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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 없는 저널리스트의 탄생

한국형 기자의 탄생 경로 4단계… 대학보다 인터넷 카페에서 정보 얻고 학원에서 첨삭지도받고 인턴십 ‘열정 착취’ 당하고 비인간적인 수습 거쳐
등록 2015-06-03 05:54 수정 2020-05-03 00:54
일러스트레이션 장광석

일러스트레이션 장광석

최근 한겨레신문사는 2015년 기자 공채 전형을 진행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를 필두로 여러 언론사의 기자 공채 공고가 속속 발표될 것입니다. 취업난 속에서 특히 인문사회계열 전공자를 중심으로 언론사 입사를 준비하는 ‘기자 지망생’들에겐 이른바 ‘공채 시즌’이 시작됐습니다. 높은 경쟁률로 인해, 국가공무원 시험에 빗대어 ‘언론고시’라 부르는 이 과정은 매년 여름부터 시작하여 겨울까지 이어집니다.
그 과정을 거쳐 현장을 뛰고 있는 기자는 2만7398명(2013년 기준). 기자가 이렇게 많습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매년 조사·발표하는 에 나온 수치입니다. 매체는 모두 3686개나 됩니다. 2009년 2만969명이었던 한국의 기자는 매년 1천 명 이상 쑥쑥 늘어났습니다.
이상합니다. 매일 스마트폰에 웹에 쏟아지는 뉴스는 그게 그거고, ‘기자가 이래도 되나’ 싶은 ‘기레기’만 눈에 띄는 것 같습니다. 다른 곳에서 발표한 기사를 제목만 바꿔 다시 보도합니다. 기사 안에는 포털 인기 검색어만 가득합니다. 정작 궁금한 보도는 애써 찾아보지 않으면 금세 지나가버립니다.
매체와 기자는 자꾸 늘어나는데, 정작 저널리즘은 빈곤하고 민주주의는 뒷걸음질치는 상황. 어디서 돌파구를 찾아야 할까요. 은 전통 언론의 공개채용(공채) 제도를 살펴봤습니다. 속칭 ‘언론고시’라고 불리는 공채 제도는 디지털 시대 저널리즘의 추락, 저열한 저널리즘으로 인한 민주주의의 위기 심화 등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주요 고리입니다. 또한 전통 언론은 공채 제도에 스스로의 발을 묶어놓고 좋은 저널리즘을 향한 혁신에 고전하고 있습니다.
좋은 기자가 좋은 언론을 만듭니다. 좋은 언론이 좋은 민주주의를 만듭니다. 좋은 민주주의가 있어야 비로소 우리의 삶이 평안해집니다. 좋은 기자를 기르는 일이 시급합니다. 그 방법을 찾기 위해 안을 들여다보며 고민하고, 바깥에서도 혜안을 구했습니다. 기자가 기자를 취재했습니다. 도 구경꾼을 넘어서 변화에 기여할 방안을 고민했습니다.
취재 김효실·전진식 기자, 편집 구둘래 기자, 디자인 장광석

“길을 걷든 카페에 앉아 있든 ‘기레기’를 욕하는 말이 어디에서나 들려왔어요.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었어요. 그때는 정말 미칠 것 같았어요.”

한 일간신문에서 일하는 3년차 기자 이정민(가명)씨는 2014년 4월을 떠올리며 몸서리쳤다. 전남 진도 팽목항에서 세월호 참사를 일주일가량 취재하고 서울로 돌아왔다. 길거리에서 디지털 공간에서 일반 시민들이 끊임없이 던지는 세월호 보도 ‘피드백’은 정민씨에게 그 어떤 취재 현장보다 더 참혹한 현실이었다.

‘기레기’도 ‘영웅’도 아닌 ‘익명의 기자 집단’

그래도 기자들이나 시민들이나 밥벌이는 계속된다. 대다수 기자들이 별일 없이 산다. 하던 일을 반복한다. ‘적어도 나는 기레기처럼 굴지 않았다’고 자위하면서. 그렇게 시민들과 기자 집단 사이의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정치인, 법조인, 의료인, 교수 등 전문직들이 시민과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그들만의 성채’에 갇혀 있다고 언론은 종종 비판하지만, 정작 스스로는 시민과의 거리를 좁히고 공동체에 기여하는 ‘자질 향상’의 고민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기자 집단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반세기 넘도록 기본 골격을 유지해온 한국 주류 언론의 ‘신입 공채 제도’가 기자가 되는 기본 경로다. 이는 오늘날의 ‘기레기’들을 낳은 중요한 배경이기도 하다. 모든 기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다수가 공유하는 ‘기자되기’의 규범적 경로가 있다. 실제와 꼭 부합하진 않지만, 적어도 이 경로를 거치면 선배 기자들로부터 ‘기자 제대로 하겠네’라고 인정받는 경로다. 진보와 보수, 이념 성향은 달라도 비슷하게 공유하며 유지하고 있는 경로다.

은 속칭 ‘언론고시’라 불리는 이 경로를 4단계로 나눠 살펴봤다. 기자 준비 과정, 기자 예비 과정 등을 통틀어 저널리즘 원칙과 윤리를 익힐 수 있는 시기가 있는지 찾아봤다. 전통 언론의 디지털 혁신 지체와는 어떤 관련이 있는지도 짚었다. 이 경로를 따라 밟는 한, 유능한 저널리스트가 탄생할 확률이 무척 낮다는 점이 새삼 드러났다. 한국 언론의 후진성은 ‘언론 고시’라 불리는 채용 제도 또는 관행에서 비롯한다. 그리고 한국 언론의 낙후는 우리 사회 민주주의의 약화로 이어진다. 결국 피해는 시민들에게 돌아간다.

1. ‘아랑’ 카페

‘2015 신문 뉴미디어 엑스포’가 진행 중이던 5월13일 서울시청 시민청 바스락홀에서 가 언론사 취업을 희망하는 대학생과 예비 언론인들을 상대로 취업설명회를 열었다. 정용일 기자

‘2015 신문 뉴미디어 엑스포’가 진행 중이던 5월13일 서울시청 시민청 바스락홀에서 가 언론사 취업을 희망하는 대학생과 예비 언론인들을 상대로 취업설명회를 열었다. 정용일 기자

“언론고시 준비하려면 뭘 해야 하나요? 조언 부탁드립니다.” 온라인 커뮤니티 ‘언론인을 꿈꾸는 카페-아랑’(이하 아랑)에는 간혹 이런 질문이 올라온다. 아랑은 언론에서 일하려는 학생, 직장인 등이 언론사 입사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온라인 모임이다. 회원 수는 13만여 명이며, ‘현직 게시판’이 있어 언론인들도 일부 참여하고 있다.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경험하고 많이 쓰세요.” 학생들에게 가장 많이 제공되는 조언이다. 기본적인 지적 소양을 쌓으라는 것인데, 쉬운 일이 아니다.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언론사 입사 준비 아카데미’를 맡아 언시생(언론고시생)을 교육해온 김창석 기자는 “수업 교재를 만들 때 이란 책을 많이 참조했다. 책의 저자가 미국 시카고대학에서 글쓰기 프로그램과 센터를 만든 교수다. 대학에서 이런 정도 글쓰기와 말하기 기본만 가르쳤어도 우리 강의를 들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대학이 학생들을 상대로 지식노동자로서 갖춰야 할 지적 소양을 갖추는 데 필요한 교육을 좀 담당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저널리즘 경험 없는 유학파 언론학자
서울의 한 대학 언론 관련 학과 교수는 “학생들은 신문방송학과에서 공부를 제대로 하면 기자, PD가 될 수 있다 생각하고 입학하지만, 대부분의 커리큘럼은 그게 아니다”라며 “학생들을 상대로 하는 일종의 사기”라고까지 표현했다.

저널리즘에 대한 깊이 있고 체계적인 교육은 아예 ‘진공 상태’다. 2014년 기준 언론 관련 학사 과정을 갖춘 대학은 전국에 110여 곳, 미디어 관련 전문 대학원은 24곳이나 있는데도 그렇다. 대부분 광고·홍보·커뮤니케이션 등을 겸한 교과 과정을 갖추고 있다. 교수는 저널리즘 경험이 없는 해외 유학파 언론학자가 많다. 전·현직 언론인을 적극 초빙해 이론과 실습 모두를 가르치려는 해외 저널리즘 스쿨과 비교된다. 서울의 한 대학 언론학과 교수는 “학생들은 신문방송학과에서 공부를 제대로 하면 기자, PD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입학하지만, (언론학과의) 대부분 커리큘럼은 그게 아니다”라며 “학생들을 상대로 하는 일종의 사기”라고까지 표현했다.

언론사들은 저널리즘 없는 신방과 교육을 불신한다. 공채 지원자의 전공이 신문방송학 또는 언론학이라 해서 가중치를 주는 곳이 없다. 언론사가 굳이 저널리즘 과목 수강 여부를 따지지 않으므로, 언시생들도 신방과 교육에 목매지 않는다. 저널리스트 지망생들이 대학에서 답을 찾기보다 언론고시의 ‘고수’가 많은 아랑을 찾아 질문을 던지게 되는 이유다.

2. 언시 대비 학원과 스터디

2013년 수습 공채 필기시험이 서울 장충동 동국대 경영관에서 치러지고 있다. 정용일 기자

2013년 수습 공채 필기시험이 서울 장충동 동국대 경영관에서 치러지고 있다. 정용일 기자

한국 언론의 공채 제도는 반세기가 지나도록 큰 변화가 없다. 언론이 기업의 꼴을 갖추던 1950년대부터 국어, 외국어, 상식, 논술, 작문, 면접 시험을 봤다. 1990년대 이후 현장 평가와 인적성 평가 정도가 덧붙었다. 50여 년 동안 일어난 사회 변화와 미디어 환경 변화를 생각하면 놀랍도록 ‘질긴’ 생명력이다.

변하지 않은 건 또 있다. 언론사의 문을 두드리는 청춘은 무수하다. 50년 전인 1964년 은 11월2일치 기사 ‘바늘구멍의 취직전선’에서 “언론기관의 관문인 견습기자 시험도 해마다 경쟁률이 더해만 간다”고 썼다. 1983년 기사는 더 노골적이다. “신문사는 기자지망생이 모자라 고민한 적은 없다.” 1980년대 후반부터 주류 언론의 입사 경쟁률은 100~200 대 1 정도로 꾸준히 높다.

회사 입장에서는 지원자가 몰리니 토익, 한국어능력시험처럼 공인 언어능력시험 점수를 활용하려고 한다. 점수로 줄 세우기가 편하기 때문이다. 자기소개서를 검토하는 질적 평가도 곁들이지만, 시험 점수가 지나치게 ‘상향 평준화’되면 자소서보다 어학시험 점수로 서류 통과 여부가 결정될 가능성도 있다. 언시생은 불안한 마음에 어학시험 준비에도 많은 시간을 투입하게 된다.

상식과 논술, 작문 대비도 암기식으로 몰두한다. 스마트폰 검색 한 번이면 알 수 있는 정보를 달달 외우고, 논술과 작문도 글을 통째로 외운다. 필기 합격생들 중에는 미리 써본 논제가 출제돼 자신의 글을 고스란히 복기해 답안지에 써넣었다는 ‘운 좋은’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수도권 언시생 일부는 ‘사교육’에 투자한다. 주로 기성 언론사에서 운영하는 언론고시 대비 아카데미다. 도 현직 기자들을 강사로 내세운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수강료가 수십만원으로 적지 않은 금액이지만, ‘언론고시 전문가’가 글을 첨삭해주고 현직 언론인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수개월에서 많게는 3년 이상 준비

아랑의 정보는 언론인 지망생들이 본격적으로 공채 준비에 나서 언시생으로 전환할 때 더 중요하다. ‘스터디’라고 부르는 공부 모임의 멤버도 이곳에서 자주 구한다. 스터디에서는 언시에 대비해 방대한 상식과 언론 모니터링을 나눠서 요약 공유하고, 논술과 작문을 서로 첨삭해준다. 일주일에 한두 번 모이는 스터디는 하나만 참여해도 과제가 많은데, 언시생들은 동시에 여러 개의 스터디 모임에 참여하는 경우도 있다. 공채의 서류 전형과 필기시험 관문이 높기 때문에 이 단계는 적게는 수개월에서 많게는 3년 이상 걸린다. 보통은 그 사이 어디쯤에서 멈춘다. 합격하거나 다른 직업을 찾거나.

이재경 이화여대 교수는 언시로 소모되는 사회적 비용과 저널리즘 후퇴를 비판했다. “(언론사 입사) 스터디를 하는 학생 수천 명 가운데 성공 확률은 5~10%나 될까? 기자 시험에 통과하지 못한 나머지 90~95%는 그렇게 (언시에) 보낸 시간을 다른 데 가서 긍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까? 그렇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주로 작문·논술 공부에 매달려 있는데 이는 나중에 기자가 되더라도 저널리즘을 망치는 길이다. 테크닉을 발휘하는 법만 익히게 되니까. 언론사가 원하는 방식의 글쓰기를 흉내내는 경우가 많아서 저널리스트로 크는 데 큰 도움이 안 된다.”

3. 인턴십

지난 5월8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검에서 기자들이 ‘성완종 리스트’로 검찰에 소환된 홍준표 경남지사를 취재·촬영하고 있다. 정용일 기자

지난 5월8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검에서 기자들이 ‘성완종 리스트’로 검찰에 소환된 홍준표 경남지사를 취재·촬영하고 있다. 정용일 기자

언론사들도 걱정이 많다. “필기시험을 잘 본다고 기자 잘하는 건 아니더라. 모든 언론사가 가진 고민이다.” 주요 언론 채용 담당자들이 한목소리로 털어놓는 얘기다. 기껏 뽑아놨더니 얼마 못 가 그만두는 젊은 기자들도 있다. 막상 합격하고 나서야 기자의 일이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한 경우다. 언론사 입장에서는 큰 손실이다.

언론사가 큰 경영 위기에 부닥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공채에서 현장 실무 평가가 강화됐다. 반나절, 1박2일 합숙, 5일 전일 평가에 이어 최근에는 1~3개월까지 길어졌다. 덩달아 사설 학원에선 기사쓰기 또는 현장평가 대비 등을 커리큘럼에 추가했다.

최근 는 2015년 신입 공채에서 4주 현장 평가를 공고했다가 나중에 그 기간을 2주로 줄였다. 신문사 경영진이 공표한 채용 방식에 대해 젊은 기자들이 집단으로 문제를 제기했고, 이를 경영진이 일부 수용한 결과다. 장기 실습 평가에 따라 직장인 또는 지방거주자 등의 응시 기회를 처음부터 제한할 뿐만 아니라 이 기간 동안 응시자들의 다른 구직 활동도 차단하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고 젊은 기자들은 비판했다. 이에 대해 경영진은 단순한 기사 작성 능력만이 아니라 기자로서의 종합적 측면을 더 많이 살피자는 취지에서 마련된 것으로 응시자들의 형편에 따라 융통성있게 현장 평가에 임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행 공채 제도의 문제를 넘어서려는 과정에서 빚어진 논란으로 평가할 수 있다.

정규 기자를 뽑는 현장 실무평가를 대비한다는 차원까지 더해져 언론사 인턴 경험도 중요해졌다. 와 JTBC는 2014년 신입 채용에서 취재기자직 합격자 11명 가운데 언론사 인턴 경험이 없는 합격생은 1명뿐이라고 했다. 자사 인턴 출신 합격생이 3명이고 나머지 7명은 다른 언론사에서 인턴을 경험했다. 를 포함해 인턴제도를 운영하는 언론 대부분은 자사 인턴 출신의 경우 서류 전형까지만 우대를 해준다.

언론사들은 2000년대 초부터 대학생 인턴기자 제도를 도입해 1년에 한두 차례 운영하고 있다. 최근에는 인턴 과정에서 좋은 평가를 받을 경우 수습기자로 뽑힐 수 있는 ‘전환형’ 인턴제도도 늘어났다. 이때문에 인턴기자 선발 경쟁률이 무척 높은 편이다.

심각한 실업률 아래 노예 처지 청년들

인턴제도를 통해 언론사 뉴스룸과 기자 실무를 경험해보는 건 직업 선택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문제는 언론의 구직자 ‘열정 착취’와 인권침해다. 이재경 교수는 “미국에서 인턴은 학교를 졸업하지 않은 학생들이 사회에 나가 현장 실습을 하는 개념인데, 한국에서는 졸업생, 취업준비생들을 인턴으로 쓴다. 사실상 고용해서 일을 시키면서도 그 명칭을 인턴으로 쓰는 거라 문제가 크다. 급여도 적고 특히 (인턴들의) 심리가 불안하다.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한 시대라 청년들이 노예 처지에 놓이기 쉽다”고 말했다. 취준생이 택할 수 있는 다른 기회를 봉쇄한 지나친 ‘갑질’이라는 지적이다. 이런 환경에서 양질의 저널리즘 교육이 이뤄지기는 어렵다.

4. 도제식 수습 교육

자료: 한국언론연감

자료: 한국언론연감

“저널리즘의 기본도 배우지 않은 이들이 언론사에 입사해 선배들의 잘못된 보도 관행과 문장, 심지어 가치관까지 닮아간다. 자기 회사의 논조를 더 중시하게 되고 그러기 위해 팩트 왜곡도 서슴지 않게 된다.” (이봉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원장)

합격 뒤 3개월 이상 이뤄지는 수습기자 교육은 한국형 기자를 탄생시키는 마지막 단계에 해당한다. 언론사 합격에 이르기까지 언시생들은 저널리즘 이론과 실무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대학, 글쓰기를 중심으로 임시방편의 대응전략을 가르치는 사설 학원을 거치면서 언론이 짜놓은 공채 제도에 맞춰 기자를 준비해왔다. 이제 제대로 된 저널리즘 교육은 언론사로 넘어간다.

수습 교육은 OJT(직장 내 교육) 방식으로 이뤄진다. 연차 낮은 사회부 경찰 출입 기자가 일대일 도제식으로 취재 방법과 기사 작성법을 가르친다. 저널리즘의 원칙과 윤리를 체계적으로 배우기보다는 당장 취재원을 만나고 기사를 생산하는 일로 벅찬 일상이 채워진다.

이봉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원장은 “저널리즘의 기본도 배우지 않은 이들이 언론사에 입사해 선배들의 잘못된 보도 관행과 문장, 심지어 가치관까지 닮아가는 게 문제다. 어느 분야든 원칙적으로 교육은 학교에서 해야 하는데 우리나라 저널리즘 교육은 언론사로 넘어가 있다. 그렇게 해서 발생하는 문제는 저널리즘의 표준보다 자기 회사의 논조를 더 중시하게 되고 그러기 위해 팩트 왜곡도 서슴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이재경 교수도 “우리 언론은 굉장히 우수한 인력들을 1~2년씩 재수시켜 뽑아놓고는 다 별 볼일 없는 존재로 만들어버린다. 이런 신입 집단 공채 제도는 보직 순환형 인사 제도와 맞물려 조기퇴직까지 이어지는 한국형 기자 제도의 근간이다. 무척 잔인한 시스템이다. 언론사가 저널리즘은 뒷전으로 하고 조직에 대한 충성심을 우선시한 결과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기자가 탄생하는 경로는 저널리즘 교육의 ‘골든타임’과 엇나간다는 의미다.

주요 언론사에서 디지털 혁신이 지체되고 있는 것도 이와 긴밀히 연결돼 있다. 5월13일 열린 취업설명회에서 어느 대학생이 물었다. “세월호 참사 때 가 내놓은 디지털 인터랙티브 뉴스를 인상 깊게 봤습니다. 그런 콘텐츠를 만드는 작업에 참여하고 싶은데, 이런 콘텐츠를 기획하거나 제작하려면 어떤 직무를 택해야 하나요? 만약 정기 공채를 통해서 들어갈 수 없다면 어떤 경로가 있나요?”

그 대학생이 원하는 일을 하려면 현재로선 ‘취재기자직’에 응시하는 수밖에 없다. 디지털 저널리즘에 능통한 이를 따로 선발하는 제도가 없기 때문이다. 이미 디지털 저널리즘의 시대는 왔지만 언론의 대응은 늦다. 김성해 대구대 교수는 “선배 기자 선배들이 디지털 시대의 언론 환경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도제식으로 가르치는 현행 시스템은 결국 무너지게 돼있다. 뉴스의 세계가 더 넓어졌다. 기자의 의미 자체도 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양한 직군을 뉴스룸에 개방해야

이성규 블로터미디어랩장은 전통 언론이 지금보다 더 다양한 직군을 끌어안는 채용을 시도해야 한다고 했다. “이제 (뉴스) 스토리를 만드는 일은, 신문으로 따지면 텍스트만이 아니고, 방송으로 보면 영상만이 아니다. 데이터 시각화, 디지털 인터랙티브 같은 것도 메시지를 만드는 하나의 저널리즘이다. 다양한 방식의 저널리즘, 그리고 이를 이해하는 다양한 직군들에게 뉴스룸을 개방해야 한다. 이는 채용 과정에서부터 시도돼야 한다. 기존 조직이 얼마나 끌어안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지금보다 좀더 개방적일 때 우리가 기대하는 디지털 저널리즘으로의 이행이 더 빨라질 수 있을 것이다. 이는 한국 언론의 다음 단계를 위해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포털이나 새로운 기술 기업이 등장할 때마다 계속 종속적 위치에 있을 수밖에 없다.”

한국형 기자가 탄생하는 현재의 경로에서 예비 저널리스트들이 자신의 존재 이유를 시민과 민주주의에서 찾을 수 있는 이론적·실무적 기회는 많지 않다. 시민과 민주주의를 지향하지 않고, 디지털의 도구를 갖추지 못한 채 기자가 되면, 수용자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질 낮은 저널리즘을 제공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사회적 흉기’로 전락할 수도 있다. 채용 혁신 없이 언론 혁신도 없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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