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문제는 남북관계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으로 한반도의 시계가 다시 흐릿해졌다.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대북정책이 중요한 이슈라는 데 정치인과 학자들의 이견이 없다. 다만 2010년 6·2 지방선거 이후 ‘안보 변수=여당에 유리’ 공식이 깨졌다. 보수도 변했다. 이명박 행정부는 격론 끝에 제한적 조문을 허용했다. 그러나 변화는 흐릿하다. 국무회의에서 조문은 절대 안 된다는 반론이 격렬하게 나왔다. 한나라당 안팎에서 ‘안보전위대’는 굳건하다. 이 ‘국가보훈처-행정안전부-국방부-극우단체’로 돈과 사람이 오고 가며 안보전위대가 형성되는 과정을 살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좌파 정권’이라고 비판해온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이 자신이 만든 사조직에 특혜를 준 사실도 드러났다. 안보전위대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_편집자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지지도, 않는다. 맥아더 장군과 그 한국의 노병은 달랐다. 특히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 밑에서 조용히 사라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2004년 7월14일 북한 경비정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왔다. 남한 해군이 그 경비정을 쐈다. 군은 청와대에 “북 경비정이 우리 해군의 교신에 응답하지 않았다”고 보고했다. 사실이 달랐다. 북쪽이 해군의 경고에 응답한 사실이 드러났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철저히 조사하라고 국방장관에게 지시했다. 정보병과에 책임론이 제기됐다. 당시 합동참모본부 정보본부장이던 노병은 마음이 불편했다. 교신 기록을 와 기자에게 건넸다. 국방부가 다시 발칵 뒤집혔다. 노병은 “허위 보고에 대한 책임이 정보병과에 있는 것이 아닌데도 정보병과 잘못으로 흘러가고 있었다”며 “사실을 분명히 하기 위해 언론을 만났다”고 조사를 맡은 국군기무사령부에 말했다. 노병은, 할 말이 많았다. 군기 문란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1971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며 시작한 박승춘의 군인의 삶은 일단 그렇게 끝났다.
군인은 사라졌다. 박승춘 전 본부장은 강한 의지를 가진 인물로 보인다. 동영상 속의 박 전 본부장은 ‘아’ ‘뭐’ ‘음’ 같은 간투사를 쓰지 않는다. 올해 64살인 박 전 본부장의 문장은 단호하다. 눈, 코, 입은 선이 굵다. 보훈처 홈페이지에서 박 전 본부장은 “시골에서 어려운 형편에서 자라다 보니 ‘무언가 되어야겠다’라는 생각을 갖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육사에 지원한 것도 가난하다 보니 경제적으로라도 어머니의 부담을 좀 덜어드리고자 선택했던 것이고요. …특별히 무언가 되기 위해 꿈꾸는 대신 그때그때 주어진 상황에서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왔습니다.”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왔다는 박 전 본부장이 택한 것은 정치의 길이었다. 2008년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에 비례대표 공천 신청을 했다.
당시 대중연설을 보면, 그는 자신을 참여정부의 희생양으로 여긴 것 같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직후인 2009년 6월25일 국제외교안보포럼 초청 강연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민정당 출신 정치인 김현욱 전 의원이 회장을 맡은 단체였다. “지금 노무현 자살 사건으로 일부 국민이 애도하고 추모하는데, 사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640만달러 먹은 게 문제가 아닙니다. 한미연합사를 해체하고 우리 안보를 무너뜨린 그 죄는 반드시 밝혀져야 합니다.”
우리 헌법은 “국군은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수행함을 사명으로 하며 그 정치적 중립성은 준수된다”(5조)며 군부의 중립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확신에 찬 노병에게 중립의 경계는 자주 흐릿했다. 군인의 안보는 휴전선에서 전투를 벌인다. 정치군인 혹은 군인의 정치를 택한 박 전 본부장의 안보 전선은 국회로 옮아갔다. “정부와 한나라당이 쟁점 법안(미디어법, 복면을 금지한 집시법)을 통과시키고 방송을 정상화해서 우리 정책이 국민에게 제대로 전파되도록 만들어야 이명박 정부가 성공할 수 있고, 이명박 정부가 성공해야지만 대한민국이 지켜질 수 있습니다. 2012년 대선에서 잘못되면 여러분 어찌되겠습니까?”(같은 국제외교안보포럼 초청 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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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억4927만원 세금, 안보교육에 지출
노병의 안보 전선은 선거 투표소로도 확대됐다. 2010년 천안함 침몰, 연평도 포격 사건이 계기였다. 노병의 머릿속에서 과제가 점점 뚜렷해졌다. 박 전 본부장은 2010년 5월 전쟁기념관 안보 세미나에서 이렇게 말했다. “(천안함 사건 뒤) 야당과 일부 친북 세력은 북한을 비호하고 이명박 정부의 대북강경 정책이 우리 장병의 희생을 불러온 것처럼 국민을 오도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천안함 사건 이후 이명박 정부와 국민을 이간하는 전략을 구사하는 것입니다. 이런 북의 전략이 6월 지방선거에서 어떤 영향을 미칠는지 두고 봐야 합니다.”
두 연설에서 박 전 본부장의 문제의식이 드러난다. ‘전파’라는 단어는 군에서 널리 사용된다. 국민의 의식을 고취할 ‘안보전위대’가 진실을 알리면 나라를 지킬 수 있다고 그는 생각한 듯하다. 이후 박 전 본부장의 행보에 ‘안보전위대의 재구성’ 과정이 숨어 있다. 국방부가 안규백 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그는 2010년 8월 국방부에 재단법인 ‘국가발전미래교육협의회’(국발협)를 등록시켰다. 국발협은 홈페이지에서 “선진 시민의식과 안보관의 연구·교육·홍보를 통하여 국민들의 국가관과 안보관을 정립하고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키며 국가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밝혔다. ‘안보교육서비스’업 명목으로 사업자등록도 했다. 어떤 조직도 돈과 사람 없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국발협은 재단법인이다. 누군가 재산을 희생해 출연해야 한다. 안규백 의원실 자료를 보면, 박승춘 전 본부장 등 5명이 예금 7500만원을 출연했다.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해 2월 말 노병을 국가보훈처장에 임명했다. 대신 육사 27기 동기 이상태 전 국방대총장이 국발협 회장직을 물려받았다. 대통령령은 보훈처의 직무로 “국가유공자와 그 유족에 대한 보훈, 참전유공자, 5·18 민주유공자에 대한 예우, 제대군인·고엽제후유의증환자·특수임무수행자의 지원 및 보훈 선양, 그 밖에 법령으로 정하는 보훈에 관한 사무”를 든다. 박승춘 처장은 ‘보훈 선양’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때마침 안보산업이 부활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2010년 12월 국무회의에서 ‘전 국민 안보의식 강화’를 지시했다. 행안부의 지시에 따라 전국의 기초·광역 지자체에서 민방위 안보교육이 일제히 부활했다. 참여정부 때부터 2010년까지 거의 모든 지자체에서 민방위 안보교육을 동영상 상영으로 진행해왔다. 이 전국 기초·광역 자치단체에 정보공개를 청구한 결과, 2011년에만 전국 지자체에서 2억4927만원의 세금이 안보교육에 지출된 것으로 드러났다. 경기도는 2011년 안보교육 강사비만으로 1억3072만원을 지출했다. 광주서구청의 안보교육 지출은 2010년 230만원에서 2011년 1890만원으로 뛰었다.
자기가 만든 단체에 특혜를 주고
보훈처와 행안부가 이 과정에서 지자체에 안보교육 강사로 국발협 강사를 추천하는 등 특혜를 준 사실이 드러났다. 서울북부보훈지청은 지난해 7월 관할 지자체에 ‘민방위대원 대상 나라사랑 정신함양 교육특강 협조요청’ 공문을 보내 안보강연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동시에 북부보훈지청은 국발협과 한국자유총연맹 소속 강사를 우수 강사로 추천해줬다. 전국적으로 다른 보훈처 지청에서도 관할 지자체에 같은 요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승춘 보훈처장이 자기가 만든 단체에 특혜를 준 셈이다.
행안부와 국방부도 특혜를 줬다. 행안부는 지난해 2월27일 전국 지자체에 ‘전 공직자 및 국민 안보교육용 표준 안보영상물 및 우수 안보강사 풀 통보’ 공문을 보냈다. 생긴 지 6개월밖에 안 된 국발협 강사가 우수 안보강사에 포함됐다. 강사 명단에 대해 정보공개를 청구했으나 행안부는 거부했다. 지난해 2월25일 국방부는 국발협에 예비군 안보교육을 맡긴다는 ‘예비군 안보교육 강사 운영 협약서’를 체결했다. 안규백 의원실 자료를 보면, 국발협 강사 73명이 지난해 3~11월 군부대에서 모두 1323회의 안보강연을 했다. 강원도의 한 기초자치단체 민방위교육 담당자는 “군청에 출입하는 국정원 직원이 (국발협을) 소개해줬다”고 말했다. 강사 이름을 밝힌 일부 지자체 자료를 종합하면, 국발협은 퇴역 군인, 퇴직 관료, 탈북자 등으로 구성된 것으로 보인다.
이 결과 지난해 전국의 기초·광역 자치단체에서 안보강연을 한 안보강사 455명 가운데 국발협 소속이 144명을 차지했고, 이들이 모두 9500만원 이상의 강연료를 받았다. 정보공개에 포착되지 않은 학교, 공공기관, 군부대 안보강연을 포함하면 이들은 훨씬 많은 안보강연 수입을 올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상태 국발협 회장은 서울 종로구에서 안보강연을 했다. 국발협 외에 재향군인회 강사가 27명이었다. 안보 불똥은 병원으로도 튀었다. 지난해 8월 국가유공자위탁 병원인 경북 경산시 세명병원이 보훈처 요청에 따라 간호사 등 직원을 대상으로 안보교육을 실시했다.
곳곳에서 잡음이 들렸다. 지난해 6월 충남 천안시의 시민은 민방위 안보교육에 관해 에 제보했다. “국발협이라는 단체 소속의 강사가 나와서 정신교육을 시키는 것이 이번 소집교육의 핵심이었다. …강사는 현 정부에 비판을 용납하지 않는 극우의 논지와 천안함 사태 때 의문을 제기한 사람들에 대한 적개심, 효순·미선양 죽음을 계기로 국민문화로 자리잡고 광우병 소 파문으로 틀을 잡아간 촛불문화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종북세력으로 재단하는 오만함을 보여줬다. 급기야 배우 문성근씨가 주도하고 있는 ‘국민의 명령 100만 민란운동’이 실제로 민란을 일으키려는 세력이며 우리 사회를 불안에 빠뜨리려는 간첩세력이라고 주장했다.”( 2011년 6월30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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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정예민방위대’는 여권 선거조직 전환?
안보전위대를 구성하는 돈과 사람은 자꾸 꼬리를 문다. 맹형규 행안부 장관은 2010년 12월 ‘자율정예민방위대’ 창설을 지시했다. 소방방재청은 “관 주도의 수습·복구 시스템으로 피해 최소화가 한계에 봉착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민방위 사태시 사태 수습을 위한 구조·복구”가 이들의 임무다. 봉사정신이 투철하고 정당활동을 하지않는 지역 명망가로부터 자발적 지원을 받아 구성하겠다고 당시 소방방재청은 설명했다. 2012년 3240명을 양성하는 것이 목표다. 소방방재청은 2011년 교육예산 6억4944만원도 책정했다.
그러나 2012년 선거를 위한 여권의 선거조직으로 활용되리라는 우려가 나온다. 취지와 달리 안보교육이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2박3일에 걸쳐 18시간 동안 교육이 진행된다. 이 중 안보강연(3시간), 천안함 등 안보 현장 견학(8시간) 등이 11시간이다. 국발협 소속의 강사 2명이 안보강연을 맡는다. 소방방재청 자료를 보면, 지난해 10∼12월 모두 860명이 자율정예민방위대 교육을 받았다. 소방방재청의 기대와 달리, 지역과 나이가 편중됐다. 경기도(138명), 경북(108명), 경남(79), 부산(73명) 출신 교육생이 많았다. 절반을 넘는 472명이 60대 이상이었다. 남성이 절반을 넘었다.
박승춘 처장은 국제외교안보포럼에서 자주 연설했다. 이 단체는 행안부의 2011년 비영리 민간단체 지원사업 대상에 선정돼 돈을 받았다. 이처럼 군 출신이 대표자이거나 국방부에 등록된 안보단체 여러곳이 행안부 지원금을 타갔다. ‘보훈처-국발협-행안부-국방부 등록 극우단체-국방부’로 구성된 안보전위대에 세금이 흘러갔다. 노병의 오랜 꿈은 이뤄진걸까?
박승춘 처장은 지난 1월4일 새해 업무보고 관련 보도자료를 통해 “2040 세대를 중심으로 햇볕정책과 남북화해가 현 정부의 원칙 있는 대북정책 및 한-미 동맹 강화보다 안보에 유리하다고 잘못 인식”하고 있다고도 밝혔다. 박주선 민주통합당 의원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어 박 처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오늘도 쉬지 않는 안보전위대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이후 대북관계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유연하게 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신종대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여당은 관습대로 천안함 위기 때 안보 변수를 부각시켰는데 (6·2 지방선거에서) 역풍을 맞았다”며 “그걸 분명히 새기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2012년 총·대선에서) 그와 같은 동원은 안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한나라당과 보수의 진짜 변화는 아직 흐릿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민간 조문단을 규제했다. 국무회의에서는 격론이 벌어졌다. 박근혜 한나라당 비대위원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조문에 반대했다. 대북관계를 유연하게 바꾸겠다는 이명박 대통령 아래서, 지금도 자율정예민방위대 교육생들이 입교하고 있다. 대상을 가리지 않는 안보교육은 여전히 이어진다. 노병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안보전위대는 오늘도 쉬지 않는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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