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가 끝나고 거리행진이 시작됐다. 대열은 곧 차벽에 가로막혔고, 경찰의 선무방송이 시작됐다. “여러분은 지금 불법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민주’를 외치는 시민답게 법질서를 준수해주시기 바랍니다.” 물병이 날아가고 버스 바퀴에 밧줄이 걸렸다. 경찰은 물포와 소화기 분말로 시위대의 접근을 막았다. 물과 분말을 뒤집어쓰고 방패에 찍힌 시위대 일부가 경찰버스 유리창을 깨기 시작했다. 주최 쪽 방송차량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시민 여러분, 우리는 평화롭게 우리 뜻을 전달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폭력은 안 됩니다. 궁지에 몰린 이명박에게 강경 대응의 명분만 제공할 뿐입니다.” 행진 대열 안에서도 “비폭력” “앉자”라는 구호가 이어졌지만, ‘피’를 본 이들의 흥분과 분노를 가라앉히기엔 역부족이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철회를 요구하는 촛불시위가 절정에 달했던 2008년 6월, 서울 종로와 태평로 일대에서 숱하게 반복되던 장면이다.
참여연대 등에 5억원 배상 청구한 정부국면이 잦아든 뒤 정부는 형사소송과 별개로 집회를 주도한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을 반대하는 국민대책회의’와 참여연대 등 3개 단체, 대책회의에서 활동한 박원석(현 정의당 국회의원)·박석운·안진걸 등 14명을 상대로 5억1700여만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서울중앙지법으로 배당된 사건은 5년을 끌었다. 피고 일부는 그사이 형사재판을 받고 사법처리 절차가 완료됐다. 재판의 핵심 쟁점은 경찰의 신체와 장비에 위해를 가한 사람이 가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집회를 주최한 단체와 사람들에게 피해에 대한 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느냐였다.
지난 10월31일 재판부(주심 윤종구)는 정부의 청구를 기각했다. 가해자와 가해 장소, 원인을 구체적으로 특정하지 않고 집회·시위 기간에 발생한 모든 인적·물적 손해와 손실을 배상하라는 것은 부당한 요구라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집회·시위를 주도한 단체 및 핵심 활동가들에게 책임을 물으려면 구체적인 상해·손괴 행위를 한 사람들과 이들의 관계를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어야 하지만, 입증 책임을 진 정부 쪽이 피해자와 피해 사실, 손실의 정도만 밝혔을 뿐 양쪽의 관계를 보여주는 증거는 없거나 극히 미미하다는 점을 기각 사유로 들었다.
2012년 2월 서울고등법원에서 나온 또 다른 촛불시위 관련 항소심 판결도 재판부의 판단에 영향을 줬다. 서울고법은 2008년 촛불시위에 참가했던 시민들 일부가 호텔 로비에 쓰레기를 투기해 영업을 방해받았다며 코리아나호텔이 낸 손배소송을 “참가자 일부가 우발적으로 저지른 일탈행위를 주최자인 대책회의가 적극적으로 격려한 적도 없고 오히려 평화 집회를 호소하고 질서 유지를 위한 활동을 한 점이 인정된다”며 기각한 바 있다.
“행위 가담자와 주최 쪽 관계 불분명”공판 과정에서 정부는 과거 노조 집회 과정에서 발생한 손해에 대해 노조 집행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대법원 판례를 들어 배상 청구가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대법원이 판단한 사건은 (수만 명의 일반 시민이 참여해 2개월 가까이 이어진) 2008년 촛불시위와 같은 유형의 집회·시위가 아니라, 단일 목적을 가진 단체가 특정일에 단체 구성원을 중심으로 특정 집회를 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이라며 인용하지 않았다.
심사위원 20자평▶김성진 항의할 자유를 소송으로 겁줘서는 안 된다!
오창익 뭐든 돈으로 해결하겠다는 발상에 쐐기.
최재홍 촛불이 타오른다. 뜨거움을 느껴라.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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