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미스터 리도 궁금한 한국 아파트의 미스터리

세계와 사뭇 다른 한국 아파트의 3대 미스터리… 부유층이 선호하고 가격 불패 신화 자랑하며 농촌에도 지어지는 이유는?
등록 2011-06-02 15:04 수정 2020-05-03 04:26

부유층이 넓은 정원이 딸린 주택을 거부하고 아파트를 택한다면? 전세계의 아파트 가격이 떨어져도 한국만 예외라면? 땅값이 싼 농촌에도 아파트가 올라간다면? 상식과 어긋나 보이는 이런 일들이 한국에서는 실제로 벌어진다. 경제학계·건축학계 안팎의 취재를 통해 한국 아파트 ‘3대 미스터리’를 분석했다.

부유층, 환금성에 환호하다

한국의 부유층이 단독주택보다 아파트를 선호하는 이유에 대해 여러 분석이 제기됐다. 서정렬 영산대 교수(부동산·금융학)는 ‘순환구조론’을 근거로 제시했다. 서 교수는 전자우편을 통해 “아파트가 전체 주택 가격 상승을 주도하는 상황에서 주택 가격 상승을 이끌 능력과 의도가 있는 계층이 아파트를 선호하는 순환 구조가 형성돼 있다”고 분석했다. 아파트 가격 상승으로 이익을 보는 계층이 자연스레 아파트를 선호한다는 취지다. 부유층이 정원이 딸린 단독주택 대신 아파트를 선호할 만큼 경제적 이익이 크다는 취지다.

지난 5월20일 경기 김포시 들녘에서 농부가 밭을 갈고 있다. 그 뒤로 아파트 공사현장이 보인다. 한겨레 김봉규

지난 5월20일 경기 김포시 들녘에서 농부가 밭을 갈고 있다. 그 뒤로 아파트 공사현장이 보인다. 한겨레 김봉규

김주경 오우재 건축사사무실 대표도 ‘경제적 이익’을 꼽았다. 특히 아파트가 자산으로서 지니는 환금성에 그는 주목했다. 김 대표는 “환금성이 가장 큰 요인이다. 모든 주택은 감가상각을 당하지만 아파트는 한 번도 감가상각이 문제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건물이나 물건 등 형태를 가진 모든 자산은 시간이 지날 때마다 물리적·경제적 가치가 조금씩 감소된다. 이를 계산하는 과정이 감가상각이다. 아파트도 거주자가 살다 보면 낡고 헐어 감가상각 요인이 발생한다. 그러나 한국의 아파트는 비정상적으로 높게 형성된 아파트 가격 탓에 자산가치를 떨어뜨리지 않으며 환금성을 보장받는 매력적 자산이라는 게 김 대표의 분석이다.

김 대표는 호화주택에 부과되는 무거운 세금도 근거로 덧붙였다. 현행 세법상 ‘고급주택’으로 분류되면 일반 주택 취득세의 5배를 내야 한다. 단독주택의 경우 △실거래가액 9억원 이상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집 △66㎡(20평) 이상의 수영장이 딸린 집 등이 고급주택으로 분류된다. 외국 영화에 등장하는 수영장이 딸린 호화로운 단독주택을 지으려면 한국의 부유층이 상당한 세금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는 말이다. 박재룡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생활의 편의성’을 근거로 제시했다.

아파트가 한국 사회에서 ‘부유함의 상징’이 됐기 때문이라는 문화적 분석도 나온다. 디자인 연구자인 박해천 홍익대 연구교수는 전자우편을 통해 “한국의 초창기 아파트 단지들로부터 연원하는 ‘어떤 전통’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박 교수의 설명을 종합하면, 1970년대 초반 ‘한강맨션’, ‘여의도 시범아파트’, 구반포 등 ‘맨션의 트라이앵글’이 존재했다. 이 ‘아파트 트라이앵글’은 한국 부유층이 전통적으로 거주하던 사대문 안에서 바깥으로 팽창하는 과정의 산물이었다. 부촌 팽창의 흔적에 평창동의 고급주택가도 포함된다. 박 연구교수는 “실제로 1930년대 전후 태생의 서울 토박이 출신의 젊은 중·상류층 상당수가 (아파트로) 이주했다. 1970년대 중·후반에는 이들 중 상당수가 다시 압구정 현대아파트로 이주했다. 1970년대의 한강맨션, 1980~90년대의 압구정 현대아파트로 이어진 흐름은 2000년대의 타워팰리스로 연결된다”고 지적했다. 이런 아파트의 팽창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 사태 이후 용인을 중심으로 한 고급·대형 아파트와 강남·분당을 중심으로 한 주상복합의 건설로 다시 이어진다.

“그래도 강남 아파트는 굳건해”

세계의 부동산 가격이 하락해도 한국의 아파트 가격이 하락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분석이 갈렸다. 김주경 대표는 수요가 늘 창출되기 때문이라며 ‘수요지탱론’을 제기했다. 김 대표는 “요즘 추세는 인구는 주는데 가구수는 늘어난다. 수요가 꺼지지 않는다. 수요가 있는 상황에서 환금성이 뛰어난 아파트 가격이 떨어질 이유가 없다. 요즘 금값이 떨어지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라고 분석했다. 다만 김 대표도 최근 주택 소유자 사이에서 아파트의 환금성에 회의론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은 인정했다. 서정렬 교수도 “세계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 아파트 가격 하락폭이 크지 않은 것은 우리나라 전체로 보면 중산층 계층이 집중된 서울 및 수도권의 아파트 수요가 꾸준해 가격 하락폭을 최소화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박해천 연구교수도 “현재의 아파트 가격은 버티기에 가깝다”면서도 “강남의 아파트 가격이 유지되는 것은 수요 때문이다. 외환위기 때도 강남 아파트 가격 하락은 상대적으로 그리 크지 않았다. 강남 주택 수요가 있고, 동시에 강남 아파트 수요자층의 자산 토대가 튼튼하기 때문이다”라고 분석했다.

농지와 야산에 아파트가 솟은 한국의 농촌 풍경은 ‘아파트 신화’의 상징이다. 박해천 연구교수는 “농촌 거주민들조차 아파트가 지닌 신화적인 면모에 매혹돼 있다”고 지적했다. 자본주의가 일찍 시작한 유럽에서 아파트는 노동자와 빈민의 주택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고안된 주거 형태였다. 빈곤과 비위생에 시달리는 노동자계층에게 주거복지를 제공하며 가족 단위로 구별된 주택을 제공함으로써 계급의식과 단체행동을 제약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었다. 한국에서 아파트 문화는 애초에 ‘편리한 것’ ‘우월한 것’으로 수입됐다. 박 연구교수는 에서 “아파트의 평수 차이가 거주자가 속한 계층의 차이로 곧바로 연결되는 간단한 게임의 규칙은 1967년에 건설되었던 용산 이촌동의 공무원 아파트 바로 옆에 한강맨션이 들어서는 순간부터 자연스레 만들어졌던 것”이라고 썼다. 아파트가 지닌 문화적 힘 때문에 농민들이 주위 환경과 어울리지 않는 아파트를 선택한다는 게 박 연구교수의 논지다. 김주경 대표도 “농촌에서는 아파트의 환금성이 중요하지 않다. 도시에서의 아파트 선호가 농촌으로 옮겨간 것으로 보인다. ‘도시 사람들은 (아파트에 거주)하는데 우리는 왜 못해?’ 같은 정서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신화에 매료” vs “생활 편의 추구”

‘실용성론’이 반론으로 제기된다. 박재룡 수석연구원은 “농촌에도 ‘나 홀로’ 아파트가 많다. 이는 양면성이 있다. 농민들이라고 생활 편의를 추구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며 “주위 환경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이 있지만, 생활 편의 측면에서 보면 (아파트에 거주)할 수 있다. 농촌에 나이 드신 분이 많아서 단독주택이 살기에 불편하다”고 주장했다. 서정렬 교수는 상대적으로 땅값이 저렴한 농촌 토지를 기반으로 아파트 사업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건설업체의 논리가 반영된 결과로 봤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