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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연금 뒤흔들며 민간연금이 몰려온다

등록 2013-02-25 08:54 수정 2020-05-02 19:27
불행한 시대다. 오래 사는 게 위험이고, 재앙이란다. 다들 ‘장수리스크’ ‘100세 쇼크’ 따위 끔찍한 말들을 금과옥조로 여기며 살아간다. 길어진 노후와 짧아진 노동활동 사이에 생기는 비참한 공백이 두려운 이들은 수십 년 뒤의 생활비를 미리 준비하느라 현재의 삶을 돌볼 여유도 없다. 그나마도 여력이 없는 이들은 모두 포기한 채 불안을 그냥 견딘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도 국민의 노후 종잣돈인 국민연금은 주인들로부터 외면당하기만 한다. 400조원에 이르는 국민연금기금을 쌓아둔 우리가 평생을 노후에 대한 공포를 껴안고 살아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 답을 찾아봤다. _편집자

직장인 박호정(39·가명)씨는 지난해 연금저축보험에 가입한 뒤 매달 35만원씩을 붓고 있다. 10년을 내면 만 55살부터 70살까지 다달이 50만원가량을 받을 수 있는 상품이다. 대신 3년 전 든 적금은 해약했다. 한 달 260만원 수입에 월세·민간건강보험료·연금저축보험료까지 내면 생활비도 빠듯한 탓이다. “40살을 앞두고 노후에 대한 불안이 커졌다. 국민연금이 있지만 그냥 세금이라고 생각한다. 나중에 받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별로 없다. 연금저축보험 가입으로 생활은 쪼들리지만 마음은 든든하다. 그래도 정부보다는 삼성생명이 약속을 잘 지키지 않을까.”

국민의 노후 소득 안전장치인국민연금은 후한 지급 구조로 설계된 탓에 언젠가는 기금이 고갈될 운명을 타고났다. 그러나 대부분의 정권은 국민연금제도 개선에 필요한 정치적 위험을 지는 대신 간편하게 사적연금 시장을 활성화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국민의 노후 소득 안전장치인국민연금은 후한 지급 구조로 설계된 탓에 언젠가는 기금이 고갈될 운명을 타고났다. 그러나 대부분의 정권은 국민연금제도 개선에 필요한 정치적 위험을 지는 대신 간편하게 사적연금 시장을 활성화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10명 중 7명 ‘노후 경제적으로 불안’

이 온라인 설문조사기관인 두잇서베이를 통해 2월5~8일 성인 3604명에게 노후 준비에 대해 물었다. 10명 중 7명(70.6%)이 ‘노후에 대해 경제적으로 불안하다’고 답했다. 공적연금인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는 매우 낮았다. ‘가장 의지하고 있는 노후 준비 수단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별다른 준비가 없다’는 답변이 34.3%로 가장 많았다. 그다음은 연금저축보험·연금저축신탁·연금저축펀드 등 연금저축(23.5%)이 뒤를 이었다. 국민연금(21.4%)은 3위로 밀렸다. 정부가 운영하는 국민연금이 민간 금융회사가 판매하는 상품보다 미덥지 못하다는 의미다. 실제 연금저축에 가입한 이유로 국민연금에 대한 불안과 불신이 압도적으로 많이 꼽혔다. ‘국민연금을 받더라도 충분치 않을 것 같아서’(52%)와 ‘국민연금 기금 고갈로 나중에 제대로 받지 못할까봐’(26.1%) 등이다. 보유한 연금저축 상품 개수는 1개가 31.1%로 가장 많았지만 2개(17.6), 3개(3.7%)라는 응답도 적지 않았다. 공·사 연금에 이중·삼중으로 가입한 탓에 가계는 쪼들리고 있었다. 10명 중 7명(69.1%)은 연금이 가계에 부담을 준다고 했다. 노후 준비에 현재의 삶을 저당 잡힌 셈이다. 백지훈(33)씨의 하소연이다. “연금저축보험에 25만원씩 낸 지 3년째다. (납입 기간이) 7년이나 남아서 걱정되지만 노후를 생각해 ‘이것만은 꼭 유지하자’고 다짐하며 산다. 어쩔 땐 연금 내려고 회사 다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신생아까지도 연금저축에 가입할 수 있게 된다. 연금저축은 일찍 가입하면 나중에 받는 연금액이 크게 뛴다. 적은 비용을 들여 자녀의 노후까지 책임져주는 훌륭한 선물인 셈이다.
금융회사들은 연금저축 상품을 판매하려고 노후 불안을 조장하는 마케팅에 열을 올린다. 적어도 2020년까지는 사적연금 시장 규모가 국민연금 기금보다 더 빠른 속도로 불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한겨레 자료

금융회사들은 연금저축 상품을 판매하려고 노후 불안을 조장하는 마케팅에 열을 올린다. 적어도 2020년까지는 사적연금 시장 규모가 국민연금 기금보다 더 빠른 속도로 불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한겨레 자료

개인이 사회보험인 국민연금은 믿지 못하고 민간보험인 연금저축에 매달리게 된 건 정부가 자초한 일이다. 정부는 지금껏 연금저축·퇴직연금 같은 사적연금의 장점을 부각시키며 그 시장을 의도적으로 키워왔다. 그중에서도 개인에게 노후 책임을 지우는 연금저축 확대에 특별히 공을 들여왔다. 최근 그 결정판이 나왔다. 대선 뒤 한창 어수선하던 지난 1월 중순이었다. 헌법재판소장으로 지명된 이동흡 헌법재판관의 각종 과거 비리와 감사원의 ‘4대강은 총체적 부실공사’ 발표 등으로 여론이 들끓던 때였다. 기획재정부는 12년 만에 사적연금의 대표주자인 연금저축제도를 뜯어고치는 개편안을 조용히 발표했다. 자연스레 자세한 내용은 여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일부 언론만 주로 세테크의 관점에서 유불리를 따져 보도했다. 그러나 개편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공적연금 체계를 뒤흔드는 정부의 빈곤한 철학이 그대로 드러난다. 민간 금융회사의 영역인 연금저축 시장의 빗장을 풀어주려고 애쓴 흔적이 곳곳에 보이기 때문이다.

일단 연금저축에 가입할 수 있는 나이 제한(만 18살 이상)을 없앴다. 청소년은 물론 신생아까지도 노후 대비 상품인 연금저축에 가입하란 소리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연금저축의 핵심은 소득공제에 있는 만큼 소득이 없는 미성년자가 연금에 가입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그냥 사적연금 시장 확대를 위해 불필요한 규제를 정리하는 조처”라고 말했다. 그러나 기획재정부의 설명은 반만 맞는다. 절반의 진실은 거짓보다 못할 때가 있다. 연금저축은 소득공제 따위에 연연하지 않는 여유 계층에겐 매력적인 상품이다. 연금저축은 똑같은 돈을 같은 기간 동안 납입하더라도 일찍 가입하면 나중에 받는 연금액이 크게 뛴다. 게다가 연금저축을 통해 미리 조금씩 증여하면 세금부담이 훨씬 덜하다. 적은 비용을 들여 자녀의 노후까지 책임져주는 훌륭한 선물인 셈이다.

겉으론 그럴싸한 ‘노후소득보장 다층화’

연금저축 가입을 유도하는 조처는 또 있다. 연금 수령에 필요한 의무납입 기간을 최소 10년에서 최소 5년으로 대폭 줄였다. 반면 납입한도는 연간 1200만원에서 1800만원으로 확대했다. 연금소득의 분리과세 한도도 600만원에서 1200만원으로 늘렸다. 연금저축의 취지에 맞게 개편된 조처는 연금 수령 기간을 5년에서 15년으로 늘려 잡은 것 정도다. 한 대형 증권회사 관계자는 “금융회사들이 계속 요구해온 소득공제 한도(연 400만원)를 늘려주지 않은 것은 안타깝지만 나머지들도 가입을 늘리는 데 효과는 있을 것으로 본다. 지금까지 그래온 것처럼 정부가 지속적으로 규제를 완화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949호 노후 준비에 관한 생각

949호 노후 준비에 관한 생각

이번 제도 개편에는 연금제도를 민간 영역으로 확대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확실히 반영돼 있다. 여기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노후생활 보장의 책임을 국가에서 개인으로 최대한 옮기고, 노후생활비를 굴릴 주체도 정부에서 민간 금융회사로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개인에겐 부담을 지우고 금융회사들엔 시장을 넓혀주는 꼴이다. 이를 정부는 ‘노후소득보장 다층화’라는 그럴싸한 말로 포장했다. 국민연금만으로는 노후생활을 충분히 준비할 수 없으니 퇴직연금(기업연금·2005년 도입)과 연금저축(개인연금·1994년 도입) 같은 민간영역을 동원해 보완하겠다는 취지다. 1차로 정부가 기초 보장을 해주면, 기업이 노동자들에게 2차로 중간 보장을 해준 뒤, 마지막으로 개인이 자발적인 준비를 덧붙이는 방식이다. 정부는 이런 논리로 기업과 개인에게 세제 혜택 등을 주며 가입을 유도해왔다. 그 덕에 전체 상용노동자의 46%(2012년)가 퇴직연금에 가입했고, 가구주의 31.3%(2011년)가 연금저축에 가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와 일부 전문가들은 연금저축 가입자가 “아직도 부족하다”고 하지만 짧은 사적연금 제도 도입 기간을 고려하면 적지 않은 성과다. 그런데도 정부는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연금저축 가입률을 끌어올리겠다며 이번에 대폭 규제를 풀어준 것이다.

사적연금에 대해 정부가 지나치게 홍보하면 개인은 ‘국민연금은 불안한제도’라는 신호로 받아들인다. 가입자들은 국민연금을 연체하는 등 회피하고, 미가입자는 자발적으로 가입하지 않게 된다.

정부·기업·개인이 함께 고령화 시대에 대비하는 ‘연금 다층화’는 말로는 그럴싸하다. 그러나 뒤집어 생각하면 연금제도에 시장주의가 강화된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연금 다층화는 국내 연금제도가 복지국가들이 주로 도입한 ‘사회보험 모형’에서 영미식 제도인 ‘다층보장 체계’로 변화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사회보험 모형은 단일 공적연금이 전 국민을 대상으로 비교적 높은 수준의 은퇴 뒤 소득을 지급하는 방식인 반면, 다층보장 체계는 국가가 기본적 소득보장만 책임지고 그 외의 보장은 개인의 결정에 따라 선택하게 하는 방식을 뜻한다. 물론 사회보험 모형을 채택한 독일·스웨덴 등도 고령화와 저성장으로 재정위기를 맞은 공적연금을 개혁하며 개인연금(연금저축) 가입을 유도하기는 했지만 우리와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김진수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교수의 지적이다. “정부가 말하는 다층화의 의미는 국민연금으로 기초보장을 하되 사적연금은 소득비례적 성격을 갖게 하겠다는 거다. 그러나 현재 성인 중 절반은 사실상 국민연금의 사각지대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연금의 바닥을 튼튼하게 하지는 않고 상용직 노동자 같은 중간층 이상이 가입할 수 있는 사적연금만 활성화하겠다는 건 위험한 발상이다. 저소득층은 다 버리고 중간층 이상만 혜택을 주는 건 오히려 소득 역진적(부자일수록 혜택이 가는 구조)이다.”

연금상품을 판매·운용하는 금융회사들은 관계 연구기관 등을 동원해 ‘장수리스크’ ‘100세 쇼크’ ‘은퇴 크레바스’ 같은 무시무시한 단어들을 개발해 ‘공포마케팅’을 강화해왔다.
저성장·저금리 시대, 금융회사의 기막힌 돈줄

사적연금은 국민연금의 보완재로 도입됐지만 결과적으로 국민연금을 약화시킨다. 부실한 공적 노후 소득보장 수단을 강화해야 할 정부가 제구실을 회피하는 논리로 종종 악용되기 때문이다. 정부와 보수 진영은 1998년과 2007년 두 차례에 걸쳐 국민연금기금 고갈을 늦추려는 재정안정화 조처를 명분으로 급여 수준(40년 가입 평균소득자 기준)을 70%에서 40%(2028년까지)로 대폭 낮출 때도 사적연금 활성화를 대책이라며 제시했다. 납입한 보험료보다 더 많이 받는 후한 구조가 국민연금의 태생적 한계라면 시간이 걸려도 보험료를 인상하는 등의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게 정부의 의무지만 쉽게 포기해버린 것이다. 무엇보다 사적연금에 대한 정부의 지나친 홍보가 위험한 건 개인이 이를 ‘국민연금은 불안한 제도’라는 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이 고갈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된 가입자들은 국민연금을 연체하는 등 회피하고, 미가입자는 자발적으로 가입하지 않게 된다. 이는 국민연금의 재정 악화나 사각지대 확대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정부에만 책임이 있는 건 아니다. 정부 뒤에는 국민연금이 망가져야 이득을 보는 금융회사와 기업들이 있다. 연금상품을 판매·운용하는 금융회사들은 관계 연구기관 등을 동원해 ‘장수리스크’ ‘100세 쇼크’ ‘은퇴 크레바스(소득 공백기)’ 같은 무시무시한 단어들을 개발해왔다. 노후에 대한 불안을 과도하게 부추기는 ‘공포 마케팅’이다. 이런 논리에 설득당한 정부가 사적연금 시장의 규제를 풀어주면 개인은 금융상품을 적극 소비하게 되는 구조다.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시장성도 높아지니 저성장과 저금리로 수익이 줄어든 금융회사들엔 기막힌 돈줄인 셈이다. 실제 금융회사가 기대하는 사적연금 시장의 미래는 장밋빛이다. 사적연금 시장(세제비적격연금 포함)은 2010년 187조원에서 2020년 775조원으로 10년 동안 4배나 성장하리라는 게 우리투자증권 산하 100세연구소의 추정이다. 같은 기간 국민연금 적립금의 증가 속도(325조원→923조원)를 크게 앞지른다.

기업도 적극적으로 환영한다. 사적연금이 강화되면 국민연금 보험료의 절반을 내고 있는 기업의 부담이 상대적으로 줄어들기 때문이다. 한발 더 나아가 재계는 대놓고 ‘국민연금 민영화’를 주장한다. 강제 가입을 폐지해 개인이 자율적으로 가입할 수 있게 하고, 정부도 민간과 경쟁해 연금을 판매하게 하자는 것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자매기관인 한국경제연구원 등이 사적연금 시장이 형성된 1990년 말부터 지금까지 되풀이하고 있는 주장이다. “금융 계열사를 보유한 대기업 집단에는 공적연금 체제가 무너지는 게 여러모로 혜택이 된다. 보험료를 지출하지 않아도 될 뿐만 아니라 사적연금을 더 많이 팔아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정부가 공적연금의 기능을 살리려 하지 않고 사적연금 시장만 확대하는 것은 직무유기다.” 김잔디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간사의 비판이다.

사적연금은 잘해야 원금 돌려받아
기초연금을 국민연금과 연계해 노인별로 다르게 지급하려는 박근혜 정부의 정책이 알려지면서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다. 복지·노인 단체 회원들이 지난 2월7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앞에서 보편적인 기초연금 도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기초연금을 국민연금과 연계해 노인별로 다르게 지급하려는 박근혜 정부의 정책이 알려지면서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다. 복지·노인 단체 회원들이 지난 2월7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앞에서 보편적인 기초연금 도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문제는 사적연금이 개인들의 기대처럼 여유로운 노후생활을 보장해주는 안전판이 아니라는 점이다. 세계은행 같은 국제금융기구가 권고하는 평균소득자(35년 가입 기준) 공적연금의 소득대체율은 30%다. 은퇴자가 받은 공적연금액이 은퇴 전 소득의 30% 수준이면 적절하다는 의미다. 같은 기준을 적용하면 국민연금은 35%로 권고안보다 높게 나온다. 반면 사적연금은 다 합쳐도 권고안(40~50%)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국민연금이 ‘용돈연금’이라 폄하되긴 하지만 아직은 사적연금이 어깨를 견줄 대상이 아니다. 공적연금은 정부가 운영하는 덕에 기금 고갈을 우려할 정도로 후한 지급 시스템으로 설계된 반면, 민간 금융회사가 운영하는 사적연금은 운용 비용을 제외하면 상품에 따라 잘해야 원금 정도를 나눠 돌려주게 돼 있다.

게다가 사적연금만 활성화되면 사회 불평등은 커진다. 사회 구성원의 연대의식에 기반한 국민연금에는 저소득층에게 조금 더 많이 돌려주는 소득재분배 기능이 있는 반면 사적연금은 철저하게 각자가 낸 만큼 받도록 설계된 탓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세제 혜택을 싹쓸이하며 이중·삼중으로 자신들만의 연금 성을 쌓은 여유 계층과 부실한 공적연금에만 의존하는 저소득층의 격차는 점점 벌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김원섭 고려대 교수(사회학)는 “연금저축 시장은 어차피 중산층 시장이다. 연금저축이 수익률도 낮고 금융회사에 비용을 많이 지불해야 하는데도 고소득자들이 가입하는 건 세금을 절약하기 위해서다. 결국 연금저축은 공적 기능은 전혀 없고 부자만을 위한 제도인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양희경(32·가명)씨 부부의 사례를 보자. 회계사인 그와 대기업에 다니는 남편은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에 모두 가입된 상태다. 그런데도 소득공제 한도에 맞춰 각각 매달 35만원씩 연금저축 상품에 돈을 납부하고 있다. “연금저축은 노후에 대한 불안도 있긴 하지만 세테크라는 게 큰 동기부여가 됐다.”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박근혜 정부는 집권 초부터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국민연금의 미래를 결정하는 두 가지 시험대에 올라 있다. 먼저 기초연금 도입이다. 만 65살 이상 모든 노인에게 매달 20만원씩 지급하기로 한 당초 대선 공약을 뒤집고 국민연금 가입자에게는 20만원에 못 미치는 금액만 보전해주기로 가닥을 잡아 ‘국민연금 역차별론’을 자초한 탓이다. 국민연금 폐지를 주장하는 시민운동이 벌어지는가 하면 탈퇴를 고려하는 임의가입자도 늘고 있다. 결과적으로 정부가 기초연금을 어떤 식으로 도입하느냐에 따라 국민연금의 기능과 위상에 큰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게 됐다.

박근혜식 복지가 대답할 차례

3월 말에 예정된 국민연금 기금 고갈 시점 발표도 중대 기로다. 그 뒤 ‘더 내고, 덜 받고’ 식의 개편 주장이 나오면 어떤 식으로든 방침 정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개편안으로 ‘20년간 보험료 44%(현재 9%) 인상안’(한국보건사회연구원)과 ‘2034년까지 연금 개시 연령을 68살(단계적 65살)로 연장안’(국민연금연구원 내부 보고서) 등이 공개돼 가입자들 사이에서 거센 논란이 일고 있다. 정말 궁금하다. 박근혜 정부가 국민연금 망가뜨리기의 공범이 될지 해결사가 될지 말이다. 이제 박근혜식 복지가 대답할 차례다.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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