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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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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를 ‘해충’이라 했던 대통령

2005년 “한 마리 해충이 온 산을 붉게 물들여” 발언 뒤 ‘보수의 마지막 보루’로 자리매김
전교조는 10월23일 조합이냐 조합원이냐 ‘양자택일’ 디데이 앞두고 진퇴양난에 빠져
등록 2013-10-16 05:17 수정 2020-05-02 19:27
정부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최후 통보를 보냈다. 전교조는 해고자를 배제하지 않으면 법외 노조화하겠다는 고용노동부의 요구에 맞서 조합원 총투표를 벌이기로 했다. 1999년 합법화 이후 최대 위기를 맞은 전교조 본부의 모습.정용일

정부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최후 통보를 보냈다. 전교조는 해고자를 배제하지 않으면 법외 노조화하겠다는 고용노동부의 요구에 맞서 조합원 총투표를 벌이기로 했다. 1999년 합법화 이후 최대 위기를 맞은 전교조 본부의 모습.정용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1989년 창립했다. 10년의 ‘비합 시절’을 견디고 1999년 합법화됐다. 올해로 24년의 역사를 가졌다. 조합원은 6만여 명이다. 한국 교육을 이끄는 한 축임이 틀림없다. 전교조만 한 위상을 가지고 전교조만큼 시련을 겪은 단체도 없다. 전교조만큼 교육 개혁에 앞장서온 단체도 없고, 전교조만큼 ‘실망’과 ‘해체’란 단어가 쫓아다니는 단체도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3년 2월25일 취임했다. 1997년 대선 8일을 앞두고 정치에 입문했다. 정치 인생 15년 만에 정치의 정점에 올랐다. 한국 역사에 기록될 대표 정치인임이 틀림없다. 박 대통령만큼 원칙과 신뢰를 이야기하는 정치인도 없다. 박 대통령만큼 전교조와 태생적으로 불편한 정치인도 없고, 박 대통령만큼 전교조에 노골적으로 증오를 표현한 대통령도 없다.

박 대통령은 취임 뒤 닥친 정치적 위기를 늘 ‘결정적 한 수’로 돌파해왔다. 고용노동부의 ‘전교조 법외노조화 압박’을 박 대통령의 ‘새로운 한 수’에서 찾는 시각이 우세하다. 박근혜 정부는 잃을 게 없고 전교조는 무엇이든 잃을 수밖에 없는 수다. 전교조를 증오하는 대통령의 나라에서 전교조는 ‘선택’의 순간으로 몰리고 있다. 증오의 정도와 선택의 방식에 따라 정국은 흔들릴 것이다. _편집자

10월23일. 전교조에겐 ‘운명의 날’이다. 박근혜 정부가 날짜를 못박았다. 이날 전교조는 버려야 한다. 노조의 법적 지위를 버리든, 해직된 동료들을 버리든, 선택해야 한다. 어떤 정부도 하지 않았던 일이다. 조합이냐 조합원이냐를 양자택일하라며 전교조에 ‘디데이’를 통보한 정부는 박근혜 정부뿐이다. ‘합법화 이래 전교조 최대의 위기’를 이해하는 데는 세 글자 키워드가 중요하다. ‘박근혜’다. “전교조가 교육 현장을 장악하는 일은 막아야 한다”고 그는 오랜 시간 공언해왔다. 그의 정부가 출범한 지 8개월이 차가고, 전교조는 ‘법외노조’의 길목에 서 있다.

10월16~18일 조합원 총투표

“되돌릴 수 없습니다.”

지난 9월23일 서울 영등포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본부 사무실. ‘최후통첩’을 가져온 고용노동부의 한 국장은 “일방적인 통보가 아니냐”고 반발하는 전교조 쪽에 세 차례나 같은 말을 반복했다. 해고자의 조합원 가입을 인정하는 노조 규약을 시정하지 않으면 노조 설립을 취소하겠다는 일방 통보였다. “공문은 가져가고 일단 대화부터 합시다.” 전교조 집행부가 설득했지만 “되돌릴 수 없다”는 답만 돌아왔다.

추석 명절 뒤 예상치 못한 급습이었다. 김정훈 전교조 위원장은 9월26일부터 서울광장에서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1999년 전교조 합법화 이래 최대 위기’라고 시민사회는 판단했다. 전교조의 법외노조화를 저지하기 위해 1천여 개 시민사회단체는 ‘민주교육 수호와 전교조 탄압 저지 긴급행동’을 꾸렸다.


“박근혜 정권의 NLL(북방한계선) 카드는 어느 정도 효력을 다하고 있다. 향후 정국운영에 활용할 새로운 먹잇감을 찾는 과정에서 정권 차원의 전교조 압박이 진행되고 있다고 본다.” -정진후 정의당 의원


지난 9월29일 열린 전교조 전국대의원대회에서는 조합원 총투표를 포함한 ‘전교조 탄압 대응 투쟁계획’이 통과됐다. 한두 번의 소소한 싸움에서 지느냐 이기느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6만 전교조 조합원의 신분이 뒤집히는 문제였다. 대의원대회에는 재적 인원 441명 중 313명이 참석해 70%가 넘는, 역대 가장 높은 참석률을 기록했다. 뜨거운 관심의 반영이었다. 노동부의 명령은 두 가지다. 해고자를 조합원으로 인정하는 규약을 시정하고, 현재 정부가 파악하고 있는 9명의 해고자를 조합 활동에서 배제하라는 것이다. 10월16~18일 총투표에서 전교조는 노동부의 이같은 요구를 수용할지 여부를 조합원들에게 묻는다.

부산지부의 한 간부(50)는 “전교조 설립 당시 해직 사태 이상의 탄압이라고 생각한다. 조합을 설립해 20여 년 이어져왔는데 그것을 뒤집겠다는 것이 아닌가. ‘당신들을 깡그리 없애고 싶다’는 생각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규약 개정 요구를 노동부만의 결정으로 보는 시각은 많지 않다. 전교조는 노동부 뒤에 청와대의 뜻이 작용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정부의 ‘전교조 법외노조화’ 방침이 본격화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9월 한 달 안에 모든 기류가 역전됐다. 8월 청와대에 김기춘 비서실장 체제가 갖춰진 뒤였다. 지난 8월 전교조는 교육부와 10년 만에 협상을 재개했지만 9월16일 교육부로부터 “노조 설립 취소 가능성이 이야기되는 상황에선 정상적인 단협이 어렵다”고 통보받았다. 전교조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했다고 주장한다. 김정훈 위원장은 “정권 차원의 기획이 아니라면 이렇게 밀어붙이지 못한다”고 했다.

‘청와대 의지’라고 판단하는 데는 ‘전국공무원노조(전공노) 설립신고 반려 사건’도 근거로 작용한다. 지난 6월 초 방하남 노동부장관은 김중남 전공노 위원장에게 해고자 배제를 이행할 경우 설립신고를 수용하겠다고 약속했다. 8차례의 실무협상 끝에 노조가 노동부 요구를 이행했으나 8월2일 노동부는 설립신고를 최종 반려했다. 7월25일 신고필증 교부 방침을 밝힐 것으로 예상됐던 기자설명회는 2시간을 남긴 채 갑자기 취소됐다. 취소 6일 전 전공노 설립신고를 놓고 열린 범정부 대책회의에 교육부 관계자가 참석한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규약 개정을 통한 전교조와 전공노 압박이 정권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아이들이 영문도 모르고 반미 외칠 것”

노동부 ‘전교조 압박’의 뿌리는 박 대통령의 오랜 ‘전교조 증오’란 시각이 많다. 합법화 이후 박 대통령만큼 전교조에 대한 노골적인 증오를 표출한 통치자는 없었다. 박 대통령의 전교조 발언을 되짚어보면 규약 개정은 ‘그의 뜻’을 이루기 위한 행정적 절차로 읽힐 정도다.

“이념 교육으로 학교 현장을 혼란에 빠트린 전교조와 유대를 강화하는 것이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까? 아이들이 정치에 휘둘려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대선을 앞둔 12월 텔레비전 토론에서 당시 새누리당 후보였던 박 대통령이 문재인 전 민주통합당 후보에게 던진 말이다. 전교조에 대한 박 대통령의 깊은 반감이 6년여 만에 노출된 순간이었다.

2005년 사립학교법 개정 반대 때 박 대통령의 발언은 ‘전교조 증오’의 정점이다. 12월9일 개방형 이사제 도입을 뼈대로 한 사립학교법 개정안이 가결되자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그는 ‘전교조에 (아이들을) 못 맡긴다’고 쓴 어깨띠를 두르고 거리로 나섰다. “사립학교법 개정은 우리 아이들에게 반미·친북 이념을 주입시키려는 것”이라는 말을 거듭했다. 현장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과격한 발언도 튀어나왔다. “한 마리 해충이 온 산을 붉게 물들일 수 있고 전국적으로 퍼져나갈 수 있다. 이번 날치기법이 시행되면 노무현 정권과 전교조는 이를 수단으로 사학을 하나씩 접수할 것”(2005년 12월15일)이라고 했다. “모든 사학을 전교조가 장악하게 되면 아이들은 영문도 모르고 반미를 외치고, 북한 집단체조인 ‘아리랑’을 보며 탄성만 지를 것”(2005년 12월13일, 서울 명동)이란 선동의 언어도 쏟아냈다. 평소 말을 아끼고 화법이 차분한 박 대표를 생각하면 의외일 정도다. 그의 과격한 발언은 2006년 2월14일 한나라당이 주최한 ‘전교조 교육실태 고발대회’에서도 반복됐다.

13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등 의원,당직자,보좌진,당원 등이 명동에서 연 ‘전교조로부터 우리 아이 지키기 운동’거리 집회에서 열린우리당을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종찬기자 rhee@hani.co.kr

13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등 의원,당직자,보좌진,당원 등이 명동에서 연 ‘전교조로부터 우리 아이 지키기 운동’거리 집회에서 열린우리당을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종찬기자 rhee@hani.co.kr

박근혜 대통령과 전교조는 오랜 악연을 가지고 있다. 2005년 12월13일 사립학교법 투쟁 거리집회에서 전교조를 규탄하고 있는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위쪽)와 정부의 법외노조화 방침에 맞서 지난 10월11일 서울 보신각 앞에서 서울시청까지 삼보일배 시위를 하고 있는 전교조 조합원들.

박근혜 대통령과 전교조는 오랜 악연을 가지고 있다. 2005년 12월13일 사립학교법 투쟁 거리집회에서 전교조를 규탄하고 있는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위쪽)와 정부의 법외노조화 방침에 맞서 지난 10월11일 서울 보신각 앞에서 서울시청까지 삼보일배 시위를 하고 있는 전교조 조합원들.

사학법 장외투쟁은 박 대통령에겐 확실히 ‘남는 장사’였다. 거리에서 53일을 보낸 그는 ‘보수의 마지막 보루’로 확실히 자리매김하게 된다. 송원재 전교조 편집위원은 “이명박 정부도 전교조를 억압했지만 교원노조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진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4·19 교원노조를 엄청나게 탄압하고 빨갱이로 몰았던 것을 보고 자랐기 때문에 교원노조 자체를 불온시하고 부정하는 사고를 갖게 된 것 같다”고 했다.

박 대통령만이 아니다. 그의 ‘날카로운 칼’ 남재준 국정원장은 군인 시절 “전교조를 비롯한 사회 일각의 편향된 시각을 가진 이들이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학생들을 좌편향적으로 의식화했다. 다시는 이 땅에 좌파들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뿌리째 뽑아야 한다”(김현 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남 원장의 취임 전 강연 자료)고 강조한 바 있다. 전교조 법외노조화는 전교조추방국민운동본부 등 보수단체가 지속적으로 전·현 정부에 요구해온 내용이기도 하다.

보수 정권의 ‘손해본 적 없는 장사’

왜 하필 지금일까. ‘증오의 표출’ 시기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국정원 대선 개입 국정조사 등 박근혜 정부는 출범 이후 직면한 정치적 위기를 모두 공안 이슈와 종북 프레임(남북 정상회담 회의록 공개·이석기 내란 음모 사태 주도)으로 돌파해왔다. 타이밍이 절묘한 수였고, 그래서 의도가 읽히는 수이기도 했다. 위기를 넘긴 국정원은 대공수사파트 강화로 국내 정보 수집과 수사권 폐지에 맞춰진 개혁 요구를 묵살했다.

전교조 위원장 출신인 정진후 정의당 의원은 “박근혜 정권의 NLL(북방한계선) 카드는 어느 정도 효력을 다하고 있다. 향후 정국운영에 활용할 새로운 먹잇감을 찾는 과정에서 정권 차원의 전교조 압박이 진행되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규약 개정 논란으로 전교조를 수면 위로 올려놓은 뒤 필요할 때 언제든지 꺼내들 수 있는 카드로 활용할 것이란 얘기다. 보수 정권과 보수 언론이 종북 프레임을 짜는 데 전교조만큼 적극 활용해온 대상도 없다.

보수 정권에서 전교조와의 갈등은 ‘손해 본 적 없는 장사’였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직후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로 국민적 저항에 맞닥뜨린 뒤 일제고사 반대 교사와 시국선언 교사들을 해고하며 보수층 결집을 모색한 바 있다. 전교조를 겨냥한 ‘좌파 이념교육’ 레퍼토리가 ‘적절한 타이밍’에 강도 높게 몰아칠 것이란 우려가 높아지는 이유다. 전교조의 한 지부장은 “이념 논쟁을 활용해 위기를 돌파하는 현 정부의 정국 운영 전략에 전교조가 끌려 들어갈까 걱정”이라고 했다.

‘친일·독재 미화’ 논란을 일으킨 교학사 역사 교과서 검정취소운동에 전교조가 적극 나선 게 정권을 자극했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박정희에 비판적인 전교조가 박 대통령에겐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다. 한 교육 당국 관계자는 “역사 교과서 논란을 보면 정부가 전교조를 겨냥해 어떻게 움직일지 빤히 읽히지 않나. 정부의 전교조 규약 개정 압박은 교육에 대한 통치적 접근이다. 전교조의 역사관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드러낸 것”이라고 풀이했다. 이념 갈등을 부추겨 득을 봐온 정부가 ‘반전교조 정서’를 일으켜 내년 교육감 선거까지 연계하려 한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현재 전교조는 진퇴양난의 수세에 몰려 있다. 하병수 전교조 대변인은 “노동부의 요구를 거부하면 합법화 이후 일궈온 기반을 모두 잃게 된다. 반대로 요구를 받아들이면, 노조로서 자기 정체성에 어긋날 뿐 아니라 해고자들을 두 번 죽이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자조적인 분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법외노조화 오히려 조장

규약 개정을 거부할 경우 노동부는 10월23일 곧바로 ‘노조 아님’을 통보할 것으로 보인다. 법외노조가 된다는 사실에서 조합원들은 1500여 명이 해직되며 시련의 시기를 보낸 ‘비합 시절’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학교 현장의 타격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노동조합법상의 보호를 받지 못하면서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에 제약이 따른다. 단협을 요구할 수는 있지만 보수 성향 교육감이 있는 지역에서는 묵살될 가능성이 높다. 전교조 본부는 2004년 이후 교육부와 단협을 체결한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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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보조금도 깎인다. 당장 지난 10월10일 서울시교육청은 전교조 서울지부가 추진하는 학생청소년문화사업과 교육활동개선 현장실천사업에 대한 보조금 3천만원 지원을 잠정 보류했다. “보조금을 줬다가 전교조가 법외노조가 되면 이를 회수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현재 활동 중인 노조 전임자의 휴직 사유도 소멸된다. 80여 명의 전임자들이 학교 업무와 노조 업무를 병행하게 되므로 “노조 활동과 다른 노동자들과의 연대 활동들이 위축될 것”이라고 이현 정책실장은 설명했다. 관리자의 부당노동행위에 맞선 대응도 힘겨워질 수밖에 없다. 사립학교 교사들의 피해가 클 전망이다.

반대로 규약 개정을 수용하면 노동부가 찍은 9명의 해직 교사는 조합원 자격을 잃게 된다. 전교조는 정부 요구에 굴복했다는 내·외부 여론에 직면할 수 있다. 해직 교사를 보호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내부 갈등이 생길 수도 있다. 규약 개정 거부와 수용 사이에서 전교조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매우 좁다. ‘양수겸장’이다. 정부의 전교조 공격은 과거보다 한층 치밀하고 정교해졌다.

전교조 교사 다수는 ‘법외노조화는 전교조 압박의 서막’일 뿐이라고 보고 있다. 규약 개정으로 박 대통령의 증오가 멈출 것 같지 않다는 데서 전교조의 고민은 깊다. 정부가 오히려 법외노조화를 조장하는 듯한 상황도 관찰된다. 전교조 규약은 과반수 득표로 총투표 결과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나, 노동부는 3분의 2 이상 개정 의견이 나와야 인정한다는 의사를 전교조에 전달했다. 규약 개정을 요구하는 노동부의 방침이 오히려 규약 개정을 어렵게 하는 셈이다. 김정훈 위원장은 “우리가 규약을 개정하더라도 정부는 어떤 꼬투리를 잡아서라도 법외노조로 밀어내려 할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너희는 합법노조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속내가 보인다”고 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신계륜 위원장(민주당)이 최근 방하남 노동부 장관을 만나 “정치적 판단을 하지 말라”고 요구한 것도 같은 우려 때문이다. 신 위원장은 과의 전화 통화에서 “방 장관은 규약 개정 외엔 다른 정치적 판단이 없다고 했지만 정부가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정국을 끌고 가려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있다”고 했다. 그는 “10월15일 환노위 국정감사에 전교조 위원장을 출석시켰다. 이 자리에서 의도가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전교조에 대한 의사를 분명히 밝히라고 방 장관에게 요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총투표일이 가까워오면서 현장 조합원들 사이에도 긴장감이 감돈다. 본부와 지부에선 날마다 총력투쟁을 예고하는 문자메시지가 날아온다. 규약 개정 거부와 수용을 두고 현장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한 서울 지역 조합원(44)은 “개인적으론 정부가 압박한다고 해고자 관련 규약을 수정하고 조합원 자격을 박탈한다면 ‘과연 우리가 그렇게 만들려고 했던 조합인가’라는 의문이 든다. 그렇지만 합법화를 위해 많은 대가를 치렀는데 법외노조가 되면 너무 많은 걸 잃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현장에서 많이 나온다”고 전했다.

어느 쪽이든 ‘박빙’일 것

사립 중학교의 한 조합원(35)은 “법외노조화를 반대하는 경우 ‘몰인정하거나 정의롭지 못하다’는 시선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숨은 의견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가 전교조 내부 싸움을 붙이려는 의도도 있는 것 같다”고 말하는 조합원도 있었다.

총투표 전망은 안갯속이다. ‘숨어 있는 밑바닥 조합원의 민심’이 파악되지 않는 까닭이다. 어느 쪽이든 ‘박빙’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하병수 대변인은 “전교조를 무력화하려는데 총력투쟁해야 하지 않느냐는 의견과, 현실적으로 법내 노조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갈리고 있다. 찬성이든 반대든, 3분의 2를 넘기긴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교조의 한 지부장은 “전교조가 창립 초기만큼 지지를 받지 못하는 데는 우리 스스로도 반성하는 점이 있다”고 했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박 대통령이 후보 시절 ‘행복교육’을 이야기했다. 6만의 조합원을 가진 전교조를 박멸 대상으로 여겨서는 학교 현장의 행복은 불가능하다. 박 대통령은 전교조를 척결할 게 아니라 교육의 파트너로 인정해야 한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이문영 기자 moon0@h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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