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와우리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견고한 벽이 있다. 이 철옹성은 여타의 성벽과 다르게 기능한다. 외부의 공격을 막기보단 내부의 비판이 새어나가지 못하게 하려는 목적이 더 크다. 정치권까지 연루된 각종 의혹의 중심에 선 수원대학교는 다른 목소리를 내는 ‘내부의 적’을 추적하고 추방하는 방식으로 그동안 교내 여론을 통제해왔다.
수원대가 추방한 내부의 적은 교수들이다. 호봉제 교수인 화학공학과 배재흠·환경에너지공학과 이상훈·도시 및 부동산개발학과 이원영·건축공학과 이재익 교수 4명에 계약제 교수인 연극영화과 장경욱·정보미디어학과 손병돈 교수까지 더해 모두 여섯 명이다. 이들은 지난해 3월 ‘교수협의회’(교협)를 만들어 재단에 대해 비판적 의견을 낸 것이 알려진 뒤 차례로 파면·해임 처분됐다.
‘경운기’ 동원한 비판 여론 압박 수비
지난 10월29일 수원대 정문 앞, 비로소 여섯 명의 교수가 한자리에 모였다. 시민단체 다산인권센터와 함께 수원대 졸업생 등을 초대해 수원대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누는 ‘수원대 정상화를 위한 길거리 특강’ 자리였다. 교협 소속 교수들은 그동안 이인수 수원대 총장의 비리 의혹과 학내 비판 여론 탄압 행위 등을 학생과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분투해왔지만 1인시위 이상의 행동을 할 수 없었다.
“학교에선 동아리에서도, 과에서도 아무도 이 이야기를 하지 않아요. 이런 일에 나서면 교수님들이 장학금이나 성적으로 불이익을 줄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저라도 나서고 싶지만 방법을 잘 몰라서 그동안 안타까웠어요.”-수원대 1학년 학생
교수들의 목소리가 주목받는 것을 우려한 수원대 쪽이 교직원들을 동원해 경찰에 1순위로 정문 앞 집회 신고를 해온 까닭이다. 교직원들은 집회 신고에서 우위를 선점하기 위해 매일 자정 순번을 돌아가며 경찰서를 지켜온 것으로 알려졌다. 교직원의 실수로 수원대 쪽이 집회 신고 1순위를 놓친 까닭에 교협 교수들은 비로소 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날도 해직 교수들과 학생들의 만남을 막으려는 수원대의 움직임은 일사불란했다. 해직 교수들의 집회가 예정된 오전 10시, 취업정보처 등 소속 교직원 20여 명이 정문 앞 공간에 탁자를 설치하고 학교 쪽의 취업특강을 홍보하고 있었다. 머리가 희끗한 노교수들이 항의했다. “우리가 (집회) 허가를 받았으니 여기 치워주세요.” 교직원들은 완고했다. “아니, 학생들 교육을 시키겠다는데. 학생들 교육을 방해하는 행위는 하시면 안 돼요.” 수십 분 동안 이어진 실랑이는 경찰이 출동해 “정당한 집회를 방해해선 안 된다”며 학교 쪽 교직원들을 설득한 뒤에야 마무리됐다.
학교 쪽의 집회 방해는 종일 이어졌다. ‘파면교수 의혹제기 떨어지는 취업률’. 집회를 이어가는 교수들의 맞은편에선 교직원들이 돌아가며 피켓을 들고 ‘맞불’ 1인시위를 벌였다. “경비과 직원”이라고 소개한 관계자는 “이건 자발적인 시위”라고 말했지만 “그렇다면 시위의 목적과 내용을 좀더 자세히 소개해달라”는 부탁에는 굳게 입을 닫았다.
교문 바로 옆에선 학교 쪽이 세워둔 경운기가 공회전하며 덜덜거리는 소음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홍보처 관계자들은 집회를 취재하기 위해 모여든 취재진을 한 명씩 붙들고 ‘해직 교수들의 문제제기가 얼마나 부당한 것인지’를 해명하기 위해 애썼다. 급기야 특강을 들으려 모여든 학생들의 면면을 채증하기 위해 교문 안쪽에서 ‘도촬’을 시도하기도 했다.
이런 ‘압박 수비’가 수원대 구성원들에겐 새로운 일이 아니다. 10년 전 (정년 보장) 계약제 교수로 수원대에 처음 발을 디딘 장경욱 교수가 학교의 민낯을 여과 없이 보게 된 건 지난해의 일이다. 장 교수는 지난해 3월 다른 계약제 교수들과 함께 재임용 약정서에 서명을 거부하며 교원인사규정과 연봉기준안 공개, 호봉제 전환 등을 요구했다.
‘노예계약서’ 다름 없는 임용약정서
300명 규모의 수원대 교수 중 3분의 1을 차지하는 100여 명의 비정규직 교수들에게 수원대는 노예계약서와 같은 교원 임용 약정서를 내밀어왔다. 임용 기간은 12개월에 지나지 않았고 재임용을 위한 업적 평가 기준은 다른 학교에 견줘 지나치게 까다로웠다. ‘재임용 탈락될 경우 이에 대하여 민사, 형사, 행정적인 일체의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해지의 경우 학교 쪽에 일체의 손해배상 등을 청구할 수 없다’는 내용까지 약속하도록 했다. 그러나 교원인사규정이나 업적평가 기준표는 보여주지 않았다. 이에 대해 학교는 개선책을 약속했다. 그러나 이후 장 교수 등이 학교 재단의 ‘눈엣가시’가 됐을 것임은 자명하다.
곧이어 5월에는 연극영화학부 제자들이 교육 환경을 개선해달라며 집단 시위에 나섰다. KBS에서 제작한 시사 프로그램에 연극영화학부 학생들이 출연했다. 방영된 다큐멘터리는 세간의 관심을 모으며 수원대 문제를 공론화했다. 학교는 장 교수를 배후로 의심했다. 이후 학교 쪽은 장 교수를 해임한 뒤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이 내용을 적시해 “학생 지도에 문제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학생들이 유튜브에 ‘수원대 시국선언’ 등 동영상을 제작해 올리고 언론에서도 공론화하기 시작하자 학교 쪽도 압박 수위를 높였다. 연봉 인상과 보직 배치 등의 회유책도 따랐지만 소신을 지킨 그에겐 응분의 대가가 돌아왔다.
그해 12월 장 교수는 재임용에서 탈락했다. 함께 계약제 교수 처우 개선을 요구했던 손병돈 교수도 마찬가지였다. 수원대학교 쪽은 ‘업적 평가 기준 미달’을 재임용 거부 사유로 밝혔지만 장 교수는 “애초에 달성할 수 없는 기준을 내세운 표적 해임이었다”고 주장한다.
수원대의 업적 평가는 연구 60점, 봉사 20점, 교육 20점을 합해 100점으로 구성된다. 재임용되려면 합계 85점을 넘겨야 한다. 지난해 장 교수는 연구 실적에서 60점 만점에 55.88점을 받았고 강의 평가에서도 18점이 넘는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러나 봉사 점수에서 단 2점을 받았다. 장 교수의 합산 평가 점수는 83.78점으로 기준 점수보다 1.22점 낮았다.
지난 5월,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교원소청심사위원회는 장 교수와 손 교수의 손을 들어줬다. 위원회는 이들이 제기한 ‘재임용 거부 처분 취소’ 청구에 대해 “학교 쪽이 재량권을 일탈 또는 남용했다”며 이는 위법하다고 결정했다. 계약제 교수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준 교협 교수 4명의 파면 처분에 대해서도 같은 날 교원소청심사위원회는 “절차와 내용에 중대한 하자가 있으므로 취소되어야 한다”고 결정했다.
학교 쪽이 배재흠 교수 등 교협 공동대표 3명과 교협 회원인 이재익 교수에게 파면이라는 중징계를 내린 주요 사유는 포털 사이트 ‘다음’에 개설된 교협 카페에 이 총장 등을 비판하는 글을 쓴 것과 재단 비리 의혹을 제기하는 기자회견·인터뷰 등을 한 데 있다. 이들에 대한 징계의결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은유적인 글을 올리고 댓글을 유도함으로써 악의적인 글이 올라오는 것을 권장 또는 방조하였다. 수원대학교의 모든 구성원에 대해 대내외적인 명예 실추·훼손은 물론 인격적인 모욕감과 수치심을 느끼게 하고 카페를 통하여 집단행위를 선동 조장하였다.”
정부·법원 결정 보란듯 무시정부의 결정도 수원대의 완고한 벽을 넘지 못했다. 해임·파면 교수들에 대한 교원소청심사위원회의 결정 직후인 지난 7월, 수원대 재단은 서울행정법원에 해임·파면 취소 결정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다시 제기했다. 이어 9월에는 학교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1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도 냈다.
법원의 판단이 교협에 유리하게 나온다고 해도 수원대 재단이 압박을 느낄지는 의문이다. 지난 2월 재단 쪽은 파면된 교수들에게 연구실을 반환하라는 ‘건물 인도 가처분 신청’을 냈지만 법원에 기각당했다. 이에 굴복하지 않고 지난 7월 연구실을 폐쇄한 뒤 교수들 개인의 자료 반출도 막고 있다. ‘정부 위의 대학, 법 위의 대학’인 셈이다.
대자보 하나 붙이는 것조차 철저하게 통제하는 분위기 속에서 학생들이 재단 비리 문제를 공유하고 공론화하는 것은 여의치 않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한 1학년 학생은 교수들의 길거리 특강을 지켜보다 이렇게 말했다. “학교에선 동아리에서도, 과에서도 아무도 이 이야기를 하지 않아요. 이런 일에 나서면 교수님들이 장학금이나 성적으로 불이익을 줄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저라도 나서고 싶지만 방법을 잘 몰라서 그동안 안타까웠어요.”
모든 학생이 해직 교수들과 재단의 전횡에 눈감은 것은 아니다. 일부 학생은 페이스북 등을 통해 학내 문제를 공유하고 있다. 강의를 마치는 오후 시간이 되자 50여 명의 학생이 모여들어 해직 교수들을 응원했다. 진지한 표정으로 친구와 함께 자리를 지킨 학생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출구가 보이지 않아요. 외부의 힘을 빌려서라도 서둘러 학교 문제가 해결되고 교수님들이 복직하셨으면 합니다.”(강수진·21·국문) “총장의 문제도 있지만 학교 구성원으로서 학생들 입장에서 감시하고 문제제기할 부분이 있는데 그 대표인 총학생회가 제구실을 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부분이 가장 답답합니다. 저희가 어떻게 해야 우리 교수님이 복직될 수 있을지 고민입니다.”(채종국·25·연극영화)
동료 교수들 역시 학교의 눈을 피해 암암리에 힘을 보태고 있다. 수원대 교협은 학교의 탄압을 피하기 위해 총대를 멘 공동대표 3명과 ‘셀프 커밍아웃’ 한 극소수를 제외하곤 모든 회원이 비공개다. 드러내놓고 지지할 수 없는 이들은 후원금으로 마음을 보내는 중이다. 배재흠 교수는 “각종 소송이 진행되는 가운데 7천여만원의 소송 비용이 들었는데 후원금 덕분에 힘을 얻고 있다. 현재까지 100여 명이 1억5천여만원을 보내왔다. 일부는 소송 비용으로, 일부는 해임 처분돼 갑자기 일자리를 잃은 교수의 생활비를 지원했다”고 설명했다.
정년 코 앞이던 노교수의 마지막 싸움수원대 재단은 파면된 교수 4명에게 ‘계약제 교수 2명 제외를 조건으로 복직을 제안하고 있다. 교수협의회 해체와 교협 카페 운영 중단도 부수적인 조건으로 내걸었다. 파면당한 교수들은 앞으로 5년 동안 재취업을 할 수 없고, 연금 수령액 또한 반토막 난다. 그래도 이제 와서 포기할 수 없는 싸움이다. 1만2천 명의 제자들이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24년간 수원대에 몸담았고 예정대로라면 내년에 정년 퇴임할 예정이던 이상훈 교수는 “새 구두를 살 돈이 없어 고무신을 신고 나왔다”면서도 “자존심과 명예를 절대로 버리지 않겠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열악한 환경에 고통당하고 계약제 교수들은 사실상의 노예계약서에 묶여 고통당하는 것을 ‘차마’ 모른 체할 수 없었습니다. 등록금을 학생들에게 되돌려주고, 계약제 동료 교수들이 제대로 대우받는 수원대 정상화만 된다면 고생은 견딜 수 있습니다.”(이상훈 교수)
수원=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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