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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권을 부탁해

동물권 확산으로 동물복지 생각하는 패션잡지, 유명 연예인 등장…여전히 부족한 반려문화, ‘착한 마케팅’ 이용 등 넘을 벽 높아
등록 2011-06-23 17:05 수정 2020-05-03 04:26

동물이 사람의 말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고충도 털어놓고 권리도 주장할 수 있다면 여러모로 편리하겠건만, 동물은 사람의 말을 하지 못한다. 동물과 관련된 갈등은 결국 사람의 몫이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한국에서 동물 보호는 누런 잔디 한가운데 쓸쓸하게 선 ‘잔디를 보호합시다’ 푯말 수준이었다. 동물 관련 논의가 나올 때면 “밥도 제대로 못 먹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어디서 개 못 먹는 얘기를…” “돈이 썩어나서 그깟 동물한테…” “쓰레기통을 뒤지는데 시끄럽고 보기 싫다” “먹는 거 아닌가?” 등의 반응이 많았다. 요즘은, 달라졌다.

동물권 공감의 확산

» 동물권에 관한 인식은 최근 1~2년 동안 눈에 띄게 높아졌지만,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까지 아직 갈 길이 멀다. 한겨레 류우종

» 동물권에 관한 인식은 최근 1~2년 동안 눈에 띄게 높아졌지만,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까지 아직 갈 길이 멀다. 한겨레 류우종

“여전히 악플에 시달리지만, 그래도 불과 1~2년 동안 동물권과 동물복지에 대한 인식이 많이 높아졌다”고 동물 관련 시민단체 관계자와 활동가들은 입을 모은다. 동물자유연대 윤정임 팀장은 “몇 년 전만 해도 동물 캠페인 등을 진행하면 반감을 드러내는 사람이 많았는데, 최근 현장이나 온라인에서 오는 반응을 보면 그런 반감이 많이 줄었다는 걸 체감한다”고 전했다. 2007년부터 길고양이 사진을 찍고 글을 써온 ‘고양이 작가’ 고경원씨는 “‘사람보다 동물이 더 중요해?’라는 식의 반응은 줄었고, 길고양이에게 관심을 갖는 분도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세대가 늘고 있는 점은 동물복지와 동물권 논의에서 큰 힘을 발휘한다. 반려동물 부가세 논의만 보더라도 ‘400만’이라는 반려동물 양육 세대의 절대적 수가 이들의 부가세 반대 요구에 설득력을 갖게 한다. 반려인들이 부가세에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건 개·고양이 등 동물을 그저 잠시 귀여워하다 마는 ‘애완동물’이 아니라 평생 함께할 ‘반려동물’이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매일 동물과 소통하는 반려인들은 동물복지와 동물권에도 열려 있다. 질병에 걸렸다는 이유로 비참하게 살처분되는 돼지가 자신이 키우는 개와 같은 동물이라는 생각으로 이어지면 자연스럽게 마음이 열린다.

동물운동이 유기동물이나 학대동물에 머무르지 않고 채식이나 환경운동, 식품안전 등과 연결되는 것도 중요한 지점이다. 동물자유연대 조희경 대표는 “사회와 사람을 설득할 때 ‘불쌍해서’라는 감정에 호소해서는 안 된다”며 “합리성을 갖추려면 동물 문제를 다른 사회적 이슈와 연결해 설득하는 ‘동물복지의 과학화’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최근 동물 관련 논의는 ‘동물’이라는 대상에 머무르지 않고 그 안에 ‘사람’을 넣어 동물과 사람이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는지로 영역을 넓히는 중이다. 육식에 따른 건강 이상, 대규모 공장식 축산으로 인한 온실가스 증가 등을 이유로 채식에 관심이 모이는 것도 그 맥락이다.

고경원 작가는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들까지 억지로 설득하려 하지는 않지만 대화의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보인다면 상대방의 관점도 수긍하며 이야기를 꺼낸다. 그저 ‘보호하자’는 식의 구호를 반복하기보다 “길고양이 중성화수술을 시행함으로써 개체 수가 줄어들고, 사료를 정기적으로 챙겨주는 캣맘들이 있는 곳에서는 고양이가 쓰레기봉투를 뜯는 일도 줄어든다는 것, 그리고 중성화수술을 하면 발정기 울음소리도 내지 않는다는 걸 말하면 귀기울이는 이들이 있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며 설명하는 것 역시 ‘설득의 노하우’다.

동물운동의 아이콘, 이효리

동물권이 세련된 영역으로 나아간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2009년 11월 (OhBoy!)라는 잡지가 창간했다. 패션사진가 김현성이 만드는 1인 잡지인 이 책은 ‘동물복지와 환경을 생각하는 패션문화 잡지’를 표방한다. 창간호에 실린 글에서 김현성은 이렇게 썼다. “환경과 지구상에서 같이 살아가는 모든 동물들을 지키면서 자신도 멋있어질 수 있는 잡지란 것, 얼마나 멋질까요? 동물복지를 얘기하는 패션잡지가 고양이 쥐 생각해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시도해볼 가치는 있다고 난 생각합니다.” 에서는 유명 연예인들이 멋진 옷을 입고 화보 촬영을 하며 메시지를 전한다. 19호를 제작 중인 김현성 작가는 “감각적인 패션잡지인데 읽다 보면 동물과 환경에 대한 얘기가 나오니 독자가 신선하게 느끼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미디어의 영향력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커진다. 언론에 유기동물이나 학대받는 동물 이야기가 자주 다뤄지고, 한국방송 등 버라이어티 예능 프로그램이 동물을 다루는 등 노출이 빈번해지자 동물에 대한 공감대가 일반 대중을 중심으로 빠르게 형성됐다.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의 대표를 맡고 있는 영화감독 임순례가 동물을 주제로 만든 옴니버스영화 는 이야기와 영상으로 관객에게 다가간다. 동물 관련 소식 등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손쉽게 공유되는 점도 이런 변화를 촉진한다.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유명 연예인들의 참여다. 동물 관련 단체는 연예인이나 유명인이 동물 관련 이슈를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사회에 메아리로 울려퍼진다고 설명한다. 특히 가수 이효리를 빼놓을 수 없다. 작은 움직임도 눈길을 끄는 톱스타가 한우홍보대사에서 채식주의자로 180도 달라졌으며, 화보를 찍은 것 외에도 동물 관련 시민단체 활동에 직접 참여한다는 사실은 화제가 되기에 충분했다. 직접 유기견과 유기묘를 입양해 키우는 모습을 보여주고 모피에 반대 의견을 드러내는 이효리는 대중문화뿐 아니라 동물운동에서도 하나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동물복지와 동물권에 대한 문제가 본격적인 논의 테이블에 오를 수 있을 만큼의 관심을 모으는 데는 성공한 듯하다. 하지만 이를 사회적 합의로 이끌어내는 힘은 여전히 부족하다. 유기동물을 안쓰러워하거나 동물 학대에 분노하는 것과 법·제도의 영역으로 동물을 받아들이는 것 사이에는 여전히 괴리가 존재한다. 조희경 대표는 “분노의 감정 등 감성적 반응이 적극적인 동의나 행동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라며 “감성적 공감을 시작으로 반대하고 요구하고 거부하는 것까지 이어지면 관련 논의가 더 탄력받을 텐데 아직은 거기로 가는 과정에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반려동물과 함께 지내기가 한때의 유행으로 비쳐지는 것도 우려되는 지점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젊은 여성을 중심으로 ‘고양이 붐’이 일었다. 고양이를 기르는 인구가 늘며 반려문화가 빠르게 자리잡기도 했지만, 계절이 지나면 철 지난 옷을 버리는 것처럼 상황에 따라 쉽게 고양이를 버리는 건 심각한 문제다. 동물 전문 출판사 ‘책공장더불어’의 김보경 대표는 “젊은 여성의 경우 결혼을 하고 임신하면 90% 정도는 함께 살던 고양이나 강아지를 버린다”며 “반려동물에 대한 잘못된 상식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김 대표는 “이런 부분에서는 반려동물 문화가 성숙했다기보다 오히려 퇴보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이른바 ‘패션피플’이 사진 촬영을 위한 소품처럼 고양이를 다루거나, 동물복지와 동물권을 ‘착한 마케팅’이라는 명목으로 상업적으로 활용하는 것 역시 걱정스러운 부분이다.

그래도 복날은 온다

동물보호단체끼리의 연대는 단단하지 않고, 다른 시민사회단체와의 연대 수준도 높지 않다. 그러다 보니 사회적 이슈가 있을 때 빠지게 되거나 동물 관련 이슈가 있을 때 다른 단체의 지원을 받지 못한다. 게다가 아직도 진보 진영 안에는 동물운동을 낮춰보는 태도가 존재한다. 김보경 대표는 지난해 자신이 활동하는 진보 정당의 온라인 게시판에 들어갔을 때 충격적인 글을 발견했다. 김 대표는 “벙개로 보신탕을 먹으러 가자는 내용이었는데 ‘개만 짖어도 침이 넘어간다’는 식의 댓글이 달렸다”며 “진보 진영에는 여전히 동물권과 생명권 운동이 빠져 있고 생명권을 얘기할 때는 동물권까지 확대되지 못한다”고 말했다.

진보 진영에서도 즐기는 개 식용 문화, 이른바 ‘보신탕 문화’는 동물복지와 동물권에 대한 사회적 합의에 큰 걸림돌이다. 특히 동물과 공감이나 소통의 경험 없이 동물을 식용으로만 주로 접해온, 또 보신탕 문화를 고수하는 40~50대 남성은 조금의 틈도 허용하지 않는 ‘벽’이자 ‘철옹성’이다. 7월이 머지않았다. ‘초복’인 7월14일을 계기로 개 식용 문제를 놓고 유례없이 ‘시원하게’ 논쟁을 해보는 건 어떨까. ‘전통문화다, 아니다’를 따지는 해묵은 논쟁이 아닌, 동물복지와 동물권을 화두로 솔직하고 생산적인 논쟁이 필요한 시점이다.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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