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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은 15살 때부터 가족이자, 친구였다. 술잔을 입안에 털어넣는 순간엔 적어도 외롭지 않았다. 난 철저히 혼자였다. 알코올에 젖어 있는 순간만큼은 달랐다.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된 듯한 착각이 들었다. 40년 가까이를 술과 함께했다. 특히 마지막 7년 동안은 끔찍했다. 습관처럼 매일 술을 마셨다.
‘중독’은 대물림일까. 어머니는 약물중독자였다. 약에 취했다 하면 막말을 퍼붓고 손찌검을 했다. 폭력은 용서가 안 됐다. 13살 때 어머니와 인연을 끊고 독립했다. 아버지는 어릴 때 교통사고로 이미 세상에 없었으니, 나를 잡을 사람도 없었다.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이 완벽한 세상에 덩그러니 나앉았다. 결혼을 하고 아들 둘을 낳았지만, 어린 시절의 상처 탓인지 외로움은 덜어지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술을 입에 댔다. 나는 그토록 증오했던 어머니의 뒤를 따라 ‘중독자’가 되었다.
덴마크 ‘휴먼라이브러리’에 등록돼 있는 예느 필만(61)의 ‘사람책’ 분류 목록 주제는 알코올중독이다. 지난해 12월6일 코펜하겐 시내에서 만난 그는 흔히 연상되는 알코올중독자와는 거리가 멀었다. 백발로 변해가는 금발 단발머리에 소녀 같은 웃음을 띤, 동네 어디서나 만남직한 할머니였기 때문이다.
필만은 지금까지 두 번 다시 태어났다. 첫 번째는 2007년. 알코올중독 치료센터에 들어가서 술을 끊게 되면서다. 필만은 “어떻게 인생을 다시 회복할 수 있는지를 배웠다”고 말했다. 똑같이 알코올중독 상태인 두 여동생에게도 “같이 치료받자”고 손을 내밀었지만 아직까지 동생들은 화만 낸다고 했다. 두 번째는 2009년. 휴먼라이브러리 운동을 창립한 로니 아베르겔이 알코올중독자 치료단체에 ‘사람책’ 추천을 부탁했고, 필만은 처음으로 “책꽂이에 꽂혀 있다가 누군가 내 등을 집어올려 대여해가는” 경험을 했다.
그는 왜 알코올중독자가 됐고, 어떻게 치료했는지를 독자에게 ‘읽어’준다. “보통은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해요. 그런데 듣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그 사람이 어떤 질문을 던지느냐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져요. 굉장히 역동적이면서도 흥미로운 과정이죠.” 그는 지금까지 학생, 감옥에 다녀온 범죄자, 신용불량자, 스트리퍼, 성매매 여성 등 다양한 사람들에게 대여돼 나갔다. “독자와의 대화는 신기해요. 내가 ‘사람책’으로 그 자리에 앉아 있지만, 그 순간만큼은 내가 독자들을 ‘사람책’으로 빌린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거든요.”
휴먼라이브러리는 그의 삶을 바꿔놨다. 2010년 교통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오른쪽 다리 무릎 아래에 의족을 차고 다닌다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필만은 “그냥 교통사고였을 뿐”이라며 대수롭지 않아 했다. 일자리도 잃고 후유증도 아직 남아 있지만, 그는 이제 자기 삶의 주체가 누군지 분명히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코펜하겐(덴마크)=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만화가. 초등학교 때부터 만화를 끼적이는 게 좋았다. 비보이. 고등학교 때는 춤에 미쳤다. 서울 여의도공원, 대학로에 떼로 몰려다니며 춤을 췄다. 신발과 모자에 눈을 뜬 것도 이때부터였다. 하지만 ‘리얼’ 인생은 달랐다. 만화나 춤으로 대학을 갈 수는 없었다. 대학에선 컴퓨터응용시스템을 전공했다. 패션디자이너. 군대에 가서 뒤늦게 ‘꿈’이 생겼다. 하지만 ‘늦었다’는 생각에 꿈을 슬며시 접고 말았다.
로봇. 대학 졸업 뒤 운 좋게 삼성반도체에 입사했다. 경기도 화성 공장에서 반도체설비를 점검하고 유지·보수했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좋았지만 일상은 무기력했다. 감정 없는 로봇이 된 듯했다. 좋아하는 일, 꿈, 창의성 등의 단어들은 점점 멀어져만 갔다.
좋아하는 옷, 모자, 신발로 만드는 ‘내 브랜드’. 회사 생활 3년 만에 사표를 냈다. 마침 비보이 시절 함께 뭉치곤 했던 몇몇이 같은 꿈을 꾼다는 걸 알았다. 당장 의기투합했다. ‘좋아하기만’ 할 뿐, 아는 게 없었다. 디자인을 모르니 의상 공부를 시작하고, 옷을 만드는 공장이 어딨는지 모르니 동대문시장 바닥을 신발이 닳도록 헤집고 다녔다. 오토바이를 무작정 따라가 공장 위치를 알아둘 정도로 열심이었다.
즐거운 악당. 2009년 세상에 내놓은 브랜드 이름은 ‘라클리크’다. 즐거움을 뜻하는 한자 ‘樂’(락·rac)과 ‘패거리’(clique)를 합친 말이다. 지난 1월7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라클리크 사무실에서 만난 이상배(32) 대표는 “나는 좋아하는 일을 하지만, 가족이 보기엔 이기적일 수도 있어 악당이라고 했다”며 멋쩍게 웃었다.
충격과 공포. 마포 민중의 집에서 운영하는 휴먼라이브러리 ‘숨쉬는 도서관’에 소개된 이상배 대표의 사람책 서문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현실적으로 좋아하는 일이 더 고통스럽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서” 그렇단다. 가장 큰 고민은 역시 돈이다. 창업 1년 뒤로는 사무실 식구 4명의 월급을 챙길 수 있을 만큼 궤도에 올랐지만, 원하는 옷을 만들기 위해 월급을 자진 반납해야 할 때도 있다. 100벌 소량 생산 방식이다보니 수지타산을 맞추기도 쉽지 않다. 나름대로 마니아를 거느린 독립 브랜드지만, 사업이란 게 열에 아홉은 힘든 일이라고 했다.
“전 이렇게 쳇바퀴 굴리듯 살고 싶지 않아요.” 직장 다닐 때 상사한테 치받듯이 던진 말이었다. “지금은 함부로 얘기한 걸 후회해요. 싫어하는 걸 억지로 참고 견디는 것도 훌륭한 일이잖아요.” 6~7차례 사람책으로 대여돼 다양한 사람을 만난 뒤 ‘내 안의 편견’이 깨지면서 얻은 깨달음이다. “저를 빌려간 독자들은 ‘난 꿈이 없다’고 죄책감을 느끼는데 그럴 필요 없어요. 꿈이 없는 게 이상하다고 몰아가는 분위기도 없어져야 해요.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꼭 정답은 아니거든요.”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거북이를 사랑한 토끼가 있었다. 그의 짝사랑을 아무도 몰랐다. 거북이조차도. 토끼는 거북이가 느린 걸음을 자학하는 게 늘 마음 아팠다. 어느 날 ‘달리기 경주’를 토끼가 제안한다. 거북이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주기 위해서였다. 경주가 시작되자 토끼는 생각했다. ‘중간에서 기다려주자.’ 하지만 그냥 기다리면 거북이의 자존심이 상할 것 같았다. 그래서 토끼는 자는 척했다. 거북이가 깨워주면 나란히 손을 잡고 언덕을 오를 참이었다. 거북이는 토끼를 그냥 지나쳤다. 자는 척하던 토끼는 눈물을 흘렸다. 경주에서 이긴 거북이는 “성실하다”는 칭찬을, 토끼는 “교만하다”는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토끼는 견뎠다. ‘사랑하는’ 거북이의 기쁨이 그의 기쁨이었기에.
꼬박 3년간 노숙인으로 살았던 서경수(42·가명)씨는 길거리 잡지 를 팔 때 ‘신(新) 토끼와 거북이’ 등 자신이 쓴 이야기를 ‘부록’으로 넣는다. 그 부록을 보려고 서씨의 만 고집하는 단골도 있다.
전북 전주에 살던 서씨는 2009년 3월 아버지와 다투고 집을 나왔다. 수년간 취업에 실패하며 가정불화가 깊어진 탓이었다. 달랑 7만원을 들고 서울로 올라와 주유소, PC방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생활은 궁핍해졌고 결국 길거리로 나왔다. 첫 6개월간은 고립이었다. 다른 노숙인의 손길도 뿌리쳤다. 그들의 ‘호의’가 ‘악의’일까봐 겁이 나서다. 그렇게 만날 굶다가 탈진해 쓰러졌다. 그 뒤 무료급식소와 쉼터를 오갔지만 삶의 의욕은 꺾여만 갔다.
2013년 5월 판매원이 되면서 서씨는 성취감을 처음 맛봤다. 노숙인 자립을 돕는 잡지인 는 첫 방값만 지원한다. 그 뒤의 생계는 판매원이 책임져야 한다. 서씨는 7개월째 고시원비(26만원)를 밀리지 않고 있다. 감동의 순간도 찾아왔다. “대학 졸업하고 2년간 80군데에 원서를 냈지만 취업에 실패했다는 20대 여성 독자가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구입하는 라며 1천원짜리 3장과 500원, 100원짜리 동전을 한 움큼 쥐어줬어요. 취업해 다시 사겠다고 약속하는데 함께 울었습니다.” 감격스러워서, 기뻐서였다. ‘어려운 사람을 도우려는 마음이 아직 많이 남아 있구나.’
2014년은 더 큰 설렘으로 맞이한다. 첫째, 서씨가 베이스 기타리스트로 참여하는 ‘봄날 밴드’가 3월에 공연과 앨범 발매를 계획 중이다. 둘째, 2월15일 시민참여 휴먼라이브러리에 사람책으로 초대됐다. 그리고 셋째, 토끼처럼 사랑을 고백하고 싶은 그녀가 생겼다. “노숙인을 인생 실패자라고 흔히들 생각하죠. 사실은 ‘실패를 겪었던 것’뿐입니다. 그래서 더욱 삶이 어떤 의미인지 절절하게 깨달은 사람, 다시 희망과 나눔의 날개로 비상하고 싶은 사람입니다.” 서씨의 사람책은 이렇게 시작된다.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몸짱·보디빌더 하면 무엇이 떠오르나? 닭 가슴살과 유청 단백질 보충제. 이러한 편견을 깨려고 도혜강(40)씨는 육식을 하지 않고 채식으로 몸을 만들었다. ‘비건빌더’(Veganbuilder)다.
고기가 없으면 밥상에서 반찬 투정을 일삼던 도씨가 채식주의자로 변한 것은 2010년 구제역 파동 때다. “병든 동물을 치료할 돈이 없다는 이유로 정부가 산 채로 땅속에 묻었잖아요. 고통스럽게 죽는 동물을 보며 인간이 무슨 권리로 저렇게 많은 생명을 함부로 다루나 충격을 받았어요.” 도씨는 육류·생선·유제품을 모두 먹지 않는 완전 채식주의자가 됐다. 처음엔 ‘나 하나만이라도’로 시작했지만 점점 ‘나 하나만으로는’ 안 되겠다 싶어졌다. 채식이 건강을 해친다는 편견을 깰 방법을 고민하다 보디빌더를 떠올렸다. 요가 강사로 일했지만 근육운동 경험은 없었다.
2011년 홀로 훈련해 보디빌딩 대회에 나갔다. 입상한 뒤 채식주의자라고 밝히자 다들 놀랐다. 채식만으로도 건강한 몸을 만들 수 있고 대회에 나가서도 손색이 없다는 걸 보여줬기 때문이다. “몸을 만드는 건 운동이에요. 단백질에 집착할 필요가 없어요. 적당한 식이조절과 운동, 휴식이란 삼박자만 갖추면 됩니다.” 단백질도 콩 등으로 섭취할 수 있다. 몸은 식물성·동물성 단백성을 차별하지 않기 때문이다. 도씨의 운동 식단을 보자. 운동하기 30분 전에 찐 고구마와 메밀차, 운동 중에 바나나, 운동이 끝나면 계절과일과 두부, 해초샐러드, 방울토마토 등을 먹는다.
비건빌더가 그리 낯선 개념은 아니라고 도씨는 말한다. 전설적인 몸짱으로 ‘현대 보디빌딩의 아버지’라 불리는 유진 샌도도 채식으로 몸을 만들었다. 샌도는 1867년 4월2일 독일(당시 프러시아)에서 변변치 않은 채소장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매력적인 근육미가 돋보였던 그는 닭 가슴살이나 유청 단백질 보충제보다는 채소와 가까웠다. 도씨는 말한다. “4년간 채식하며 지구력과 근력이 놀랍게 향상됐어요. 추위와 더위에도 덜 민감해졌고 피부가 좋아져 잔주름이 사라졌습니다.”
보디빌더 가운데 겉은 멀쩡한데 속은 안 좋은 사람이 많다. 몇 달 만에 10~20kg의 살을 찌우고 빼기 때문이다. 대회를 앞두고는 닭 가슴살과 방울토마토 등으로 연명하며 몸을 깎아낸다. 하지만 도씨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밥과 반찬에다 식물성 단백질 보충제만 추가할 뿐이다. 단백질 보충제는 두부·곡물·견과류 등으로 도씨가 직접 만든다. “채식하며 보디빌딩을 하면 겉모습뿐만 아니라 몸속 건강도 챙길 수 있죠.”
채식하면서 성격도 달라졌다. “조급하고 욱하는 성질이 있었어요. 불평불만도 많고 잘 싸우기도 했어요. 채식한 뒤에는 한결 느긋해졌다고 주변에서 말해요.” 채식주의자는 밥상에서만 까다로울 뿐 일상에선 너그럽단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대한민국에서 가장 당당한 미혼모입니다.” 다큐멘터리영화 에서 주인공 최형숙(42)씨는 우렁찬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한다. 그는 아마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미혼모이기도 할 테다. 한국미혼모가족협회 활동가로 3년을 살면서 얼굴 드러내길 꺼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도 처음부터 당당했던 건 아니다. 2009년 한 TV의 시사 프로그램에 인터뷰를 했다. 얼굴을 가렸는데도 당시 운영하던 미용실 내부 모습이 그대로 방송을 탔다. 동네의 수군거림이 돌아 돌아 그의 귀에도 들어왔다. “나이 많은 여자니까 유부남이었을 거야….” 하나둘 손님이 줄어들더니, 여섯 달 뒤엔 직원 월급도 못 줄 지경이 됐다. 억울했다. ‘내가 돈 벌어서 내 아이 키우는데 왜?’
미혼모는 지워지지 않는 ‘주홍글씨’다.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건 물론이고 손가락질도 한다. 아들 준서(9)가 유치원에 다닐 때의 일이다. “준서 엄마가 미혼모냐? 난 기분 나쁘다.” 한 아이 엄마가 유치원에 항의했다고 한다. 재롱잔치 날 옆에 서 있던 그 엄마는 끝내 최씨와 손잡기를 거부했다. 아이의 상처는 더 가슴이 에인다. 어릴 때부터 엄마가 미혼모라는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여온 아이도 “너희 엄마 미혼모라며?” 묻는 친구들의 질문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4살에 대장암을 앓은 준서는 무서움을 많이 탄다. 지금도 침대 한쪽에 인형을 진열하듯이 잔뜩 세워놓고서야 잠든다. 그래서 최근 1년여, 최씨는 모든 일을 그만두고 온전히 아이와만 시간을 보냈다.
미혼모는 ‘선택’이었다. 남자친구와 성격 차이로 헤어진 뒤에야 ‘엄마’가 된 사실을 알았다. 아이를 낳자마자 입양기관에 보냈다가 다시 데려왔다.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 ‘숨는’ 대신, 맞서기로 한 것도 최씨의 선택이다. 미용실 문을 닫은 뒤 한국미혼모가족협회를 설립하기 위해 전국의 미혼모 400명 이상을 만났다. 다른 미혼모가 울면서 전화를 걸어오면 한밤중에도 한달음에 달려갔다.
지난 1월8일 만난 최씨는 ‘미혼모는 불쌍하다’거나 ‘우울하다’는 선입견이 싫다고 했다. “‘둘이 키워도 힘든데 너 혼자 잘 키워봐.’ 비난이 아니라 여기까지면 된다. 그러면 상처는 안 받는다. ‘너희는 비정상이고 뭔가 부족한 사람이니까 도와줄게’? 동정이 아니라 경제적인 자립을 도와줘야 한다.”
마포 민중의 집이나 대학교 등에서 ‘사람책’ 대출 요청이 올 때마다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유도 그래서다. “나를 대출했던 연인이 비슷한 상황에 놓인다면 적어도 ‘그때 그 아줌마’를 떠올리며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지 않을까요?” 최형숙이란 사람책은 지금 증보판을 준비 중이다. 지난해 12월 설립된 미혼모 단체 ‘인트리’ 대표로서 각종 교육·지원 사업을 머릿속에 그려보는 한편으론, 올가을께 결혼도 생각한다. 자원봉사자로 만나 500일 넘게 사귄 남자친구는 10살이 어리다. “아들에게 차별 없는 세상을 주고 싶다”고 서문에 적은 책은, 그렇게 또 다른 이야기를 한장한장 채워가는 중이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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