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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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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위해 셸 위 댄스?

새로운 뉴스 플랫폼의 도전에 여러 가지 실험하는 전통 매체들, 이는 어떤 미래를 예고하는 것일까?
등록 2015-05-21 05:11 수정 2020-05-02 19:28
5월1일 낮 12시 사무실

“사람들이 이제 텔레비전이 아니라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보잖아요. 짧은 시간 동안만 뉴스에 집중하고요. 그러니까 2분 이내로 짧게 끊어서 편집해줘야 해요.”

5월1일 찾은 미국 뉴욕의  사무실에서는 하루 300개의 짧은 뉴스 동영상들이 편집되고 있었다. 이 동영상들은  홈페이지에 업로드된다.

5월1일 찾은 미국 뉴욕의 사무실에서는 하루 300개의 짧은 뉴스 동영상들이 편집되고 있었다. 이 동영상들은 홈페이지에 업로드된다.

동영상을 컨베이어 벨트 위에 태운 듯

이유진 PD는 2개의 커다란 컴퓨터 모니터 화면에 ‘프레디 그레이’ 사건과 관련한 뉴스 화면을 띄웠다. 메릴랜드주 메릴린 모스비 검사가 이날 오전 볼티모어의 경찰관 6명을 살인 혐의 등으로 기소하겠다고 발표하는 장면이다. 아침에 CBS 방송 에 이미 나간 뉴스다. 이 PD는 그 뉴스 화면을 받아서 잘게 쪼개 편집해 홈페이지와 유튜브, 트위터 등에 올리는 일을 맡고 있다.

그가 일하는 CBSN은 지난해 11월 CBS가 온라인 사이트(CBSNews.com)에서 24시간 뉴스 스트리밍 서비스를 하기 위해 설립한 자회사다. 텔레비전 뉴스를 보지 않는 젊은 층을 겨냥해 모바일 플랫폼 뉴스를 제공한다. 프리랜서 PD로 5개월째 일하고 있는 그는 하루에 최대 40개의 동영상을 편집해 띄운다고 했다.

제목을 달고 서너 문장으로 기사를 요약해서 올리는 것도 그의 몫이다. 새벽 6시에서 오후 3시까지, 오후 3시부터 자정까지 두 팀이 교대로 일한다. 이 PD 같은 프리랜서 10여 명을 포함해 70명의 직원이 하루에만 300개의 ‘클립 뉴스’를 쏟아낸다. ‘1분30초 부분에서 끊으세요.’ 옆에 펴놓은 노트북의 엑셀, 구글독스, 메신저 등을 통해 째깍째깍 실시간으로 편집 지시가 내려왔다. 다른 사무실에 있는 선임 PD의 지시다. 그에 맞춰 이 PD의 손놀림도 바빠졌다. 마치 동영상을 컨베이어 벨트 위에 태운 듯이 체계적이다.

1편의 뉴스 클립을 완성한 그는 짧은 인터넷주소(URL)를 생성한 뒤 ‘유튜브로 보냄’ 버튼을 눌렀다. 실시간 검색어를 확인해서 화면 상단에 노출될 만한 단어를 ‘태그’한다. “트위터에 보내는 화면은 반드시 사진을 같이 올려야 조회 수가 2배 올라가요.”

4월29일 아침 9시30분, 사무실

매일 아침 8~9시 생방송은 쫄깃쫄깃한 긴장감을 준다. 러네이 펠츠 PD를 포함해 스튜디오 작업실에 앉은 7명은 이날따라 더 바짝 긴장해 있었다. 네덜란드 헤이그에 가 있는 앵커 에이미 굿맨과 이원 생방송이 진행되는 날이다. 아침 8시22분56초. 볼티모어 현장 취재기자의 뉴스 화면이 나간다.

“CBS 등 많은 방송 카메라가 왔지만 시민들이 왜 반발하는지에 대해선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흑인 폭동’으로 비친 것에 대한 볼티모어 시민들의 볼멘소리가 흘러나온다. 볼티모어, 아베 일본 총리와 오바마 대통령의 만남 등등의 뉴스가 이어지고 마침내 아침 9시. 생방송이 끝났다. 스튜디오 안에서는 “와우” 함성을 내지르며 박수를 쳤다.

보조금이나 광고 없이 후원으로만
5월1일 아침  사무실을 찾은 대학생들이 뉴스쇼 생방송을 스튜디오 창문 밖에서 지켜보고 있다.

5월1일 아침 사무실을 찾은 대학생들이 뉴스쇼 생방송을 스튜디오 창문 밖에서 지켜보고 있다.

“볼티모어에서 누군가 영상을 찍어서 우리에게 보내오면 그 사람은 풀뿌리 기자가 되는 셈이다. 공영방송뿐만 아니라 최대한 여러 가지 플랫폼을 통해 시청자에게 다가서려 노력하고 있다.” - 러네이 펠츠 PD

그러나 펠츠 PD는 잠시 숨 돌릴 틈이 없다. 생방송한 뉴스를 다시 편집해서 홈페이지와 유튜브,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생방송은 라디오, 텔레비전, 케이블방송 등으로도 중계된다. 는 정부 보조금이나 광고를 받지 않고 후원으로만 유지되는 독립언론이다. 그래서 일손도 많지 않다. 2011년 입사한 펠츠 PD가 1인 다역을 맡고 있는 이유다. “제목 달고 사진 찾아서 기사에 링크 걸고, 유튜브와 SNS에 올리고 완전 멀티태스킹이다. 아침 생방송이라 보통 새벽 4시부터 일어나 그날의 뉴스를 챙긴다.”

독립언론이다보니 1인 미디어나 시민기자들과의 협업이 잘 이뤄지는 편이다. “볼티모어에서 누군가 영상을 찍어서 우리에게 보내오면 그 사람은 풀뿌리 기자가 되는 셈이다. 전통 언론의 기자보다 그런 독립언론들과 같이 일을 더 많이 한다. 뉴스 플랫폼 유통도 마찬가지다. PBS, NPR 같은 공영방송뿐만 아니라 유튜브, 트위터 등 최대한 여러 가지 플랫폼을 통해 시청자에게 다가서려 노력하고 있다.”

두 사람은 미국 전통 언론매체와 뉴스 플랫폼(소셜미디어와 유튜브 등)이 만나는 접점에 서 있다. 과거에 언론매체는 그 자체로 뉴스 플랫폼이었다. 신문이나 잡지는 독자와 광고주, 기업과 소비자, 정치인과 유권자를 연결해주는 통로였다. 지상파 방송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제 전통 언론매체는 그 독점적인 지위를 내려놓아야 할 처지에 몰렸다. 그 자리를 유튜브, 넷플릭스, 페이스북, 아마존 같은 정보기술(IT) 기반의 플랫폼들이 차지했다.

뉴스는 이제 읽거나 보는 대상이 아니라, 소비해야 하는 대상이다. 기존에 텔레비전을 통해 소비되던 예능이나 영화 등의 문화 콘텐츠들은 ‘온 디맨드’ 시장으로 넘어갔다. 이제 소비자는 9시 뉴스나 주말 8시 연속극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서 볼 수 있는 뉴스 혹은 방송을 원한다.

이는 어떤 미래를 예고하는 것일까? 전통 언론매체의 몰락? 아니면 좋은 콘텐츠(뉴스)가 유통되는 시장의 성장?

진보적인 온라인 정치토크쇼로 유명한 TYT (The Young Turks Network)의 최고운영책임자(COO)인 스티브 오씨는 유튜브 등의 뉴스 플랫폼이 다양해지는 흐름을 낙관했다. 2002년 라디오 정치쇼로 시작한 TYT는 2005년 유튜브가 등장하면서 오늘날 ‘웹캐스트’로 불리는 온라인 토크쇼를 처음 선보였다. TYT는 현재 정치·스포츠·문화 등 다양한 이슈를 주제로 유튜브를 비롯해 29개 뉴스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언론, 흩뿌려진 뉴스를 모으는 수확자”
“인터넷과 텔레비전이 어차피 하나가 되고 있다. 우리는 현재 온라인 쇼만 진행하지만, 많은 텔레비전 네트워크 채널들이 우리에게 쇼를 해달라고 요청한다.” -TYT 스티브 오

미국 변호사인 오씨는 2010년 TYT에 입사해 모든 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투자자들을 만나기 위해 일주일간 로스앤젤레스(LA) 본사에서 뉴욕으로 출장을 왔다는 그는 이렇게 말했다. “유튜브는 우리의 고향 같은 존재다. LA에서 우리가 띄운 동영상을 전세계로 퍼뜨려준 허브가 바로 유튜브다. 월 4천만~5천만 명의 시청자가 우리 방송을 본다. 유튜브 덕분에 지상파, 케이블방송에서도 우리와 계약을 맺고 방송 시간을 내줬다. 스튜디오 내부 수리 문제로 제작이 어려울 땐 유튜브가 4개월간 LA 스튜디오를 무료로 빌려주기도 했다.”

그는 뉴스를 ‘곡식’에 비유했다. 신문, 방송, 유튜브, 트위터, 스냅챗 등에 흩뿌려져 있는 뉴스를 잘 모아 깊이 있는 분석을 달아주는 ‘수확자’ 같은 언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더 많은 수확을 위해 TYT는 방송사 등 새로운 투자자를 찾고 있다. “인터넷과 텔레비전이 어차피 하나가 되고 있다. 우리는 현재 온라인 쇼만 진행하지만, 많은 텔레비전 네트워크 채널들이 우리에게 쇼를 해달라고 요청한다. 타임워너, 디스커버리 등 전통 미디어 기업들도 위기감을 느끼는 탓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 투자처를 필요로 하는 분위기다.”

유튜브는 새로운 ‘비주얼 저널리즘’(에이미 미첼 퓨리서치 부소장) 또는 ‘시민 저널리즘’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독재국가나 인권유린의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스스로 카메라를 들고 뉴스 채널 운영자, 시민기자가 되었다. 어느 나라에서든지 유튜브를 통해 뉴스를 볼 수 있게 됐다는 건, 광범위한 독자와 시청자를 보유하게 됐다는 의미기도 하다.”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저널리즘스쿨 ‘토우센터’ 퍼거스 피트 연구원의 말이다. 유튜브 뉴스 채널을 운영하면서 소설가와 영화 원작자로까지 성장한 ‘1인 미디어’ 존 그린은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유튜브는 2011년부터 100개 이상의 뉴스 채널을 파트너로 끌어들였다.

그러나 전통 언론매체와 플랫폼 사이의 관계가 이처럼 항상 ‘핑크빛’인 것은 아니다. 국내 지상파 방송과 종합편성채널의 디지털광고대행사로 동영상 콘텐츠 공급을 대행하는 스마트미디어랩(SMR)이 지난해 12월 유튜브에서 각종 방송 프로그램을 철수시킨 것이 극단적인 예다.

독립언론 , 온라인 정치 토크쇼를 처음 선보였고 현재 29개 뉴스 채널을 운영 중인 , 깊이 있는 다큐 영상을 주로 전하는  홈페이지(위부터).

독립언론 , 온라인 정치 토크쇼를 처음 선보였고 현재 29개 뉴스 채널을 운영 중인 , 깊이 있는 다큐 영상을 주로 전하는 홈페이지(위부터).

뉴스 유통의 주도권은 누가 쥐고 있나

방송사들은 유튜브가 동영상에 따라붙는 광고 수익의 55%만 떼어주는 것에 불만을 품었다. 스마트미디어랩은 유튜브 대신 네이버가 만든 ‘TV캐스트’로 옮겼다. 네이버는 동영상 광고 매출의 90%가량을 주는 파격적인 계약조건을 내밀었다. 지상파 방송의 한 관계자는 “수익 배분 비율도 문제였지만 뉴스 유통의 주도권을 누가 쥐느냐는 차원에서 유튜브에 경고한 셈”이라고 말했다.

방송사들과 손을 맞잡은 네이버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전통 언론매체들과 으르렁거리는 사이였다. 와 등은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의 뉴스 서비스에 대한 불만을 밑자락에 깐 채, 2012년 ‘공룡 네이버’를 호되게 공격했다. 종이신문은 추락하고 있는 데 반해, 포털 업체들이 뉴스 유통시장에서 영향력을 점점 키워가는 것에 대한 위기감의 발로였다. 결국 네이버는 메인 화면의 뉴스 편집권을 포기했다.

국내에서 아무리 네이버·유튜브를 붙잡고 아웅다웅한다 하더라도, 세계적인 디지털 미디어 시장의 대세는 이미 전통 매체가 아니라 소셜미디어 등의 플랫폼 쪽으로 기운 지 오래다.

지난 5월14일, 페이스북은 BBC 등 9개 언론사의 기사를 ‘링크’ 형식이 아니라 페이스북에서 바로 볼 수 있도록 한 ‘인스턴트 아티클스’(Instant Articles) 서비스를 시작했다. 올해 미국 퓨리서치 집계에 따르면, 미국 성인 10명 중 3명이 페이스북을 통해 뉴스를 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페이스북은 언론사에 무려 70%의 광고 수익을 떼어주기로 했다고 알려졌다. 유튜브처럼 크리에이터나 미디어 파트너사들과 끈끈한 유대관계를 맺지 않은 상황에서, 파격적인 수익 배분으로 승부수를 던진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서 10대 청소년에게 인기 있는 SNS 서비스인 ‘스냅챗’은 좀더 솔직하게 ‘갑’의 태도를 보였다. 스냅챗의 뉴스 콘텐츠 서비스인 ‘디스커버’에 들어온 12개 언론매체는 기존과 다른 형식의 별도 뉴스 콘텐츠를 제작해 납품해야 한다. , CNN 등이 순순히 요구를 따랐다.

유튜브나 바인(VINE)에 위기의식을 느낀 언론매체들이 새롭게 동영상 뉴스 제작 시스템을 도입하기도 했다. 는 최근 주제별로 동영상을 세분화해 제공하는 ‘타임스 비디오’ 서비스를 시작했다. 무거운 주제의 뉴스를 아예 짧은 동영상만으로 제공하는 나, 95%가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의 비디오 뉴스 등도 있다.

인스턴트 아티클스, 디스커버, 타임스 비디오…

언론사와 플랫폼 사이에서 서로 인력을 뺏고 뺏기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는 유튜브 개발자를 영입해 동영상 제작 자회사 업무를 맡겼고, 스냅챗은 최근 CNN 기자를 데려갔다. 강정수 ‘디지털사회연구소’ 소장은 “전통 언론매체와 플랫폼은 서로 싸워야 할 대상이 아니라, 뉴스 생산자와 유통자로서 함께 춤춰야 할 대상”이라고 지적했다. 둘의 ‘셸 위 댄스’는 가능할까?

뉴욕(미국)=글·사진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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