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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거티브는 누구에게 포지티브가 될까?

부정적 면을 오래 기억하는 심리를 파고드는 네거티브의 정치학… 나경원 후보의 끈질긴 네거티브 공세는 젊은 층 투표율 높일까, 부동층 투표율 낮출까
등록 2011-10-28 12:23 수정 2020-05-03 04:26


현재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관련해 관심을 갖게 되는 대목은 네거티브 캠페인이 유권자의 투표 참여에 끼칠 효과다. 이 문제는 박원순 후보에 대한 한나라당의 네거티브 공세를 두고 “20~40대와 부동층의 투표 참여율을 떨어뜨리기 위한 고도의 전략”이라는 야당·시민사회의 ‘합리적 의심’과도 맞닿아 있다.

“속지 말자. 사람들은 네거티브 캠페인을 좋아한다.”(커윈 C. 스윈트)

네거티브. 점잖은 사람이 할 일은 못 된다는 것, 너도 알고 나도 안다. 그것이 하나의 인격체를 대상으로 행해질 땐 더 그렇다. 경우에 따라 ‘검증’이란 고상한 언어로 포장되지만, 속되게 표현하면 ‘신상털기’다. 정치판의 네거티브 캠페인이든 인터넷 신상털기든, 관통하는 욕망은 매한가지다. 가학과 관음증이다.

정책 역량을 누른 네거티브 공세

네거티브를 학적 언어로 정의하면 이렇다. 경쟁자의 부정적 측면을 부각시켜 반사이익을 취하려는 전략적 행동. 성공을 위한 처세에서부터 상품 마케팅과 정치 선거에까지 두루 활용되지만, 자신의 긍정성을 앞세워 지지(구매)를 호소하는 행위(포지티브 캠페인)보다 윤리적 정당성이 떨어진다는 점은 누구든 쉬 부정하지 못한다. 네거티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정치 영역에서 두드러지는데, 도덕정치의 전통이 뿌리 깊은 유교문화권에선 특히 그랬다. “절교한 뒤에도 험담하지 않는다”(君子交絶 不出惡聲)는 ‘군자의 덕’에 비춰본다면, 네거티브는 잡배들의 전유물일 뿐이었다.

한국에 근대 민주주의가 이식된 뒤에도 네거티브 캠페인은 ‘후진 정치’의 전형적 사례로 간주됐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정치의 정상화(선진화)를 위해 시급히 치유해야 할 ‘유아기적 병리’였다. 그러나 뒷담화와 험담을 즐기는 게 비단 아이들뿐이던가. 200년이 넘는 미국의 유구한 선거 역사가 말 그대로 ‘네거티브의 진화사’였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네거티브 매체는 초창기의 편지와 팸플릿에서 신문과 텔레비전 광고, 전자우편, 인터넷 동영상, 트위터 등으로 진화를 거듭했다. 메시지 전달 기법에도 인지과학 이론과 첨단의 영상공학이 동원되는 등 꾸준한 과학화가 이뤄졌다.

선거 전략가들이 네거티브의 유혹을 떨쳐내지 못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인간은 긍정적 메시지보다 부정적 메시지에 한층 민감하게 반응할 뿐 아니라, 그것을 더 정확하게 오래 기억한다는 속설 탓이다.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부정성 효과 이론’(Negativity Effect Theory)이다. 을 쓴 미국 정치학자 커윈 스윈트(조지아주 케네소주립대 교수)는 말한다. “분명한 이유는 이런 전략이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드라마와 가십거리를 좋아하는데, 선거는 이런 두 가지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다. 또 다른 이유는 사람들이 다른 사안보다 이를 더 쉽게 기억한다는 것이다.”

정치공학적 효용도 무시할 수 없다. 네거티브 캠페인은 상대방이 펼칠 수 있는 선거운동의 폭을 제한해 선거판을 유리한 구도로 주도할 수 있게 한다. 이 점은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도 입증되고 있다. 정책과 콘텐츠 면에서 우세할 것으로 예상되던 박원순 후보가, 선거 국면이 본격화하자 학력·병역과 관련된 한나라당의 네거티브 공세에 휘말려 정책 홍보보다 의혹에 대한 해명과 반박에 매달려야 하는 상황이다.

현재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관련해 관심을 갖게 되는 대목은 네거티브 캠페인이 유권자의 투표 참여에 끼칠 효과다. 이 문제는 박원순 후보에 대한 한나라당의 네거티브 공세를 두고 “20~40대와 부동층의 투표 참여율을 떨어뜨리기 위한 고도의 전략”이라는 야당·시민사회의 ‘합리적 의심’과도 맞닿아 있다. 실제 한나라당 안에선 “투표율이 높아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지속적인 네거티브 캠페인이 필요하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돈다. 전통적으로 네거티브 캠페인은 선두를 달리는 후보를 겨냥해 2위권 후보가 구사하는 전략이기도 하다.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 공세에는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까지 가세했다. 지난 9월15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중인 홍 대표를 나경원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가 주시하고 있다. 
 <한겨레21> 탁기형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 공세에는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까지 가세했다. 지난 9월15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중인 홍 대표를 나경원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가 주시하고 있다. <한겨레21> 탁기형

17대 대선, 투표율에 영향 끼쳤나?

네거티브 캠페인의 효과를 두고 학계 의견은 엇갈린다. 과열된 네거티브가 유권자의 정치 혐오감과 부정적 인식을 증대시키고 선거에 대한 관심을 낮춰 투표율을 떨어뜨린다는 시각이 있는가 하면, 후보자에 대한 풍부한 정보를 제공해 선거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투표 결과에 대한 우려를 확산시켜 투표율을 오히려 높이는 효과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이른바 ‘탈동원 가설’(투표율을 낮춘다) 대 ‘동원 가설’(투표율을 높인다)의 논쟁이다. 1990년대 중반 미국 정치학계에서 촉발된 이 논쟁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주목할 지점은 있다. 역대 대통령 선거 가운데 네거티브 캠페인이 가장 치열하게 펼쳐진 것으로 평가되는 2007년 17대 대선에 대한 국내 학자들의 분석이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정치학)는 선거 직후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가 조사한 ‘17대 대선 관련 유권자 의식조사’(표본 1200명) 자료를 토대로 회귀분석을 실시한 결과, 투표 참여에 끼친 네거티브 캠페인의 효과는 통계적 유의미성을 지니지 못할 만큼 강하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네거티브 캠페인의 효과보다는 투표 효능감(투표할 경우 결과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 정당에 대한 지지 강도, 유권자의 사회·경제적 조건 등이 투표 참여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반면 이강형 경북대 교수(신문방송학)가 17대 대선 직전과 직후 2차례에 걸쳐 진행한 온라인 설문조사(한국능률컨설팅협회 주관, 1차 934명·2차 897명)에서는 네거티브 캠페인이 투표 참여를 독려한다는 동원 효과 가설이 부분적으로 검증됐다(). 흥미로운 점은 언론보도나 방송광고 같은 전통적 매체보다 인터넷 공간의 네거티브 캠페인에서 메시지 접촉 효과가 가장 일관성 있게 나타났다는 점이다. 이 교수는 “인터넷을 통해 네거티브 캠페인을 접촉할 경우 투표 결과에 대한 위기의식을 높이고, 판세가 박빙으로 굴러간다는 인식을 심어줌으로써 투표 참여에 직접적 영향을 끼쳤다”고 분석한다.

이런 이 교수의 분석은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20~40대 유권자의 선거 여론 형성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나날이 확대되는 현실을 고려할 때,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야당·시민사회의 우려와 달리 여당의 네거티브 캠페인이 20~40대의 투표 참여를 떨어뜨리기는커녕 오히려 높일 수도 있음을 방증하기 때문이다.

젊은 층 동원 vs 부동층 탈동원

유의할 대목은 네거티브 캠페인이 전체 유권자의 20% 안팎으로 추정되는 부동층에 끼치는 효과다. 네거티브 캠페인이 후보와 정파적 연계감이 약하거나, 정치의식이 낮은 유권자에겐 투표 참여 동기를 떨어뜨리는 구실을 한다는 게 두 연구자의 분석에서 공통적으로 입증됐기 때문이다. 네거티브 캠페인이 인터넷과 모바일 환경에 익숙한 젊은 유권자의 투표 참여는 높이되, 부동층의 참여는 떨어뜨리는 상반된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관건은 ‘젊은 층의 동원 효과’와 ‘부동층의 탈동원 효과’의 대결인 셈이다. 승패의 윤곽은 곧 드러난다. 10월26일 오후 8시, 방송사 출구조사 결과 발표를 알리는 시그널과 함께.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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