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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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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납금 1672억원 시효는 2013년 10월

전두환 전 대통령 추징금 징수율은 24.2%, 1년 뒤면 못 받아… 검찰도 못 밝힌 1400억원의 비밀은 놀랍도록 다양한 각종 명의 빌려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
등록 2012-11-03 05:25 수정 2020-05-02 19:27

이제 그만 잊자는 사람도 있다. 1988년 여소야대 국회, 1996년 내란음모 재판, 1997~2007년 민주당·열린우리당 정부를 거치며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재산을 조사할 만큼 하지 않았느냐는 주장이다.

무능, 봐주기 그리고 장기집권이 원죄
오해다. 일단 ‘원죄’가 있다. 야당의 무능, 검찰의 봐주기 수사, 보수정당의 장기 집권 등 세 가지 요소가 전 전 대통령 재산 문제의 원죄다. 전 전 대통령 재산 문제가 처음 제대로 조사된 것은 1988년 국회였다. 국회 다수당은 야당이었지만 행정권력은 전 전 대통령이 만든 민정당이 쥐고 있었다. 5공 비리 청문회는 호기롭게 시작됐다. 5공 청문회 당시 민주당·평민당·공화당의 야 3당이 조사하기로 합의한 권력형 비리 사건만 26건이다. ‘이규동 농장 특혜 비리’ 등 굵직한 주제가 많았다. 노태우 행정부는 국회의 자료 요구를 거부했다. 당시 보도를 보면, 정부는 ‘전두환 대통령 취임 당시와 퇴임시 재산 목록 비교표’ ‘전씨 일가의 해외출장 및 국내외 재산 소유 현황’ 등 꼭 필요한 핵심 자료는 대부분 제출을 거부했다.
그러다 1988년 겨울 전 전 대통령이 백담사로 떠났다. 일종의 정치적 해결이었다. 결정적으로 5공 비리 특위에 힘이 빠졌다. 검찰은 1989년 2월 5공 비리 의혹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대부분의 의혹에 대해 “혐의가 없다”거나 “확인이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야당도 집요하지 않았다. 이창석씨는 ‘동일’ 횡령사건으로 형사처벌을 받았지만, 이규동 전 대한노인회장과 이순자씨는 무사히 수사기관을 피했다. 1990년 민정당·민주당·공화당이 합쳐져 ‘민주자유당’이 만들어졌다. 국회 차원의 진실 규명은 더욱 어려워졌다. 사람들이 투쟁해 겨우 내란음모 재판이 1996년 진행됐다. 내란음모 재판 당시 비자금도 일부 조사됐다. 그러나 수사는 주로 내란죄 혐의에 집중됐다. 미진했다. 당시 비자금 재판 때 검찰이 전 전 대통령의 “압수되지 않은 재산”으로 추정한 게 1400여억원이다. 거기까지였다.
원죄가 전 전 대통령 재산을 덮었다면, 명의신탁은 재산을 파묻었다. ‘명의신탁’이란 ‘재산 소유자 명의를 실소유자가 아닌 다른 사람 이름으로 해놓는 것’을 말한다. 명의신탁을 금지하는 금융실명제가 1993년 8월 전격 실시됐다. 전 전 대통령은 1993년 실명제 실시를 앞두고 소유한 채권을 대거 현금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명제 실시 이후엔 다른 사람 명의로 계좌를 만들어 비자금을 관리했다. 무기명채권을 애용했다. 무기명채권은 현금화할 때 누가 채권을 제시했는지 기록이 남지 않는다. 만기 전에 사채시장에 팔 수도 있다. 1996년 비자금 재판과 2004년 전재용씨 탈세 재판 기록을 검토하면, 전 전 대통령에게 명의를 빌려준 사람의 규모와 다양함에 놀라게 된다.
서울중앙지법에서 1996년 4월15일 전 전 대통령 비자금 공판이 열렸다. 5공화국 때 청와대 재무관이던 손삼수씨가 명의를 빌려준 사실이 검찰 신문 과정에서 드러났다. 손씨는 전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실명제 실시 이후인 1993년 10월 장모 김인애, 형 손진수, 형수 이수자, 형의 장모 최임순, 외가 친척인 성기욱 등의 명의로 21억원어치의 산업금융채권을 현금화한 뒤 그 돈을 전 전 대통령에게 건넸다. 전 전 대통령은 1995년 10월 중순 장해석 전 청와대 비서관에게 12억원을 줘 5년 만기 장기신용채권 12매를 사오도록 했다. 전 전 대통령 가족들이 그 채권을 다시 현금화한 뒤 썼다.

무슨 관계인지 짐작도 안 되는 이름들
전 전 대통령은 김승환 전 동북아전략문제연구소장을 시켜 24억원의 채권을 현금화했다. 경찰이 잡았다 풀어줘 논란이 됐던 전 전 대통령의 조카 조일천씨도 1996년 수사 당시 검찰 수사를 받았다. 조씨는 전 전 대통령의 여동생 전점학씨의 아들이다. 조씨는 당시 검찰에서 “동서인 이아무개, 이아무개의 아버지, 처형 곽아무개 등의 주민번호와 주소 등 처가 쪽 명부를 작성해 연희동 비서실에 건네줬다”고 진술했다. 전 전 대통령은 명의를 빌린 것은 대부분 인정했지만, 정치자금으로 다 썼고 개인적으로 치부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당시 검찰은 자금 추적 끝에 전 전 대통령이 퇴임 당시 보유했던 채권 2129억8100만원 가운데 1992년 이후 현금으로 상환한 돈이 1084억6900만원, 다른 채권으로 재매입한 액수가 842억4300만원이라고 잠정 결론 내렸다. 전 전 대통령이 친·인척 지원금으로 37억5천만원을 쓴 사실도 밝혀냈다. 그러나 친·인척 지원금 등 전 전 대통령이 지출을 인정한 돈을 제외하고 1400여억원의 현황을 입증하지 못했다. 채권 매입 자금이 전 전 대통령에게서 나왔음을 법률적으로 입증하기 어려웠다. 전 전 대통령은 법정에서 “(1400여억원을) 검찰이 철저히 찾아도 못 찾는데 내가 어떻게 찾겠습니까. 그리고 검찰의 조사 내용은 한마디로 환상적인 것으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2004년 수사 검사들은 1996년의 ‘1400여억원’에서 다시 출발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6부의 재판 기록을 보면, 전 전 대통령에게 명의를 빌려준 사람과 금융기관이 무수히 등장한다. 1996년 재판 때 검찰 수사를 받았던 장해석 전 비서관은 2004년 비자금 수사 때도 검찰 수사를 받았다. 이경로 전 제일증권 채권부장도 2004년 전 전 대통령 비자금 수사 때 다시 수사받았다. 참고인이 아닌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은 점이 특이하다. ‘5공녀’ 홍정녀씨도 조사받았다. 이름만 봐서는 전 전 대통령과 어떤 사이인지 전혀 알 수 없는 수십 명이 명의수탁자로 등장한다. 전 전 대통령을 위한 차명계좌를 만들어준 금융기관도 삼성증권 명동지점, 산업증권 명동지점 등 여럿 등장한다. 가령 1998년 삼성증권 명동지점장인 허근씨의 부탁을 받은 국두파이낸스 사장 유병국의 지시로 차명계좌를 만들었다는 금융사 직원들의 진술이 나온다.
장기신용은행 직원은 검찰에서 “5공화국의 자금을 관리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홍정녀, 일명 5공녀, 공아줌마가 나(장기신용은행 직원)를 통하여 1991년경부터 1993년경까지 170억원이 넘는 채권을 매입했다”고 진술했다. 홍정녀씨는 검찰에서 “1992년 2월17일 장기신용채권 1억원권 43매를 매수한 것을 비롯해 1991년경부터 1993년경 사이에 170억3천만원 상당의 채권을 매입했고, 위 채권 매입 자금 중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자금으로 인정되는 100만원이 내(홍정녀) 계좌에 어떻게 들어왔는지 모르겠다”고 진술했다. 이창석씨는 시종일관 해당 채권이 비자금이 아니라 이규동씨의 결혼 축의금이라고 진술했다. 전재용씨는 아버지의 채권을 물려받으려고 노숙자 명의로 차명계좌를 만들었다.





“(1400여억원을) 검찰이 철저히 찾아도 못 찾는데 내가 어떻게 찾겠습니까. 그리고 검찰의 조사 내용은 한마디로 환상적인 것으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

입을 꾹 닫은 명의수탁자들

차명계좌를 만든 사람은 아예 처벌하지 않고, 만들어준 금융기관만 처벌하는 반쪽짜리 금융실명제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그나마 금융기관 처벌 조항도 과태료를 부과하는 수준이다. 이런 반쪽 실명제 때문에, 검찰은 수사를 해놓고도 명의를 빌려준 사람, 금융기관 등을 처벌하지 못했다.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은 이경로 전 제일증권 채권부장도 기소되지 않았다. 이경로씨는 현재 대한생명 부사장이다. 현금화할 때나 만기 전에 사채시장에 팔 때 원래 소유자를 법률적으로 입증하기 어려운 ‘무기명채권’의 특징도 한몫한다. 법원이 전 전 대통령 비자금으로 인정한 채권은 73억5500만원(액면가)뿐이다. 93억5천만원의 채권에 대해서는 심증은 간다면서도 ‘매입자금 출처가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비자금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전 전 대통령 재산의 비밀은 이들 명의수탁자가 쥐고 있다. 은 과거 보도, 등기부등본, 재판 기록 등을 모두 참고해 이들의 연락처를 찾아봤다. 조금이라도 진실을 듣고자 했다. 은 지난 9월7일 이창석씨의 서울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집을 찾았다. 오래 기다린 끝에 아파트 관리자로 보이는 30대 중반의 남성을 만났으나, 그는 이창석씨의 거주 여부 등 어떤 사실도 확인해주지 않았다. 오랫동안 집을 비우는 일이 잦다는 전언이 있었다. 전 청와대 재무관 손삼수씨는 현재 데이터베이스 보안 업체인 ‘웨어밸리’ 대표이사다. 손씨는 인터뷰를 거절했다. 전 전 대통령의 해외재산 관리인으로 알려졌던 김상구 전 오스트레일리아 대사도 수소문했으나 주소나 연락처 등 아무것도 확인할 수 없었다. 전직 대사인데도 외교부에 연락처가 없었다. 전 전 대통령의 재산을 소상히 알고 있는 안무혁 전 국세청장도 인터뷰를 거절했다. 차명계좌를 만들었다는 전 국두파이낸스 직원 유병국씨에게 전 전 대통령과의 관계를 묻고자 지난 9월7일 서울 광장동 극동아파트 자택을 방문했으나 살고 있는 주민은 “유병국씨를 모른다”고만 답했다. 장해석 전 비서관은 미국에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 전 대통령과 이창석씨 집안의 선의를 믿어야 한다는 반론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러기엔 말과 행동의 신뢰를 너무 잃었다. 전 전 대통령은 1996년 4월 비자금 재판 때 1988년 대국민 담화 때 공개한 재산 목록에 대해 “허위로 발표했습니다. 당시엔 정치 상황에 따라 허위로 발표한 것입니다”라고 법정에서 말했다. 등기부등본을 보면, 이창석씨의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는 재산세 체납으로 강남세무서에 의해 2011년 11월17일 압류 상태에 있다. 이창석씨는 동일 횡령 사건으로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금방 사면받았다. 사면 뒤 남은 벌금을 안 내려고 버티다 나중에야 납부했다.

원죄는 오래 지속된다. 서울중앙지검의 설명을 종합하면, 전두환 전 대통령은 부과된 추징금 2205억여원 가운데 532억여원을 내 집행률은 24.2%다. 1672억여원을 미납했다. 추징 시효는 2013년 10월이다. 추징금 2398억여원 가운데 230억여원만 남기고 모두 낸 노태우 전 대통령과 대조된다. 추징 시효가 만료되면 그것으로 그냥 끝이다. 안 내면 그만이다. 원칙은 피고인 본인 명의 재산을 추징하는 것이지만, 명의신탁 재산이 발견되면 그 재산도 추징할 수 있다. 그러나 검찰은 더 이상 전 전 대통령의 명의신탁 채권을 조사하지 않고 있다.



이창석씨는 시종일관 해당 채권이 비자금이 아니라 이규동씨의 결혼 축의금이라고 진술했다. 전재용씨는 아버지의 채권을 물려받으려고 노숙자 명의로 차명계좌를 만들었다.

당시 대검 중수부장은 새누리당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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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전 전 대통령에게 명의를 빌려준 수십 명이 채권을 현금으로 바꿔 전 전 대통령에게 주거나, 전 전 대통령에게서 돈을 받아 채권을 매입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2004년 수사 검사는 입이 무겁다. 당시 대검 중수부장으로 비자금 수사를 이끈 안대희(57) 전 대법관은 지금 새누리당에 가 있다. 당시 대검 중수1과장으로 실무 수사를 맡은 유재만(49) 변호사는 민주통합당 근처에 있다. 당분간 전 전 대통령에게 명의를 빌려준 명의수탁자가 진실을 발언하는 기적을 기대해야 한다.

*참고 자료 (박철언·랜덤하우스중앙·2005), (이장규·중앙일보·1991), (천금성·동서문화사·1981), 1988년부터 현재까지 전두환 전 대통령 재산과 관련한 주요 일간지 보도, 1996년 전두환 전 대통령 비자금 공판 기록, 2004년 전재용씨 조세포탈 형사재판 기록.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김윤정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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