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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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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읽으면 안수찬만큼 한다

<한겨레21> 전·현직 기자 4명이 ‘언시생’에게 주는 조언
등록 2015-06-03 10:37 수정 2020-05-02 19:28

20년 전이다. 라는 책이 불티나게 팔렸다. 컴퓨터를 배워야 한다는 말은 많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한 이들한테 좋은 길라잡이가 되어준 책이다. 때로는 한 권의 책보다 압축적인 몇 마디가 더 큰 나침반 구실을 하기도 한다. 오리무중 암중모색 고군분투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언시생’들을 위해 전·현직 기자 4명을 호출했다. 중언부언하지 않고 알짬만을 추려서 전한다.

김창석 전 사회팀장, 한겨레교육문화센터 ‘김창석 기자의 언론사 입사준비 아카데미’ 강사

1. 기자가 되려면 체력이 좋아야 한다거나 술을 잘 마셔야 한다는 말이 있다. 본말이 전도된 얘기다. 기자는 무엇보다 지식노동자다. 나날이 쏟아지는 지식과 정보를 판단하고, 선별하고, 재가공한 뒤 대중에게 최적화한 상태로 제공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려면 지적 능력을 기르는 게 최우선이다. 언어 능력은 특히 중요하다. 표준화된 모국어를 정확하고 세련되게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 기자는 다른 어떤 직업군보다 ‘만들어지는’ 성격이 강하다.

2. 좋은 기자는 직업인보다는 지식인이나 지성인에 가깝다. 지식인이나 지성인은 자기만의 지식 생태계를 구축한 이들이다. 자기만의 지식 생태계는 신문 사설이나 기사를 읽는다고 생기지 않는다. 신문에서 출발할 수 있지만, 신문에 머물러 있어서는 곤란하다.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콘텐츠인 ‘책’을 읽어야 한다.

3. 기자가 하는 노동은 ‘생활을 위한 노동’이어서는 곤란하다. ‘노동 자체를 위한 노동’일 때 노동이 빛난다. 노동의 질에 대한 자존심이 한없이 높은 기자가 멋진 기자다. 월급 받는 기자라고 무조건 저널리스트가 되는 건 아니다. 저널리즘의 대의에 복무하는 일을 해야 저널리스트가 될 수 있다.

4. 저널리스트가 되려면 친구 따라 강남 가듯이 만들어놓은 ‘뻔한 스펙’보다는 세상을 보는 관점이나 시각을 먼저 가져야 한다. 관점이나 시각은 주요한 생각의 도구나 개념을 통해 이뤄진다. 변증법에 언급되는 주요 개념들이 대표적인 경우다. 역사적 인식, 구조적 이해, 맥락적 파악 등은 변증법적 사고의 핵심이며, 변증법적으로 사고하면 머리가 두 배 좋아진다.

5. 글쓰기 때문에 고민하는 준비생이 많지만, 논픽션 분야에서의 글쓰기 법칙은 의외로 간단하다. 입력(독서와 사고)의 양을 늘려야 출력(글쓰기)의 질이 높아진다는 법칙이 그것이다. 입력을 높이는 게 지겨울 수 있지만, 지겨운 과정을 거치지 않고 달인이 되는 경우는 없다.

안수찬 편집장, 한겨레교육문화센터 ‘안수찬 기자의 언론사 입사 작문집중반’ 강사

1. 기자를 준비하지 말고, 그냥 지금 당장 기자를 하라. 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등에서 지금부터 언론 활동을 시작하라. 논평하고 분석하여 대중에게 전하라. 운 좋으면 그대로 유명 언론인이 될 수 있고, 운 나빠도 기자 시험 준비의 모든 것을 한번에 해결할 수 있다.

2. 기자들이 쓴 책을 읽어라. 국내외 기자들의 책을 읽으면 기자가 갖춰야 할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다. 다만 기자의 범주를 넓게 이해하라. 노벨문학상을 받은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기자였다. 가까이는 김훈, 고종석 모두 뛰어난 기자였다.

3. 내가 직접 언론사를 만드는 꿈을 항상 꾸어라. 아이디얼 타입, 즉 이상형을 꿈꾸지 않으면 실행이 어렵다. 기자 최고의 꿈은 언론사 창업이다. 언론계의 스티브 잡스를 꿈꾸어라.

4. 사랑하라, 기자의 꿈을 포기할 만큼. 감각하고 지각하며 교감하는 능력이 없으면 기자가 아니다. 이를 키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완전히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은 대체 불가능한 삶의 동력이다. 기자도 살아 있는 생명이다.

5. 정말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거듭 자문하라. 스스로에게 귀를 기울여 가만히 들어봐라.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그게 과연 기자와 어울리는 욕망인지. 이걸 생략하면 기자가 되어도 불행하고 고통스럽다.

정은주 기자, 민주언론시민연합 ‘글쓰기 강좌’ 강사

1. 기자는 대단한 직업이 아니다. 자리가 아니라 일을 탐하라. 기자가 몇 년차이든, 어느 부서를 가든 하는 일은 거의 같다. 어디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일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독립언론이든 학보사든 든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먼저 알아야 한다. 하루하루 현장을 기록하고 증언하는 것이 기자의 본질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2. 기획력, 발굴 능력, 글쓰기 중 하나는 갖춰야 한다. 셋을 다 잘하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기획력은 사회에 대한 감각이나 관심에서 나온다. 사람을 좋아하고 인맥도 넓어야 특종을 한다. 글발 좋은 기자들은 은둔형 외톨이 같은 성향이 많다. 그대는 셋 중에서 어디에 해당하는가.

3. 3일, 3주, 3개월, 3년을 기억하자. 기자들은 판단이 굉장히 빠르다. 판단을 쉽게 하고 한 번 하면 쉬 바꾸지 않는다. 언론사에서 평판을 얻는 기자가 되려면 ‘3일, 3주, 3개월, 3년’을 생각해야 한다. 수습기자라면 3일 안에 특종을 가져오든지, 3주 안에 괜찮은 기사를 쓰든지 해야 한다. 기자가 되려면 언론사의 이런 생리를 미리 알아야 한다.

4. 마지막 순간, 딱 반 발짝만 더 내디뎌야 한다. 공부도 그렇고 취재도 그렇고 기사도 그렇고, 언제나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온다. 특종을 하는 기자는 99번의 낙종을 견뎌낸 기자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낙종의 상처나 모멸감을 끝내 견뎌낸 기자가 특종을 하는 것이다. 기자가 되려면 끈질겨야 한다. 무조건, 끈덕져야 한다.

5.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기자를 싫어할 뿐이라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 내가 드러나고 나를 믿게 되는 거다. 신뢰를 쌓는 방법은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커뮤니케이션이고 결국엔 기사다. 기자가 되려면 타인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송채경화 기자

1. 자신감을 가져라. 다른 이들의 스펙이나 조건에 주눅 들지 말라. 스펙이 실력을 보장해주는 건 아니다. 자신만의 강점을 살려라. 지레 스펙 안 된다고 포기하지 말고, 자기가 잘할 수 있고 흥미가 있으면 도전해보는 게 좋다. 주눅 들 만한 사람들이 주변에 있어서 비교하거나 신경 쓰지 말고 자기 갈 길을 가라.

2. 기사는 결국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나 자신만 아는 사람은 좋은 기사를 발굴하기도, 쓰기도 어렵다. 스터디를 하다보면 중요한 정보나 지식을 공유하지 않고 본인만 몰래 갖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결국 그 한계가 드러나게 돼있다. 그런 사람들, 결국 잘되지 않는다.

3. 기사는 자신의 능력을 뽐내는 도구가 아니다. 내 이름을 어떻게 빛낼 것인가보다는 어떻게 더 좋은 기사를 만들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 좋은 기사는 협동에서 나온다. 남의 얘기를 잘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글쓰기 스터디를 할 때, 자신의 글에 첨삭하거나 타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 내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발전할 수 없다.

4. 정리·정돈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만나는 사람들, 자료와 기사 등을 꼼꼼히 정리하라. 세상일은 반복된다. 언젠가 반드시 도움이 된다. 좋은 문구는 물론, 어렴풋이 떠오르는 생각들도 메모하라. 시험 보는 과정에서 떨어진 이유, 자신에 대해 정리해볼 필요도 있다. 시험에 떨어지더라도 다음 도전을 할 때 도움이 된다.

5. 잘 쉴 줄 알아야 한다. 스펙 관리, 글쓰기, 상식 등 기자를 준비하는 시간을 겪다보면 지치기 쉽다. 내가 좋아하는 취미 생활을 적당히 섞어서 공부하면 도움이 된다. 오로지 취업준비에만 파묻혀 있을 게 아니라 다른 활동에도 열려 있는 사람이라야 나중에 기자가 되어도 ‘열린 기자’가 될 수 있다.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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