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위해 현장에서 뛰는 기자, 상상만으로 가슴 벅찬 이름이었다. 배운 대로, 해온 대로, 동가식서가숙하며 취재했지만 돌아보니 어느 순간 ‘기레기’가 되어 있었다. ‘전원 구조’를 비롯한 잇단 오보와 정부 발표를 받아쓴 기사, 희생자 가족들에게 가해진 무분별한 카메라의 폭력…. 오래지 않아 전남 진도 세월호 침몰 사고 현장에서 기자는 누구나 공공의 적이 되었다. 은 이번 사고와 관련해 진도와 경기도 안산 등 현장을 취재했던 신문·방송·통신사 기자 4명을 만났다. 모두 입사 3~5년차 기자들이다. 여전히 세월호 사고를 취재 중인 기자들은 한자리에 모이기도 쉽지 않았다. 좌담과 인터뷰를 병행했다. ‘기레기를 위한 변명’을 들으려는 심산이었다. 변명은 없었다. 막내 기자들은 모두 기레기였노라고 자책하고 있었다.
주의사항보다는 취재 지시만사회- 예상치 못하게 사고 수습이 늦어지면서 기자들도 고생이 많았다고 들었어요. 전혀 준비를 못하고 사고 현장에 갔다면서요.
기자1- 저희는 정말 기자들을 막 보냈거든요. 남자 기자들이 갔는데 양복 입고 출근한 모습 그대로 갔어요. 아무 준비가 없어서 속옷을 뒤집어 입으며 일주일 동안 생활했다네요. 이틀 정도는 숙소를 못 구해서 체육관이나 차에서 잤고요.
사회- 이런 대형 재난이 오랫동안 없었는데, 혹시 현장에 들어갈 때나 취재하는 동안 선배들로부터 조언을 들은 적이 있나요.
기자2- 주의사항보다는 취재 지시만 들었죠. 이번엔 ‘카카오톡 메시지를 반드시 가져오라’는 지시를 들었어요.
기자3- 과거 대구지하철 참사 현장을 취재했던 선배가 조언을 해주더라고요. ‘잠을 많이 자야 한다’고요. 시간이 없어도 되도록 잠을 자고, 쓸데없이 ‘뻗치기’(마냥 기다리는 것)에 힘쓰지 말고 대신 생각을 많이 하라고 했어요.
기자1- 와, 훌륭한 선배다.
기자4- 촬영기자들은 카메라기자협회가 있어서 보도준칙을 문자로 하달했어요. ‘과도한 근접 취재를 자제한다, 가족 얼굴 촬영을 자제한다’ 같은 공지가 내려왔는데, 이번엔 협회의 지침이 무색할 정도로 취재진이 많았어요. 현장이 과열됐다고 할까요. 취재 현장에서 불필요하게 기자들이 달려드는 모습이 보였고 잘 제어되지 않았습니다.
사회- 사고 현장에서 스스로를 기레기라고 생각한 적이 있나요. 기레기라는 손가락질이 억울하거나 부당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기자1- 전 정말 기레기라고 생각했던 순간이 있어요. 안산 단원고 취재 당시 교무실 바로 옆 교실에 임시 기자실을 꾸려놨거든요. 사고 첫날 숨진 채 발견된 학생이 그 반이었어요. 책상을 보니까 학생 이름이 있더라고요. 촬영기자에게 “찍어, 찍어” 했죠. 다른 언론사들도 찍었고요. 일부는 학생들 소지품을 꺼내기도 했고. 과거에 학교에서 학생 희생자가 있는 경우 관성적으로 책상 위의 국화를 찍어서 신문 1면에 내보내고 했잖아요. 그런 단순한 경험에 비춰서 깊이 생각하지 않고 촬영했는데 나중에 ‘기자들이 학생들 소지품까지 뒤졌다’고 욕을 많이 먹었어요. 그 포화를 받는 걸 보고서야 ‘내가 진짜 잘못했구나’ 느꼈어요. 늘 일해온 방식으로 했던 거, 그 방식으로 경쟁하려 했던 게 사실은 문제였던 거죠.
선캡 쓰고 가족인 척사회- 사실 우리 업계에서는 바로바로 그런 판단을 내리는 친구들이 기민하고 능력 있는 기자로 인정받잖아요.
기자1- 빨리 접근해서 하나라도 정보를 얻어내고 코멘트 하나라도 더 따고, 그게 일해왔던 방식이죠. 별로 생각하지 않고 해왔던 일들이 이번에 문제된 것 같아서 되게 부끄럽죠. 사고 자체의 우울함에 혼란까지 겹친 시기가 있었어요.
기자2- 저도 스스로 기레기라고 느낀 순간이 기억나요. 안산 고대병원에 있을 때 생존자 학생이 복도에 나와 있다가 기자들을 만났어요. 한명 두명 모여들다가 완전히 기자들이 아이를 에워쌌어요. 제가 그 아이 옆에 앉아 있었는데, 앉아서 위에서 내려다보는 사람들을 보는 게 그렇게 무서운 줄 몰랐어요. 걱정되더라고요. “내가 빠져나오는데 뒤에서 (누군가) 다리를 잡았다”고 하는 등 잊기 어려운 이야기들인데. 취재당하는 사람의 관점에서 보니 충격적이었어요.
사회- 이 엄청난 재난 상황에서 기자들도 함께 슬퍼하길 바라는 부분도 있었던 것 같아요. ‘우리는 모두 슬픈데, 기자들은 진도에 일을 하기 위해 와 있을 뿐’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은 거죠.
기자1- 어쩔 수 없이 제3자니까…. 저도 그걸 느끼는 순간이 제일 싫었어요. 너무 슬픈데 일이니까 안 할 순 없잖아요. 아침과 저녁에 가족들을 대상으로 한 브리핑이 팽목항에서 있어요. 그 자리에서 기삿거리가 나오니까 기자들이 다 경쟁적으로 ‘귀대기’(엿듣기)를 하는 거예요. 저는 선캡 쓰고 가족인 척했고 남자 기자들도 (가족인 것처럼) 슬픈 표정으로 담배를 피우면서 천막 옆에 서 있어요. 가족들이 욕하면서 가라고 하면 잠깐 물러나는 척했다가 다시 몰래 엿듣고. ‘내가 이러는 것도 싫고 다른 기자들도 싫다’ 싶었어요.
기자3- 원래 저는 사연 취재하는 걸 좋아했어요. 그런데 진도에선 내가 이걸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는 거예요. 이미 엄청난 비극인 걸 다 아는데 왜 굳이 개인을 짚어서 사연을 써야 하나. 구조 과정 아니면 사고가 발생한 구조, 정부나 언론에 대한 불신이 생기는 과정 같은 것을 짚어줘야 하는데, 사연 취재에만 매달리는 건 잘못이죠. 여기서 어느 언론사가 잘하든 못하든 결국엔 다 못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하기가 싫었고, 안 했고, 욕먹었죠.
기자4- 위에선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지시를 쏟아붓는데 그걸 처리하는 데 급급해서 현장의 목소리를 충실히 담아 상달하지 못하고 ‘촬영기계’로 전락했다고 할까. 스스로 방조자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누구보다 현장의 기자가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가장 충실히 반영해야 하는데, 안락한 책상에서 뉴스를 구성하는 데스크들의 상상을 만족시키는 데 그친 것 같아요.
가족들 “왜 이 상황을 취재 안 하냐”사회- 실종자 가족분들은 기자들이 진실을 그대로 담아내지 않았다고 많이 항의하셨잖아요. 왜 그런 일이 빚어졌을까요.
기자1- 역시 관성이 문제였던 것 같아요. 우리가 그들의 이야길 듣고 정부에 대신 질문하는 역할을 했어야 하는데 늘 하듯이 정부 보도자료가 나오면 그쪽에 전화해서 질문하고. 정부 대책본부는 구조 인원을 500명씩 투입했다고 하잖아요. 기자들의 역할은 그중에 대기 인원을 제외하고 실제 투입한 인원이 몇 명인지 질문하는 것인데 안 했던 거죠. 정부 관계자는 정보를 많이 갖고 있고, 그걸 기사로 쓸 수 있게 전달해주는데, 팽목항의 가족들에겐 언론 담당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요구가 정리돼서 전달되는 것도 아니니까. 평소 관행의 문제가 여실히 드러난 것 같아서 부끄러웠어요.
기자4- 방송의 경우 사고 해역을 생중계하는 기자와 사내에서 리포트를 만드는 기자가 이원화돼 있었어요. 정부가 발표한 숫자를 현장에서 검증하는 협업이 이뤄지지 않았죠.
기자3- 전 제가 아마추어라고 생각했어요. 하기 싫은 걸 안 했으니까. 다른 방법도 있었을 텐데, 우는 모습을 너무 많이 봐서 심리적으로 위축된 것도 있었어요. 이럴 때 어떻게 보도를 해야 하는지 언론학자에게 물으니, “보도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어요. 확인이 안 되면 안 써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이론과 실제의) 거리를 느끼긴 했죠.
기자2- 한번은 가족들이 “왜 이 상황을 취재 안 하냐”고 하더라고요. 저는 당연히 경찰이 막고 있고, 가족들이 취재를 싫어하는 분위기여서 (못한 건데). 이분들이 뭘 원하고 뭘 필요로 하는지 언론이 파악을 못한 것 같아요. 그래서 계속 엇박자로 들어갔고.
사회- 사건 보도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가 ‘큰 그림’(whole picture)을 보여주는 거잖아요. 그렇게 해주는 언론사가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기자2- 지면 메꾸느라 정신없으니까 생각할 시간이 없어요. 계속 총 맞으면서 다니는 거죠. ‘이거 막아, 저거 막아’ 이런 지시 받으면서. 외신들은 가뭄에 콩 나듯 단독 기사를 쓰지만 썼다 하면 ‘얘기되는’ 기사들이잖아요. ‘단독’(exclusive)을 감히 함부로 달지 않는 거, 그게 되게 부러워요.
기자3- 신문의 지면 계획이 ‘세월호 8개면’ 이런 식으로 미리 잡혀 있는 게 제일 싫었어요. 그러니까 억지로 기사를 때려넣고, 온갖 잡다한 게 나오죠. 지면을 할당하는 것 자체가 기자들에게 의무적으로 기사를 뽑아내라고 하는 건데, 신중하지 못한 보도가 나올 수밖에요.
단독 기사에 매몰돼가는 괴물사회- 데스크들이 회의를 하면서 생산적인 방향으로 조정해나가야 하는데.
기자1- 회의하면 시청률 얘기밖에 안 해요. (웃음)
기자2- 회의는커녕 아침마다 오늘은 또 어디로 불려갈까, 그런 걱정을 하죠.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여기저기 오가다가 캡한테 항의한 적도 있어요.
사회- 전 국민이 기자들을 너무 미워해서 앞으로 어떻게 취재해요.
기자1- 회복을 해야죠.
사회- 어떻게 회복하나요.
기자1- 지금도 가족분들이 ‘잊혀질까 두렵다’고 하시잖아요. 여전히 기자들이 필요한 존재인 건 맞는 것 같아요. 무리하게 취재하지 않아도 좋은 기사를 쓸 수 있어요. 사람들이 손석희 앵커를 참 좋아하잖아요. 그의 전달 방식에 열광하는 거예요. 우리도 그렇게 신뢰를 쌓았더라면 적절한 수준에서 보도할 수 있었을 텐데. 그게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저도 이대로 자라면 이전 세대와 크게 다르지 않은 언론인이 될 것 같아 고민이에요. 언론이 해야 할 역할이 있는데 그걸 다 같이 찾았으면 좋겠어요.
사회- 이런 재난은 다시 없어야겠지만, 언젠가 재난 보도 현장에 후배들이 투입된다면 반드시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나요.
기자1- 저는 저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인데, 생각하는 기자가 되라는 거예요. 키워진 대로, 순간순간 위에서 하라고 하는 일을 하다보니 어느 순간 기레기가 돼 있더라고요. 매 순간 생각하고, 아니다 싶으면 하지 않는 기자가 돼야겠다 했어요.
기자3- 괴물이 안 됐으면 좋겠어요. 단독 기사가 주는 재미가 있잖아요. 거기에 맛들여서 단독 기사를 찾아내고 거기에 매몰돼 달려가는 모습이 괴물같이 느껴질 때가 있더라고요. 회사에서 인정받긴 하겠지만 독자들에겐 인정할 수 없거나 싫은 모습일 때가 있는 것 같아요.
기자1- 사회 전체의 공공선을 키우는 데 아무 의미 없는 기사일 때가 있죠.
기자2- 저는 이번에 현장에서 스스로 하는 일에 대한 확신이 없었어요. 무조건 만용으로 지르는 기자는 아니어야 하는데, 써야 할 기사는 쓰는 기자가 돼야 할 것 같아요. 어떤 기사를 써야 하는지는 현장 기자만이 판단할 수 있는 거니까, 그런 용기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드네요.
‘너 그렇게 가까이 가지 않아도 괜찮아’기자4- 진도체육관에서 취재를 한 적이 있는 <nhk> 기자가, 한국 기자들은 너무 가까이 다가간다고 하더라고요. 일본에선 피해자의 휴식을 위한 공간에는 들어가지 않는 것이 상식인데 한국의 촬영·사진기자들은 1층 곳곳을 누비며 취재하다 쫓겨났죠. 가까이 다가가야 생생한 현장감을 얻는 건 기본이에요. 그렇지만 이번엔 누군가의 비극을 다룬 것이잖아요. 후배에겐 ‘너 그러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사회·정리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n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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