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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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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는 악이 아니다

성장, 개방, 복지 등에 대한 신자유주의 경제학자의 장하준 비판…
시장의 자유와 국가의 개입에 대한 다른 관점이 같은 사실에 대한 평가 다르게 해
등록 2012-04-27 10:27 수정 2020-05-03 04:26

장하준은 한 명이 아니다. 이념적 스펙트럼에 따라 장하준의 얼굴은 다른 시각에서 조명되고, 다른 색으로 그려진다. 여기, 한국 사회에서 가장 적극적인 시장론자 가운데 한 명인 김정호 자유기업원장의 ‘장하준 비판론’을 싣는다. 그의 견해에 동의할 필요는 없다. 다만 김 원장이 그린 장하준의 초상을 어깨너머로 지켜보는 일은 흥미롭다. 한국 사회의 핵심 이슈에 대한, 매우 다른 시각을 수평 비교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_편집자

나는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비판해 마지않는 신자유주의자다. 가끔 같을 때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사안에서 장 교수와 나는 의견이 다르다. 가치관이 다른 것이야 그럴 수 있다 쳐도, 같은 ‘팩트’에 대해서조차 해석이 정반대여서 당황스러울 때가 많다. 팩트가 같은 한 토론을 하다 보면 견해차가 좁혀질 수도 있을 것 같다는 희망으로 이 글을 쓴다. 그런 몇 가지 중요한 이슈들을 소개한다.

경제적 자유와 성장률의 관계

장 교수 글의 가장 중요한 맥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불신이다. 특히 장 교수는 신자유주의가 경제성장에도 해롭다고 주장한다. 한국도, 남미도 신자유주의를 채택해 성장률이 떨어졌다고 한다. 그렇지 않다. 한국만 생각해봐도 그렇다. 1960년대 대부분의 신흥독립국들은 자급자족형 수입대체 정책을 폈다. 반면 한국과 싱가포르, 대만은 굳게 닫혔던 문을 여는 정책을 폈다. 수출 중심 정책이라고 불린 개방정책 때문에 이 나라들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나라가 되었다. 자급자족이 아닌 수출 중심 정책은 당시로서는 신자유주의 정책이었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 최고의 성장률을 구가하는 중국과 인도도 마찬가지다. 철저히 폐쇄와 국가 통제를 고집하던 중국 공산당이 1980년부터 조금씩 자유와 개방을 허용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높은 성장률로 이어졌다. 인도도 철저한 통제경제였다가 1993년부터 자유와 개방을 시작해 높은 성장률을 만들어냈다.

여기에 대해서도 장 교수의 인식은 정반대다. 중국과 인도의 빠른 성장은 이 나라에 국영기업과 정부 개입이 많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미국이나 한국 등과 비교해보면 중국과 인도는 여전히 통제가 많은 나라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방향성이다. 자신의 과거와 비교해서 자유가 늘어나면 더 많은 에너지가 분출되곤 한다. 여전히 개입이 남아 있다고 해서 그것 때문에 성장률이 높아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장 교수의 논리로는 훨씬 더 정부의 역할이 컸던 1980년 이전의 중국, 1993년 이전의 인도는 왜 성장이 저조했는지를 설명할 수 없다.



전체적으로 보면 개방은 오히려 취약한 국내 산업을 위한 자극제였다. 그렇다면 애써서 선진국과의 FTA를 반대해야 할 이유도 없지 않은가.

부동산 버블, 개방에 대한 시각차

오늘날 세계경제를 흔들고 있는 가장 큰 원인은, 서브프라임 사태로 불리는 미국에서의 부동산 버블 붕괴 사건이다. 장 교수는 부동산 버블도 신자유주의 때문에 생겼다고 말한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자들은 그런 비난을 억울하게 생각할 것이다. 통화나 재정으로 경기를 자극하지 말라는 것은 신자유주의의 핵심적 메시지 가운데 하나다. 돈을 풀어 경기를 자극하면 인플레가 생기기 마련이고, 그것을 잡으려고 돈줄을 조이면 경기는 위축된다. 거품 붕괴는 대부분 통화의 증발과 수축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오히려 웬만한 인플레는 괜찮으니 돈을 풀어서라도 경기를 살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장 교수 자신이다. 그것이 지나치면 거품이 생기고 붕괴하는 사고가 터지는 것이다. 장 교수의 인식과 달리, 거품은 신자유주의 처방대로 하지 않기 때문에 생겨난다.

장 교수는 대표적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론자다. 경쟁력 강한 미국 산업들 때문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한국 산업이 피해를 볼 것이라는 걱정 때문일 것이다. 당장의 효과만 보면 맞지만 길게 보면 정반대가 진실일 수도 있다. 국제 경쟁 상황이 잠자던 잠재력을 흔들어 깨울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50년간의 한국 경제의 역사는 개방이 오히려 우리 산업을 강하게 만들었음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1970년대 말 망해도 할 수 없다며 어쩔 수 없이 연 과자시장이었는데, 망하기는커녕 오히려 한국 과자 기업들이 세계로 뻗어나가는 자극제가 되었다. 1987년의 영화시장 개방은 한국 영화의 업그레이드를 가져왔고, 1998년의 유통시장 개방은 너무 강해져서 걱정거리가 된 한국형 대형마트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물론 모든 개방이 그랬던 것은 아니다. 면도기·전구·문구류 등은 개방 이후 외국 제품이 국내 시장을 석권했다. 하지만 이 업종들은 중소기업 고유업종 정책으로 보호한 것이었음을 주목해야 한다. 보호가 국내 기업의 경쟁 의욕을 앗아가버린 셈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개방은 오히려 취약한 국내 산업을 위한 자극제였다. 그렇다면 애써서 선진국과의 FTA를 반대해야 할 이유도 없지 않은가.

복지와 성장의 관계에 대한 시각차

복지 확대에 대한 찬반 논의가 계속되었지만 최소한 ‘팩트’ 그 자체에 대해서는 공통의 인식이 있었다. 복지가 경제성장에 해롭다는 것이었다. 성장론자는 그렇기 때문에 복지의 확대를 경계했고, 복지론자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지를 늘리자고 했다. 장 교수는 논의 출발 자체를 뒤집었다. 복지 지출이 늘면 경제성장도 촉진된다는 것이다. 그 말이 맞다면 복지를 반대해야 할 이유가 사라진다.

장 교수는 증거로서 복지 지출이 큰 스웨덴·핀란드의 성장률이 미국보다 높음을 제시한다. 하지만 그런 파격적 결론을 도출하기 위한 증거로서 이 세 나라의 비교는 충분하지 않다. 이 문제에 대해 가장 종합적인 연구 결과를 내놓은 스웨덴의 안드레아스 베리와 마그누스 헨렉슨 두 학자는 장하준 교수의 주장을 부인한다. 유럽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를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복지를 포함한 정부 지출 비중이 커질수록 경제성장률은 떨어진다는 이론이 맞다고 결론을 내린다.

그러면 스웨덴·핀란드·덴마크 같은 나라는 복지 지출 비중이 그리 높은데도 제법 높은 성장률을 유지하는 이유가 뭔가. 이 논문은 두 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첫째는 국민 사이의 신뢰가 높고, 둘째 복지 이외의 분야에서 매우 시장친화적인 제도를 채택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장 교수는 복지가 잘되기 때문에 시장개방도, 노동시장의 유연성도 받아들일 수 있는 거라고 말할 것이다. 그건 비약이다. 복지 지출이 많은 국가 중에도 정부 개입이 심한 나라가 있고, 복지가 빈약하지만 대부분의 제도가 시장친화적인 나라가 있다. 당장 우리나라만 생각해봐도 그렇다. 무상의료, 무상보육, 무상등록금이 시행된다고 해서 개방 확대, 학교 선택권 확대, 서비스업 자유화 등에 대한 반대 여론이 누그러질 것을 기대할 수 있나? 시장친화적 개혁은 복지 확대와 별개로 국민의 결단이 필요한 사안이다.

팩트는 같은데 해석이 반대라면 둘 중의 누군가는 틀렸다는 말이다. 누가 맞고 누가 틀렸는지를 밝히기 위해 진지한 토론을 제안한다.

김정호 전 자유기업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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