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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도 초창기엔 ‘국민주 신문’

등록 2001-07-25 15:00 수정 2020-05-02 19:22

해방과 미군정기를 거치면서 400여명의 주주들 가로채고 족벌체제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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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4월1일 창간된 동아일보는 이상협 명의로 발행허가를 받았으나 초대 사장은 박영효, 사실상의 경영자는 호남 지주 김성수였다. 박영효는 두달동안 명의만 빌려주다 물러났고, 그 뒤를 이어 김성수가 사장에 취임했다. <동아일보>는 한달 먼저 창간된 <조선일보>와 달리 ‘민족지’를 자처했다.

동아일보는 민족지 형식을 갖춘다는 뜻으로 전국의 지식인과 지역의 유력인사 등 412명을 주주로 모집했다. 당시 자본금 100만원 가운데 70만원(1만4천여주)은 1주에 50원짜리 주식을 가진 이들의 몫이었다. 일종의 ‘국민주’ 형식이었던 셈이다. 게다가 사장 김성수(당시 29살)와 제작진 대부분이 20대 청년이었다는 점 때문에 출범 당시 동아일보는 ‘청년신문’ 또는 ‘민족지’로서의 위상을 어느 정도 확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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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해방 이후 국민주 형식은 허울뿐인 껍데기로 변해버렸다. 박지동 광주대 신방과 교수는 “400명이 넘던 주주들은 차츰 줄어들어 해방과 미군정기를 거치면서 거의 사라졌다”면서 “동아일보는 주권실효주를 여러 차례 공고하는 식으로 주식을 가로채거나 증대시켜 나중에는 김씨 일가의 단독회사로 바꾸어버렸다”고 말했다. 이후 동아일보는 김성수-김상만-김병관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족벌체제’를 유지하고 강화하는 쪽의 변화를 거듭해왔다.

이러한 과정은 1962년 주식보유지분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총주식 1만4천여주 가운데 김성수의 아들인 김상만 전 회장이 3천주, 부인 1천주, 두 딸 각각 1천주, 장남 김병관 현 회장 1천주, 차남 김병건씨 1500주, 고려중앙학원 4천주를 각각 보유했다. 1만4천주 가운데 1만2500주가 김씨 일가쪽에 집중된 것이다.

이같은 사주일가에 대한 소유지분 집중은 1963년 설립한 동아방송이 1980년 신군부에 의해 강탈당하는 과정을 겪은 뒤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다만, 동아일보는 조선일보와 달리 인촌 김성수가 세상을 뜬 1955년부터 1971년까지 16년 동안 아들(김상만 전 회장)이 바로 경영인으로 나서지 않고 제3자를 경영인으로 내세웠다가, 김상만 전 회장이 뒤늦게 경영 일선에 나서게 된다.

현재의 주식지분은 김병관 회장 가족 25.66%, 김병건씨 가족 21.18%, 인촌기념회 24.14%, 일민문화재단 5.23%, 사원 등 소액주주 23.9%의 비율이다. 김씨 일가 및 특수관계인들이 76.1%의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애초 국민주 형태의 소유구조는 자취를 찾아볼 수 없으며, 사주에게 소유가 집중된 족벌구조다.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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