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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세·생태세 거둬 마련한다

‘한국형 기본소득 모델’ 설계도
등록 2014-02-28 09:14 수정 2020-05-02 19:27
한국에서 기본소득은 실현될 수 있을까? 가장 높은 현실의 벽은 ‘돈’이다. 설계도가 아무리 멋지더라도, 건축비가 없으면 한낱 종이 조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강남훈 한신대 교수(경제학)는 2009년과 2012년 ‘한국형 기본소득 모델’ 설계도를 내놓은 바 있다. 기존 사회복지 예산을 일부 끌어오고, 토지·주식 거래 등 조세개혁을 꾀해 새로운 재원을 마련한다는 내용이 뼈대다. 강 교수는 1000호 발간을 맞아, 기본소득 재원 마련 방안을 2014년형으로 재설계해 내놨다.

국민 한 사람에게 돌아가는 기본소득은 연간 360만원(월 30만원)으로 상정했다. 대한민국 인구를 5천만 명으로 어림잡으면, 1년에 총 181조5천억원이 필요한 셈이다. 이 돈은 어디서 나올까?

우선 기존 사회복지 예산의 일부를 기본소득 재원으로 전환한다. 기본소득으로 대체될 수 있는 공공부조 예산이 대표적이다. 빈곤층에게 지급되던 국민기초생활보장비 가운데 기초생활보장급여(3조4천억원), 영·유아 보육료와 가정양육수당 지원금(4조5천억원), 기초노령연금(5조2천억원)을 돌리면 13조1천억원이 생긴다. 아동과 노인에게도 각자 기본소득이 지급되기 때문에 중복 지급하지 않는 것이다.

기본소득 재원 마련의 핵심은 조세제도의 ‘대수술’이다. 불로소득에 세금을 매기고, 생태세와 토지세를 새로 도입하겠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국민과 기업한테서 세금을 거둬 다시 기본소득으로 돌려주는 것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이렇다. 기존에 있던 교통·에너지·환경세와 부가가치세를 혼합해 생태세로 전환한다. 거래되는 모든 물건에 생태세를 부가가치세 형식으로 매겨 40조원을 마련하겠다는 계산이다. 또 기존의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를 토지세로 전환한다. 2013년 전국 토지의 개별공시지가 총액은 3879조원이다. 여기에 1%의 토지세만 매겨도 39조원을 거둬들일 수 있다. 지하에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250조원의 ‘숨어 있는 돈’을 포착해서 10%의 세금을 매길 수 있으면 25조원이 확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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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예산안에서 종합소득세(근로소득 포함)는 54조2천억원으로 잡혀 있다. 여기에 50%의 기본소득세를 부과하면 27조1천억원이 마련된다. 또 배당과 이자소득 원천세율을 현재 15.4%에서 30%로 인상하면 추가로 각각 15조원을 걷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증권양도소득(파생상품 포함)도 종합소득에 포함해 세금을 부과하면 30조원을 확보할 수 있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2010년 법인을 포함해 5% 미만의 지분을 갖고 있는 모든 투자자가 상장 주식을 양도해 얻은 차익에 대해 20%의 세율로 과세하면 22조4천억원이 추가 징수된다고 국회예산정책처는 추정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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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기본소득이 현실이 될 경우, 나는 혹은 우리 가족에겐 실제로 얼마나 혜택이 돌아올까?

강남훈 교수는 기본소득제도가 실시되면 ‘소득재분배’ 효과가 어느 정도나 될지 추정해봤다. 여기엔 몇 가지 가정이 있다. 기본소득 재원이 되는 생태세의 경우 가계가 30조원, 기업이 10조원을 부담한다고 가정했다. 생태세 가계 부담액과 기본소득세금 납부액은 가구소득에 비례해 추정했다. 평균 가구소득과 가족 수, 평균 세금 납부액 등에 가중치를 둬서 시뮬레이션해봤다.

연간 3975만원(평균 50~55%)을 버는 가구의 경우, 계산기를 두드려보면 389만원이 남는 걸로 나온다. 기본소득세 등 세금으로 718만원을 납부하긴 하지만 연간 1107만원(평균 가족 수 3.07명)가량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세금 부담이 늘어날 것을 우려하는 조세 저항이 있을 수 있지만, 실제 현실은 다르다는 증명이다. 시뮬레이션 결과, 순수한 세금 납부액이 기본소득으로 받는 돈보다 많아서 ‘손해’를 보는 경우는 소득구간 85% 이상부터였다. 즉, 연소득 7957만원 이상이 아니라면 국가에서 받는 돈이 내는 돈보다 많게 되는 셈이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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