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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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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기지 반대 바탕엔 4·3 문제 있어”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운동에 함께해온 천주교 제주교구장 강우일 주교 인터뷰
등록 2011-08-02 02:41 수정 2020-05-02 19:26
» 천주교 제주교구장 강우일 주교. 한겨레21 김경호 기자

» 천주교 제주교구장 강우일 주교. 한겨레21 김경호 기자

베드로는 예수를 잡아가려는 제사장들 앞을 칼을 빼들고 막아선 제자다. 천주교 제주교구장 강우일 베드로 주교(66)는 누구보다 앞장서서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강행을 비판해왔다. 2002년 부임한 뒤 제주는 마음의 고향이다. 지난 7월28일 제주시 삼도2동 중앙성당에서 강우일 주교를 만났다.

-제주도민 여론조사를 보면 찬성률이 만만찮다. 이유가 뭘까. ‘괸당 문화’라는 말과 달리 의견이 갈린다.

=도민이 좀더 주체적으로 해결하려고 나섰으면 좋겠는데 안타깝다. 국민 모두가 가진 개발지상주의에 제주도민도 물들어 있다. 그동안 도지사들도 끊임없이 제주를 발전시키고 싶다면서 그것으로 실력을 발휘하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러나 정말 무엇이 발전인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하지 않는다. 기적 측면에서 무엇이 도민에게 행복을 가져올지 고민해야 한다.

-현재 해군기지 건설의 근본적 문제가 무엇인가. 이 사업에 왜 반대하는가.

=바탕은 4·3 사건에 있다. 4·3은 ‘인종청소’에 해당되는 일종의 국가 범죄였다. 국제사회에서는 전범 재판같이 역사를 바로잡는 작업들이 있었는데, 4·3에 대해서는 한국에서 그런 작업이 없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의 보고서는 역사의 큰 족적이긴 하다. 그러나 그게 전부다. 우리나라 국민 전체는 아직도 광주 민주항쟁뿐 아니라 4·3 사건에서 국가 공권력이 큰 희생자를 냈음을 모르고 있다. 자기 역사로 4·3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국가의 범죄를 제대로 알리지 않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군사기지를 설치하는 것은 도민으로서 받아들이기 어렵다. 제주 도민들이 4·3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해군기지 반대가 4·3 문제의 하나임을 이해해야 한다.

-조만간 경찰력을 앞세운 행정대집행이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잠시 침묵) 그런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정책을 다루는 분들도 결국 국민을 위해서 봉사하는 이들이니, 국민이 죽음을 무릅쓰고 반대하는데 그것을 무시하고 행정편의 위주로 일을 처리하는 건 옳은 태도가 아니다.

-찬성 주민 쪽은 주민의 의견 수렴을 충분히 거쳤다고 주장한다.

=절차를 거쳤다지만 형식적이었다. 실질적인 수렴 과정이 없었다. 반대 주민들도 다 생계가 있다. 그런 분들이 생계를 버리고 달려드는 데는 그만큼 심각하게 정의에 어긋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김무성 한나라당 의원의 발언은 가장 고전적인 형태의 색깔론으로 보인다. 어떻게 생각하나.

=(잠시 웃음) (기사를) 봤다. (잠시 침묵) 할 말이 없다.

-해군기지 찬성 쪽은 종교계를 포함해 ‘외부세력은 물러가라’고 주장한다.

=외부세력이라는 말 자체에 어폐가 있다. 그럼 정부나 해군도 다 외부세력이다. 문정현 신부나 기지 반대 활동을 하는 시민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온 게 아니다. 강정마을 주민들이 완전히 고립됐을 때 그들을 도왔다. 지금 부산 희망의 버스는 전국에서 몰려들지만 제주는 섬인 탓에 그렇지 못하다. 주류 언론에서 크게 다루지도 않았다. 아무도 그 사람들이 겪는 외로움과 고달픔에 힘을 주지 못했다. 가톨릭 교회 믿음의 핵심은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한다’는 것이다. 나치가 가혹한 행위를 벌일 때 침묵했던 유럽의 종교인들은 지금도 그때의 침묵에 대해 반성하고 있다.

제주=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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