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생존자 174명. 처음엔 관심이 없었다. 그래도 그들은 살았으니까. 가끔 기사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는 있었다. 그러나 기사에서도 생존자는 피해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사고를 경험한 증인으로서 당시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기사에 등장했다. 사고가 나고 며칠 뒤에야 제주와 인천을 오가는 화물차 운전기사들이 세월호를 탔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차 싶었다. 물어물어 연락처를 알아냈다. 6월 마지막 주, 기선·은정·현모와 함께 제주와 서울에서 17명의 화물기사들을 만났다.
이겨내겠다고 다시 배를 타봤지만“이렇게 이야기하고 나면 우리는 오늘 저녁에 또 술 마셔야 해요.” 사고 당시 기억을 끄집어내는 게 그들에게는 힘든 일이다. 성인 남성이 우는 모습을 그렇게 많이 본 건 태어나서 처음이다. 다들 우울증과 불면증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었다. 다시는 배를 탈 수 없을 것 같다고, 화물차도 몰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이겨내야겠다는 생각으로 배를 한번 타본 이도 있었다. 그러나 다시는 못할 일임을 확인했노라 했다. 사람을 만나기도 무섭고, 예전 모습으로 돌아갈 자신이 없다고 했다.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사람도 많았다. 약으로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어려워 보였다. 그들에게는 술이 유일한 탈출구가 된 건 아닐까.
“내가 다친 건 괜찮아요. 내가 좀더 애썼으면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었을 텐데.” “옆 칸에 들어가서 한 사람만 더 구했더라면, 그렇게 하지 못한 게 한이 맺히고 가슴이 메고….” 세월호 3층 선미에는 화물기사들이 묵는 방이 따로 있다. 화물기사는 대부분 이 방에 있었기 때문에 학생들보다 쉽게 탈출할 수 있었다. 사람인 이상,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어른으로서 아이들을 살리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그들을 힘들게 했다. 살아 있는 게 죄인이었다. 학생들과 함께 있었던 기사들의 고통은 더 커 보였다. “바닥이 굉장히 미끄러웠어요. 그래서 제 몸에 호스를 감고 아이들한테 소방 호스를 던져 끌어냈는데…, 쉽지 않았어요.” 김아무개씨는 아이들을 구조하는 과정에서 근육을 무리하게 쓴 나머지 중상을 입고 수술을 받았다. 화상을 입어 병원에 입원한 기사도 있다. 최재영씨는 동료 기사 정아무개씨와 식당에 있었다. 라면을 먹으려고 온수통 앞에 섰을 때 갑자기 배가 기울었다. 그 순간 근처에 있던 학생들에게 뜨거운 물이 쏟아질까봐 쓰러지는 온수통을 붙잡았다. 그러다 본인들이 뜨거운 물을 뒤집어썼다. 화상을 입은 상황에서도 최씨는 입고 있던 구명조끼를 한 여학생에게 건네주고, 바다를 헤엄쳐나와 구명정을 끌고 다시 학생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마지막으로 본 학생 3명의 모습이 아른거린다고 했다. “아저씨, 살려주세요.” 이 말을 듣고도 지키지 못한 건, 평생의 고통이 될 것이다.
지원책 “뭐가 뭔지 잘 모르겠어요”[%%IMAGE2%%]트라우마와 부상에 시달리는 상황에서도 화물기사들은 당장 먹고사는 것을 걱정해야 한다. 유일한 생계 수단이 물속으로 가라앉아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사고 피해자로서 정부의 지원을 받기는 했다. 3개월 동안 긴급복지지원금을 받았고, 부상을 당한 화물기사에게는 생활안정자금이 한 차례 지급됐다. 고용노동부가 주는 특별 휴직·휴업 지원금도 있다. 그러나 희생자 유가족과 생존자 간에는 지원 내용에 차이가 있다. 가구당 1명의 담당 공무원을 유가족에겐 배치했지만, 생존자에겐 그런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 부상자 가족에게 지급되는 생활안정자금은 희생자 유가족에게 지급되는 금액의 절반 수준이다. 지원 대상은 ‘세월호 피해자’이나, 화물기사는 어떤 경우엔 피해자에 포함되고 어떤 경우엔 피해자에 포함되지 않는다. 지원 내용과 요건이 천차만별인데다 근거 법령, 담당 기관도 다르다보니 정부에서 먼저 알려주기 전에는 어떤 지원을 받는지 알 길이 없다. 구체적으로 어떤 지원을 받는지 물어보니, 기사들의 말이 저마다 달랐다. 그러나 공통적으로 한 말이 있다. “뭐가 뭔지 잘 모르겠어요.” 정부는 유가족에게 배포한 지원 안내 책자를 이들에겐 배포하지 않았다. 귀동냥으로 얻은 정보를 가지고 관할 기관을 찾아가면, 공무원마저 그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있었다. 안전행정부에 문의하면 해양수산부에 문의하라고 하고, 해양수산부에 문의하면 지자체에 문의하라는 답을 듣기도 했다. 다른 기관에 일일이 연락을 할 때마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당시 상황과 자신의 현재 고통을 설명해야 하는 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몸도 아프고 사람들 만나기도 힘든데 이것 떼어와라, 저것 떼어와라. 그래서 챙겨서 가면 다른 데 가보라고 하니 속이 타죠.” “이거라도 해주니 고맙게 생각해라, 그런 것 아니겠어요.” 정부의 소극적인 태도는 가뜩이나 죄책감에 시달리는 화물기사들의 자존감마저 무너뜨렸다. 화상을 입은 최재영씨의 경우 약 6천만원의 치료비가 발생했다. 병원에서는 그중 800만원을 본인이 부담하라고 했다. 항의해서 일단은 내지 않는 것으로 정리됐지만, 앞으로 1년 넘게 걸리는 재활치료 기간에 또 어떻게 싸워야 할지 걱정이 앞선다. “병원도 해운조합도 안행부도 해수부도 서로 떠넘기기만 하고. 직접 묻고 따지지 않으면 되는 게 없어요. 큰아들이 곧 제대하는데 복학하지 않고 돈을 벌겠다고 해요. 먹고살아야 하는데 방법이 없으니까.” 아내는 일을 그만두고 간병을 위해 병원에서 살다시피 한다.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딸은 집에 혼자 남겨졌다. 대부분의 기사가 한 집안의 가장인데, 사고로 인해 가족 모두가 고통을 짊어지게 됐다. 가족을 위해 차라리 죽는 게 나았을지 모르겠다는 말을 조심스럽게 꺼낸 기사도 있었다.
생계도 생계지만, 차량 할부금도 문제다. 화물기사는 보통 금융기관을 통해 할부로 차를 구입하는데, 화물차 값만 1억원이 넘다보니 몇 년에 걸쳐 매달 200만원 가까운 돈을 할부금으로 납입한다. 어느 금융기관은 할부금 납입을 1년간 유예해주었지만 또 다른 금융기관은 3개월만 유예해주었다. 복불복인 셈이다. 정부도 이런 문제를 의식해서인지 ‘세월호 피해 생계형 화물차량 운전자 지원’ 방안을 내놓았다. 그런데 그 내용이 추가 대출을 받으라는 것이다. 그것도 화물차 구입이 대출 조건이다. “화물차 타기 힘든 사람한테 화물차를 구입하라니….” “빚쟁이한테 너 돈 빌려줄 테니까 다시 빚을 지라고 하는 건 대책이 아니죠. 빚쟁이를 양산하겠다는 것이지.”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 그렇게 힘든 상황에 놓여 있는지 몰랐다. 따져물었다. 왜 지금까지 말하지 않았느냐고. 안타까운 마음도 있었지만, 항의의 뜻도 있었다. 유가족들은 힘들게 싸우는데 당신들은 무엇을 했느냐는 항의의 뜻 말이다. “어떻게 우리가 말을 해요. 산 사람이 어떻게 말을 하냐고요.” “유가족들이 저렇게 힘들게 있는데 아직은 우리가 말할 입장이 아니지요.” 말할 엄두도 못 내고 있었다. 답답하다고 했다. 억울하다고 했다. 말을 할 수도 없었지만, 말해도 들어주는 이가 없었다. “지역 국회의원한테 전화를 했는데 통화는 못하고 연락주겠다고 하더니 지금까지 연락이 없어요.” “누가 우리에게 관심이나 있겠어요.” “나도 이렇게 힘든데 유가족들은 얼마나 힘들까 해서 같이 싸우고 싶었어요. 그분들을 위로하면서 저도 위로받고 싶었어요. 하지만 아직까지 연락이 없어요.” 위로하며 위로받고 싶었지만 기회가 없었다. 혼자 알아내고 혼자 싸우고 혼자 견뎌야 하는 외로움이 그들을 더욱 힘들게 했다.
이렇게 힘들었는데 왜 가만히 있었나요이제 곧 지원이 중단될 것이다. 할부금도 납입해야 할 것이다. 세월호에 실린 화물차는 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아서 보험금도 받기 어렵다. 청해진해운을 상대로 소송을 해서 손해배상을 받아야 하는데, 회사는 문을 닫았다. 정부는 일찌감치 이런 발표를 했다. “화물차 운전자들은 청해진해운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해 경제적 손실을 보전받아야 한다.” 그러면서 정부는 유병언이 가진 재산 전부를 가압류했다. 정부가 재산을 가압류했으니 기사들이 소송에서 이겨도 배상을 받아낼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더 이상 상처는 없기를 바란다. 더 이상 죽음은 없으면 좋겠다. 그러나 몹시 불안하다. 그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단 한 사람도 놓치지 않고 기억하겠노라’는 우리의 약속에 그들과 나란히 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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