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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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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을 위한 법은 없다

동물보호법 있지만 ‘죽여도 좋다’는 예외조항 수두룩…동물이 죽으면 쓰레기봉투에 버려야 합법인 현실
등록 2011-06-23 08:12 수정 2020-05-02 19:26

#1. 환웅한테 사람이 되고 싶다는 곰과 호랑이가 찾아왔다. 육식동물에게 극단의 채식 처방이 내려졌다. 쑥과 마늘을 100일간 장복하고 자외선(햇빛)을 차단하라는 처방이었다. 호랑이는 탈출했고, 곰은 사람이 됐다고 한다.
#2. 술에 곯아떨어진 사이 어머니의 훈계로 발길을 끊었던 천관의 집으로 말이 알아서 찾아갔다. 신라의 김유신은 칼을 뽑아 그 자리에서 애꿎은 말의 목을 베었다.
#3. 어제 저녁엔 아주 처참한 광경을 보았습니다. 어떤 불량한 사람이 큰 몽둥이로 돌아다니는 개를 쳐서 죽이는데, 보기에도 너무 참혹하여 실로 마음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맹세코 개나 돼지의 고기를 먹지 않기로 했습니다.(고려시대 이규보의 )

그 때도 동물보호법이 있었다면
» 개 도살에 대한 국제적 비판이 일자 1991년 동물보호법이 만들어졌다. 경기도 남양주시 사육농장에 갇힌 개들. 한겨레21 윤운식

» 개 도살에 대한 국제적 비판이 일자 1991년 동물보호법이 만들어졌다. 경기도 남양주시 사육농장에 갇힌 개들. 한겨레21 윤운식

동물보호법 제3조는 “누구든지 동물을 사육·관리 또는 보호함에 있어서는… 그 동물이 본래의 습성과 신체의 원형을 유지하면서 정상적으로 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돼 있다. 곰과 호랑이에게 육고기 대신 풀을 먹였다? 동물보호법 원칙에 어긋난다. 제6조는 또 “소유자 등은 동물에게 적합한 사료의 급여, 급수·운동·휴식 및 수면이 보장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완전히 부적합한 사료에 햇빛도 안 드는 동굴에만 있게 했다. 이 역시 과태료 대상이다. 게다가 곰·호랑이를 인간으로 바꾸는 ‘실험’을 한 셈인데, 실험동물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8조는 ‘우선 사용 대상 실험동물’을 ‘마우스, 랫, 햄스터, 저빌, 기니피그, 토끼, 개, 돼지 또는 원숭이’로만 한정하고 있다. 한 해 국내에서만 1천만 마리 이상이 죽어나간다. 이 동물들이야 무슨 기구한 운명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반달가슴곰과 호랑이는 현재 1급 멸종위기 야생동·식물에 해당한다. 야생동·식물보호법 제67조는 “멸종위기 야생동·식물 1급을 포획·채취·훼손하거나 고사시킨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로맨스는 로맨스고 법은 법이다. 김유신은 길 위에서 말의 목을 칼로 베어 죽였다. 동물보호법 제7조는 “목을 매다는 등의 잔인한 방법으로 죽이는 행위” “노상 등 공개된 장소에서 죽이는 행위”에 대해 최대 500만원까지 벌금을 매길 수 있다. 이 방법들이 고통을 얼마나 줄여주는지는 모르겠지만, 동물보호법 제11조와 시행령에 따라 동물을 도살할 때는 “가스법·전살법(전기)·타격법·총격법·자격법(칼) 등 고통을 최소화하는 방법에 따라야 한다”. 게다가 말은 축산물위생리법에서 말하는 ‘가축’에도 해당한다. 이 법 제7조는 “가축의 도살·처리 등은 허가받은 작업장에서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노상 도륙’은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최대 1억원의 벌금에 해당한다. 동물의 사체는 폐기물관리법에서 정의하는 ‘폐기물’이다. 이 법 제8조는 폐기물처리시설이 아닌 곳에 사체를 버리거나 매립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어기면 7년 이하의 징역형, 5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이중으로 받을 수 있다. 동물 장묘업체가 있다지만 요크셔테리어 같은 작은 개들만 받는다. 커다란 말은? 매립하면 불법이니 토막을 쳐 종량제 쓰레기봉투(100ℓ) 여러 개에 나눠 담은 뒤 대문 앞에 내놓아야 한다. 옆집에서 보면 잔치라도 연 줄 알 것이다.

길거리에서 몽둥이로 개를 때려 죽이는 것은 당연히 동물보호법 제7조 위반이다(미국 앨라배마·아칸소주는 개·고양이를 학대하면 최고 10년까지 감방에서 살 수 있다. 플로리다·하와이는 최고 5년, 캘리포니아는 최고 3년형까지 받는다). 이규보의 글은 그 시대에도 종교적 배경에 기대지 않은 자생적 채식주의자가 있었으며, 고려시대가 개뿐만 아니라 ‘이’(蝨·슬) 같은 미물까지 사랑한 급진적 동물해방론의 맹아적 시기가 아니었는지 돌아보게 한다.

민법상 동물은 소유의 대상

한국에서 말 못하는 동물의 ‘권리’를 위해 만들어진 법은 동물보호법과 야생동·식물보호법이 거의 전부다. 일단 인터넷을 검색해 동물보호법(총 26조)과 그 시행령을 일독해보기를 권유한다. 촘촘한 안전망으로 동물을 보호하는 듯하지만 ‘죽여도 좋다’는 예외 조항이 수두룩하다. 지난 겨울을 동토 깊숙이 파묻어버려야 했던 구제역 파동은 ‘이기적 동물’인 인간의 법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다.

인간이 만든 법은 결국 인간만을 위하기 마련이다. 인간 대신 죽어가는 동물을 위해 만든 실험동물법도 결국 인간이 오래 살고, 얼굴에 화장품이 잘 먹게 하자고 건강한 무균동물을 길러낸 뒤 다시 죽이는 과정을 규율할 뿐이다. 반려동물이라는 그럴듯한 개념까지 통용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동물 관련 법은 재산권·식품위생·전염병·농가소득·과학실험 등 인간을 향한다.

민법상 동물은 점유·소유의 대상이다. 이를 죽이면 형법상 재물손괴가 된다. 반려동물이라는 따뜻한 이름도 법적으로는 사적 소유의 대상일 뿐이다. 대법원 종합법률정보 시스템에서 ‘애완’이라는 열쇳말로 검색되는 법령은 13개다. 가축전염병예방법 시행규칙, 곤충산업의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률 시행령(재활용 포장재를 사용한 애완동물용 샴푸·린스) 관련 2건, 국립박물관 전시품 관람규칙(애완동물 동반자 관람 제한), 도시공원 녹지 등에 관한 법률(애완동물 배설물을 수거하지 않거나 방치하는 행위 금지), 서울 용산공원 조성특별법(애완동물 통제) 관련 3건, 농촌진흥청과 그 소속 기관직제 대통령령, 동물보호법 시행령 관련 2건, 야생동·식물보호법 1건. 애완이라는 말에서조차 ‘보호’에 무게를 둔 법령은 3건뿐이고 나머지는 돈이 되는 가축 보호·육성, 통제, 행정조직의 직제 구분에 방점이 찍힌다. ‘반려’라는 말은 아직 법적 지위가 약하다. ‘반려’와 ‘동물’이라는 열쇳말로 검색하면 4건이 뜬다. 동물보호법 시행령 관련 2건이 포함돼 있다.

판사 시절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 동물은 특별법에 의해 보호된다”는 독일 민법 조항(제90조a)에 충격을 받은 뒤 ‘동물법 연구서설’이라는 논문을 쓴 법무법인 태평양의 임채웅 변호사는 ‘비야생동물’을 △반려(애완)동물 △실험동물 △유해동물 △가축 △업무용 동물(서커스·이동수단 등) △보호동물(동물원 등)로 구분한다. 그는 “온 국민에게 골고루 복지 혜택이 돌아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동물보호법제가 설득력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이 어떤 형태로든 동물과 관련을 맺고 살아가는 한, 동물법은 인간을 위해서라도 연구돼야 할 분야”라고 했다.

한국엔 언제쯤 동물복지법이

영국에서 동물학대금지법이 제정된 것은 1822년이다. 1911년 동물보호법에 이어 2006년에는 ‘애완동물의 권리장전’이라는 동물복지법(Animal Welfare Act)이 만들어졌다. ‘복지’란다. 미국은 청교도들에 의해 1641년 가축 학대를 금지하는 내용이 담긴 ‘자유장전’이 제정됐다. 한국은 88 서울올림픽을 거치며 개고기 식용 문제가 국제적으로 논란이 되자, 1991년 정부입법으로 동물보호법을 만들었다. 제정 취지는 이렇다 “1980년 초부터 국제 동물보호 단체에서 우리나라의 잔인한 개 도살 행위에 대한 비난과 금지를 위한 법 제정 요청이 있어 대외적으로 동물 보호 의지를… 국내적으로는 동물 학대 행위를 방지하고 동물 보호 정신을 함양하기 위해….”

1998년 낙동강 재두루미, 2003년 천성산 도롱뇽, 2008년 7월 천연기념물 검은머리물떼새, 11월 천연기념물 황금박쥐가 시민단체가 제기한 환경 소송에서 ‘원고’로 나섰다. 법원은 원고 자격을 인정하지 않았다. 2011년의 복날이 오고 있다. 이웃집 촉촉한 코를 가진 바둑이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소장이 송달될지도 모르겠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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