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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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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헬기가 퇴선 방송을 했다면

상황실과의 정보 교환 전혀 없이 이루어진 헬기 구조… “헬기는 서해청 소속이라 목포서에서는 헬기에 대한 지시가 잘 나오지 않았다”
등록 2015-04-23 21:21 수정 2020-05-02 19:28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침몰 사고에 출동한 해양경찰 헬기는 3대였다. 하지만 해경 상황실은 헬기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50분간 방치했다. 구조 바구니를 활용해 구조 활동을 하는 해경 헬기의 모습. 서해지방해양경찰청 제공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침몰 사고에 출동한 해양경찰 헬기는 3대였다. 하지만 해경 상황실은 헬기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50분간 방치했다. 구조 바구니를 활용해 구조 활동을 하는 해경 헬기의 모습. 서해지방해양경찰청 제공

“헬리콥터가 와.”

경기도 안산 단원고 2학년 고 박예슬양이 2014년 4월16일 오전 9시38분 세월호 안에서 촬영한 휴대전화 동영상에서 학생들은 헬기 프로펠러 소리가 들리자 안도한다. ‘아, 살았구나.’ 세월호 침몰 사고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구조 세력은 서해해양경찰청 헬기 511호였다.

오전 9시10분 목포항공대를 이륙한 511호기는 74km(40마일)를 빠르게 날아 17분 뒤인 오전 9시27분 사고 현장에 도달한다. 선체가 절반 정도 기울어진 세월호 상공에서 511호기가 첫 현장 보고를 한다. “현재 40도 우측으로 기울어져 있고 승객은 대부분 선상과 배 안에 있음.” 사고 발생 시각으로부터 39분, 119 신고가 접수된 지 35분이 지난 때였다. 제주해양경찰청 헬기 513호(9시32분)와 서해청 헬기 512호(9시45분)도 잇따라 도착한다. 그러나 배 안에 갇힌 수백 명의 사람들이 애타게 기다렸던 것과 달리 세월호가 완전히 전복될 때(10시17분)까지 헬기 3대가 구조한 인원은 35명에 그친다.

“갑판에 나와 있는 사람이 왜 없지?”

헬기로 구조한 인원이 턱없이 적은 이유에 대해 구조 전문가들은 구조 방법이 적절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 입수한 세월호 수사·조사 기록을 보면, 소방공무원들은 검찰 조사에서 해경 헬기의 구조 동영상을 보고 안타까움을 쏟아냈다. “배 밖으로 나와 있는 사람을 구조할 것이 아니라 배 안에서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을 구하는 게 우선이었다.”(ㄱ씨) “헬기 구조자(구조요원)나 함정 구조자를 헬기로 실어서 선내로 진입시키지 않은 것이 아쉽다.”(ㄴ씨) “어떻게 해서든 선내 통로를 개방해 승객을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유도했어야 한다.”(ㄷ씨) “망치로 (선실) 창문의 약한 부분을 타격해 파손만 시켜놓았더라도 안에 있는 승객이 나중에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ㄹ씨)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해경 헬기는 전형적인 구조 방법을 활용했다. 511호기는 사고 현장에 도착해 시계방향으로 한 바퀴를 돌았다. 구조할 사람들을 찾기 위해서였다. 양아무개 기장은 “배가 45도나 기울어져 있는데 갑판에 나와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 ‘이상하다, 왜 없지’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는 25년 동안 6천 시간을 비행한 베테랑이다.

그때 배 가운데에서 10여 명, 오른쪽 난간 통로 쪽에서 20여 명이 매달려 있는 게 보였다. 양 기장은 세월호 상공 3~5m로 헬기를 낮게 띄워 항공 구조자 2명을 내려보냈다. 구조자들은 로프를 타고 5층 오른쪽 난간에 착지했다. 이후 출구로 나온 사람들을 한 명씩 구조 바구니에 태워 헬기로 올려보냈다. 탑승 정원 6명이 차면 헬기는 8km 떨어진 서거차도 방파제로 이동해야 했다. 511호기가 서거차도에 사람들을 내려놓고 오는 사이 상공에서 대기하던 513호기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구조자들은 같은 방법으로 남은 사람들을 구조 바구니에 실어올렸다.

9시45분 현장에 도착한 512호기는 급히 구명벌(구명뗏목)을 떨어뜨렸다. 구명조끼를 입고 바다에서 표류하는 사람들을 구명벌에 실어 100t급 경비정인 123정에 인계하기 위해서였다. 특수부대 출신인 구조자는 손으로 구명벌을 잡고 발로만 헤엄쳐 이동했다. 그 뒤 511호기, 513호기처럼 난간으로 나오는 사람들을 헬기에 태우는 일을 맡았다. 다만, 좁은 공간에 헬기 3대가 한꺼번에 떠 있으면 충돌할 위험이 있어 2대씩 번갈아가며 구조했다. 이런 구조 방식은 세월호가 완전히 전복될 때까지 이어졌다. “헬기 3대에 있던 구조자나 조종사들은 최선을 다했다. 나는 항공기에서 할 수 있는 최고의 구조였다고 생각한다.”(512호기 김아무개 기장, 2014년 8월19일 공판 증인신문)

바구니에 태워 한명 한명 구조하다간…
“헬기 3대에 있던 구조자나 조종사들은 최선을 다했다. 나는 항공기에서 할 수 있는 최고의 구조였다고 생각한다.” 항공기 구조를 전문으로 해온 소방공무원들은 해경의 ‘자화자찬’에 고개를 저였다.

그러나 이 입수한 검찰 수사기록을 보면, 이같은 해경의 ‘자화자찬’에 항공기 구조를 전문으로 해온 소방공무원들은 고개를 저었다. ㄱ씨는 검찰 조사에서 해경 헬기의 구조 동영상을 본 뒤 “내 경험에 비춰볼 때 구조 방법이 적절하지 않다”고 단언했다. 구조 바구니는 극히 제한된 공간에서 소수의 인원을 구조할 때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18년간 소방구조헬기를 조종해왔다.

“바깥쪽으로 나오는 사람들은 구명동의(구명조끼)를 입었고 주변에 구조 세력도 많았다. 굳이 헬기로 구조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다. 그러나 선실은 유리창에 막혀 있어 출구가 확보되지 않은 상태다. 그렇다면 (구조자가) 유리창을 깨뜨려 탈출구를 확보하는 게 우선이다.” 헬기는 많은 사람을 구조하는 데 비효율적이기에 탈출할 방법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했어야 한다는 게 ㄱ씨의 주장이다. 비행 경력 25년의 ㄴ씨도 동의했다. “선체 난간에 나와 있는 승객들은 바다로 뛰어들도록 하고 나중에 건져올리면 된다. 그 사람들을 구조 바구니에 태워 한명 한명 구조하다가 선내에 있는 많은 사람을 구조할 기회를 놓쳐버렸다.”

비행 경력 27년의 ㄷ씨는 구체적인 구조 방법을 제시했다. “구조자가 유리창을 깨뜨리고 로프를 선체와 연결해 내부로 진입하는 게 맞다. 같은 상황에서 119구조대원은 그렇게 진입을 시도했을 것이다. 방탄유리를 제외하고는 손도끼나 해머를 이용해 충분히 강화유리를 깨뜨릴 수 있다.” 11년간 소방구조헬기를 조종한 ㄹ씨는 불이 난 건물에 사람이 있을 경우 소방대원이 장비를 착용하고 건물로 진입해 인명을 구조하듯 해경 구조자가 선내에 진입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먼저 구조한 사람들로부터 선내 상황을 파악해 배 안에 있는 승객이 선박 갑판과 난간 등으로 대피하도록 당연히 유도해야 했다.”

헬기 구조자들이 세월호 선내에 진입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헬기 3대는 한결같이 배의 상황이나 탑승 인원을 몰랐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70도 이상 기울어진 상태에서 탈출을 안 하고 배 안에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상상도 못했다.”(512호기 항공 구조자) “출동할 때부터 구조 작업을 마칠 때까지 (상황실과의) 교신에서 세월호 정보를 받은 것이 없(었)다.”(513호기 조종사) “출동할 때 (세월호) 톤수라든가 탑승객 인원 등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진도대교를 지나며 상황실에 물었는데 답변이 없었다.”(511호기 조종사)

잘못 끼워진 첫 단추가 몰고 온 비극의 연속
511호기 김아무개 부기장은 “(인원 450명을) 못 들었다. 들었다면 그 내용을 정확히 들었다는 ‘수신 완료’라고 이야기했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양 기장은 “그 사항을 들었으면 좋았을 것인데… 나도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이 입수한 주파수공용무선통신(TRS) 녹취록을 보면, 서해해양경찰청 상황실에서 9시17~18분에 “(여객선) 인원이 450명”이라고 분명히 밝힌다. TRS는 하나의 주파수대역을 여러 사용자가 함께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무선통신이다. 사고 현장에 출동한 헬기와 123정, 상황실이 TRS로 주로 교신했다.





TRS 교신 내용



511호기: 7분 후에 도착한다. 현재 상황 어떤가. 현장에 우리 함정 나가 있나.
목포 상황실: 현재 접근 10마일 전 가장 가까운 것이.
511호기: 현 침몰 상태 어떤가, 상태.
서해청 상황실: (123)정장 나와봐요.
123정장: 현재 남은 거리 5마일, 약 20분, 15분 후 도착.
서해청 상황실: 대형함 도착시까지 귀국이 가서 인원이 450명이니까. 일사불란하게 구명벌… 세월호와 교신되고 있습니까?

당시 TRS 교신을 맡았던 511호기 김아무개 부기장은 “(인원 450명을) 못 들었다. 들었다면 그 내용을 정확히 들었다는 (의미로) ‘수신 완료’라고 이야기했을 것”이라고 해명했다(7월10일 검찰 진술). 양 기장은 “그 사항을 들었으면 좋았을 것인데 당시 (구조 작업을) 준비하느라 바빠서 놓쳤던 것 같다. 나도 안타깝다”고 덧붙였다(7월22일 검찰 진술).

511호기가 배 안에 갇힌 수백 명을 놔둔 채 난간에 매달려 있는, 눈에 보이는 사람들을 먼저 구조하자 뒤이어 도착한 513호기와 512호도 그 구조 방식을 따라갔다. 잘못 끼워진 첫 단추가 몰고 온 비극의 연속이었다. “우리가 제일 먼저 도착해 여객선 규모에 비해 밖으로 나온 사람이 적다는 것을 확인했다면, 대책을 마련해볼 여지가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나중에 도착했기에 먼저 도착한 함정이나 헬기, 상황실에서 그에 대한 조치를 이미 취했을 것이라 생각했다.”(6월10일 512호기 부기장 검찰 진술)

세월호가 급격히 좌현으로 기울자 123정의 다급한 목소리가 TRS에 울려퍼졌다. “승객이 안에 있는데 배가 기울어 현재 못 나오고 있단다.”(9시44분) “승객이 절반 이상 지금 안에 갇혀서 못 나온단다.”(9시47분) 그래도 헬기 3대는 아랑곳하지 않고 구조 바구니로 사람들을 옮기는 방식을 유지한다. 511호기는 “헬기 조종에 집중하기 위해 통신 볼륨을 최소화해” 위급한 상황임을 몰랐다고 했다. 512호기는 “정비사·구조자와 서로 큰 소리로 얘기를 주고받아 통신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고 했다. 513호기는 제주청 소속이라 서해청·목포해경은 물론 511·512호기와도 아예 교신을 하지 않았단다. “부기장이 채널을 돌려봤지만 목포와 서해청 등과 교신이 되지 않아 계속 제주청과 교신할 수밖에 없었다.” 세월호에 착륙한 구조자들은 무선통신 장비가 없었다. 해경 항공구조대가 만들어진 지 두 달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터폰 설치된 5층, 어디든 진입 가능했다”

서해청과 목포 상황실도 헬기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50분간 방치했다. 헬기로부터 세월호 상황을 보고받지도 않았고 헬기를 활용한 구조 전략을 세우지도 않았다. 헬기는 상공에서 내려다보면서 사고 상황을 더 자세히 파악할 수 있고, 구조자를 어느 곳에든 진입시킬 수 있는데도 말이다. 서해청 상황실은 감사원 감사에서 “123정장이 현장지휘관이라 그 보고를 받을 생각만 했다”고 해명했다. 목포 상황실은 “헬기는 서해청 소속이라 목포서에서는 습성상 헬기에 대한 지시가 잘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5월27일). 상황실의 안이한 대응으로 골든타임(50분)이 속절없이 흘러갔다.

만약 서해청·목포 상황실에서 현장에 출동한 헬기에도 ‘선내 진입’과 ‘퇴선 방송’을 지시했다면 어땠을까. 검사와 헬기 조종사·구조자 간의 문답을 보자(7월22일 검찰 진술).





7월22일 검찰 진술



검사: 9시35분경 세월호 사진을 보면 약 52도 정도 기울어져 있다. 이런 기울기에도 (헬기로) 선내 진입이 가능했을까.
조종사: 정확히 들어갈 곳을 지정해주었다면 가능하다.
검사: 당시 3층 로비와 4층 객실에 다수의 승객이 모여 있었다. 3층 로비 안내실에는 방송장비가 있고 승무원도 대기한 상황이었다.
조종사: 3층이든 4층이든 헬기로 접근해 구조자를 내려줄 수 있었다. (상황실에서) 지시만 받았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검사: 5층 조타실에는 방송장비 및 인터폰이 있고 5층 선원 객실에는 모두 인터폰이 설치돼 있었다. 9시47분까지 조타실에 선장 등 선원이 있었기에 방송할 수 있었다.
조종사: 5층 오른쪽 부분은 어디든 바로 진입할 수 있었다.

검사는 “조종사가 5층 및 3·4층에 내려줬다면 선내 진입해 퇴선 방송을 할 수 있었냐”고 구조자에게 물었다. 구조자는 “당시 기울기가 심했지만 옆으로, 위아래로 이동이 가능했다”고 답했다. “많이 아쉽다. 퇴선 방송, 선내 진입을 (상황실에서) 지시했다면 당연히 따랐을 것이다. 함정은 어려워도 헬기는 진입할 수 있으니까.”(헬기 조종사)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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