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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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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 대상이 조사하면 과연 국민들이 믿겠습니까

4월2일 정부 특별법 시행령안 철회 결의안 채택한 세월호 특위 이석태 위원장 인터뷰
등록 2015-04-07 07:52 수정 2020-05-02 19:27

“과연 국민들이 믿겠습니까.”
4월2일 오전 9시께 서울 서초구 반포동 서울지방조달청 회의실.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위) 전원위원회 회의에서 장완익 위원은 “우리 위원회에는 정부 추천(을 받은 위원)이 없다. 왜냐하면 정부 부처(해양수산부·국민안전처) 공무원이 조사 대상이기 때문”이라며 이렇게 물었다. 정부를 조사하는 특위의 특성상 그 위원 선정 과정에서 일체의 정부 추천을 배제했는데, 정작 실무 책임 인력을 정부 관료로 채워서 되겠느냐는 물음이었다. 특위는 여야 정치권(10명)과 법조계(4명), 희생자가족대표회(3명)의 추천 인사 17명으로 구성된 독립 기구다. 하지만 특위가 정부에 의해 장악될 위기를 맞고 있다.

차관회의, 국무회의 거쳐 확정될 가능성도

해양수산부가 3월27일 입법 예고한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정부 시행령안)을 보면, 실무 최고책임자로 기획조정실장(해수부 파견 공무원)을 두고 그 아래 기획총괄담당관(해수부 3·4급)이 특위 업무 조정·기획을 도맡도록 돼 있다. 참사 원인을 조사해 종합보고서를 작성하는 진상규명국 조사1과장(법무부 4급)도, 안전 대책을 수립하는 안전사회과장(국민안전처 4급)도 파견 공무원이 차지한다. 독립성·중립성은 사라지고 또 하나의 ‘관제 조사기구’로 둔갑할 판이다. 그래서 정부 시행령안이 ‘진상 규명 방해 시행령’ ‘허수아비’ ‘휴지 조각’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이에 대해 세월호 특위는 4월2일 정부의 특별법 시행령안 철회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석태 위원장 등 위원 14명이 전원회의에서 투표한 결과 10명이 시행령안 철회 요구에 찬성했다. 반대표는 조대환·황전원·석동현 위원(여당 추천)과 김선혜 위원(대법원장 추천)이 던졌다. 김선혜 위원은 “찬성 쪽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특위는 독립적이어야 한다”면서도 “(정부가) 시행령을 최대한 철회에 가깝게 수정해줄 것을 믿고 철회 요구에 반대한다”고 했다. 철회 결의안은 4월3일 해수부에 공문으로 보내졌다.

특위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정부의 특별법 시행령안이 앞으로 어찌 될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철회하는 데 노력하겠다”고 말했고,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야당 간사인 유성엽 의원은 “상임위에서 시정 명령을 내리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입법 예고 기간(4월6일)이 끝나면 차관회의(4월9일), 국무회의(4월14일)를 거쳐 정부 시행령안이 그대로 확정될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되면, 특위와 정부가 전면적으로 맞서는 형국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은 그동안 언론 인터뷰를 꺼려온 이석태 위원장을 직접 만났다. 이 위원장은 “타협의 여지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정부 시행령안은 특위를 무력화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제대로 진상 규명을 하지 못하면 그 좌절감이 한국 사회에 심각한 불신으로 나타날 것이다. 진상규명도, 안전 대책과 피해 지원도 확 축소해 한국 사회를 치유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한다. 명백한 위법이다.”

정부 시행령안을 보면, 진상 규명 업무를 정부 조사 결과만 분석하는 것으로 한정했다. 특위 차원에서 직접 조사할 권한을 없앤 것이다. 정부 조사 결과의 문제점이 발견돼도, 이를 ‘분석’만 하라는 것이니 추가 조사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정부 시행령안이 마련한 직제를 보면, 주로 공무원들이 실무책임을 맡게 된다. 그나마 업무도 공무원이 주도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 그 상급자인 상임위원 5명은 가끔 회의에 참석해 보고서나 검토할 수밖에 없다.

이 위원장은 절차적 문제도 제기했다. 정부의 법령안 제정 규정에 따라 특위는 시행령에 대한 사전 의견 반영을 요구하는 공문을 정부에 보냈지만, 정부는 시행령 입법 예고 과정에서 특위의 의견을 전혀 경청하지 않았다. 이 위원장은 “정부안을 폐기하고 (2월17일 제출한) 특위의 시행령안을 받아야 한다. 아니면 (정부가) 특위안에 근접하게 다시 내놓으라”고 밝혔다. 그는 “중대결심을 내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중대 결심’이라는 표현을 썼다. 사퇴할 수 있다는 얘긴가.

그건, 아직,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앞으로의 행보는 국민의 뜻에 따라 결정할 것이다. ‘국민과 유가족이 호응해줄 것인가’ ‘제대로 가고 있는가’ 자문하며 갈 작정이다. 위원장의 직책이지만 조사관의 마음으로, 그때 희생된 학생들과 일반인 피해자들이 내 옆에서 나를 지켜본다는 마음으로.

120명으로 합의하고는 90명으로 축소

2014년 12월 위원장 내정자 신분으로 와 인터뷰하며 그는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내가 혼자 있거나 뭘 쓰거나 항상 희생자들이 ‘이 변호사 제대로 하나?’ 지켜본다는 생각으로 일하는 것, 그게 내 기준이다. 시종여일(始終如一·처음이나 나중이 변함없이 한결같음)하게, 언제 어디서나!”

정부 시행령안에서 빠진 핵심 내용은 무엇인가.

특별조사의 성패는 진상규명·안전사회·지원 소위원회가 얼마나 일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래서 특위 시행령안은 업무와 사무를 구분하고 각 소위원회 위원장이 해당 국 업무를 지휘·감독하는 권한을 부여했다. 업무에 대한 (사무처의) 부당한 간섭을 배제하는 근거다. 이 부분이 통째로 사라졌다. 둘째, 인원 축소다. 여야가 120명으로 합의한 이상 정부가 맘대로 줄이면 안 된다. 조사 기간도 최장 1년6개월밖에 안 되는데 인원을 35%나 삭감하면 조사가 가능하겠나.

세월호 특별법은 특위 정원을 120명으로 명시했지만 정부 시행령안은 90명으로 축소했다. 이마저도 정무직 위원 5명을 포함한 수치다. 실무 인력은 85명인데 공무원과 민간 비율은 42 대 43이다. 하지만 비서·운전기사 등을 빼면 42 대 39로 공무원이 더 많다. 공무원은 해수부(9명·21.4%), 국민안전처(8명·19%)에서 주로 파견한다. 두 부처는 세월호 참사에 책임이 있어 특위의 조사 대상이다. 게다가 실무 업무를 맡을 6급·7급 가운데 6급은 공무원(18명)이, 7급은 민간(별정직 공무원·16명)이 월등히 많다. 민간은 공무원의 지휘·감독을 받으며 일하라는 의미다.

정부가 왜 이런 시행안을 내놨을까.

철학이 없어서라고 나는 생각한다. 세월호 특별법이 왜 필요한지, 진상 규명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얻을 것인지 인식이 없다. 안타깝다. 불행히도 전쟁이 일어났다고 치자. 그 전쟁을 국민과 합심해 성공적으로 극복하면 그 정부는 큰 지지를 받고 강건해진다. 재앙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충분히 정치적 자산이 될 수 있다.

그런데도 정부가 주저하는 이유가 있을까.

참사가 벌어졌다. 구조 과정에서 문제가 많았는데 조사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정부가 잘못한 것이 낱낱이 드러날 것이다. 하지만 잠시뿐이다. 지적받은 문제점을 토대로 여러 대책을 세우면 잘못들은 치유가 된다.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다. (정부와 여당이) 초기에 정치적 판단을 잘못했다고 본다. 지금도 (바로잡기에) 늦지 않았는데 (정부 시행령안을 보니) 지속되는 것 같다.

특조위와 해양수산부 시행령(안) 직제 비교

특조위와 해양수산부 시행령(안) 직제 비교

진상 조사 대상을 정부 조사 결과로 한정
잘못된 판단이 어떤 영향을 줄까.

600만 명에 가까운 국민이 서명해 세월호 특별법이, 특위가 만들어졌다. (정부 방해로) 제대로 진상 규명을 하지 못하면 그 좌절감이 한국 사회에 심각한 불신으로 나타날 것이다. 한국 사회의 신뢰도는 이미 꽤 낮은 수준이다. 경제가 발전해도 사람들은 편안하지 않다. 서로 믿지 못하니까. 큰 사고 또는 불행이 닥치더라도 ‘누군가 날 구하러 올 것’이라고 신뢰할 수 있어야 건강한 사회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그렇지 못하다. 세월호 참사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지 않았나. 그런데 (정부 시행령안은) 진상 규명도, 안전 대책과 피해 지원도 확 축소해 한국 사회를 치유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한다. 명백한 위법이다.

세월호 특별법(제5조 1항ㆍ3항)은 진상규명소위원회 업무를 ‘원인 규명’과 ‘구조·구난 작업과 정부 대응의 적정성에 대한 조사’로 규정했다. 반면 정부 시행령안(제5조)은 이를 ‘원인 규명에 관한 정부 조사 결과의 분석 및 조사’와 ‘구조·구난 작업에 대한 정부 조사 자료의 분석 및 조사’로 둔갑시켰다. 이 위원장은 “기존 정부 조사에 대해 (특위가) 면죄부를 주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세월호 특별법(제5조 6항)은 안전사회소위원회의 업무를 ‘재해·재난의 예방과 대응 방안 마련 등 안전한 사회 건설을 위한 종합대책 수립에 관한 사항’으로 규정한다. 하지만 시행령안(제6조)은 각 항목에 ‘4·16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이란 구절을 일일이 집어넣었다(‘4·16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재해·재난의 예방에 관한 사항’ ‘4·16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한 안전한 사회 건설 종합대책 수립에 관한 사항’ 등). 이 때문에 특위가 마련할 안전사회 건설 종합대책을 사회 전반적 분야에 걸친 것이 아니라 해상 관련 부문으로 좁히려 한다는 의문이 일고 있다.

지난 1월28일 제정된 세월호 피해 구제·지원 특별법(제20조)은 ‘국가는 피해자 지원 대책을 수립할 때 지원소위원회에 적극 협력해야 한다’고 돼 있다. 그러나 시행령안에서는 피해 지원에 대한 특위 권한을 피해자 지원 대책을 ‘점검’하는 것으로 제한했다. 정부가 마련한 지원 대책을 사후 검토만 하라는 것이다.

예상했던 것보다 힘든가.

이럴 줄 몰랐다. 12월에 선출됐으니 거의 4개월이 지났는데 출발도 못하다니, 상상도 못했다. 설립준비위원회에 파견왔던 공무원들도 그랬다. 1월께 임명장 받고, 2월께 (특위를)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유가족들이 처음 찾아왔을 때 고심했다. 특위 임무가 워낙 막중하니 감당할 수 있을까 끊임없이 물었다. 결국 해보겠다고 나섰는데 지금 돌이켜보니 유가족이 더 적합한 인물을 찾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을 때도 있다.

어떤 면에서 그런가.

정부가 지나치게 소극적인 면도 있지만, (위원장이) 좀더 결기가 필요하지 않나 싶다. 그래야 문제가 생겼을 때 좀더 잘 이끌어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나는) 너무나 부족하다.

“나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이 위원장은 1953년 전쟁 와중에 충남에서 태어나 인천과 서울에서 자랐다. 경복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2년 서울대 화학과에 입학해 3학년까지 공부하다 자퇴했다. “인문학에 대한 갈증”에 다시 서울대 인문계열에 입학했고 그 뒤 30년간 인권변호사의 길을 걸었다. 동성동본 불혼 헌법소원, 일본군 위안부 배상청구권 위헌 결정, 호주제 헌법 불합치 결정 등 굵직굵직한 사건을 맡았다. 특히 강기훈 유서 대필 사건은 1991년부터 20년 넘게 변론해 대법원에서 재심 개시를 이끌었다.

그는 스스로를 내세우는 법이 없다. “기자를 비롯한 국민이 도와줘야” 세월호의 꼬인 실타래를 풀 수 있다고 믿기에 그는 “굉장히 부담스러운” 언론 인터뷰를 자청했다.

정부가 시행령안을 철회할까.

나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낙관적이라는 얘기를 듣는데,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꿈을 포기할 수 있겠나. 우리 사회가 적당한 시기가 되면 (세월호 문제를) 극복하리라는 신념이 내겐 있다. 한국 사회는 힘이 있어서 결국 전진한다는 믿음이 있다. 우리는 거꾸러져도 또 일어난다. 절대 거기서 죽지 않는다.

글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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