다양해진 근로 행태를 고려해 투표 시간을 밤 9시로 연장해 참정권을 보장하는 등 선거제도 개선안도 제시했다. 이들은 “선거제도 개혁을 위해 온·오프라인 서명운동 등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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