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강정해안을 감도는 일촉즉발의 긴장감 뒤에는 강행하려는 쪽과 막으려는 쪽의 치열한 논리 대결이 자리잡고 있다. “국가안보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반드시 제주 기지를 완성해야 한다.” 해군기지를 추진하는 쪽의 주장이다. “미국 해군의 대중국 전초기지가 돼 군사적 긴장만 키울 뿐이다.” 막으려는 쪽의 반박이다. 말과 말은 줄곧 평행선을 달려왔다. 4년째다.
몽골의 국립목장, 일본의 불침항모
해군기지 건설을 찬성하는 쪽이나 반대하는 쪽 모두 제주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부인하지 않는다. 제주는 한반도뿐 아니라 중국 대륙과 일본열도 어느 곳으로도 접근이 용이한 해상 요충이다. 우리나라 수출입 물동량의 99%가 통과하는 남방해로의 관문이기도 하다. 해군은 제주의 지정학적 가치를 들어 기지 건설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쪽은 바로 그 지정학적 중요성 때문에 군사기지는 안 된다고 말한다.
유의할 대목은 제주의 군사적 가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은 역사적으로 볼 때 우리가 아닌, 당대 동아시아의 패권국들이었다는 점이다. 시작은 13세기의 몽골이었다. 그들은 고려를 복속하고 삼별초 잔당을 토벌한 뒤 제주에 눌러앉았다. 제주시향토문화백과는 기록한다. “제주 삼별초의 군사 활동은 원종 14년(1273) 여·원 연합군에 의해 토벌되었으며, 이후 제주는 원나라의 직할령이 되었다. 원은 남송과 일본 정벌을 위한 전초·병참기지로 제주를 활용하는 한편, 목마장을 직접 마련해 원 제국의 14개 국립목장 중 하나로 키우는 등 물자 수탈에 초점을 맞춘 탐라 경영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20세기에는 한반도를 강점한 일본이 제주의 군사요새화를 추진했다. 일본은 1930년대 본격적인 대륙 침략에 나서면서 제주 모슬포에 공군기지를 만들었다. 당시 그들은 제주를 ‘불침항모’(침몰하지 않는 항공모함)라고 불렀다. 제주에서 비행기를 띄우면 급유 걱정 없이 중국의 상하이나 난징을 폭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미국이 대만을 중국을 견제할 ‘불침항모’로 여기는 것과 같은 이치다. 태평양전쟁이 막바지로 접어든 1944년에는 ‘결호작전’이라는 이름의 일본 본토 방어작전을 수립해 제주에 7만5천 명의 병력을 주둔시키고 섬 전체를 요새화했다. 일본 본토 공략을 노리는 미국이 대만에서 제주도를 거쳐 규슈 북부로 이어지는 남방 루트를 이용할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제주 해군기지가 중국을 압박하는 미국의 전략 거점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런 역사적 기억 때문이다. 해군은 물론 이를 부인한다. 그러나 제주에 기지가 들어서면 한미상호방위조약과 주둔군지위협정(SOFA), 전략적 유연성 합의에 따라 한국 군사기지에 대한 원칙적 사용권을 갖고 있는 미국이 중국 본토나 대만해협에 가깝고 기지 규모도 큰 이곳을 사용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지 않겠느냐는 게 시민단체들의 관측이다. 이 문제는 현재 제주 해군기지를 놓고 벌어지는 찬반 논쟁의 가장 첨예한 쟁점이기도 하다.
시민단체들은 제주 기지가 건설될 경우 결과적으로 미국의 해양 패권을 위한 군사적 발판으로 이용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이런 판단은 제주가 남중국해~동중국해~센카쿠열도~대만해협~서해로 이어지는 미-중 ‘갈등의 바다’의 축선상에 위치하고 있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제주에 기지가 세워지면 미국 전략함대가 수시로 드나들게 되는 것은 피할 수 없다는 논리다. 우리 해군도 미 군함의 이용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는다. 김관진 국방장관은 지난 7월20일 “미국이 제주 해군기지에 올 수 있다면 오겠지만 미국 항모가 제주 해군기지에 들어올 것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며, 미군의 이용 가능성을 우회적으로 인정했다.
해군과 국방부는 이런 시민단체들의 우려를 터무니없는 억측이라고 일축한다. 제주 기지 건설사업에는 미군을 위한 예산이 전혀 책정돼 있지 않을뿐더러, 미군을 위한 입·출항 기지는 부산과 진해에 이미 마련돼 있기 때문에 미군으로선 제주 기지에 큰 매력을 느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또 제주도에 해군기지를 만드는 것은 미국에 대한 군사적 의존도를 줄이려는 노력이지 미국을 위한 노력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반환되는 오키나와 기지 대체?그러나 시민단체들은 “아시아에서 추가적으로 기항지를 늘려나갈 것”이라는 지난 6월4일 로버트 게이츠 당시 미 국방장관의 발언에 주목한다. 제주에 6척의 구축함과 잠수함, 항공모함 정박까지 가능한 전략기지가 생긴다면 미군에 가장 매력적인 기항지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미국이 대만으로부터 330해리 떨어진 일본 오키나와에 기지를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560해리나 떨어진 제주 기지를 이용할 이유가 없다는 해군 쪽 주장도 시민단체들은 근거가 약하다고 본다. 오키나와 기지는 3천t 이상 선박을 정박시킬 수 없고, 이마저도 2005년 10월 미군 재배치 합의에 따라 일본에 돌려주기로 되어 있는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주 기지를 둘러싼 또 하나의 쟁점은 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미사일방어체제(MD)와 연관돼 있다. 시민단체들은 제주 기지가 중국의 탄도탄미사일을 요격하기 위한 MD 해상기지로 활용될 가능성에 우려의 시선을 보낸다. 하지만 해군은 우리 정부가 미-일 MD 체계에 편입할 어떤 의사결정도 내린 적이 없다는 점을 들어 그 가능성을 부인한다. 제주 기지에 정박할 우리 군의 이지스 구축함에는 미사일 요격 능력이 없다는 점도 MD 편입 불가능론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제시한다.
문제는 제주 기지에 탄도탄 요격 능력을 갖춘 미군 이지스함이 정박하는 상황이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지난 6월 야 5당 해군기지 진상조사단 공청회에서 “한국 해군이 독자적으로 이지스함에 SM3 미사일을 장착해 오키나와나 괌으로 향하는 미사일을 요격한다는 시나리오는 가능성이 낮다”면서도 “미국 해군이 제주 해군기지를 ABMD(이지스탄도미사일방어체제)의 중간기지로 활용하고, 한국 해군이 미국 MD 작전에 정보 제공 등 공동 보조를 맞춰나갈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그 근거로 미국이 해군력의 60%를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집중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항공모함 전단을 신속대응체제로 재편하고, MD의 핵심을 이지스함에 SM3 계열의 미사일을 장착하는 ABMD로 삼고 있다는 점을 든다.
명백한 위협 찾기 어려워
해군이 제시한 제주 기지의 군사적 실효성 역시 팽팽하게 의견이 맞서는 부분이다. 해군은 남방해역의 해상교통로를 보호하고 풍부한 해저자원을 확보하려면 제주 기지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태도다. 중국·일본과 해양 분쟁이 발생할 경우 지정학적 위치 등을 고려할 때 제주만큼 적합한 곳을 찾기 어렵다는 것인데, 그 근거는 분쟁 발생시 작전 반응 시간이다. 우리가 실효 지배하는 이어도에서 분쟁이 벌어져 우리 함정이 출동할 경우 481km 떨어진 부산 기지에서는 21시간이 소요되지만, 174km 떨어진 제주에서는 8시간이면 함정을 파견할 수 있어, 중국 상하이(327km·14시간)나 일본 사세보(337km·15시간)에 비해 훨씬 유리하다는 논리다.
시민단체들은 이어도 때문에 중국과 무력 충돌이 벌어질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동북아의 군사적 역학관계를 볼 때 지나친 군사주의적 가정일 뿐이라고 꼬집는다. 설사 무력 갈등이 발생하더라도 우리 군함이 몇 시간 늦게 도착한다고 해서 결정적으로 불리할 이유가 없을뿐더러, 항공 전력에 사거리가 수백km에 이르는 대함 유도탄까지 보유한 상황에서 100km 안팎의 거리 차이는 군사적으로 큰 의미를 갖기 어렵다는 것이다.
최근 전문가 의견 검토와 제주 현지 조사를 마친 야 5당 진상조사단도 남방 해로와 해저자원 확보를 위해 제주 기지가 필요하다는 해군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잠정 결론을 내렸다. 현재 이 해역에 군이 나서야 할 만큼 명백한 위협을 찾기 어렵고, 해군이 말하는 잠재적 위협(중·일의 해군력) 또한 제주 기지가 존재한다고 해서 극복할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조사단 관계자는 “석유 수송로가 봉쇄되는 최악의 상황은 국제정치를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현실성이 희박하고, 그런 상황이 온다고 해도 우리 자력만으로는 극복이 불가능하다”며 “따라서 해군기지의 존재 자체는 이런 상황을 타개하는 데 큰 변수가 되긴 어렵다”고 말했다.
해군이 제주 기지가 필요한 이유 중 하나로 거론하는 말라카해협의 해적 활동과 관련해서도, 조사단은 인접 국가들이 안정화되면서 출몰 횟수가 줄고 있고, 해적이 활동한다고 해도 이를 우리 해군력으로 일일이 제압하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뿐더러 외교적 문제만 야기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실제 2000년 262건으로 절정에 달했던 아시아에서의 해적 활동은 122건 (2005년)→80건(2007년)→69건(2009년)으로 뚜렷한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옆구리 비수로 오히려 중국 자극시민단체가 우려하는 것은 제주 기지가 중국을 자극해 역내 긴장을 오히려 고조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우려는 해군이 자초한 측면도 있다. 기지 건설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중국의 이어도 영유권 주장과 해군력 증강 상황을 거론하며 중국을 ‘잠재적 위협’으로 지목했기 때문이다. 물론 정부와 군은 제주 기지 건설이 최소한의 방어적 조처이며, 주변국(중국)을 자극하거나 압도하려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제주가 역내 패권국들(몽골·일본)에 의해 중국 본토를 공략하기 위한 해상 거점으로 활용됐던 역사적 선례와 세계 어느 군사동맹보다 끈끈한 한-미, 미-일 동맹의 존재를 떠올린다면, 중국이 제주 기지를 옆구리의 비수로 인식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우리의 군사적 조처가 특정 국가에 위협과 압박이 되는지는, 우리의 의도가 아닌 상대국의 인식과 판단에 따라 좌우되는 탓이다.
찬반 양 진영이 주장하는 바의 시비를 정확히 가늠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일정 수준의 군사 지식과 국제정치학적 혜안도 필요하다. 중요한 건 결단의 시기가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다는 점이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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