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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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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은 노동의 대가가 아니다

기본소득 Q&A
등록 2014-02-26 06:11 수정 2020-05-02 19:27

기본소득의 원칙은 단순하지만, 기본소득을 둘러싼 논란은 복잡하다. 독자들이 궁금해할 만한 의문점을 문답 형식으로 풀어봤다.

베짱이에게 왜 돈을 줘야 하나? 오히려 베짱이가 늘어날 거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노동 신화는 깨져야 한다. 우리에겐 일할 권리와 함께 게으를 권리도 있다. 또 노동하지 않는 인간도 충분히 먹고살 수 있도록 사회적 비용을 지급해야 마땅한다. 임금노동만 가치 있다는 편견도 버려야 한다. 가정에서 아이를 돌보는 일, 시민단체나 자원봉사단체 활동, 이름 모를 예술가의 거리 공연 등도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가 분명 있다. 이른바 ‘사회적 필요 노동’이다. “아마 많은 사람에게 기본소득은 임금을 보충해주는 용도로만 쓰일 것이다. 그러나 부동산중개업자가 공예가가 되고 싶은 경우처럼, 무급 활동에 더 많은 시간을 쏟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겐 선택의 여지를 주기도 한다. ‘기본소득은 직업의 독재에서 노동을 해방시켜줄 것이다.’”(로버트 스키델스키, ) 실제로도 베짱이는 늘지 않았다. 2008~2009년 아프리카 나미비아의 한 가난한 마을에서 주민 930명에게 월 100나미비아달러(약 1만5천원)를 아무 조건 없이 지급했더니, 실업률이 1년 새 15%포인트 떨어졌다.

기본소득은 우파도 좋아하는 포퓰리즘에 불과하다?
신자유주의자들이 무조건적인 기본소득에 매력을 느끼는 건 사실이다. 박근혜 대통령뿐 아니라, 독일에서도 대형 생활용품 전문 체인업체 ‘DM’ 창업자인 괴츠 베르너 회장이 기본소득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 그는 독일 100대 부자 가운데 한 명이다. 베르너 회장은 모든 사람에게 기본소득을 주는 대신, 기업이 부담해야 할 각종 사회적 비용을 덜어주자고 주장한다. 기본소득이 ‘콤비 임금’이 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기업이 기본소득을 핑계로 임금 삭감을 조장한다는 것이다.

그럼 대체 어떤 점이 자본주의를 넘어설 대안이라는 건가?
여성주의 정치학자인 캐럴 페이트먼은 “보통선거권이 동등한 정치적 시민권의 상징이라면, 기본소득은 온전한 시민권의 상징”이라고 말한다. 핵심은 ‘권리’다. 부양의무자·자산 등을 심사할 필요 없이 무조건적으로 지급하는 방식은, 선별적 복지에서 전면적인 보편복지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뜻한다. 또 기본소득은 노동과 소득을 분리시킨다. 소득은 더 이상 노동의 대가가 아니게 된다. 일하는 사람에게만 실업급여를 주는 식의, 노동(고용)-복지 연계 모델은 의미가 없어진다. 노동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급진적으로 해석하면, 기본소득은 불안정노동 사회를 끝낼 새로운 해답이 된다. “기본소득은 대안 사회를 위한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필요조건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다.”(최광은, )

그래도 현실화는 어렵지 않나?
국외에서 다양한 시도가 있었다. 미국 알래스카에서는 1976년 석유 판매 수익의 최소 25%를 적립하는 영구기금을 설치한 뒤, 1982년부터 매년 주민 한 사람당 1천달러 안팎을 배당해주고 있다. 브라질에서는 시행은 안 되고 있지만 ‘시민기본소득법’이 2004년에 제정됐고, 스위스에서도 지난해 기본소득과 관련된 국민 발의가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물론 국민 다수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반발이 적지 않겠지만, 2010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무상급식 이슈가 급부상했던 기억을 떠올려보면 불가능하지만도 않아 보인다. 정치적 지형과 정치세력 간 역학관계에 달린 문제다. “한국에서 기본소득운동은 지금까지 학술 연구 중심이었다. 지지층도 지식인, 청년층과 노동자 일부에 한정돼, 정치운동은 고립된 소수파 처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폭넓은 사회운동으로 전개하는 일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금민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운영위원장) 2월23일 기본소득공동행동 준비위원회 발족은 그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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