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정부가 등 떠밀지 않아도 조합보다 학교가 좋다

학원 민주화투쟁 중, 교육감 후보 선거운동 하다가 해직된 교사들… 정부가 지목한 9명은 어떤 교사들이던가
등록 2013-10-16 13:57 수정 2020-05-03 04:27

“조합 안에서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늘 고민하게 돼요. 거리로 나온 교사들은 아이들에 대한 갈증이 있거든요. 내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건가, 싶지요.” 운동장을 나서면 “춘배쌤! ” 부르며 달려오던 아이들의 웃음이 아직 또렷하다.

9명을 버리면 6만 명이 산다. 해고자 9명을 구하고자 하면 6만 조합원이 법망 밖으로 밀려난다. 지난 9월23일 고용노동부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에 내놓은 ‘명령’은 잔혹하다. 누군가는 이 싸움이 “해고자들을 두 번 죽이는 일”이라며 분노한다. “조합을 위한 합리적 선택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들려온다.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조합원 총투표의 웅성거림 속에서 ‘거리의 교사’ 9명은 만감이 엇갈린다.

“정치와 교육은 분리될 수 없습니다”

“정부가 해직자 문제를 빌미 삼은 것이기 때문에 저야 말 한마디 꺼내는 일도 조심스럽지요.” 2012년 해직된 송원재(56) 교사는 주저하며 말을 꺼냈다. 송 교사는 2008년 교육감 선거 당시 공무원 신분으로 주경복 전 서울시교육감 후보를 지원하는 불법 선거운동을 한 혐의로 기소됐다. 서울 고척고등학교에서 한국근현대사를 가르치던 그는 지난해 11월 대법원에서 벌금형을 선고받고 교직에서 물러났다.

1981년 난곡중학교에서 교직 생활을 시작한 뒤, 송 교사는 또래의 청년 교사들과 함께 교육민주화운동을 전개했다. 1989년 전교조 설립 당시 해직됐다 1994년 복직했다. 30년 교직 생활 중 6년을 교단 밖에서 보냈다. ‘거리의 교사’가 익숙할 법도 하다. “그래도 삶의 터전에서 밀려나는 일은 언제나 아프더라”고 송 교사는 말했다.

인천외고 학원민주화투쟁 중 해직된 박춘배 교사
사진 엄지원 기자

인천외고 학원민주화투쟁 중 해직된 박춘배 교사 사진 엄지원 기자

지난 10월1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인천지부 사무실에서 박춘배 교사가 컴퓨터로 업무를 보고 있다. 인천외고에 근무했던 박 교사는 2004년 4월 사학민주화투쟁으로 해직됐다(위쪽). 송원재 교사는 2008년 지방선거 때 주경복 전 서울시교육감 후보의 선거운동을 벌인 혐의로 벌금형을 받아 2012년 서울 고척고등학교에서 해직됐다. 2007년 체벌 금지를 촉구하는 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는 송 교사의 모습.한겨레 엄지원 이정아.

지난 10월1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인천지부 사무실에서 박춘배 교사가 컴퓨터로 업무를 보고 있다. 인천외고에 근무했던 박 교사는 2004년 4월 사학민주화투쟁으로 해직됐다(위쪽). 송원재 교사는 2008년 지방선거 때 주경복 전 서울시교육감 후보의 선거운동을 벌인 혐의로 벌금형을 받아 2012년 서울 고척고등학교에서 해직됐다. 2007년 체벌 금지를 촉구하는 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는 송 교사의 모습.한겨레 엄지원 이정아.

보수 진영은 송 교사와 같은 이들을 들어 전교조를 ‘정치교사 집단’ 혹은 ‘교단의 정치화’ 프레임에 가둔다. 송 교사는 그같은 시선이 불편하다. 교사의 정치적 기본권은 전교조의 오래된 화두다. “교육의 가치 문제를 두고 싸움이 벌어지면 결국 정치 문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현직 교사 신분으로 교육감 선거에 관여한 것도, 시대착오적인 이들이 교육행정을 장악하니 학교 현장이 숨을 쉴 수 없기에 시민사회와 뜻을 모은 거지요. 정치와 교육은 분리될 수 없습니다.” 여전히 교사의 기본권을 힘주어 말하는 송 교사가, 더는 교사가 아니라는 사실은 아이러니다.

고용부의 도마에 오른 9명의 해고자 가운데 6명이 송 교사와 같은 이유로 해직됐다. 나머지 3명의 교사는 각각 사학민주화투쟁과 공안사건으로 교단을 떠났다. 처음 해직된 교사도 있고 송 교사처럼 몇 차례씩 해직된 교사도 있다. 그러므로 이들 9명의 역사는 고스란히 전교조 투쟁의 궤적이기도 하다.

박춘배(47) 교사는 2004년 4월24일, 인천외고 학원민주화투쟁으로 파면됐다. 그에게는 이후 복직의 기회가 없었다. 교단에 서지 못한 지 10년. “아이들을 만나는 희열을 빼앗긴” 교사에게 크게 두려울 일은 없다. 감정의 부침은 겪을 만치 겪었다. 고용부의 ‘법외노조화’ 방침을 듣고도 그는 다만 “조합원끼리 갈등하거나 반목하는 일만 없었으면 좋겠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인체공학 의자와 나무의자로 차별하던 학교

박 교사는 처음부터 ‘전교조 교사’가 아니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주장처럼 ‘친북·반미 교육을 하기 위해’ 교육 현장에 침투한 활동가가 아니었다. 다만 시절이 하수상했다. 박 교사가 임용된 인천외고의 학교법인 신성학원은 1989년 전교조 설립 당시 20명의 전교조 교사를 해고해 ‘엄혹한 학교’로 악명 높았다. “교사들이 한 데 모여 있기만 해도 교장 선생님이 ‘왜들 모여 있냐’고 하던 식이었죠.” 교사 한 사람의 목소리로는 경직된 학교를 바꿀 수 없음을 깨닫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1999년 전교조가 합법화됐다. 이듬해 박 교사는 10여 명의 동료 교사들과 함께 전교조 인천외고분회를 창립했다.

2003년 7월, 신성학원은 새 교장을 임명했다. “교육부 출신의 인재”라는 약력이 소개됐지만 뒤로는 “전교조를 누르기 위한 영입”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새 교장은 사관학교를 모방해 벌점 제도를 만들었다. 먹던 간식을 매점 밖으로 들고 나오기만 해도 아이들의 태도 점수를 깎았다. 점수가 모이면 퇴학시켰다. 성적에 따른 우열반을 나눠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인체공학형 의자에, 공부 못하는 아이들은 딱딱한 나무의자에 앉혔다. 교직원 조회에서 문제 제기가 이어지자 ‘문제 교사’의 발언을 캠코더로 ‘채증’하기 시작했다. 무거운 침묵이 학교를 짓눌렀다. “회의의 민주성이 담보되지 않으면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민주적 학사 운영’을 주장하던 박 교사는 잇단 경고 끝에 파면 징계를 당했다.

파면 뒤 박 교사는 조합에서 일하며 생계비를 지원받고 있다. 그래도 갈증은 남는다. 조합에서 나가라고 정부가 등 떠밀지 않아도, 박 교사는 조합보다 학교를 좋아한다. “조합 안에서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늘 고민하게 돼요. 거리로 나온 교사들은 아이들에 대한 갈증이 있거든요. 내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건가 싶지요.” 운동장을 나서면 “춘배 쌤!” 부르며 달려오던 아이들의 웃음이 아직 또렷하다.

원직 복직은커녕, 학생들과 연결된 유일한 끈인 조합을 떠나라는 정부의 명령은 야속하다. “전교조 조합원으로서 20년 동안 지켜온 자부심을 의지와 무관하게 당장 버리라고 하는 것이 공정한 요구인지 묻고 싶다”고 박 교사는 지난 9월30일 국가인권위원회에 낸 진정서에 적었다.

해직 교사들은 스스로 ‘이해 당사자’로 비치는 것을 꺼렸다. 더 많은 조합원을 위한 결정에 부담이 되는 것을 우려하는 듯했다. 전교조 대변인, 서울지부장 등을 맡아 늘 앞에서 싸워온 송원재 교사도 이번엔 침묵할 도리밖에 없다. “자칫하면 해직자 살자고 조합을 어려운 상황으로 만들 수도 있으니 말을 아껴야지요. 부담을 줘선 안 되지요. 조합원들의 선택을 기다려야 합니다.”

오늘은 내가 해고자지만…

2005년 부산 통일학교 사건으로 해직된 한경숙(50) 교사도 마찬가지다. 부산 사상고에서 생물 과목을 가르치던 한 교사는 북한의 역사책을 인용해 만든 자료집으로 동료 교사들과 통일 관련 세미나를 한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아 해임됐다. “‘규약이 바뀌어서 내가 조합원에서 배제되면 어쩌나’, 그런 부담을 갖지는 않아요. 오늘은 내가 해고자지만 다음엔 다른 동료 교사들이 해고자가 될 수 있으니까. 해고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노조의 자주성을 침해하는 문제로 봐야겠지요.”

앞장섰던 이들의 존엄이 지켜지지 못하면, 뒤에서 걷던 이들의 걸음은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 해직 교사는 전교조의 교육투쟁에서 번번이 앞자리에 선 이들이다. 2004년 서울 상문고 부패 재단 퇴진 투쟁을 벌이다 해직된 이을재(54) 교사가 걱정하는 것은 다만 그 일이다. “늘 그래왔던 대로 권력은 횡포를 부릴 텐데,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극복해나가느냐에 달린 것 같아요.”

9명의 해직 교사들을 배제하면, 전교조는 ‘법외노조’의 화살을 비껴갈 수 있을까. 고용부는 전교조에 해고자 9명이 조합 활동에서 손 뗐다는 것을 증빙하는 서류를 요구했다. 그러나 기실 해직 교사는 9명이 전부가 아니다. 전교조가 파악하는 해고 조합원의 수는 고용부가 내민 명단보다 많다. 22명이다. “9명의 명단은 교육부가 각 시·도교육청을 통해 복직 소송의 확정판결을 받은 이들을 중심으로 파악한 것”(임성진 교육부 사무관)이다. 이번에 명단에서 빠진 해고자는 언제든 추가로 파악될 수 있다. 9명의 해고자를 ‘두 번’ 죽이고도 쉽게 끝날 싸움은 아니라는 뜻이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