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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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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아파트는 [ ]다

캐비닛, 난쏘공, 얼굴 등 열쇳말 10개로 풀어본 아파트의 정치경제사회문화학…해방 직후부터 현재까지 아파트가 바꾼 것, 망친 것, 남긴 것
등록 2011-06-02 05:57 수정 2020-05-02 19:26

아파트는 단순히 사각형 주거 공간이 아니다. 그 안팎을 오가는 사람들의 얼굴이고, 몸짓이고, 흔적이다. 전상인 서울대 교수(사회학)는 아파트를 “우리 사회를 들여다볼 수 있는 내시경”이라고 설명했다. 아파트를 통해 한국 사회의 은밀한 바닥까지 훑을 수 있다는 말이다. 10개의 열쇳말을 통해, 우리가 기억하거나 혹은 잊었던 아파트의 의미를 되새겨봤다. _편집자

아파트는 [가사도우미]

입식 부엌과 온수가 나오는 화장실. 우리가 지금 당연히 받아들이고 있지만 대소변을 가리려고 외출복으로 갈아입지 않게 된 것은 50년을 넘지 않는다. 이런 변화는 우선 여성의 가사노동력 절감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왔다. 구조적 변화만이 아니라 그 구조에 맞게 기능하는 청소기·세탁기·식기세척기 등 가전제품 발달이 동시에 진행되며 가능한 일이었다. 이제 전자기기들이 주인의 마음을 미리 헤아려 기능을 예비하고 있을 정도다. 투입되는 노동력이 줄자 여성의 사회 진출을 용이하게 했다는 점과 함께, 가사의 노하우를 기계가 전수받으며 남성이 더 적극적으로 가사를 분담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노동력 절감 혜택은 남성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아파트의 공동관리로 정원 및 마당 관리, 주택 보안, 일상적인 개·보수 업무 등은 이제 더 이상 남성만 해야 하는 일이 아니다. 이뿐만 아니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며 상업시설·교육지원시설 등이 들어서게 되고 가사·교육 등 서비스를 저렴하게 제공하고 있다. 이는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는 아파트 문화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김현아 박사는 “기능적 측면에서 주거 편의성을 높이는 쪽으로 아파트 형태나 그 안에 담기는 기기들이 계속 진화하고 있다”며 “주거설비에 대한 원격 조정 개념을 넘어 건강, 의료, 에너지 절감 등을 위한 각종 주거설비 기술은 노동력을 감소시키는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파트는 [캐비닛]이다

소설가 이외수는 말했다. “거실에 앉으면 건너편 아파트 거실에서 움직이는 사람이 어렴풋이 보인다. 하지만 정작 옆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길이 없다.” 이어 아파트를 이렇게 정의한다. “사람 보관용 콘크리트 캐비닛이다.”

골목길이 사라졌고, 이웃사촌은 사실상 의미를 잃었다. 아파트는 도시·농촌을 가리지 않고 들어선다. 아파트가 들어선 곳에서 마을 단위의 삶은 찾아보기 힘들다. 막스 베버의 “인간성을 차단하는 철강”이라는 선언은 아파트의 각박한 미래를 보여준다. 일체화된 사회적 삶을 의미하는 전통사회가, 사회적 삶과 철저하게 격리된 개인의 삶을 추구하고 그 사이에는 철저히 격벽이 쳐진 ‘아파트 사회’로 전이됨을 예견한 것이다.

‘철제 캐비닛’은 그 개념 안에 부정적·긍정적 의미 모두를 포괄한다. 캐비닛에 담긴 모든 것은 보안과 구분의 편의 등을 보장받는다. 아파트라는 캐비닛은 개별 가구의 안전과 개별성을 존중한다는 의견이 있다. 게다가 교육 등 복지 서비스를 중심으로 ‘필요한 만큼’의 연대는 편의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다. 이를 삼성경제연구소 박재룡 박사는 “안전한 캐비닛처럼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불안이나 위험요소 등과 격리될 수 있는 최대한 안전한 주거 공간이 바로 아파트”라며 “앞으로도 그 주거 형태의 근본적인 틀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것이 특수한 일부 상류층이 누리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서비스 형태로 자리잡는 것은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아파트 이름은 삼성·쌍용·현대 등 회사 이름이나 지역명이 따라 붙었다. 90년대 후반 '롯데캐슬'을 필두로 아파트의 브랜드 바람이 불었다. 규제 완화와 함께 아파트 가격이 요동치기 시작한 때도 이즈음이었다.

»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아파트 이름은 삼성·쌍용·현대 등 회사 이름이나 지역명이 따라 붙었다. 90년대 후반 '롯데캐슬'을 필두로 아파트의 브랜드 바람이 불었다. 규제 완화와 함께 아파트 가격이 요동치기 시작한 때도 이즈음이었다.

아파트는 [로또]

‘오를 때는 왕창, 내릴 때는 찔끔.’ 뭘까? 삶이 비루하다 하여 세상 만물이 다 그렇다 해도 딱히 틀린 말은 아니겠으나, 사회과학적 분석틀을 빌려온다면 인상과 하락에서 ‘왕창’과 ‘찔끔’의 경향성을 보이는 대표적인 소비재는 바로 기름과 아파트다. 기름은 일반인에게 투자 대상이 아니니 현실계에서 의미가 있는 것은 아파트다. 결국 아파트는 수익을 보장하는 검증된 로또다. 더 정확히 말하면 당첨의 바람을 담은 미래형 로또가 아니라 ‘당첨된’ 과거형 로또다. 뛰어난 환금성 또한 그것이 이미 당첨된 것임을 말해준다. 수요와 공급의 질서와 배치된다는 점에서 시장경제에 부합하는 모양새는 아니다. 다수의 암묵적 합의를 바탕으로 가격 하락을 막아내고, 결국 가격 상승을 이끈다는 점에서 로또보다 더 노골적이다. 정상적 가격 조정이 불가하고, 정책이 좀처럼 기능하지 못하는 것도 이런 욕망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로또가 개별 삶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점과 달리, 실현되지 못한 공동의 욕망을 한꺼번에 궁지에 몰아넣을 수 있다는 점에서 로또보다 더 위험하다.

“집 뒤 댓바람에 잠이 들었다가 대문으로 밀려오는 강바람에 눈을 떴던 선조들과 달리 우리는 아파트라는 건조한 투기장에서 자고 일어난다.” 소설가 이문재의 말이다.

아파트는 [난쏘공]이다

“내일이면 우리 집이 헐리어진다/ 쌓아놓은 행복도 무너지겠지/ 오늘도 그 사람이 겁주고 갔다/ 가엾은 우리 엄마 한숨만 쉬네/ 개×× 개×× 나쁜 사람들/ 엄마 울지 마세요.” (민중가요 )

“난생처음 이십 평짜리 땅덩어리가 내 소유로 떨어진 겁니다. 내 차지가 된 그 이십 평이 너무도 대견해서 아침저녁으로 한뼘 한뼘 애무하다시피 재고 밟고 하느라고 나는 사실은 나 이상으로 불행한 어느 철거민의 소유였어야 할 그것이 협잡으로 나한테 굴러 떨어진 줄을 전혀 잊고 지낼 정도였습니다.”(윤흥길, )

1980년대 초만 해도 서울에만 220여 곳의 빈민촌이 있었다. 상계동·중계동·난곡·봉천동·사당동·삼양동·하월곡동·가리봉동·신정동 등 서울 곳곳의 비탈에는 가난의 풍경이 늘어서 있었다. 당시 서울 인구 3분의 1은 빈민촌에서 살았다. 가난한 삶은 처참했다. 1980년대 관악구 봉천5동에 거주한 3825가구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한 가구당 주거 면적은 13.2㎡(4평)이었다. 재개발이란 명목 속에 가난한 이들의 마을은 한 곳씩 짓밟혔다. 굴착기를 앞세운 철거용역과 전투경찰은 나란히 ‘쌓아놓은 행복’을 허물었다. 이들이 짓밟고 다져놓은 자리에는 아파트가 들어섰다. 철거에 이은 아파트 건설의 이야기는 1970년대 소설 (난쏘공)에서도 그려졌다. 화려한 아파트 건설의 역사는 곧 도시 빈민 주택 철거의 역사였다. 역사는 현재진행형이다. 2009년 용산 참사 역시 아파트 건설을 위한 철거 과정에서 일어났다. 피를 먹고 자란 것은 민주주의만은 아니었다.

아파트는 [구치]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 서민형 주택인 아파트는 한국을 건너와서 ‘명품’이 됐다. 아파트의 기원은 산업화가 급속히 진행된 유럽이다. 아파트는 노동자로 부글거리는 유럽 도시의 저질 주거 형태로 시작됐다. 초기 사회주의자 로버트 오언의 영향을 받은 유럽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사회주의적 공동생활에 적합한 양식으로 아파트에 눈독을 들이기도 했다. 1950년대 한국에 첫발을 내디딘 아파트는 일반인에게 ‘기피시설’이었다. 아파트를 처음 접한 사람들의 첫 질문은 “김장독은 어디에 묻는가?”였다. 게다가 초기 아파트는 작은 평형이 많아서 빈민굴의 이미지가 강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토지 이용의 효율성을 위해서 “국민이 싫어하더라도 아파트를 많이 지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전쟁으로 인한 과밀화로 주택 부족 문제가 심각하던 시절이었다.

아파트가 상류층의 주거시설로 발돋움하게 된 시기는 1970년대였다.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는 대표적인 예였다. 60평에 이르는 넓은 평형에 쾌적한 입지는 신흥 부유층의 수요와 맞아떨어졌다. 1990년대 후반 들어 건설업체들은 다시 아파트의 ‘브랜드화’를 시도했다. 아파트 분양가 자율화를 준비하며 아파트 가격을 올려받으려는 마케팅 전략이었다. 평당 분양가가 200만~300만원 하던 시절, 건설사들은 평당 2천만원을 겨냥한 ‘이미지’를 생산해냈다. 이른바 ‘명품 마케팅’이었다. 유명 여배우가 뜬금없이 궁전 같은 집에서 와인잔을 흔드는 광고가 나온 것도 이즈음부터다. 예전에는 현대아파트·삼성아파트 등이었던 이름들도 캐슬, 팰리스, 하임, 스위트 등등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외국 유학생의 국내 주소지가 ‘롯데캐슬’이어서 장학금을 받지 못했다는 웃지 못할 얘기도 떠돌았다. 아파트 가격은 중·상위 계층의 허위의식과 함께 부풀어올랐다.

아파트는 [돈줄]이다

4조5298억원. 아파트값이 출렁대던 2002~2004년 10대 건설업체들이 신고한 순이익이었다. 아파트값이 ‘미쳤다’는 말을 듣던 시절이었다. 국민은행의 아파트 가격 지수를 보면, 1999년 1월 35.7이던 가격 지수는 2007년 1월 95.2까지 뛰어올랐다. 8년 사이에 거의 3배 뛰어올랐다. 고삐 풀린 아파트 가격이 서민의 가슴을 할퀴는 사이 건설업체들은 ‘노가 났다’. 정부의 경기부양책 덕이었다. 김대중 정부는 경기를 부양한다는 명목으로 건설업체에 줄줄이 규제를 완화했다. 분양가 자율화, 토지거래 신고제 폐지, 분양권 전매제한 폐지, 아파트 재당첨 금지 기간 단축 및 폐지, 무주택 가구주 우선 분양 폐지 등 ‘선물 리스트’는 끝이 없었다. 규제 완화의 빗장이 풀린 뒤 기승을 부리는 부동산 투기를, 이정우 경북대 교수(경제학)는 한 칼럼에서 “우리를 뛰쳐나온 사나운 사자”에 빗댔다. 덕분에 지표상의 경제성장률은 끌어올렸지만, 건설 분야에 부글거리는 거품이 남았다.

다음 아고라의 유명 논객인 ‘슬픈한국’은 최근에 낸 책 에서 수도권 102㎡(30평대) 아파트의 가격은 생산비용만 고려했을 때 6600만원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그만한 넓이의 아파트는 서울 강남에서 10억원을 훌쩍 넘는다. 막대한 차액은 누가 챙겼을까. 아파트 투기 현장에서 한몫을 챙긴 건, 토건자본과 은행자본이라는 것이 책의 설명이다. 건설사의 고질적인 폭리 구조를 뜯어고치려고 참여정부 때부터 아파트 분양가 원가 공개, 분양가 상한제 등 대안이 제시됐지만 대부분 흐지부지됐다. 최근 이어지는 건설업체들의 줄도산은 스스로 쌓아올린 거품 속에 허우적거리다 빠져드는 격에 가깝다.

» 아파트 단지가 확산되면서 단독주택, 한옥, 골목길은 줄었다. 최근 일고 있는 한옥마을에 대한 관심은 잃어버린 것에 대한 향수이자 미묘한 변화의 조짐으로 볼 수 있다. 한겨레 이종근

» 아파트 단지가 확산되면서 단독주택, 한옥, 골목길은 줄었다. 최근 일고 있는 한옥마을에 대한 관심은 잃어버린 것에 대한 향수이자 미묘한 변화의 조짐으로 볼 수 있다. 한겨레 이종근

아파트는 [반혁명]이다

한국의 아파트가 정치적 보수주의와 관련 있는 이유로 두 가지가 지적된다. 박해천 홍익대 연구교수는 아파트의 이런 측면을 “정치적 보수화와 반혁명의 매개물”이라고 표현했다. 아파트는 건축적으로 거주자를 가족주의와 개인주의에 친숙하게 만드는 성격을 지녔다. 아파트에서 식사, 잠자기, 놀이 등 모든 행위가 핵가족 안에서만 이뤄진다. 대부분의 아파트에는 여분의 방이 없으므로 친지나 친척들의 체류가 제약받는다. 과거처럼 일가친척이 자주, 오랫동안 서로의 집을 왕래하는 일은 아파트 시대에 찾아보기 힘들다는 게 박 연구교수의 분석이다. 이웃과 사회문제로부터 자연스레 멀어진다.

여기에 한국적 특수성이 추가된다. 한국에 아파트를 도입한 장동운 전 대한주택영단 총재는 5·16 쿠데타에 참여했던 군인 출신이다. 아파트는 군부독재 세력에게 근대화와 관련된 정책으로 받아들여졌다. 세련되고 위생적인 화장실과 부엌이 딸린 아파트는 곧 중산층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1977년 한 일간지 설문조사에서 “아파트에서 신혼을 시작하겠다”는 대학생이 81%에 달했다. 박 연구교수는 아파트의 이런 측면에 대해 “인간 개조의 생체정치학적 프로그램을 완비한 정치적 보수화의 전초기지로 기능하고 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따라서 전 국토의 아파트화가 그들(권력)의 다음 목표가 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고 분석했다.

반면에 전상인 교수는 에서 “(아파트에 사는) 화이트칼라는 1987년 노동자 대투쟁 당시 한국 사회의 이념적 좌경화를 막는 결정적 방파제 역할을 했다”면서도 “반군부독재화, 민주화를 향한 물꼬를 트는 데도 그들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고 분석했다. 아파트 중산층이 정치적으로 양면성을 지녔다는 반론이다.

아파트는 [표]

특정한 아파트 거주자들이 선거를 좌우하는 핵심 투표자로 자주 꼽힌다. 뉴타운 지역 아파트가 대표적이다. 뉴타운 사업은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임 때부터 강조한 핵심 사업이었다. 명분은 강북 주민의 주거환경 개선이었지만 이면에는 표 계산이 있었다. 강북 주민들은 집값 상승을 바랐고, 이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그런 환심을 득표로 돌릴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원주민 재정착률이 낮은 것도 한몫했다. 개발 전에 원래 거주하던 주민이 들어서는 비율이 매우 낮았다. 경제력을 가진 주민이 새로 입주했고 이들이 투표 성향을 바꿨다. 2008년 서울 지역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압승했다. 손쉽게 당선된 한나라당 초선 의원들에 대해 ‘뉴타운돌이’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4·27 재보선 핵심 지역인 경기 분당을 지역구도 이런 사례로 거론된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당선됐지만, 한나라당의 승산이 높다는 예상이 많았다. 특히 고급 주상복합아파트가 들어선 정자1동이 한나라당 텃밭으로 분석됐다. 18대 때 한나라당 후보와 민주당 후보의 표 차이보다 줄긴 했지만, 한나라당 강재섭 후보는 분당을 8개 동 가운데 정자1동에서만 손 대표를 이겼다.

이 때문에 최근의 ‘뉴타운 논란’이 주목된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뉴타운 사업의 수익성이 나빠지자 주민들이 뉴타운 지정 철회를 요구하는 등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서 반발이 나온다. 김문수 경기지사는 지난 4월 “지금 추진하고 있는 뉴타운 사업이 안정될 때까지 경기도에서 추가 사업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뉴타운 지역 유권자들이 18대 때와 다른 투표 성향을 보일지 주목된다.

아파트는 [내 얼굴]이다

아파트 이름과 평수로 ‘나’를 드러내는 시대다. 사람들은 ‘어디 사느냐’는 질문에 거주 지역이 아니라 아파트 브랜드 이름을 댄다. 건축가 고 정기용 전 문화연대 공동대표는 2008년 시민단체 강연에서 이런 경험을 소개하며 “집이 아니라 대기업의 이름 속에서, 돈다발 속에서 산다. 예전에는 ‘어디 사느냐?’고 하면 ‘이화동’ ‘쌍문동’이라고 동네 이름이 나왔고, ‘방 몇 개냐?’고 물었지 ‘몇 평이냐’고 묻지 않았다. 이게 한국의 현실이다”라고 비판했다. 대기업이 지은 아파트 브랜드로 사회적 지위를 판가름하는 추세가 심각한 문제라는 취지다.

아파트로 사회적 지위를 구별지으려는 태도는 197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박해천 교수는 분석했다. 1970년은 아파트의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다. 그해 4월 서민들이 거주하던 와우아파트가 붕괴해 33명이 숨졌다. 한편 같은 해 7월 한강변에 지어진 한강맨션 입주가 시작됐다. 한강맨션은 일본의 대형 평형 아파트를 본떠 고급 아파트를 표방했다. 박 연구교수는 “8평이라는 좁은 공간, 공동변소를 써야 하고 연탄가스가 복도에 가득 차는 시민아파트들은 ‘고층 판자촌’이라는 별명을 얻고 도시의 흉물로 전락한 반면, 한강맨션을 필두로 ‘맨션’이라는 이름의 고급 아파트가 속속 등장했다”고 분석했다. 서정렬 영산대 교수(부동산금융학)는 이런 문화적 흐름에 대해 “아파트는 내 얼굴”이라고 표현했다.

아파트는 [거위의 꿈]이다

아파트는 애증의 대상이다. 아파트 소유에는 대가가 따른다. 서정렬 교수는 이런 아파트의 성격을 ‘거위의 꿈’이라는 말로 설명했다. ‘거위의 꿈’은 가수 카니발의 노래다. “난 꿈이 있었죠/ 버려지고 찢겨 남루하여도/ 내 가슴 깊숙이 보물과 같이 간직했던 꿈”이라는 노랫말로 시작한다. 서 교수는 과의 전화 통화에서 “투자라는 측면에서는 아파트는 여러 주택 상품 중에 가장 뛰어나지만 거기서 오는 혼란도 만만찮다. 마치 노래 가사처럼 애증이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제기된 ‘하우스푸어’(House Poor) 논란을 서 교수는 대표적인 ‘애증’ 사례로 거론했다. 하우스푸어란 2000년대 부동산 가격이 정점에 달했을 때 무리하게 빚을 내 아파트를 샀으나 아파트값이 떨어져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30~40대 가장의 집안을 가리킨다. 서 교수는 “하우스푸어 문제가 거위의 꿈에 해당한다. (아파트를) 갖고 싶지만 현재 가격이 높아서 소유하는 데 어려운 계층도 있고, 아파트를 자산 증식 차원에서 구매했다가 안 팔려 어려움을 겪는 사람도 있다. 아파트를 소유하는 데 따르는 어려움과 애증이 있다”고 풀이했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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