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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찍어도 넘어가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 6·25 연설에서 ‘배신자’ 낙인에 오히려 유승민 방어 여론 일어나… “삼권분립 지키려는 시민들의 균형감 발휘된 것” “강자가 약자 누르니 억울해 보이게 됐다”
등록 2015-07-07 14:32 수정 2020-05-03 04:28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6월30일 원내 대책회의에서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한겨레 이정우 선임기자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6월30일 원내 대책회의에서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한겨레 이정우 선임기자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거취를 둘러싼 여권의 내분이 이어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6월25일 정치권을 향해 배신의 정치라고 비난하고, 이어 친박근혜계가 유 원내대표의 사퇴를 촉구하면서 벌어지는 풍경이다. 조만간 대중은 현 사태를 ‘정치권의 지겨운 추태’로 연결짓고 정치 혐오에 다다를지 모른다. 청와대가 기대했던 것이 바로 이 대목이었을까?
냉소적 결론에 이르기 전에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이 있다. 여야가 국회에서 합의 처리한 과정과 절차를 심판받아야 할 배신의 정치로 보는 것은 온당한 일인가? 진노한 대통령의 말씀에 일부 의원들이 자기들 손으로 뽑은 수장을 갈아치우겠다고 내달리는 돌격을 어떻게 봐야 할까? 지금 의회 민주주의와 삼권분립은 안전한가? 대통령이 정치권의 혼돈을 촉발할 만큼 우리 사회는 여유로운가?
유 원내대표는 지난 4월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제가 꿈꾸는 보수는 정의롭고 공정하며 진실되고 책임지며, 따뜻한 공동체의 건설을 위해 땀 흘려 노력하는 보수”라고 말했다. 지금 그의 위기는 그가 꿈꾼 이 말의 가치를 더욱 되새기게 만든다.
취재 송호진 기자, 편집 박수진 기자, 디자인 장광석
<font size="4"><font color="#008ABD">“살다 살다 내가 유승민을 응원하긴 처음이다.”</font></font>

최근 여당 관련 기사에 이런 인터넷 댓글이 종종 눈에 띈다. 그 밑엔 “당신도?” “나도!” 따위의 호응이 겹겹이 붙는다. 온라인 여론에선 정의, 용기, 희생자, 신념과 같은 단어들이 ‘유승민’이란 이름과 달라붙어 유통되기도 한다.

‘나라 걱정으로 ‘우국의 밤’을 보낸다는 대통령의 생각과 엇나간 흐름이다. 대통령의 ‘6월25일 격노 발언’의 의중대로 하면 지금 친박근혜계(친박)는 ‘유승민’을 원내대표직에서 몰아낸 기쁨의 몸이 되었어야 마땅하다. 이런 당의 변화를 가장 기뻐한 건 물론 대통령이었어야 한다. 그리하여 청와대를 향한 충성심이 무르익은 친박은 대통령의 목소리 속으로 더 풍요롭고 기름지게 스며들었다는 환희의 격렬함을 누리고 있어야 했다. 그래야 흙먼지투성이의 얼굴조차 씻지 않고 덤볐던 자신들의 다급한 성미가 대통령의 청일한 향기 속에서 안락한 위로를 받았을 것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메르스’ 대신 ‘유승민’ </font></font>

6월25일, 대통령은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수정을 염두에 둔 국회법 개정안을 공무원연금 개혁안과 함께 합의 처리한 정치권과 새누리당의 원내사령탑을 질타했다. ‘배신의 정치’를 “국민들이 심판해야 한다”는 대통령의 노여움 속에 ‘유승민’이란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공격적 언어를 야당 대신 유승민 원내대표에게 쏟은 친박계의 행동에서야 비로소 ‘배신의 유승민 심판’이란 표현의 조합이 드러났다. 국회법 개정안의 위헌성을 따지는 듯했던 대통령의 애초 의도가 증발된 자리엔 친박계의 처연한 생존 욕구와 청와대의 ‘비박 배제의 욕망’이 끓어오르는 듯하다. 대통령은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에 대한 청와대 대응 미숙을 거론할 언론 보도 공간의 상당 영역을 ‘유승민 사태’로 치환시켰다. 하지만 일단 새누리당의 다수 의원들은 의원총회에서 유승민 원내대표의 재신임을 결정했다. ‘유승민 사퇴 반대’ 여론도 사퇴 요구 의견에 밀리지 않는 분위기다. 그의 이름이 언론에 집중 거론되면서 도리어 그는 대중적 인지도까지 확장하고 있다. 정치권에선 “배신자 낙인의 역설”과 “유승민 찍어내기의 역효과”란 말이 자연스레 등장했다.

‘배신자’는 인간적 신뢰와 도의를 중시하는 우리 사회에서 ‘정치 철새’란 말과 함께 정치인을 쓰러뜨리는 유용한 도구다. 더구나 대통령이 배신의 대상으로 정치권과 국회를 낙인찍은 것은 이 둘에 대한 불신이 깊은 여론 지형을 효과적으로 건드린 것이다. 그런데도 대통령이 시도한 배신의 낙인은 지지의 확장을 받지 못했다. 오히려 ‘유승민 방어’ 흐름을 불러왔다. 5년 임기의 중반을 앞두고 30%대로 떨어진 대통령의 지지율에 담긴 여론의 실망감, 대통령의 일부 대선 공약 파기의 배반이 배신이란 단어 사용에 설득력을 더해주지 못한 탓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대통령의 ‘의중’이 통하지 않은 이유는? </font></font>
“보통 대통령제에서 대통령이 국회와 싸우면 이길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은 (많은 유권자가) 직접 뽑았고, 국회는 각 지역구에서 뽑힌 의원들의 집합이다. 자기가 지지한 사람과의 유대감은 대통령이 더 크다. 그런데 (여론조차) 일반적인 상식으로 봐도 (이번 건에 대해) 별로 이해되지 않는 것이다. 강자가 약자를 누르는 것으로 보여 유승민 원내대표가 억울해 보이게 됐다. 대통령 지지율이 낮아지면서 (상황을 반전시키려는) 정치적 고려가 있다고 느낀 것이다.” -조진만 덕성여대 교수

“보통 대통령제에서 대통령이 국회와 싸우면 이길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은 (많은 유권자가) 직접 뽑았고, 국회는 각 지역구에서 뽑힌 의원들의 집합이다. 자기가 지지한 사람과의 유대감은 대통령이 더 크다. 그런데 (여론의) 일반적인 상식으로도 (이번 건이) 별로 이해되지 않는 것이다.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성난 모습을 보이니까 거부감이 들면서, 저렇게 몰아세울 게 뭐가 있느냐는 반응이 나오는 것이다. 강자가 약자를 누르는 것으로 보여 유승민 원내대표가 억울해 보이게 됐다. 대통령 지지율이 낮아지면서 (상황을 반전시키려는) 정치적 고려가 있다고 느낀 것이다.”(조진만 덕성여대 교수)

김태일 영남대 교수는 ‘유승민 캐릭터’가 배신 낙인의 파급력을 막은 측면이 있다고 보았다. “유승민 의원이 기회주의 처신을 해왔다면 대통령의 배신이란 말이 실감났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지역구가 있는 대구에서도 소신이 일관된 사람, 강직한 사람이란 이미지가 형성돼 있다. 이 지역 사람들이 좋아하는 기질이다.” 유 원내대표가 2005년부터 ‘박근혜 전 대표의 비서실장’을 지냈지만 적어도 ‘정치적 주종 관계’의 틀에 묶이지 않고 쓴소리를 해왔다는 평가 때문이다. 이는 “잘못된 것을 보면 잘 참지 못한다”는 성격에서도 기인하겠지만 그의 정치 입문 통로가 ‘박근혜’가 아닌 이유도 작용한다.

경제학 박사(미국 위스콘신대)인 그는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으로 있으면서 1998년 들어선 김대중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하다 대외활동 금지와 감봉 징계를 받기도 했다. 이즈음 이회창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총재의 권유로 2000년 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 소장을 맡아 정치권에 들어왔다.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의 선거 기획 참모로서 패배를 경험했다. 지금까지 그는 15개 남짓의 임플란트 시술을 받았는데, “두 번의 대선 패배(2002년 이회창 패배, 2007년 박근혜 후보의 당내 경선 패배)로 이가 녹아내렸기 때문”이라 표현할 정도로 이회창 후보의 패배를 쓰린 기억으로 갖고 있다. 2004년 비례대표 초선 의원이 된 그가 비례대표직을 내놓고 2005년 지역구 보궐선거(대구 동구)에 나섰을 땐 당시 박근혜 대표뿐 아니라 대선 패배로 정계를 떠난 이회창 전 총재가 현장 지원 유세를 나오기도 했다.

유승민 의원이 원내대표로 당선된 지난 2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함께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고 있다. 세 사람은 2005년 당대표(박근혜), 사무총장(김무성), 대표 비서실장(유승민)으로 만난 인연이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유승민 의원이 원내대표로 당선된 지난 2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함께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고 있다. 세 사람은 2005년 당대표(박근혜), 사무총장(김무성), 대표 비서실장(유승민)으로 만난 인연이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font size="4"><font color="#008ABD">‘대선 패배’로 이가 녹아내린 남자</font></font>

‘이회창 측근’이던 그가 2005년 박근혜 당시 대표의 비서실장직을 수락하며 내건 조건은 청와대가 그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현 사태의 전조였는지 모른다. 그때 그는 박 대표의 비서실장직 제안을 두 번 거절하다 수용하면서 “단, 조건이 있다. 내가 2002년 대선에서 지고 후회하는 게 있다. 결정적 순간에 제대로 (이회창 후보에게) 건의를 못한 것이다. 비서실장을 해도 할 말은 다 해도 되겠느냐”고 요구했다고 언론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그는 2012년 과의 인터뷰에서 “박 전 대표의 비서실장을 할 때도 주군을 모신다는 생각은 없었다. 상·하, 고용주와 피고용주 관계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정치권에서 동지란 말은 뜻을 같이한다는 것인데 그런 동지적 관계라고 생각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원조 친박’이라 불리면서도 친박 의원들과 다른 행보를 보였다. “청와대 하수인을 하면 여당까지 망한다” “민주정치에서 기본은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다. 훌륭한 지도자는 반대되는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해야 한다”는 그의 발언이 청와대를 향하곤 했다. 박 대통령이 대선에서 당선되기 전엔 “5·16이 쿠데타라는 것은 상식이고 유신이 헌정질서를 파괴했다는 것에 많은 분이 동의한다. 대선 후보로서 (과거사를) 평가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게 맞다”고 말한 적도 있다. 그는 현 정부의 방침과 달리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고 주장해왔다. 그는 이를 두고 박근혜 정권 성공을 위한 충언이라고 했지만, 박 대통령은 예민한 부분을 건드리는 그를 곁에서 밀어냈다.

이제 그는 ‘배반의 존재’로 몰아가는 친박계의 사퇴 공세를 받는다. 정치학자들은 그런 그를 방어하는 여론의 흐름을 의회 민주주의 훼손과 입법부에 대한 행정부의 통제를 막으려는 여론의 대응으로 읽고 있다. 국회 제정 법률에 대한 대통령의 재의 요구(거부권)는 헌법 제53조가 보장한 권리다. 하지만 여야가 합의한 절차적 노력까지 심판받아야 할 “배신의 정치”라고 대통령이 지적하면서 삼권분립 균열에 대한 우려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유승민’은 그 가치를 지키는 최전선에 선 인물로 주목받는 예기치 않은 상황에 놓이게 됐다. 7월3일 발표된 한국갤럽의 정례 여론조사에서 유승민 원내대표의 사퇴 불가 의견(36%)이 사퇴해야 한다는 찬성 비율(31%), 의견 유보(33%)보다 높았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삼권분립’ 가치 수호의 최전선?</font></font>

100점 만점 기준. 자료: 중민사회이론연구재단

100점 만점 기준. 자료: 중민사회이론연구재단

김태일 교수는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지만 여야가 합의한 의회의 자율성에 대해 국무회의에서 저주에 가깝게 말한 것”이 여론의 반감을 불렀다고 보았다. 채진원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는 “박근혜 대통령은 우리 정치에서 마지막 보스에 해당한다. 제왕적 대통령제와 보스 계파 정당 구조가 의회 민주주의를 공격하는 것에 대한 여론의 방어”라고 짚었다.

“대통령의 자의적 국정 운영이 누적되면서 이번에 반감이 커진 것 같다. 우리 시민들이 정치적 경험을 통해 어느 한쪽에 힘이 쏠리지 않게 하려는 삼권분립에 대한 학습이 되어 있다. 시민들의 역동성과 균형감이 이번 사태에서도 보이는 것이다”라고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교수는 말했다.

박 대통령의 ‘6·25 발언’ 직후 유 원내대표가 즉각적인 사퇴로 응답하지 않은 것도 “민주적 절차”를 지키려는 데 있다는 게 새누리당 원내 핵심 인사의 얘기다. “유 원내대표는 절차를 중시한다. 원내대표는 의원들이 선출한 자리다. 자신을 뽑은 의원들이 (의총에서) 원내대표직을 유지하라고 했으니 그 결정을 따르는 것이다. 지금 그(유승민)는 당위성, 즉 무엇이 바른 길이냐를 놓고 판단하고 있다.”

친박계 의원, 김태호 최고위원 등은 당청 관계를 갈등으로 몰고 간 책임을 들어 사퇴를 요구한다. 집권당 원내대표가 대통령을 적극 보좌하지 않았다는 ‘조직규율’도 사퇴 근거로 등장한다. 이에 대해 안병진 교수는 “(입법부와 행정부 사이의) 견제와 균형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무시한 위험한 얘기”라고 우려했다. 새누리당 원내대표단의 한 의원은 “그럼 대통령의 말을 잘 따르는 사람을 임명하면 되지 의원들이 왜 원내대표를 직접 뽑느냐”고 반문했다.

의회주의를 방어하려는 대중의 심리가 ‘유승민’이란 이름에 투영된 현상에 대해선 좀더 설명이 필요하다. 정치권에선 그가 개혁적 보수를 지향하고, 진영 논리의 포로가 되지 말자는 ‘진영 극복주의자’란 점에 주목한다. 최정묵 한국사회여론연구소 부소장은 그에 대해 “뻣뻣하고 권위적인 보수가 아니라 유연한 ‘성찰적 보수’란 느낌을 준다”고 평했다.

그는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후보가 보수적인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운다)를 내세울 때 참모였다. 하지만 나중에 “2008년 금융위기 뒤 재정 적자가 치솟는 걸 보고 (줄·푸·세에서) 감세 주장을 접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넓어진 ‘중도’ 여론에 부합하는 인물</font></font>

100점 만점 기준. 자료: 중민사회이론연구재단

100점 만점 기준. 자료: 중민사회이론연구재단

그는 정치권 안팎의 화제를 몰고 온 자신의 국회 연설(4월)에서 사회적 양극화 해결을 위한 성장과 복지의 균형발전, 진영 대립을 넘은 합의의 정치, 공정한 고통 분담과 공정한 시장경제(비정규직 차별 해소 등), 재벌 개혁, ‘중(中)부담-중(中)복지’를 위한 증세 논의 등을 제시했다. 특히 성장과 복지를 모두 중시하면서도 안보에선 정통 보수란 그의 주장은 보수와 진보의 가치를 혼합해 추구하는 중도 영역이 넓어진 흐름과 맞닿는다.

은 ‘복지 프로그램을 강화해야 한다’는 데 찬성한 의견이 100점 만점으로 환산했을 때 62점으로 절반을 웃도는 여론의 흐름을 보여준다. 우리 사회의 ‘소득 분배의 공정성’에 대해선 33.8점으로 박하게 평가해 분배의 정의의 필요성도 요구한다. 에선 경제성장을 원하는 여론을 읽을 수 있다. ‘민주주의에 필요한 항목’을 묻는 조사인데도, ‘경제적 번영’을 답한 비율이 100점 만점에 80.5점을 차지한다. 과 는 중민사회이론연구재단이 지난해 1월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발표한 ‘2014년 국민의식조사’에 담긴 결과다.

은 2012년 대선 이후 조사해 민주당(현 새정치민주연합) 대선평가 보고서에 실린 내용 중 안보 성향 항목이다. ‘한반도 평화 선호 지수’와 ‘대북한 체제 비판 지수’가 동시에 높게 나타난다. 대화를 통한 한반도 평화 관리 못지않게 튼튼한 안보를 원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김무성 대표(오른쪽 두 번째)가 7월2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유승민 원내대표의 사퇴를 거듭 주장하는 김태호 최고위원(왼쪽)의 발언이 나오자 회의 중단을 선언하며 일어서고 있다. 한겨레 이정우 선임기자

김무성 대표(오른쪽 두 번째)가 7월2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유승민 원내대표의 사퇴를 거듭 주장하는 김태호 최고위원(왼쪽)의 발언이 나오자 회의 중단을 선언하며 일어서고 있다. 한겨레 이정우 선임기자

<font size="4"><font color="#008ABD">사퇴 반대 여론 ‘새누리’< ‘새정치’ </font></font>

“대통령의 자의적 국정 운영이 누적되면서 이번에 반감이 커진 것 같다. 우리 시민들이 정치적 경험을 통해 어느 한쪽에 힘이 쏠리지 않게 하려는 삼권분립에 대한 학습이 되어 있다. 시민들의 역동성과 균형감이 이번 사태에서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교수

이런 여론의 흐름은 “새누리당이 꼴보수를 버려야 한다”며 용감한 개혁을 주장하는 유 원내대표의 지향과 겹친다. 이번 사태에서 여론이 그에게 비교적 호의적으로 움직인 이유 가운데 하나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 유 원내대표의 사퇴를 반대한 여론을 새누리당에서 합리적 보수의 좌절을 막으려는 움직임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김태일 교수는 ‘유승민 방어 여론’에 “개혁적인 그의 가치와 노선에 대한 지지와 격려도 담겨 있다”고 보았다.

정치인의 성장엔 어떤 계기가 필요한데 유 원내대표에겐 이번이 대선을 향한 TK(대구·경북)의 대표주자를 각인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하지만 지금 그에 대한 여론의 관심은 일시적이며 지지세도 견고하지 않다는 반론이 있다. 장덕현 한국갤럽 부장은 “새누리당 지지자보다 새정치연합 지지자 사이에서 유 원내대표의 사퇴를 반대하는 여론이 더 높다. (현재 그를 향한 여론의) 지지 기반과 충성도가 떨어진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이름을 밝히지 말 것을 요구한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박 대통령의 6월25일 발언 직후 대통령에게 사과한 유 원내대표의 모습이 그를 잠재적 차기 권력으로 보이게 하는 데 한계로 작용할 수 있다”고 했다.

정치권 안팎에선 대통령이 여당 지도부와 만나 사태를 직접 풀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지만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유 원내대표의 거취를 둘러싼 친박계의 저항이 계속돼 당의 혼돈 양상이 길어지면 유 원내대표의 결단을 압박하는 새누리당 지지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질 수도 있다.

유 원내대표의 정치적 미래는 ‘지금 이후’의 행보에 달렸다. “탄압받는 자체로는 (국가) 지도자가 될 수 없다. 자신이 내건 개혁적 가치를 이후에도 일관되게 가져가고, 실현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줘야 하는 민심의 테스트가 그에게 남아 있다”고 김태일 교수는 말했다. ‘합리적 보수’로 불리는 그가 새누리당의 용감한 개혁 앞에서 주춤할 경우 그를 주목했던 여론이 오히려 ‘배신의 정치’란 낙인을 그의 이름 앞에 호출할지도 모른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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