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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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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원전 vs 탈원전

가치의 전쟁 ③경북 영양·영덕·봉화·울진- 새누리당 강석호 vs 녹색당 박혜령… “에너지 기업도시” 만들자는 ‘원전 마피아 논리’에 맞서는 녹색당 후보들의 고군분투
등록 2012-03-28 16:23 수정 2020-05-03 04:26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안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폭탄은 여전히 폭탄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밥줄로 받아들여진다. ‘원자력 마피아’의 중심축인 이명박 정부와 새누리당은 완강하고, 야당들은 오락가락한다. 3월4일 공식 출범한 녹색당이 이번 총선에서 박혜령 후보(경북 영양·영덕·봉화·울진)와 구자상 후보(부산 해운대 기장을) 등 2명의 지역구 후보를 낸 것도 그래서다. 모두 원자력발전소와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처분장(방폐장) 등 핵발전 관련 시설이 밀집해 있는 지역이다. 특히 고리원자력발전소가 위치한 부산 해운대 기장을 지역은 발전소가 ‘12분 가동 중단’ 사고를 은폐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주민들의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그 ‘12분’ 동안 고리 1호기 원자로 냉각수의 온도는 36.9℃에서 58.3℃로 급상승했다. 자칫하면 냉각수가 모두 증발해 방사능이 유출되는 최악의 사태로 이어질 뻔했다.

» 녹색당 후보로 경북 영양·영덕·봉화·울진에 출마한 박혜령 후보(왼쪽)와 부산 해운대 기장을에 출마한 구자상 후보. 이들은 원전시설이 밀집돼 있는 지역에서 ‘탈핵·탈원전’의 가치를 전면에 내걸었다. 이들의 도전은 이번 총선에서 합당한 시민권을 획득할 수 있을까. 녹색당 제공

» 녹색당 후보로 경북 영양·영덕·봉화·울진에 출마한 박혜령 후보(왼쪽)와 부산 해운대 기장을에 출마한 구자상 후보. 이들은 원전시설이 밀집돼 있는 지역에서 ‘탈핵·탈원전’의 가치를 전면에 내걸었다. 이들의 도전은 이번 총선에서 합당한 시민권을 획득할 수 있을까. 녹색당 제공

“태양은 청구서를 보내지 않습니다”

부산 지역에서 잔뼈가 굵은 환경운동가 출신의 구자상 후보는 “12초도 아니고, 12분이다. 후쿠시마 사태 직전까지 갔다는 이야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새누리당의 텃밭으로 불리는 지역에서 치러지는 선거다. 일본 후쿠시마 참사 이후 원전 확대에 대한 저항이 확산되고 있다지만, ‘탈핵’은 여전히 앞뒤 설명이 복잡한 주제다. 구자상 후보는 독일의 환경운동가 프란츠 알트의 말을 인용해 ‘태양은 청구서를 보내지 않습니다‘라는 문구를 선거 슬로건으로 사용하고 있다. “어려운 문제인 건 분명하지요. 하지만 이 슬로건을 지역 주민들에게 보여주면 당장 ‘지구온난화’ ‘환경문제’ ‘원자력발전의 위험성’ 같은 반응이 되돌아옵니다. 한 할머니도 ‘미래에는 꼭 그렇게 되어야지’라고 하더군요.”

안정적인 직장을 버리고 귀농해 영덕에서 17년째 농사를 짓고 있다는 박혜령 후보는 “지난해 일본의 후쿠시마 사태가 주민들의 뇌리에 강력하게 각인돼 있는 상황에서 고리 1호기 문제까지 불거졌다”며 “불안을 호소하는 주민들이 이전보다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민들의 두려움은 두 갈래다. 원전의 위험성이 한 축이라면, 다른 한 축은 다름 아닌 ‘생존’과 직결돼 있다. 실제 원전시설이 몰려 있는 영덕과 울진의 경우 많은 주민들이 ‘원전산업’에 직간접적으로 연관돼 있다. 지역경제 발전이라는 ‘원전 마피아의 논리’도 지역에선 여전히 강력하게 작동한다. 어느 쪽의 불안을 선택하고, 어느 쪽을 망각할 것인가. 처참한 선택지다. “원전시설 부지 선정에 대한 정부의 원칙은 하나예요. 인구가 적고, 학력이 낮고, 서울에서 먼 곳이랍니다. 주민들과 만나 ‘탈핵’을 이야기하면 ‘원자력발전소를 갑자기 없애면 어떻게 하느냐’고 반문하는 이들도 물론 있습니다. 그저 잊고 살다가, 어딘가 사고가 났다고 하면 그 두려움이 다시 각인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어요.”

민주통합당 후보와도 맞서야 하는 운명

이들은 모두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후보 양쪽과 동시에 싸워야 하는 처지다. 박혜령 후보 지역의 새누리당 국회의원인 강석호 후보는 이른바 ‘영포라인’으로 여러 차례 언론에 오르내린 당사자다. 강 후보는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의 “이대로” 선창에 참석자들이 “나가자”로 화답했다는 영포회 행사에서 “경북·동해안이 노났다. 우리 지역에도 콩고물이 떨어지고 있다”는 유명한 발언을 남기기도 했다. 강 후보는 자신의 누리집에 공개한 칼럼에서 “경주·포항·영덕·울진을 잇는 경북 동해안을 국가 에너지산업 특구나 에너지 기업도시 등으로 지정해 명실상부한 국가 에너지 정책의 중심 지역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썼다. 울진군의회 의장을 지낸 민주통합당 정일순 후보는 2003년 울진 방폐장 반대투쟁에서 삭발까지 강행했지만, 2005년에는 돌연 찬성으로 선회했다. 해운대도 마찬가지다. 해운대 기장을 선거의 새누리당 후보는 하태경 열린북한방송 대표, 민주통합당 후보는 류창렬 부산YMCA 부이사장이다. 시민운동가 출신인 류창렬 후보도 ‘원전의 안정성 제고’ 이상의 목소리는 내지 않는다. 구자상 후보는 “여야를 막론하고 원전 문제에 대한 후보들의 인식 자체가 없다”며 “야당 후보까지 ‘안전 원자력’이라는, 말도 안 되는 한심한 소리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총선에서 이들이 내세우고 있는 ‘탈핵·탈원전’이라는 가치는 합당한 시민권을 보장받을 수 있을까. 녹색당의 목표치는 정당투표 5%(투표율 60% 기준 120만 표) 확보를 통한 비례대표 당선과 박 후보, 구 후보의 지역구 승리다. 물론 쉽지 않은 도전이다. 2%(50만 표) 득표에 실패하면 정당을 아예 해산해야 한다. 구자상 후보는 “이번 총선을 통해 안전한 민주주의, 에너지 전환 민주주의라는 획기적인 변화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당선을 목표로 하는 정치인들과는 목표하는 지점이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방폐장 반대투쟁을 할 때보다는 훨씬 나아요. 그때는 관(官)의 탄압이 워낙 치밀해 주민들이 서로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거든요. 선거 기간에는 주민들과 마음껏 이야기는 할 수 있잖아요. 주민들을 만나고, 함께 공감하고, 뜻을 모아가려고 해요.”(박혜령 후보)


주민들의 두려움은 두 갈래다. 원전의 위험성이 한 축이라면, 다른 한 축은 다름 아닌 ‘생존’과 직결돼 있다. 실제 원전시설이 몰려 있는 영덕과 울진의 경우 많은 주민들이 ‘원전산업’에 직간접적으로 연관돼 있다. 지역경제 발전이라는 ‘원전 마피아의 논리’도 지역에선 여전히 강력하게 작동한다.

“해결의 실마리는 서울과 수도권에 있다”

두 후보 모두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오히려 서울과 수도권에 있다”고 입을 모은다. 국가 에너지 정책의 변화는 인구가 밀집해 있고, 전력 소비량이 압도적인 서울과 수도권에서 전력 수요를 줄여야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올해 초 박원순 서울시장이 “재생 가능 에너지를 생산해 원전이 생산하는 전력의 소비를 억제하는 시책이 필요하다”며 “원전 1대 분량의 전력 사용을 줄이는 것이 목표”라고 밝힌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공교롭게도 서울은 3월26~27일 열릴 핵안보정상회의 준비로 분주한 상황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외신과 한 인터뷰에서 “30~40년 또는 50년 뒤 신재생에너지가 경제성을 갖게 되면 원전 역할은 자연스럽게 약화될 것이다. 그 전까지 원자력은 현실적인 징검다리 에너지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로지 원전’으로 반백 년쯤 더 가자는 것이 ‘녹색성장 대통령’의 주문이다. 유독 ‘심판’할 것이 많은 이번 총선이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의 미래에 투표해달라”는 녹색당의 호소에 귀기울이는 것을 과연 ‘전선의 희석’으로만 치부할 수 있을까. 말하자면, TV와 컴퓨터와 형광등은 끄고 투표하러 가자는 이야기다.

송호균 기자 ukno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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