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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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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차례 ‘안전’ 언급한 박근혜 정부 안전예산 삭감

노무현 정부 21.8%, 이명박 정부 19.6%이던 재난관리 예산 증가율이 -4.9%…
1년2개월간 관행도 없는 ‘적폐’ 쌓아
등록 2014-05-17 13:32 수정 2020-05-03 04:27

“제가 취임사에서도 강조했듯이 국민 행복은 국민이 편안하고 안전할 때 꽃피울 수 있습니다. 각 부처별로 위험할 수 있는 요인들을 체크해서 각각의 시나리오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대책을 마련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민 안전을 위한 컨트롤타워는 안전행정부에서 하더라도 국민의 안전을 위한 일에 소관을 따지고 업무 영역을 따지느라 업무를 지연시키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소관 따지지 말라 ⇒ 재난 컨트롤타워 아냐

지난해 10월23일 박근혜 대통령과 유정복 당시 안전행정부 장관이 청와대에서 열린 지방자치발전위원회 위촉식에 참석하기 위해 함께 입장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지난해 10월23일 박근혜 대통령과 유정복 당시 안전행정부 장관이 청와대에서 열린 지방자치발전위원회 위촉식에 참석하기 위해 함께 입장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13년 3월4일 취임 뒤 두 번째로 열린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한 말이다. 취임 뒤부터 지금까지 대통령은 내내 ‘안전’을 강조해왔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은 국민 행복의 필수적인 요건”(2월15일 취임사)부터 시작해 “국민 안전 관련 각종 비리 척결 등이 이런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다”(6월24일 수석비서관회의),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국민의 안전”(7월9일 국무회의) 등 지금까지 수석비서관회의와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이 ‘안전’이라는 단어를 언급한 것만 모두 107차례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 앞에서 이 모든 말이 얼마나 헛된 것이었는지 국민은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국민의 생명은 ‘이익’ 앞에 손쉽게 내팽개쳐졌고, “안전을 위한 일에 소관을 따지지 말라”던 대통령의 말은 “청와대는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는 말로 뒤바뀌었다.

이는 애초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안전’이라는 말이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는 것은 청와대 스스로도 인정했기 때문이다. 2013년 2월 당시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마련한 정부조직개편안 가운데 ‘행정안전부’의 명칭을 ‘안전행정부’로 변경하는 방안을 놓고 정치권에서 논란이 일었다.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은 2월5일 열린 공청회에서 “(행안부와 안행부의) 내용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 상황에서 이름만 바꾼다고 하는 것은 행정적인 소비만 가져오는 것 아니냐”고 지적하며 안행부로 이름을 바꿨을 때 드는 간판 교체 등 행정적 비용이 독거노인을 10년 동안 지원할 수 있는 돈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바로 다음날 유민봉 당시 인수위 국정기획분과 간사(현 청와대 국정기획수석)는 “한마디 감히 말씀드리면 정치는 레토릭(수사)이라고 생각한다. ‘안전’에 방점을 찍는 것 자체가 대한민국 안전 인프라를 깔기 위한 메시지를 던지고 정책의 우선순위를 둔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렇게 애초부터 ‘정치적 수사’였을 뿐인 ‘국민의 안전’은 1년2개월 뒤 세월호 침몰과 함께 무너져내렸다.


“한마디 감히 말씀드리면 정치는 레토릭이라고 생각한다. ‘안전’에 방점을 찍는 것 자체가 대한민국 안전 인프라를 깔기 위한 메시지를 던지고 정책의 우선순위를 둔다는 것.” -유민봉 현 청와대 국정기획수석


물론 “안전에 정책의 우선순위를 두기 위한” 정치적 수사였다면 이해 못할 것도 없다. 당시 유민봉 간사는 “단순히 이름을 바꾸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내용을 담은 안행부를 설계할 것”이라고 했다. 정치적 수사에 그치지 않고 ‘행동’에 나서겠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이것 역시 말뿐, 지켜지지 않았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국가안전처’

이 정의당 세월호 대책위원회(위원장 정진후 의원)에 의뢰해 분석한 결과, 박근혜 정부의 ‘재난관리’ 예산은 해마다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난관리 예산은 안행부, 소방방재청 등의 재난예방안전관리, 재난안전기술연구개발, 재난안전교육, 재난상황 등에 투입되는 예산이다. 정부가 지난해 12월 제출한 ‘2013~2017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보면, 정부의 재난관리 예산은 2013년 9840억원에서 2014년 9440억원, 2015년 8610억원, 2016년 7830억원, 2017년 8040억원으로 해마다 줄어 연평균 증가율 -4.9%를 기록했다. 이는 과거 노무현 정부, 이명박 정부와도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노무현 대통령 재임 기간에 재난방재 예산은 연평균 증가율이 21.8%였고, 이명박 정부도 같은 항목의 예산에서 19.6%의 연평균 증가율을 보였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긴다던 정부가 오히려 안전에 대한 예산은 다른 정부와 달리 해마다 줄여가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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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는 “국민 안전을 지키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재정적 기반이다. 올바른 정부라고 한다면 재정을 제대로 분배하는 정책을 추진했어야 한다. 박근혜 정부가 안전에 관한 예산을 향후 삭감하는 안을 가지고 있었다면, 이것은 정말 안전이 겉으로만 표방한 정치적 슬로건이었고 실제적인 정책 내용과는 대단한 괴리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실상 박근혜 정부의 ‘반안전적인 경향’을 보여주는 게 아닌가 한다”고 지적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가 터진 뒤에야 ‘국가안전처’를 신설하고 안전관리 예산을 재검토하기로 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4월29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국가 차원의 대형 사고에 대해서는 지휘체계에 혼선이 발생하지 않도록 총리실에서 직접 관장하면서 부처 간 업무를 총괄 지휘·조정하는 가칭 ‘국가안전처’를 신설하려고 한다”고 발표했다. 5월1일 박 대통령 주재로 열린 ‘2014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는 “각 부처는 모든 안전관리 예산과 업무를 철저히 재검토해주길 바란다. 안전 부문에 예산을 우선 배정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기획재정부는 사회간접자본(SOC) 지출을 축소하는 등 다른 분야의 쓰임을 줄이고 재난대응 시스템 구축, 재난대응 교육 훈련 등의 분야에 예산을 집중 배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마저도 벌써부터 요란한 빈 수레가 될 가능성이 언급되지만 제대로 시행된다고 하더라도 그야말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다.

대통령이 신설하겠다고 밝힌 국가안전처에 예산이 쏠리는 것을 우려하는 의견도 나온다. 정진후 정의당 의원은 “이번 세월호 사고에서 보면 구명장비가 전혀 없는 등 실질적으로 쓰일 수 있는 예산이 부족한 상황이다. 그런데 국가안전처라는 중앙부처 하나를 설립해놓으면 이곳 중심으로만 예산의 쏠림 현상이 나타나지 않을까 걱정이다. 현재 17개 시도 가운데 10개 지자체가 재난안전기금이 법정 기준에 못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위험사회의 징후 ‘돌진적 근대화’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는 “지방자치단체는 재난관리에 드는 비용에 충당하기 위하여 매년 재난관리기금을 적립하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재난관리기금의 최저 적립액 기준도 법적으로 마련돼 있다. 그러나 ‘2013년 기준 재난관리기금 적립 현황’(2013년 7월 기준)을 보면, 17개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대구·인천·광주·대전·울산·경기·충북·경북·경남·제주 등 10개 지자체가 법정 재난관리기금액을 채우지 못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보면 확보율이 87%다. 이 가운데 특히 인천과 광주는 재난관리기금이 26%로 지자체 가운데 최저를 기록하고 있다. 울산(38%)·대구(43%) 등도 심각한 상황이다. 정 의원은 “10개 지자체가 법정 확보액을 충분히 확보하도록 하는 등 국민의 생활과 직접 맞닿는 일선 행정기관에 예산이 제대로 쓰일 수 있도록 해야만 예산 확대의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세월호 사고에서 보면 구명장비가 전혀 없는 등 실질적으로 쓰일 수 있는 예산이 부족한 상황이다. 그런데 국가안전처라는 중앙부처 하나를 설립해놓고 이곳 중심으로만 예산의 쏠림 현상이 나타나지 않을까 걱정이다.” -정진후 정의당 의원


박근혜 정부에서 ‘안전’이 ‘뒷전’이 된 이유는 뭘까.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우리 국민 모두가 또 한 번 새로운 ‘한강의 기적’을 일으키는 기적의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함께 힘을 합쳐 국민 행복, 희망의 새 시대를 만들어가자”고 했다. 그러나 ‘한강의 기적’으로 상징되는 ‘돌진적 근대화’가 한국 사회의 위험도를 높였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김원제 성균관대 겸임교수는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를 통해 한국 사회의 위험을 분석한 논문인 ‘한국 사회 위험의 특성과 치유’에서 “‘한강의 기적’으로 칭송받은 한국의 근대화는 급속한 경제성장을 가져다준 반면, 수많은 부작용을 초래했다”고 지적하며 “한국 사회의 위험사회적 특성의 근원은 ‘돌진적 근대화’에 기인한다. 하나의 가치를 위해 다른 많은 가치들을 희생시킨 방식의 근대화가 오늘의 위험사회를 가져온 구조적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이렇기 때문에 한국은 ‘이중위험사회’라고 김 교수는 말한다. “한국 사회의 위험은 서구와 유사한 성격의 것도 있지만, 파행적 근대화로 인한 사회적 합리성의 결여가 큰 위험 요소가 되고 있다.”

‘돌진적 근대화’의 부작용은 철저히 외면하면서 ‘제2의 한강의 기적’을 일으키자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안전’ 개념이 없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대통령은 그간 ‘안전’은 정치적 수사로만 놔둔 채 ‘안전’과 상반되는 ‘규제 완화’와 그로 인한 경제성장에만 집착했다. 박근혜 정부에서 ‘안전’은 단순히 ‘비용’으로 취급됐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인식을 바꿔야만 또다시 발생할 수 있는 대형 참사를 막을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한준 연세대 교수(사회학)는 “재난을 대비한 비용을 단순히 비용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 재난이 발생하면 그 비용보다 훨씬 더 많은 복구 비용이 들어간다. 그 비용은 단순히 써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투자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고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사고가 발생하는 것은 단순히 운이 나빠서라고 생각하는 운명론적 인식도 바꿔야 한다”고 덧붙였다.

경제적 비용으로 계산하는 태도에서 벗어나야

안전을 단순히 경제적 비용으로만 계산하는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김호기 교수는 “안전 예산은 신자유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경제적 비용이다. 그러나 이래선 안 된다. 안전은 사실상 삶이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생명의 기본 조건으로 인식하는 ‘안전의 시민문화’가 정착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를 위해 △사후 대처뿐 아니라 사전 예방에도 주력할 것 △범정부적 차원에서 신속하고 유기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재난 컨트롤타워를 새롭게 만들 것 △‘위험 외주화’를 제도적으로 금지할 것을 제안했다.

“국민 여러분! 국민 행복은 국민이 편안하고 안전할 때 꽃피울 수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 행복’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러나 지금 온 국민이 불행하다. 대통령은 그 불행의 원인을 “과거로부터 겹겹이 쌓여온 잘못된 적폐”로 돌렸다. “이를 바로잡지 못하고 이런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해 너무도 한스럽다”고 했다. 자신은 바로잡으려 안간힘을 썼지만 1년2개월의 기간은 그것을 바로잡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 1년2개월 동안 박 대통령은 ‘안전’을 위해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드러났다. 이 책임을 어떻게 할 것인가.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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