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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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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기로에서

7월24일 세월호 침몰 100일, 길 위에 선 사람들…
막둥이를 잃은 아버지들은 십자가를 짊어지고 순례길,
유가족 15명은 국회와 광화문에서 단식농성, 생존학생은 국회의사당까지 걷고
등록 2014-07-26 15:41 수정 2020-05-03 04:27
세월호 참사로 막둥이를 잃은 아버지 이호진(왼쪽 첫 번째)씨와 김학일(두 번째)씨가 경기도 안산 단원고를 출발해 전남 진도 팽목항, 대전 월드컵경기장으로 이어지는 750km 도보 순례길을 걷고 있다. 한겨레21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세월호 참사로 막둥이를 잃은 아버지 이호진(왼쪽 첫 번째)씨와 김학일(두 번째)씨가 경기도 안산 단원고를 출발해 전남 진도 팽목항, 대전 월드컵경기장으로 이어지는 750km 도보 순례길을 걷고 있다. 한겨레21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2014년 4월16일 오전.

인천을 떠나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했다. 수백 명의 꽃다운 목숨이 육중한 몸집의 배와 함께 바닷속으로 허무하게 가라앉는 처참한 모습은 전국에 고스란히 생중계됐다. 7월18일 현재 사망자 294명, 실종자 10명, 생존자 172명. 7월24일이면 끔찍한 참사가 발생한 지 어느덧 100일이 되지만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길 위에서 고통 속에 서성댄다.

막내아들을 잃은 두 아버지는 십자가를 짊어지고 750km 순례길을 나섰다(7월8일). 유가족 15명은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갔다(7월14일). 자식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으려는 목숨을 건 몸부림이다. 지칠 대로 지친 아비와 어미는 하나둘 쓰러져갔다. 보다 못한 단원고 생존 학생들이 “친구들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혀달라”며 학교에서 국회의사당까지 걷고 또 걸었다(7월15~16일). 이뿐이 아니다. 석 달간 진도 실내체육관에 머물고 있는 실종자 가족들의 처지는 더욱 위태롭다. 무심한 바다를 향해 가족의 이름을 목 놓아 부르는 이들은 분노도, 슬픔도, 허탈도 모두 임계점에 이른 상태다.

세월호 피해자 가족의 바람은 한결같고 담백하다. 진상 규명과 실종자의 빠짐없는 귀환. 정부와 국회를 향해 피해자 가족과 같은 마음으로 일해달라며 요구한다. 그러나 현실은 더없이 참혹하다. 피해자 가족들이 2박3일의 철야농성 끝에 이끌어낸 세월호 국정조사는 여야의 지루한 공방 끝에 소득 없이 막을 내렸다. 삿대질과 비아냥마저 견뎌가며 국정조사장을 지켰으나, 책임지는 사람은 그 누구도, 그 어디에도 없었다. 여야는 애초 세월호 특별법을 7월17일까지 제정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마저도 새빨간 거짓말이 됐다.

우리 사회는 아프다. 문요한 정신과 전문의는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우리 사회가 깊은 무기력과 불신에 빠져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신의학적 용어로 ‘회복 탄력성’이라는 게 있다. 건강하지 못한 사회가 사회적·심리적 재난을 겪으면 사회적 불신이 더 고조될 수 있다. 회복 탄력성이 없어서다. 철저한 자기반성과 제도 개선이 없으면 그렇게 된다.” 박진 다산인권센터 활동가도 동의했다. “온 국민이 함께 아파하고 분노했던 세월호 참사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아, 우리 사회는 어쩔 수 없구나’라는 절망감만 남을 것이다. 우리 모두가 함께 살아남기 위해 지난 100일을 되돌아보고 정부를 설득할 힘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씨앗은 움트고 있다. 두 아버지가 한발 한발 내딛는 고난의 순례길에 곳곳의 이웃들이 참여하고 있다. 노동계와 종교계 등 각계 인사 13명은 7월18일 피해자 가족들에게 힘을 보태고자 단식농성을 시작했다.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물러설 것인가. 세월호 참사 100일, 우리 사회는 기로에 서 있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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