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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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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청년의 인간다운 삶을 누릴 권리를 보장함으로써”

청년 빈곤 현실 드러내는 연구작업 주도한 장하나 의원… 청년의 주거·생활·고용 등 경제적 권리 명시한 ‘(가칭)청년경제기본법’ 안철수 의원과 공동발의 예정
등록 2015-08-19 07:09 수정 2020-05-02 19:28

장하나(38)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청년들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청년 비례대표 의원으로 국회에 입성한 지 햇수로 4년째. 그처럼 청년을 끌어안은 정치인도 없다. 청년유니온, 알바노조 등 청년단체들과 손잡고 ‘열정페이’, 대학 산학협력단 현장실습생 착취 등 여러 이슈를 주도했다. 선거권의 연령을 낮추는 법안도 발의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낀다.
청년들에게 차마 “정치에 관심을 가지라”고 말하지 못하겠단다. 정치는 먹고살 만해진 다음의 문제다. 국회의원이 되기 전에 몸소 겪었던 터다. 대학교 시절 술집 서빙, 호텔 연회장 설거지, 콜센터 상담원 등등 안해 본 아르바이트가 없다. 직업학교를 다니면서 관련 자격증 5~6개를 딴 뒤 가구 공장에 목수로 취직하기도 했다. “우리 때도 살기 팍팍했지만 지금 20대들을 보면 속상하다. 청춘이 빛나고 아름다워야 하는데….”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부터 알아야

그래서 다시 ‘청년’이다. 지난 3월부터 청년들의 빈곤 현실을 드러낼 수 있는 통계 연구 작업을 주도하고, 심층 실태 조사에 나섰다. 청년들의 경제적 권리와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내용을 뼈대로 하는 ‘(가칭)청년경제기본법’ 발의도 준비 중이다. 청년의 기본권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명시하는 최초의 법이 될 터다.

청년 빈곤 문제를 주목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

청년 비례대표로서의 부채감이 있다. 청년 관련 의제를 얼마나 잘 다뤘는지 점수를 매긴다면, 100점 만점에 50점 정도? 발의했던 청년고용촉진 특별법이 통과됐지만, 새누리당이 반대하는 바람에 가장 중요한 민간 대기업의 참여가 빠졌다. 정치권에서 ‘청년 문제가 심각하다’고 말은 하지만, (야당) 청년 국회의원 2명 입성으로는 어렵다는 걸 깨달았다. 모든 당력을 기울여도 해결이 어려운 문제다.

올해 초 안수찬 편집장이 쓴 ‘그들과 통하는 길’이라는 글을 보좌관들과 돌려 읽었다. 그 글에 나오는 ‘청년들에게 정치는 도대체 어디 있냐’는 질문에 답하고 싶었다. “정말 살기 힘들다”고 외치는 청년들의 아우성밖에 없고, 정부 통계에서 청년 빈곤 문제는 제대로 잡히지 않는다. 그러니 청년들이 아무리 ‘아프다’고 소리쳐도, 무슨 약을 줘야 할지 모른다. 우선 구체적인 데이터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유령처럼 존재하는 청년들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에서부터 출발하고자 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과 한국노동연구원 등에 의뢰해 청년 관련 통계를 뽑아냈고 의미 있는 결과가 나왔다.

“정부가 청년을 팔아먹는다고 생각해”20~25살 청년 빈곤율이 60~64살 노인과 비슷한 20%가량으로 높게 나왔는데.

지금까지 국가는 ‘네가 일해야지’라며 청년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방관해왔다. 일자리 질을 제고하고 창업 지원, 생활 안정, 주거 안정, 부채 경감 등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청년들을 총체적으로 지원하는 법을 만들 예정이다.

지금까지의 복지 정책은 노인층이나 빈곤층을 대상으로 했다. 청년들이 살기 어렵다고 하지만, 세대 구성원으로 분류되는데다 대학교 진학률이 70%가 넘어 학생이라는 신분에 가려져 있으니 어떻게 사는지가 잘 드러나지 않았다. 청년실업률만 해도 취업포기자를 제외하니 9~10%대 공식 실업률이 나와서 다른 나라보다 낮다는 착시 효과가 나타난다. 그러나 이번 조사에서 전국 청년 실질실업률이 30.9%로 나왔다. 대학 졸업 유예자 등은 포함되지 않았는데도 그렇게 높다. 그런데 정부가 이런 청년 데이터도 안 내놓는다. 그러니 노인 맞춤형 복지 정책은 있지만 청년을 위한 복지 서비스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젊으니까 일하면 되지, 무슨 복지 수혜를 받느냐고들 하는데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지 않나.

요즘 정치권에서 다시 청년이 화두다.

나쁘게 말하면 정부가 청년을 팔아먹는다고 생각한다. 연금 개혁 때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세대 갈등을 이야기하면서 청년 문제를 이용하지 않았나. 지금도 비슷하다. 노동 개혁을 위해 이용하려는 거다. 정부나 정치권 모두 청년 일자리를 이야기하지만, 해법은 이야기하지 않는다. 임금피크제와 해고 완화는 청년 일자리 창출과 직접 관계가 없다. 보수 학자들도 노년층 일자리를 줄여도 청년 일자리가 늘어나지는 않는다고 논문에 썼다.

정부가 7월 말 발표한 ‘청년 고용절벽 종합대책’만 해도 3년간 만들겠다는 일자리 20만 개 중에 12만5천 개가 인턴이나 일·학습 병행제, 직업훈련 등을 모두 합친 수다. 10만여 명의 인턴을 양성하자는 ‘10만양턴설’에 불과하다. 대기업 사내유보금이 700조~800조원이다. 임금피크제로 기업에 여윳돈을 만들어줘야 고용 여력이 생긴다는 건 허구다. 노·사·정이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면, 당연히 많이 가진 사용자 쪽이 먼저다. 그런데 노동자들끼리 우선 나누란다. 게다가 임금피크제 도입하고 청년 신규 채용하면 대기업에 1인당 540만원의 지원금을 준다고 한다. 결국 국민 세금 아니냐. 완전 조삼모사다.

그런데도 야당이 청년 문제에 집중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있다.

처음으로 공개하는 건데 를 쓴 우석훈 민주정책연구원 부원장과 함께 ‘(가칭)청년경제기본법’을 만들고 있다. 법안 초안은 거의 완성된 상태고, 8월 안에 법안을 완성해서 안철수 의원과 공동발의할 예정이다. 기존에 몇몇 여당 의원이 청년 고용 촉진과 창업 지원 등을 뼈대로 하는 ‘청년발전기본법’을 발의했지만, 이와는 기본 문제의식과 정책 내용이 다르다. 청년을 위한 정책을 종합하고, 국가가 청년을 책임질 의무가 있다고 선언하는 최초의 기본법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국가는 ‘네가 일해야지’라며 청년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방관해왔다. 일자리 질을 제고하고 창업 지원, 생활 안정, 주거 안정, 부채 경감 등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청년들을 총체적으로 지원하는 법을 만들 예정이다.

(가칭)청년경제기본법(초안)의 제1장 총칙은 이렇게 시작된다. “이 법은 청년의 경제적 권리와 인간다운 삶을 누릴 권리를 보장함으로써”(목적), “청년을 우리 사회의 독립적인 사회구성원일 뿐 아니라 경제적 주체로 인정하고 청년들이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함과 동시에 (중략) 헌법이 보장하는 인간의 보편적 기본권을 누릴 수 있도록”(기본이념) 한다.

청년 비례대표로서의 임기가 1년 남았다. 앞으로 청년을 위해 더 하고 싶은 일은?

이번 연구 작업을 완성해서 보고서를 내고 나면 스스로 평가 점수를 70점으로 올려줄 수 있을 것 같다. (웃음) ‘찾아가는 보고회’ 등 청년들과 만나는 자리를 많이 마련하고 싶다. 청년층에 뭐가 필요한지, 내가 뭘 할 수 있을지 한 걸음 뗀 느낌이다. 출퇴근 시간 의무기록제, 연장근로 부담금 신설 등의 내용을 담은 근로시간 단축법 개정안도 준비 중이다. 임금피크제보다는 노동시간을 실제로 줄여야 일자리 확대로 연결된다. 청년고용촉진 특별법 개정안도 내려고 한다. 매년 청년 의무고용 3% 약속을 지키지 않은 대기업에 ‘교통유발부담금’처럼 ‘고용부담금’을 징수해서,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청년을 긴급 지원하는 재원으로 쓰도록 할 것이다.

청년의 권리, 없는 게 아니라 빼앗긴 것

“나에겐 지금 아무것도 없고, 앞으로도 아무것도 없다?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난 이상 갖고 있던 권리를 많이 빼앗기고 박탈당한 것뿐이다. 그 권리를 되찾는 게 나 같은 청년 정치인이 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한다.” 장 의원이 청년들에게 꼭 해주고 싶었던 말이란다. 청년들의 빼앗긴 들판에도 봄은 온다. (가칭)청년경제기본법이 봄의 마중물이 될 것이다.

글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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