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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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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앙탈에 총알이 발사되었다

최저임금 인상 파업에 기업들이 정부의 ‘조치’ 원하던 시점, 한국 대사관 야당에까지 공문 보내 ‘압박’
1월3일 유혈 사태 현장, 헌병 발포 전 AK47 든 저격수 목격돼
등록 2014-01-21 08:23 수정 2020-05-02 19:27
캄보디아 노동자들이 14일 오후 캄보디아 프놈펜 카나디안 공단의 한 의류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 군경의 유혈진압의 있는 뒤 많은 노동자들이 공장으로 돌아오지 않아 공장이 정상적으로 가동되지 않고 있다. 프놈펜/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캄보디아 노동자들이 14일 오후 캄보디아 프놈펜 카나디안 공단의 한 의류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 군경의 유혈진압의 있는 뒤 많은 노동자들이 공장으로 돌아오지 않아 공장이 정상적으로 가동되지 않고 있다. 프놈펜/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길 건너 3층 내수전문의류업체/ 흰 백열등 아래 눈이 퍼렇게 언/ 파키스탄 노동자 몇이 입김 내뿜으며/ 직조기 따라 곱고 둥근/ 꿈의 원단을 나르고 있다// 이제 그들이/ 내 영혼의 방직소를 대신 돌려주고 있는데/ 나는 얼마큼 걸어와 길 잃은 낙타인가/ 헝클어진 실타래, 올 풀린 영혼/ 잊고 싶었던 어떤 유령들의 말//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송경동 ‘내 영혼의 방직소’)
바다 건너 캄보디아에서, 방글라데시에서 떼꾼한 봉제노동자들이 일어섰다. 노동자도 사람이라고,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임금을 달라고 외쳤다. 공권력은 곤봉을 휘두르고 총부리를 겨눴다. 노동자 여섯이 숨졌다. 폭력 사태가 일어난 곳은 하필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공장 앞. 저임금, 노동 착취, 유혈 진압 등 잊고 싶었던 말들이, 1970년대 대한민국 동대문 청계시장을 가득 채웠던 말들이, 2014년 동남아시아를 떠돈다. ‘한국’이란 말과 함께. 한국의 기업들은 왜 ‘인권 경영’에서 헝클어진 걸까. 캄보디아 노동자 유혈 사태로부터 실마리를 찾아, ‘만국의 노동자’를 거느린 한국 기업들의 일그러진 모습을 들여다봤다. _편집자

지난 1월2일 캄보디아 프놈펜 남서쪽에 있는 산업단지 카나디아 공단 정문 앞에서 100명가량의 봉제노동자들이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즐겁게 춤을 추고 있었다. 이 공단 내 한국 기업인 인터내셔널패션로얄(이하 로얄) 노동자인 피룬(24)도 동료들과 함께 춤을 췄다. “부자를 위해 비싼 옷을 만든다”는 피룬은 2년 전 월급 75달러로 일을 시작해 지금은 기본급이 85달러까지 올랐다. 수당까지 합쳐 평균 월수입은 130달러 정도다. 주문량을 맞추느라 한 달에 최소 절반 이상 잔업을 해야 하는 이 회사는 잔업수당으로 1시간에 50센트, 우리돈으로 550원가량을 지급한다. 보너스는 노동자에 따라 5~10달러를 오가고, 교통비는 5~7달러 수준. 의료수당 5달러를 제외한 나머지 수당들은 아침 7시인 출근 시간을 단 한 번만 어기더라도 몽땅 날아간다. 일부 동료들이 아침 6시30분부터 나와 일을 시작하는 이유다. 식대는 없다. 이 이번 취재 과정에서 인터뷰한 10여 명의 노동자 가운데 점심 식대를 받는 노동자는 공항 근처 한국 기업인 ‘캄바코톱 주식회사 넘버원’에서 일했던 히엔첸다(37)뿐이다. 그녀가 회사로부터 받은 점심값은 한 달 3달러, 하루 10센트(약 110원)꼴이다.

출근 시간 아침 7시, 6시30분부터 일하는 이유

“매달 60~70달러는 빌려야 겨우 살까 말까다.”

피룬이 1월2일 아침 춤을 춘 이유다.

춤추는 노동자들을 향해 헌병들이 곤봉을 휘두르기 시작한 건 오후 3시30분께. 아무런 경고조차 없었다. 공단 정문 앞에 도착한 10대의 트럭은 곤봉을 든 헌병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헌병들은 오후 5시까지 곤봉을 휘둘렀고, 폭력 사태는 이튿날 새벽 3시께까지 이어졌다.


차프소포른 소장은 911 공수부대의 총지휘관 차프페아크데이 소장의 조카로 알려져 있다. 휴먼라이츠워치 2010년 자료는 차프페아크데이 소장을 “1998년 선거 뒤 폭력 사태와 1997년 푼신펙당의 사령관들을 고문하고 총살시킨 것으로 악명 높은 인물”이라 묘사하고 있다.


“그날 밤 9시부터 11시까지 벵스렝 도로 위 카나디아 공단 주변을 둘러봤다. 폭력 진압으로 분노한 노동자들 틈에 술에 많이 취해 몽둥이를 들고 다니는 무리가 마구 섞여 있었다. 노동자들이 쉽게 편승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

비정부기구(NGO)인 커뮤니티법교육센터(CLEC)에서 노동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톨라모윤의 말이다. 그리고 새벽 1시께 톨라모윤은 페이스북을 통해 최루탄이 발사됐다는 소식을 접했다.

1월3일, 날이 밝았다. 전날의 폭력 사태에 분노한 카나디아 공단 노동자 1만 명가량이 오전부터 거리를 가득 메웠다. 아침 8시부터 내무부를 향해 행진하던 시위대가 200m쯤 갔을까. 불현듯 총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대로에 있던 헌병이 발포하기 이전 어디선가 총알이 날아와 부상자가 생겼다. 누가 총을 쏘는지는 알 수 없었는데….”

저격수였다. 총소리의 진원지 중 하나인 공단 정문 건너편 ‘에크릭 넘버원’ 시장의 지붕 위, 전투복을 입고 AK47을 들고 있던 저격수. 10명가량의 노동자들이 뒤편으로 다가가 엎드린 채 노동자들을 겨누고 있는 저격수를 붙잡아 흠씬 구타했다. 그즈음 주변은 돌과 총알이 교차하는 폭력의 무대로 변해가고 있었다. 공단 주변에 산재한 노동자들의 숙소 안으로도 총알이 날아들었고 시위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 가운데서도 부상자가 속출했다.

총알 하나가 피룬의 오른쪽 다리에 파고들었다. 피룬은 동료들의 도움으로 오토바이에 실려 가까운 병원으로 갔다. 그러나 의사는 없었고, 간호사들은 치료하지 못한다는 얘기만 할 뿐 응급처지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그 시각, 시위와는 관계없이 병원을 찾은 여성 한 명도 심폐소생술이 필요했으나 거부당했단다. 이 여성이 되돌아가는 길에 끝내 숨지자 분노한 노동자들은 병원을 향해 돌을 투척하기 시작했다. 취재진이 병원을 찾은 1월16일, 병원 간판은 이름조차 읽기 어려울 만큼 망가져 있었다.

911 공수부대 안 감호소 갇힌 노동자들 구타

전세계를 경악시켰던 이번 캄보디아 유혈 사태는 1월2일 정오께 한국 업체인 약진통상 앞에서 발생한 폭력 사태가 발단이 되었다. 프놈펜 서쪽 4번 국도에 위치한 약진통상 앞에서는 일부 노동자들이 공장 밖 파업을 벌였고, 일부는 조업 중이었다. 파업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거세지자 안에 있던 군인들이 나와 파업 노동자 중 3명을 안으로 끌고 가 구타했다. 약진통상과 부지를 공유한 911 공수부대원들이었다.

군인들의 폭력에 분노한 노동자들은 속속 파업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군인들은 승려 5명을 포함해 15명을 연행해갔다. 그날 오후 승려는 풀려났지만, 나머지 10명의 노동자들은 911 공수부대 안 감호소에 만 하루 동안 감금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캄보디아봉제노동자민주노조연대(CCAWDU) 아툿 의장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감호소에 갇힌 노동자 대부분이 의식을 잃을 만큼 구타를 당했고 그중 한 명은 골절상을 입었다. 다음날 노동자들은 법원으로, 그리고 감옥으로 이송됐다.

무장을 한 군인들이 14일 오후 봉제공장들이 밀집한 캄보디아 프놈펜 카나디안 인더스티리얼 파크에서 노동자들를 감시하고 있다. 프놈펜/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무장을 한 군인들이 14일 오후 봉제공장들이 밀집한 캄보디아 프놈펜 카나디안 인더스티리얼 파크에서 노동자들를 감시하고 있다. 프놈펜/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퇴근을 한 봉제공장 노동자들이 15일 오후 캄보디아 프놈펜 카나디안 인근 숙소에서 저녁을 준비하고 있다. 2평도 정도 작은 숙소에서 2명에서 많게는 5명의 노동자들이 지낸다. 이 집은 월세는 25달라고 이 지역 노동자들 숙소의 평균 월세는 40열달라 정도한다. 프놈펜/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퇴근을 한 봉제공장 노동자들이 15일 오후 캄보디아 프놈펜 카나디안 인근 숙소에서 저녁을 준비하고 있다. 2평도 정도 작은 숙소에서 2명에서 많게는 5명의 노동자들이 지낸다. 이 집은 월세는 25달라고 이 지역 노동자들 숙소의 평균 월세는 40열달라 정도한다. 프놈펜/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약진통상 앞 진압 과정은 몇 가지 의혹을 낳았다. 우선 진압 인물들을 보자. 현장 진압을 지휘한 것으로 알려진 차프소포른 소장은 911 공수부대의 총지휘관이자 인권침해로 악명 높은 차프페아크데이 소장의 조카로 알려져 있다. 휴먼라이츠워치 2010년 자료는 차프페아크데이 소장을 “1998년 선거 뒤 폭력 사태와 1997년 당시 쿠데타를 이끌었던 (훈센과 정적 관계이던) 푼신펙당의 사령관들을 고문하고 총살시킨 것으로 악명 높은 인물”이라 묘사하고 있다. 1월16일, 이 한국의 노동시민운동 단체들로 구성된 ‘독립조사단’과 공동 인터뷰한 911 전 부대원 모니(가명) 역시 자신이 몸담았던 부대의 잔혹상을 진술한 바 있다. 예컨대 부대 소속 하급 병사들을 발가벗긴 채 구타하는 고문을 자행하기도 했다는 게 모니의 증언이다. 여러 해에 걸쳐 911 공수부대 교관 노릇을 해왔던 미국은 인권단체들의 지적을 받아들여 2010년 이래 군사훈련 교육을 중단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야당인 구국당(CNRC) 대표 삼랭시는 과의 인터뷰에서 차프페아크데이 소장의 조카인 차프소포른 소장이 약진통상과 지분(현지법인을 뜻하는 것으로 보임)을 나누는 사이라고 말해 911 부대와 약진통상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음을 강하게 암시했다(28~29쪽 인터뷰 기사 참조). 전 부대원 모니 역시 “고위 사령관들이 약진통상이 마치 자기 사업체인 양 과시하는 말을 자주 했다”고 말했다.

둘째, 한국 대사관의 역할을 둘러싼 논란이다. 지난해 12월25일부터 최저임금을 월 80달러에서 160달러로 올려달라고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파업은 장기화 조짐을 보였다. 익명을 요구한 한 노동운동가는 12월28~29일 전후 아시아권 국가의 여러 대사관들이 정부와 비공식 미팅을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만일 정부가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회사를 철수하겠다는 강한 압력이 가해졌다.

김한수 명의로 온 ‘긴급’ 문건

“그 ‘조치’가 어느 수준인지는 나도 잘 모른다. 다만 그 미팅 이후 정부가 노조에 경고장을 보냈고, 그리고 진압이 있었다. 대사관들의 직간접적 압력이 무력 진압을 구체적으로 요구하지 않았더라도 상당한 압박은 가해졌을 거라 본다.” 노동운동가의 말이다.


“그 ‘조치’가 어느 수준인지는 나도 잘 모른다. 다만 그 미팅 이후 정부가 노조에 경고장을 보냈고, 그리고 진압이 있었다. 대사관들의 직간접적 압력이 무력 진압을 구체적으로 요구하지 않았더라도 상당한 압박은 가해졌을 거라 본다.” 노동운동가의 말이다.


이런 가운데 은 한국 대사관이 야당에까지 사실상의 ‘압박’을 가한 사실을 문건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김한수 주캄보디아 대사의 명의로 대사관이 삼랭시 대표에게 보낸 서한은 ‘긴급’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서한은 노동자들의 파업을 “정체불명의 아웃사이더들의 불법 행동”이라 표현했다. 이어 “캄보디아 내 한국 투자에 대한 부정적 효과가 우려된다”고 강조했다. 삼랭시 대표는 기자에게 “서한을 받은 직후 대사관에 전화를 걸어 직접 면담을 요청했으나 답변이 없었다”고 말했다.

은 약진통상 쪽이 4~5개월 전 당시 ‘민주노조’(캄보디아 대부분의 봉제업체에는 ‘어용노조’가 있다) 간부를 해고한 사실을 확인했다. 최근 몇 달간 약진통상 내 파업 동력이 약화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대목이다. 약진통상은 1월10일 발표한 해명 자료를 통해 “자회사에는 5개의 복수노조가 있으며, 해당 노조들은 이번 파업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약진통상의 노동자들이 이날 파업에 어떤 규모로 참가했는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약진통상은 노조 탄압으로 악명이 높다. 전 노조 간부는 물리적 폭력을 포함해 회사로부터 온갖 회유와 협박을 받았다. 아마 회유금을 쥐어주고 쫓아낸 것 같다. 그날 이래 그 간부는 프놈펜을 떠났고 나도 연락이 닿지 않는다.” 관련 상황을 잘 아는 한 현지 노동자가 익명을 전제로 한 말이다. 약진통상 관계자는 최근 와 한 인터뷰에서 “국제노동기구(ILO)랑 협조해서 여러 대책을 내놓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생산 현장 모니터링과 노동권 보호를 위해 ILO가 운영하는 ‘더 나은 공장 캄보디아’(Better Factories Cambodia)의 운영자인 제이슨 저드는 과의 전자우편 인터뷰에서 이렇게 전했다. “약진통상도 다른 공장들과 마찬가지로 ILO 모니터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고 이건 캄보디아 봉제업체들의 법적 의무사항이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다고 해서 꼭 그들의 노동환경이 투명하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저드는 또한 이렇게 덧붙였다. “약진통상은 자발적 프로그램인 노동조건 개선과 노동자-사용자 관계 향상을 위한 ‘자문 서비스’(Advisory Services)에도 참여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에는 캄보디아 공장 중 5~10%만이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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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권은 캄보디아의 헌법은 물론 노동법, 그리고 캄보디아 정부도 비준한 국제협약(캄보디아는 ILO 노동협약 98호인 ‘단결권 및 단체교섭에 관한 협약’ 비준국이다) 등이 보장한 노동자들의 기본권이다. 그러나 현실은 얼음판이다. 반정부 세력에 대한 탄압 효과까지 노리며 잔인하게 진압당한 노동자들의 파업은 한국을 포함해 캄보디아에 투자자를 배출한 나라 대사관들의 압력까지 가세하며 노동자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기업체들이 임금을 인상하면 적자가 날 거라고 하는데, 단 한 번도 신빙성 있는 데이터를 제시한 적이 없다. 나는 그들이 160달러로 임금을 올려도 이윤을 낼 수 있다고 본다. 만일 그들이 진지하게 협상에 임하면서 적자의 증거를 제공하면 우리도 120달러 혹은 130달러라도 협상할 용의가 있다.” 아툿 의장은 말한다.

뇌물 비용 제하고도 1명당 280달러 순이익

2009년 캄보디아개발연구소(CIDS)가 수행한 ‘캄보디아 봉제산업 노동자들의 현실 인금’ 관련 조사 자료에 따르면, 봉제공장 노동자 1명이 창출해내는 월 순이익은 280달러 수준이다. 생산 비용은 물론 ‘뇌물’ 비용까지 제외하고 나오는 순이익이다. 보고서는 이 중 20% 미만이 노동자 몫이고, 80% 이상이 사용자 몫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약진통상도 다른 공장들과 마찬가지로 ILO 모니터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캄보디아 봉제업체들의 법적 의무사항이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다고 해서 꼭 그들의 노동환경을 투명하게 말하는 건 아니다.”
-‘더 나은 공장 캄보디아’의 운영자 제이슨 저드


“80달러에서 160달러로 임금을 어떻게 100%나 올려주느냐고 하는데, 이건 임금을 곱절로 올리는 게 아니라 잘못된 임금을 바로잡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제3세계 노동문제를 다루는 국제 NGO ‘솔리대리티 센터’(Solidarity CENTER) 캄보디아 담당 국장인 데이비드 존 웰스의 말은 캄보디아를 포함해, 현실 물가와 관계없이 저임금이 고착화된 현실과 저임금을 찾아 떠나는 ‘철새’ 투자자들의 현실을 꼬집고 있다.

다리에 총상을 입어 두 번의 수술을 남겨둔 피룬은 당분간 춤을 출 수도 미싱을 밟을 수도 없다. 그날의 사건 이후 한국 기업 노동자인 피룬의 병실을 방문한 한국인은 취재진 외에는 없다. 간호하는 아내와 어머니 등 3명의 한 끼 식대로 5달러나 지불해야 하는 피룬은 그나마 한국에서 이주노동하는 캄보디아 친구들이 기부금을 모아줬고, 야당인 캄보디아구국당의 삼랭시 대표가 병원비를 보태겠다고 약속했다고 전했다. 피룬이 일했던 ‘로얄’은 “유혈 사태 뒤 1800명의 노동자 중 500명이 남고 다 떠났다”고 공장에서 퇴근하고 있던 노동자 비락(가명)이 귀띔했다.

월급 깎였지만 다음 파업엔 춤추러 가겠다

1월15일 오후 6시께. 다시 찾은 카나디아 공단 서쪽 문을 통해 수백 명의 노동자들이 쏟아져나왔다. 장터로 늘어선 노동자들은 잔업 2시간을 마치고 나와 저녁거리를 사는 중이다. 서쪽 문을 통해 공단 부지 안으로 좀더 걸어가면 보초를 선 병사 두어 명과 나른한 군인들이 장기판을 두고 있을 것이다. 캄보디아 왕실군(RCAF) 70여단이다. 최근 사태 이후 공단 내 주둔하는 70여단은 2008년 1월 창설된 대테러 특수부대다. 역시 인권침해로 악명이 높다.

시장길로 다시 나와 어수선한 골목길을 오르면 중국 공장 하나가 여전히 조업 중이다. 더 좁은 왼쪽 골목길을 타고 공단 노동자들의 숙소가 빼곡히 들어서 있다. 월 25달러짜리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소코안(37)은 저녁을 짓고 있었다. 잔업을 하지 않아도 130달러 기본급을 받는 그녀는 ‘오션스카이’(Ocean Sky)라는 중국 공장에서 일하는 ‘스페셜 기술자’다. 그러나 소코안 역시 결과적으로 버는 수입은 150달러가 넘지 않았다.

건너편 월 45달러의 깔끔한 숙소에는 2012년 프놈펜으로 이주한 참파(24·가명)가 살고 있다. 6살짜리 아들을 키워주는 엄마에게 매달 25달러를 보내는 참파는 1월5일 수령한 12월치 월급이 깎여나왔다. 잔업수당을 모두 포함해도 88달러. 파업 때문이다. 1월2일 댄싱 데모에 참여했다가, 발포가 있던 3일은 방 안에 꼼짝 않고 있었던 참파는 파업이 다시 벌어지면 참여하겠단다. 참파네 복도에서 3개월 된 동생을 어르고 있는 훗헹리는 들쳐안은 갓난아기가 품에서 오줌을 쌌지만 여전히 눈웃음이다.

“엄마가 어젯밤에는 밤 10시에 오셨어요. 오늘도 야근한대요.”

프놈펜(캄보디아)=글 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 Lee@penseur21.com
사진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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