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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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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을 나눠갖는 세상을 상상하라

이제는 상식이 된 기본소득… 7인이 말하는 ‘나에게 기본소득이 필요한 이유’
등록 2014-02-26 06:04 수정 2020-05-02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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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NGO 활동가 엄남이(48) ‘그림자 노동’의 가치

엄씨도 살아오면서 성별에 따른 ‘고립감’을 수없이 느꼈다. 한 대형 통신업체 연구소에서 10년을 근무했던 엄씨는 “미친년처럼 일했다”고 그 시절을 기억했다. 결혼하고 아이 둘을 낳고 “일과 가정을 양립하겠다”고 바둥거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직장 내 유리천장은 단단했다. 집안일 때문에 회사일을 딱딱 시간에 맞춰 끝내는 여자 상사보다, 늑장 부리며 일하다가 야근하는 남자 상사가 더 인정받는 분위기였다. 2005년 회사 구조조정 때 사표를 던진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지금 엄씨는 한 비정부기구(NGO)에서 사무국장으로 일한다. 주 3일 근무다. 단체의 재정 상황이 어려워져서 상근 활동가 수를 줄였기 때문이다. 엄씨의 월급은 75만원이다. 사업하는 남편의 수입이 고정적이지 않은데다, 올해는 큰애가 대학에 입학해서 돈 걱정이 많아졌다. 생태·여성 등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활동을 하지만, NGO 활동가의 노동 대가는 늘 불안정하다. 생활비 압박만 없다면 더 자유롭게 활동하고 싶다.

대기업 직장인일 때도, NGO 활동가일 때도 가사노동은 대부분 엄씨의 몫이다. 일과 가정, 이중 노동을 해온 셈이다. 남편이 같이 한다고 해도, 집안일에 대한 책임감은 늘 여성의 어깨를 더 무겁게 짓누르게 마련이다. 열심히 청소하고 빨래하고 요리한다고 해서 누가 가치를 인정해주지도 않는다. 그나마 일하는 여성은 밖에서 임금이라도 받으니 낫다. 770만 명에 이르는 전업주부에겐 ‘시민권’이 없다. 가사노동은 이혼소송에서 재산 형성 기여도를 따질 때만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사회는 남편이 받아오는 임금을 어느새 ‘가족생활비’라는 허울로 포장해, 무급노동 종사자인 전업주부의 목소리를 그 안에 묻어버린다. 일종의 착취다.

기본소득은 이같은 여성들의 ‘그림자 노동’ 가치를 인정하려는 시도다. 가사노동에도 임금을 지급하라는 주장이다. 전업주부도 그 존재 자체로 권리를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엄씨는 “기본소득은 다른 사회수당과 달리 가족이 아닌 개인에게 준다는 게 원칙이다. 전업주부도 독립적인 경제주체로 자기 몫을 갖게 되면 사고방식이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기본소득은 남자는 바깥일, 여자는 집안일이라는 성별 노동분업을 완화하는 구실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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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전업주부 770만명,비경제활동인구의 46.2%,*2014년 통계청 조사에서 가사·육아를 경제활동 중단 이유로 꼽은 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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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인 나도원(40) “예술도 노동”

‘노동의 대가=임금’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림자처럼 존재하는 또 다른 노동은 예술활동이다. 가사노동, NGO 활동처럼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임에도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 나씨는 “예술도 노동”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문화예술인은 자신을 노동자로 자리매김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창작자란 모름지기 물질적인 가치에 좌우되지 않아야 한다는 잠재의식 탓일까.

문화예술인들이 처한 현실은 열악하다.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66.5%가 ‘월평균 수입이 100만원 이하’라고 답했다. 고용보험 가입률은 30.6%였다. 시나리오작가 최고은씨가 생활고로 숨진 것을 계기로 예술인복지법이 제정돼, 그나마 지난해부터 최저생계비 이하의 문화예술인 1천여 명을 지원해주고 있긴 하다. 그러나 지원 대상이 제한적이고, 지원금도 최저생계비에 못 미친다. 나씨는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할 수 없어서 택한 우회로”라고 본다. 비정규직 예술인을 보호하는 실업수당제도가 있는 프랑스를 비롯해 여러 나라들이 예술인을 사회복지망 안으로 끌어들이려고 노력해온 것에 비하면, 한국의 수준은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

나씨는 전업 음악평론가다. 각종 매체 기고와 방송 출연 등으로 넉넉하진 않지만 생활은 된다. 아내가 맞벌이를 해서 2살배기 딸을 포함해 세 가족이 생활하기에 큰 어려움은 없다. 하지만 주위 문화예술인 대부분은 식당 등을 겸업한다. 나씨도 언더그라운드 록밴드를 하던 20대 시절엔, 8년 동안 벌어들인 총수입이 10만원도 안 됐다. 공연비는 겨우 교통비 수준이었다. 서울 종로 낙원상가 근처 식당에서 그릇을 나르는 일도 종종 했다. 음악인들 사이에선 ‘오봉’이라고 불리던 아르바이트였다.

최근 기본소득 논의가 무르익어가는 분위기는 기존 임금노동 영역에서 배제돼 있던 문화예술인들에겐 반가운 일이다. “생계에 도움이 되는 건 물론이고, 기본소득이 도입돼 노동시간이 단축되고 경제적으로도 생활에 여유가 생기면 문화예술 활동을 향유하는 방식 자체가 달라질 거다.” 예술노동자를 위한 ‘예술인소셜유니온’ 준비위원장을 맡고 있기도 한 나씨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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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 정영희(46)
“청년들이 농촌으로 돌아올 것”
충남 홍성에 사는 정씨는 귀농 8년차다. 도시에서만 살던 사람에게 농사는 상상한 것 이상으로 고된 육체노동이었다. 농사보다 더 힘든 건 장사였다. 유기농 인증도 까다롭고, 생산자가 넘쳐나는 생활협동조합엔 비집고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귀농 첫해엔 죽어라 일해서 겨우 500만원을 벌었다. 2년차에 700만원, 3년차에 1천만원. 제법 요령이 생기면서 소득은 차차 늘어났다. 하지만 몸도 점점 상해갔다. 정씨는 하혈을 하고, 남편은 허리가 망가졌다.
적게 벌고, 적게 쓰자. 정씨는 삶의 원칙을 새로 정했다. 생활비는 월 70만원으로 바짝 줄였다. 농기계 기름값만 30만원이 드니까, 다른 생활비는 거의 포기한 셈이다. 한 달에 소비자 한 사람당 6만5천원을 받고 무농약·무비닐로 키운 제철 채소를 ‘꾸러미’로 보내주는 사업을 하던 것도 규모를 줄였다. “농촌에 와서 살다보니 건강한 먹을거리와 생명운동에도 관심이 가더라고요. 돈 욕심을 버리고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어졌어요.”
그렇다고 해서 농사꾼으로서의 삶이 녹록한 건 아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두어 시간 열심히 일하고, 햇볕이 뜨거운 낮 시간에는 조금 쉬었다가, 오후 4시부터 다시 두어 시간을 꼬박 농사에 매달려야 임대하고 있는 1500평 밭, 3500평 논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다. 농사를 짓는 것만으로 생계를 제대로 유지하려면 하루 종일 소처럼 일해야 한다.
2012년 농협경제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농가 평균소득은 연 1103만원이다. 농가 가구소득은 도시 노동자 임금소득의 절반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더구나 농가 소득은 작황에 따라, 계절에 따라 들쭉날쭉하다. 최근엔 외국산 농산물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더 타격을 입기도 했다. 이 때문에 농민단체 등에선 농민을 공무원처럼 대우해 국가가 월급을 줘야 한다는 주장을 펴왔다. 일종의 농민 기본소득 모델이다.
정씨도 기본소득을 지지한다. “기본소득은 일한 대가가 아니라 생활의 기본 조건을 보장해주는 방식 아니냐. 농촌에서도 기본 생활이 가능한 토대가 마련되면, 청년들도 일자리가 없는 도시에서 농촌으로 돌아올 거다.” 특히 그는 기본소득이 현실이 된 이후의 변화에 관심이 많다. “우린 그동안 너무 달려오기만 했잖아요. 배가 든든해야지 주위를 둘러보는데, 기본소득이 주어지면 사람들이 사회에 기여할 일을 더 많이 하려 들 것 같아요. 기본소득에 대해 자꾸 떠들고 상상하고 그랬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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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홍성=글·사진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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