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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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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정부도 마다 않는 한국 투자자들 변해야”

삼랭시 캄보디아 구국당 대표 인터뷰
“991부대 사령관이 약진통상 지분 30% 소유
사업체의 압박이 잔혹한 진
압 낳아”
등록 2014-01-21 08:10 수정 2020-05-02 19:27
삼랭시 캄보디아 구국당 대표. 사진 김명진 기자

삼랭시 캄보디아 구국당 대표. 사진 김명진 기자

삼랭시(64·사진) 캄보디아구국당(CNRP·Cambodia National Rescue Party) 대표는 현재 훈센 총리와 대척할 만한 유일한 야당 정치인이다. 노동운동 내에서도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다. 1990년대 경제부 장관을 지냈고, 2005년과 2009년 두 차례 법적 소송에 연루돼 프랑스로 망명을 떠난 바 있다. 지난해 7월19일 총선을 열흘 앞두고 귀국했다. 이후 반훈센 정서를 활용해 정치 기반을 다지는 중이다. 은 지난 1월16일 캄보디아 프놈펜 외곽에 자리잡은 캄보디아구국당 본부에서 그를 만나 최근 노동자 유혈 진압 사태 등에 대해 1시간가량 이야기를 나눴다.

강경파가 진압 명령

-지난 1월14일 프놈펜 지방법원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무슨 질문을 받았나.

=내게 노동자 파업을 지지하는지, 노동자들이 요구하는 ‘최저임금 160달러 안’을 지지하는지 물어서 둘 다 ‘그렇다’고 했다.

-정정 불안을 조장했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사실무근이다. 지식인으로서, 그리고 도덕적으로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를 지지할 뿐이다.

-1월2일 약진통상 앞에서 벌어진 폭력 진압 소식을 들었을 때 당신의 첫 반응은 뭐였는가.

=군인들이 진압했다는 것에 충격받았다. 게다가 공수부대라니. 그들은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훈련받는 이들 아닌가.

-충격은 충격이고, 어디 전화라도 걸어 항의라도 했는가.

=내무부 장관에게 전화해 진압을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내무부는 군인을 통제할 수 없다고 말하더라.

-공수부대 진압을 명령한 이가 누군지 아는가.

=강경파다. 군 내부에도 있고, 훈센 총리 자체도 이런 문제에 강경파다. 무엇보다 개인의 이익을 위해 진압에 연루된 이들이 있다. (약진통상과 이웃한) ‘911부대’ 사령관 차프페아크데이의 조카이자 (같은 부대에서 근무하는) 차프소포른이 약진통상의 지분 30%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안다. 자기 지분이 있는 회사의 손실을 막으려고 개입한 거다. ‘근처 한국 회사’(인터뷰 초기 삼랭시는 ‘약진통상’이라고 지목하기보다 ‘근처 한국 회사’라고 표현했다) 역시 시설물 보호 요청을 이유로 일정한 대가를 지급했을 것이다. 캄보디아에선 아주 흔한 일이다.

-이 나라에서 흔하다는 점 외에, ‘근처 한국 회사’가 차프소포른 소장이나 차프페아크데이 사령관과 지분을 나누고 있다는 증거가 있나.

=지분을 나누는 사실을 보여줄 문서는 보지 못했으니 ‘100% 확신’할 순 없다. 하지만 내부 정보원을 통해 알고 있다. 캄보디아에선 지분 관계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문서란 존재하지 않는다. 여러 나라의 수배자, 야쿠자들까지 캄보디아 여권을 사서 불법 벌채사업을 벌이는 범죄집단들의 천국, 그게 바로 캄보디아다.

-한국 대사관도 논쟁에 휩싸였다.

=한국 대사관이 내게 공식 서한을 보낸 적이 있다. (삼랭시는 곧 비서관을 통해 서한 복사본을 준비해 취재진에게 건넸다.) 통탄스러운 점은, 대사관도 그렇고 한국 업체들이 캄보디아 정부로 하여금 자신들의 사업체를 보호하도록 압박했고, 그게 결과적으로 잔혹한 진압을 낳았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압박이 초래할 수 있는 결과는 안중에도 없었던 게다. 무책임한 처사다.

-왜 이렇게 유례없는 강경 진압이 이어졌나.

=봄철 아닌가. 바이어로부터 상업적인 주문량이 폭발하는 시기다. 하루라도 주문량을 못 맞추면 큰 손실을 보니 그들의 이익 손실만을 생각한 거다.

이명박 전 대통령, 훈센 경제 자문 그만둬야

-정치적 변수는 어떤가.

=지난해 7월의 부정선거(총선) 이후 우리 야당과 시민사회는 전례 없는 큰 집회를 조직화했다. 12월부터는 노동자들의 파업까지 가세하며 어마어마한 피플파워가 형성됐다. 위기감을 느낀 정부가 파업노동자들을 유혈 진압하면서 모든 비판 세력에게 본때를 보여준 것이다. 하지만 실수한 거다. 국제사회가 받을 충격은 생각지 못한 것 같다. 지금 전 국제사회가 구속 노동자 석방과 독립 조사, 그리고 표현·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그런데 1월4~6일 이어질 예정이던 반정부 시위는 왜 취소했는가. 노조도 파업을 유보했다.

=유혈 진압 명분을 주고 싶지 않아서지. 사실상 비상사태 정국이니 우선 국제사회가 압박할 공간을 열어놓고 비상사태가 어느 정도 잠잠해지면 다시 집회를 할 계획이다.


“통탄스러운 것은, 대사관도 그렇고 한국 업체들이 캄보디아 정부로 하여금 자신들의 사업체를 보호하도록 압박했고, 그게 결과적으로 잔혹한 진압을 낳았다는 점이다. 자신들의 압박이 초래할 수 있는 결과는 안중에도 없었던 게다. 무책임한 처사다.”


-옆나라 타이 반정부 시위와 정정 불안은 어떻게 보고 있는가.

=잉락 친나왓 타이 총리의 용감한 대응에 찬사를 보낸다. 잉락 총리가 당선된 지난 총선은 국제사회도 인정한 공정선거였고, 야당도 선거 결과에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잉락 총리는 충돌을 피하려고 반정부 시위대의 요구대로 사임하고 재선거를 치르기로 했다. 훈센은 뭐하나? 부정선거로 정권을 잡은 그야말로 총리직에서 물러나야 한다. 우리는 부정선거에 대한 독립적 조사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재선거를 지속적으로 요구할 것이다.

-잉락 총리의 친오빠인 탁신 전 총리는 당신의 정적인 훈센 총리와 친분이 깊고, 경제 자문도 했던 인물이다. 이 복잡한 인맥관계를 어떻게 풀 것인가.

=탁신은 의료복지를 포함해 친빈민 정책을 폈다. 반면 훈센은 아무것도 한 게 없다. 되레 빈곤층으로부터 토지 수탈을 자행하지 않나. 두 사람의 친분에 대해서는 할 말 없고, 내게는 두 사람의 차이점이 더 도드라진다.

-탁신도 그렇고 한국의 이명박 전 대통령도 훈센의 경제 자문이다.

=훈센 자문역을 자임하는 누구라도 그 역할을 그만두라는 게 나의 조언이다. 안 그러면 훈센 정부가 자행하는 탄압과 범죄에 공조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베트남 얘기를 해보자. 캄보디아 구국당은 최근 성명을 통해 “폭력과 인종주의, 제노포비아 그리고 차별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반베트남 정서가 고조되고 있고, 당신 역시 집회 연설 등을 통해 ‘유온’(Yuon·베트남인이나 베트남계 캄보디아인들을 일컫는 칭호로, 경멸적 호칭이라는 지적이 많다)이라는 단어를 반복하며 자칫 반베트남 감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연설 내용으로 비판받고 있다.

=선정적인 언론의 구태의연한 비판이다. 타이도 베트남계를 유온이라 부르는데 왜 그들은 비판하지 않는가. 베트남이 생기기 전부터 그 지역에 살던 이들이 유온이라 불렸다. 기자들, 사전 학습 좀 해라. 우리가 유온이라 부를 때 누구도 모욕하려고 하는 게 아니다.

-캄보디아와 타이의 상황은 좀 다르다. 역사적으로 캄보디아는 베트남과 더 복잡한 분쟁 관계 속에 있었고, 반베트남 정서도 자리잡힌 마당에 그런 용어나 레토릭이 야기할 인종주의의 고조, 불필요한 분쟁을 우려하는 것이다.

=우리가 베트남에 대해 비판하는 건 중국이나 한국이 역사적 맥락에서 일본을 비판하는 것과 같다. 그렇다고 한국이나 중국이 일본에 대해 인종주의적 접근을 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베트남인’이나 ‘베트남’ 자체에 대해 아무 반감이 없다. 다만 현 베트남 정부의 대캄보디아 정책을 비판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도 정책도 바뀔 수 있는 것이다.

뇌물을 노동자 임금으로 돌리기만 하면

-당신이 이 나라의 총리가 되면 어떤 노동정책을 펼 것인가.

=우선 ‘법치’를 바로 세워 부패 근절에 전념할 것이다. 한국 기업들이 그들 사업체 보호를 위해 고위 관료나 군에 바치는 뇌물을 노동자 임금으로 돌리면 임금 인상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 나라의 부패는 두 종류다. 고위 관료들에 의한 부패와, 말단 공무원들이 생존을 위해 범하는 부패. 후자를 없애기 위해 공무원의 임금 인상이 필요하다(일반 공무원의 임금은 100달러 내외). 아울러 나는 캄보디아가 구걸하는 나라가 되길 원하지 않는다. 훈센은 이 나라를 구걸하는 나라로 만들었다.

-현재의 캄보디아 상황을 어떻게 규정하는가.

=편협한 투자자들은 독재정부라도 마다 않고 ‘안정’된 환경을 원했다. 그러나 ‘독재하 안정’ 모델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한국 투자자들도 마인드를 전환하기 바란다. 훈센 식으로 노동자를 탄압하며 세운 안정은 몇 주, 몇 달을 못 간다.

-망명 생활을 여러 번 했다. 시국이 어수선한데 또다시 망명할 수 있는가.

=이젠 훈센이 망명할 차례다. 힘의 균형 관계가 변하고 있다.

프놈펜(캄보디아)=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 lee@penseur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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