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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왜 변해야 하지?

‘박근혜 마케팅’ 힘입어 국민의 지지 확인한 새누리당, 개혁적인 목소리 자리잡을 수 있을까
등록 2014-06-11 06:23 수정 2020-05-02 19:27

“이번 지방선거에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확인된 것 아니겠나? 앞으로 새누리당이 청와대와 단절하거나 각을 세우는 구도로 갈 수 있는 소지는 없어졌다.”

한 달 뒤 선거도 ‘기댈 데는 대통령’?

친박으로 분류되는 새누리당 한 초선 의원의 말이다. 이번 6·4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은 17개 광역자치단체장 가운데 8명을 당선시켜 새정치민주연합 9명에 1명 뒤지는 결과를 내놨다. 그러나 선거의 승패를 가르는 기준이 되는 수도권에서는 새누리당이 서울을 제외한 경기, 인천에서 승리를 거뒀다. “완승도 완패도 아니다”는 게 새누리당의 공식적인 평가다. 그러나 내부 분위기를 살펴보면 “사실상 승리했다”는 정서가 팽배하다. 세월호 침몰 사건에서 정부의 무능함이 고스란히 드러나면서 정부에 대한 비판이 어느 때보다 높던 시기에 치러진 선거였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애매한’ 결과는 사실상 국민이 정부·여당에 힘을 실어준 것이라는 게 새누리당 내부의 해석이다.

6·4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나온 유정복 인천시장 당선자(왼쪽)와 남경필 경기도지사 당선자가 선거 승리뒤 기뻐하고 있다. 한겨레

6·4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나온 유정복 인천시장 당선자(왼쪽)와 남경필 경기도지사 당선자가 선거 승리뒤 기뻐하고 있다. 한겨레

친박계 의원들은 앞으로 치를 전당대회(당대표 선거)에서도 ‘대통령 중심주의’가 그대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한 친박 재선 의원은 “우리가 선거 막판에 하루가 급하니까 박근혜 마케팅을 들고나온 것 아니겠나. 이것이 선거 전략상 나름의 의미가 있었다. 그렇다면 불과 한 달쯤 뒤에 열리는 전당대회까지는 ‘야, 그래도 기댈 데가 대통령밖에 없다’는 생각이 있지 않을까 싶다. 대통령 본인이 먼저 이런저런 개혁을 하겠다고 치고 나간 측면도 있고, ‘우리가 똘똘 뭉쳐 대통령과 협조해가면서 잘하겠다’고 하는 주장이 힘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분석했다. 친박으로 분류되는 새누리당 관계자도 “한동안 선거가 새누리당 참패로 끝날 거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있었고 대통령과의 차별화 주장도 나왔다. 그런데 결정적 순간이 되니까 결국 치맛자락 붙잡고 ‘엄마 나 좀 도와줘’라고 된 것 아니겠나. 이렇게 해놓고 앞으로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얘기하기가 참 곤란하게 됐다”고 말했다.

물론 새누리당 안에서 쇄신의 목소리가 아예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초선 의원들을 중심으로 “당이 이대로 가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조금씩 분출되고 있다. 이상일 새누리당 의원은 선거 다음날 공개 성명서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을 지켜달라’는 이른바 ‘박근혜 마케팅’이 야당의 정권심판론을 차단하는 효과를 낳았다고 해서 또다시 대통령만 쳐다보는 무기력하고 안이한 행태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이젠 여당다움을 보여야 한다. 대통령에게도 당당하게 할 말은 하는 여당, 청와대와 행정부의 잘못을 감싸는 여당이 아니라 야당보다 더 매섭게 질책하면서 잘못된 걸 고쳐나가는 여당, 생활정치에 앞장서며 민생을 내 일처럼 챙기는 여당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초선 의원도 “언제까지 이렇게 대통령에게 의지해야 하느냐는 비판 의식을 갖고 있는 의원들이 있다”고 전했다.

대통령과 각 세우지 않을 투톱, 서청원·김무성

문제는 이들의 요구를 받아안을 지도부가 나올 수 있느냐다. 새누리당 전당대회의 투톱 후보인 서청원 의원과 김무성 의원은 각각 친박과 비박을 대표하고 있지만, 두 후보 모두 박근혜 대통령과 각을 세우고 가긴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쇄신파로 분류되는 한 재선 의원은 “전당대회에 나오는 어떤 후보든 박 대통령과 각을 세우는 형태로 가진 않을 거다. 그건 (비박계로 분류되는) 김무성 의원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해서는 이길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다만 당의 개혁과 변화 등 국민의 요구에도 응답해야 하니 그런 방안도 일정 부분 나올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두 후보 모두 개혁의 필요성을 주장하겠지만 결국 대통령의 국정운영과 당이 함께 가야 한다는 방향성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결정적인 순간이 되니까 결국 치맛자락 붙잡고 ‘엄마 나 좀 도와줘’라고 된 것 아니겠나. 이렇게 해놓고 앞으로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얘기하기가 참 곤란하게 됐다.” -친박으로 분류되는 새누리당 관계자


새누리당의 중진 의원도 “선거 결과를 보고 대통령이든 여당이든 또 착각하기 시작하는 것 같아서 걱정이다. 친박 주류들의 입김이 여전히 강하고 개혁적인 목소리는 자리잡기 힘들다. 서청원·김무성의 투톱 대결이 그대로 가게 되면 달라지는 게 거의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당내에서는 아직까지 두 후보 외에 대안세력은 나오지 않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대통령은 어떨까? 역시 기존 국정 기조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은 “새누리당이 현상 유지를 하기에 딱 좋은 결과가 나왔다. 박근혜 대통령도 선거 결과를 놓고 특별한 부담을 가질 일은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뒤 전면적으로 내세운 ‘국가 개조’라는 국정 기조가 그대로 유지된다는 의미다. 실제로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지방선거가 끝난 뒤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국가 개조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이에 대해 김 원장은 “박 대통령이 얘기하는 국가 개조는 공무원 사회의 잘못을 바로잡는 ‘사정’ 정도가 아니겠나. 결국 기존에 해왔던 것을 똑같이 하겠다는 것인데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대화와 타협이 중심이 되는 대통합이 아닌 박근혜식 ‘공포정치’를 더욱 강화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청와대는 대통령 조문 연출 의혹을 제기한 CBS에 8천만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낸 것에 이어, 세월호 구조아동 위로 장면 연출 논란을 보도한 에도 같은 액수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금전을 활용한 언론 통제 및 손보기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도 지난 6월1일 공개된 팟캐스트 에서 “천안함 등 과거 모든 사건에서 합리적인 의심을 하면 ‘너 북한 편이지, 북한 가서 살아라’라고 하는 것이 공안통치다. 이 두려움을 부추기는 방식의 반격을 (박근혜 정부의) 공안 마피아에서 공격해올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인선, 개혁 의지 가늠할 잣대

일단은 박 대통령의 ‘개각’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이번 선거에서 ‘선거의 여왕’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증명했기 때문에 절박한 심정으로 바꾸는 것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바꾸긴 할 것이다. 앞으로 7·30 재·보궐 선거도 있기 때문에 나름의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차기 총리에 의외의 인물을 발탁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여당 안에서도 개혁적 인물을 중심으로 한 개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홍일표 새누리당 의원은 “내각 개편 과정에서도 이전처럼 받아쓰기만 하는 스타일의 사람들보다는 소신을 가지고 때로는 대통령에게 옳은 소리, 쓴소리도 할 수 있는 인물을 발탁하고, 이를 통해 내각이 좀더 자율성과 책임감을 가지고 활성화될 수 있도록 배려하는 변화가 꼭 필요한 상황이다. 이런 데서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면 앞으로의 국정운영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려워진다”고 지적했다. 어찌됐든 대통령의 개혁 의지를 가장 가까운 시간에 쉽게 가늠해볼 수 있는 잣대가 ‘인선’이라는 데는 모두가 공감하는 것이다. 이제 박근혜 대통령의 선택이 남았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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