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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공화국에 주택의 봄은 오는가

뉴타운 열풍 주춤, 부유층 단독 선호, 35~54살 인구 감소 등 겹치며 ‘탈아파트’ 기운 번져…가격 하락, 취향 변화로 아파트 장기독재 서서히 저물어
등록 2011-06-01 15:17 수정 2020-05-03 04:26
한강 북쪽에서 바라본 서울. 아파트가 숲을 이루고 있다. 한겨레21 김경호

한강 북쪽에서 바라본 서울. 아파트가 숲을 이루고 있다. 한겨레21 김경호

실수요자인 척해보았다. 지난 5월25일 오전 서울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 옆 작은 상가에서였다. 긴 호흡을 하고 나서 한 부동산 중개 사무실에 들어갔다. 아침 댓바람부터 찾아온 ‘가짜 고객’을 부동산 중개 사무실 직원들은 부산스럽게 맞았다. 기자 신분을 속였으니, 뒤늦게라도 고개 숙여 사과할 일이다. 실수요자들은 현장에서 어떤 말을 들을까 궁금했다.

타워 팰리스, 1년새 10억 이상 떨어져

테이블에 마주 앉은 한 부동산 업체의 사장은 팔부터 내저었다. “제 손님들은 모두 타워팰리스를 팔도록 도와드렸어요. 저는 여기 아파트를 사시라고 권유하지 않아요. 굳이 여기에 들어오시겠다면 전세나 월세를 권유하고 싶네요. 아파트가 재산 1호일 거 아니에요? 여기 가격이 오르기를 기대하기 힘든데 왜 굳이 사세요. 제가 말려도 굳이 여기 아파트를 사셨던 분들이 있어요. 이제 와서 말씀하세요. 왜 말리지 않았냐고.”

가격을 물었다. 타워팰리스도 다 같지는 않다. 특히 아파트가 면한 방향이나 위치에 따라 가격은 차이가 났다. 인기 있는 아파트는 낙폭이 크지 않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30억원을 넘던 69평짜리 아파트 한 채의 가격이 25억원 밑으로 떨어졌다. 그는 “가격이 더 오를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거래도 뜸했다. 사겠다는 사람은 없고, 급매물만 나올 뿐이다. 물론 처음 본 ‘손님’에게 ‘업자’가 얼마나 솔직하게 업계 ‘고급 정보’를 말해줬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업자가 거래를 말리는 상황은 아무래도 낯설었다.

이웃한 부동산 중개업소를 찾았다. 50대로 보이는 사장은 “헬멧 쓰고 다닐 때부터” 타워팰리스 옆에서 사업을 벌였다고 말했다. 타워팰리스 건설 현장 인력들이 오갈 때부터 중개 업무를 했다는 뜻이었다. 그는 “칼자루를 쥔 쪽이 바뀌었어요”라고 말했다. “몇 년 전만 해도 아파트를 팔려는 사람보다 사려는 사람이 더 많았어요. 그런데 이제는 반대예요. 팔려는 사람이 더 많죠. 이제는 사는 쪽이 칼자루를 쥐고 있어요.” 그가 전한 분위기는 이랬다. 거래가 뚝 끊겼다. 급전이 필요한 사람들은 지난 1~2년 사이에 벌써 빠져나갔다. 나머지는 그냥 아파트에 계속 살 생각이거나, 팔고 싶지만 버티는 사람들이다. 예를 들어 30억원 주고 아파트를 산 사람은 25억원에 도저히 아파트를 팔 수 없다. 생돈 5억원이 아까워서다. 아파트 가격이 떨어져도 다시 오를 때까지 버티자는 생각이다. 한편 아파트를 사겠다고 선뜻 나서는 이도 없다. 더 떨어질 때까지 두고 보자는 생각이다. 팔려는 사람도 없고 사려는 사람도 없다.

» 자료: 서울시 부동산정보광장(land.seoul.go.kr)

» 자료: 서울시 부동산정보광장(land.seoul.go.kr)

한국 고급 아파트의 상징, 타워팰리스의 2011년 5월 풍경이었다. 봄이 한창이지만 시장은 겨울이 시작됐다. 서울시 부동산 정보 누리집(land.seoul.go.kr)을 찾아보았다. 지난해 1월 이후 타워팰리스 아파트의 실거래 가격을 확인할 수 있었다(표1 참조). 우선 165㎡(30평) 아파트의 거래 가격 추이를 보면, 지난해 1월 27억원에 거래되던 가격이 요동을 치며 대체로 하향 곡선을 그렸다. 지난해 말에는 18억5천만원까지 떨어졌다. 같은 면적이어도 입지와 층수에 따라 가격이 달랐다. 이런 하락세를 성급히 일반화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값이 떨어지는 ‘우하향’의 경향은 관찰된다. 좀더 큰 면적인 245㎡(74평) 아파트의 거래 가격에서도 흐름은 비슷했다. 단순 비교하면 1년여 사이에 거래 가격이 52억원에서 40억원으로 곤두박질쳤다. 부동산 업자가 푸념한 이유를 말없는 통계가 더 또렷하게 설명했다.

이명박식 뉴타운 개발의 종언

타워팰리스는 한국 땅에서 아파트가 겪는 ‘수난’을 보여주는 한 예에 불과하다. 1950년 이 땅에 첫발을 내디딘 이래 강남을 중심으로 ‘불패 신화’를 이끌었던 아파트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아파트=중산층 이상 주거 공간’ ‘아파트=불패’ 등식은 깨지고 있다. 크게 보아 세 가지 변수가 함께 작동하고 있다. 우선 시장 분위기가 바뀌었다. 여기에 정부 정책이 바뀌고 있고, 소비자의 수요가 변화하고 있다. 30년 넘게 이어진 ‘아파트 독재’의 아성에도 균열이 군데군데 생기고 있다.

무엇보다 아파트 시장이 꽁꽁 얼어붙었다. 5월 기준 서울시 아파트 거래량은 2008년 7651건이었지만 계속 줄어들어 지난해에는 2230건까지 줄었다. 지난해 아파트 시장에 서늘한 바람이 머물렀다면, 올해에는 아예 한파가 몰아닥쳤다. 지난 5월1~27일 아파트 실거래량은 712건에 불과했다. 가격도 떨어지고 있다. KB국민은행의 월별 매매가격 동향을 보면, 지난 4월 서울 지역 아파트 가격은 1년 전에 견줘 1.8% 떨어졌다. 단독주택 가격 동향과도 상반된다. 같은 기간 단독주택 가격은 0.8% 올랐다. 아파트 가격만 혼자 추락하고 있는 셈이다.

아파트 시장이 얼어붙자 ‘대단위 아파트 건설 사업’인 뉴타운 사업에도 줄줄이 급제동이 걸렸다. 2002년 이후 서울에서 모두 237개의 뉴타운 사업구역이 지정됐지만, 공사를 시작했거나 끝낸 사업구역은 32개에 불과하다. 서울 뉴타운 사업구역 중 205곳(86.5%)이 착공조차 못했다. 조합 설립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지 못한 구역도 66곳(27.8%)에 이른다. 사업성이 불투명하니 이미 착공한 사업구역에서도 주민 갈등 등으로 사업이 지연되고 있다. 지난 4월 분양할 계획이던 성동구 왕십리 2구역은 분양가를 정하지 못해 공사가 중단됐다. 경기 지역에서도 뉴타운 사업에 줄줄이 제동이 걸리고 있다. 경기도 안 23개 뉴타운 지구 가운데 7개 지구에서 뉴타운 사업을 중단하기 위해 주민투표 등의 과정을 밟고 있다. ‘단독주택 철거 → 아파트 단지 건설 → 뉴타운 대박’으로 이어지는 공식은 깨지고 있다. 건설업체와 정치인, 관료들이 약속했던 ‘뉴타운 성공 공식’은 곳곳에서 신기루로 확인되고 있다.

정부의 정책 변화도 감지된다 서울시가 특히 적극적이다. 아파트의 무서운 ‘번식력’이 서울시를 빠르게 뒤덮고 있기 때문이다. 1975년 인구주택총조사를 보면, 주택 100채 가운데 단독주택이 83채, 아파트가 8채꼴이던 것이 2005년에는 단독주택이 20채, 아파트가 54채로 뒤바뀌었다. 서울시는 아파트가 망쳐놓은 도시 경관을 복원하려 애쓰고 있다. 사실상 이명박 대통령이 추진했던 뉴타운식 개발 방식에서 ‘U’턴한 셈이다. 시가 지난해부터 벌이는 ‘휴먼타운’ 시범사업이 그 예다. 휴먼타운이란 기존 저층 주거지에 아파트의 장점을 결합한 주거 형태로, 골목길과 기존 건물을 부수지 않고 마을 형태를 유지하며 정비하는 형식을 가리킨다. 쉽게 말해, 주거 상태가 양호한 단독주택·연립주택 지역의 거리와 건물을 보존하며 주민들이 원하는 방범, 보안, 주차장 등 공용 인프라를 보완하겠다는 구상이다.

개발의 상처를 보는 시민 55.6%

서울시는 지난 5월14일 내놓은 ‘신주거정비 5대 추진 방향’에서 조금 더 분명히 비전을 그렸다. 핵심은 40년간 유지돼온 ‘철거 후 아파트 단지 건립’이란 획일적 개발 방식에서 벗어나 한옥이나 도시형 타운하우스 등 다양한 개발 방식을 장려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최근 뉴타운 사업이 줄줄이 좌초하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서울시의 정책 방향과 맞아떨어진다. 서울시는 개인들의 재산 증식에 일일이 신경 쓸 까닭이 없다. 오히려 도시 경관에 더 관심이 있을 수밖에 없다. ‘묻지마 개발 광풍’ 속에서 숨죽이던 ‘탈아파트’ 정책은 뉴타운 바람이 잦아들자 오히려 자리를 잡아가는 분위기다.

이런 정책은 주민들의 정서와도 궤를 같이한다. 서울시가 지난해 6~8월 시내 1만 가구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 절반 이상인 55.6%가 뉴타운식 도시 정비 방식에 대해 ‘부정적’이라고 말했다. 아파트 ‘대박’을 노린 폭력적인 개발 방식이 남긴 상처가 그만큼 깊었기 때문이다. 진희선 서울시 주거정비과장은 “아파트만이 대안이 아니라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이에 맞춘 정비 모델을 제시하려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검토하는 개발 모델 가운데 하나는 이렇다. 시설이 낙후한 지역은 어차피 재개발이 불가피하다. 그러면 용적률 등을 통해 혜택을 주며 아파트를 짓는 대신 일정한 땅을 기부채납으로 받아 이웃한 단독주택 지역을 위한 커뮤니티나 주차장 시설 등으로 활용하는 방식이다. 단독주택 등의 주거 유형을 보존하며 아파트 단지의 편의도 늘려주겠다는 복안이다. 진 과장은 “아직 여러가지 방안을 연구하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아파트의 수요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우선 부유층 사이에서 선호가 변화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도심의 대형 아파트촌을 떠나 경기 판교 등 외곽 지역의 대형 단독주택으로 이동하는 흐름도 보인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경기 분당구 대장동 남서울CC 입구 전원마을에 저택을 마련한 것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언론에서도 ‘신흥 부촌’으로 판교 지역의 타운하우스를 소개하는 기사가 종종 나왔다. 한국의 부유층도 외국처럼 교외에 수영장과 거대한 정원이 딸린 저택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떠돌았다. 물론, 이런 기사를 무작정 소화하기에는 목에 가시처럼 걸리는 부분이 있다. 도심 아파트 건설에서 더 이상 수익 창출이 어려운 건설사들이 교외의 타운하우스에서 수익 모델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형 건설사들은 서판교 지역을 중심으로 지상 1~2층 규모의 고급 타운스를 지어서 내다 팔고 있다. ‘뉴스’와 ‘광고’는 종종 뒤섞인다. 물론 건설사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경향을 과소평가할 이유는 없다. 그만큼 건설사들이 아파트 시장에서 죽을 쑤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부산 해운대 우신골드 주상복합건물 화재사건도 고층 아파트의 인기에 영향을 끼친 변수로 평가된다. 당시 고층 주상복합 아파트가 화재에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취약한 것으로 드러나며 안전성 논란에 휩싸였다. 특히 고층 아파트의 꼭대기층, 즉 ‘펜트하우스’를 선호하는 부유층에게 직접적 영향을 줄 수 있는 변수였다.

아파트 인기도 대세 하락

아파트에 대한 일반적 인식도 변화의 기미를 보이고 있다. KB주택은행과 한국주택금융공사의 주택금융 수요실태 조사를 보면, 주택 유형 가운데 아파트를 원하는 응답자의 비율은 1990년 40% 수준에 머물렀지만 이후 가파르게 늘어 2004년에는 75.7%까지 치솟았다. 4명 중 3명은 아파트를 원했던 셈이다. 그 뒤 아파트 선호도는 2006년까지 68.1%로 떨어지더니 지난해까지 68% 선을 유지하고 있다. 2009년에 반짝 73.8%로 출렁거렸을 뿐이다. 주택금융공사 관계자는 “2004년 이후 68% 수준으로 떨어진 다음 대체로 선호도가 정체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 자료 : 서울시 부동산정보광장.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자료 : 서울시 부동산정보광장.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시장과 정책, 소비자 의식의 변화는 실제 공급량에 영향을 끼칠까. 국토해양부의 주택건설실적 통계를 살펴봤다(표3 참조). 2004년 이후 아파트 건설 비율은 전체 주택 건설 실적 가운데서도 하향세를 그리고 있다. 2005년에는 전국에서 지어진 주택 100채 가운데 84채가 아파트였지만, 지난해에는 56채만이 아파트였다. 절대량 기준으로도 2005년 41만5511채에서 지난해 27만6989채로 감소했다.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에서도 2005년 신규 주택 100채당 89채가 아파트였지만 지난해에는 73채꼴로 떨어졌다.

이런 몇 가지 흐름을 확인해도 아파트의 미래를 단언하기란 쉽지 않다. ‘아파트의 종말’ ‘아파트 대폭락’ ‘거품 붕괴’ 등의 말은 아파트 가격 상승과 함께 계속 맴돌았다. 오래된 ‘부동산 불패’ 신화 속에서 아파트 거품 붕괴에 대한 경고는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 취급을 받기 십상이었다. 아파트 가격의 휘발성이 그만큼 세서 가격 변동이 극심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앞으로 아파트의 미래를 좌우할 굵직한 변수들이다. 중요한 몇 가지만 살펴보자. 첫째 인구학적 요인, 둘째 아파트 공간에 대한 선호도 변화, 셋째 자산으로서 아파트의 매력이다.

우선 인구학적 요인을 보면 두 가지 길항하는 요인이 함께 작용하고 있다. 하나는 우리나라의 인구 감소이고, 다른 하나는 1인당 주거 면적의 증가다. 짐작하기 쉽지만, 첫째는 아파트의 수요를 줄이고, 둘째는 아파트의 수요를 떠받치는 요인이다. 어느 쪽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아파트의 미래 전망이 다를 수밖에 없다. 먼저 인구가 줄어드는 대목을 보면, 통계청이 2009년 1월에 내놓은 ‘향후 10년간 사회변화 요인 분석 및 시사점’ 보고서를 펼쳐볼 만하다. 보고서는 선진국에서 35~54살 인구가 줄어드는 시점과 동시에 주택 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예를 들어 일본은 1990년 해당 연령대의 인구가 줄어들었는데, 그해에 도쿄의 주택지가격지수가 하락세로 돌아섰다. 미국도 35~54살 인구 감소 시점와 케이스-실러 주택가격지수가 떨어지는 시기가 거짓말처럼 2007년에 겹쳤다. 이런 현상은 프랑스·네덜란드 등 다른 서구 국가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났다. 우리나라는? 통계청은 우리나라에서 해당 연령대 인구가 줄어드는 시점을 내년으로 내다봤다. 즉, 우리나라 35~54살 연령대 인구가 올해 1657만 명으로 정점을 찍고 내년에는 3만 명 정도 줄어든다는 전망이다.

편리와 안전이 최후의 방파제

1인당 주거 면적이 늘어나는 경향도 주목할 만하다. 우리나라 1인당 주거 면적은 2005년 22.8㎡로, 다른 선진국의 30~60% 정도다. 미국(68㎡·2003년), 일본(36㎡·2003년), 영국(44㎡·2001년) 등 선진국과 비교하면 한국인의 집은 좁다. 게다가 가구당 가구원 수도 줄어들고 있다. 1990년 가구당 가구원 수는 3.71명에서 2005년에는 2.88명이었다. 종합하면, 인구가 줄어들지만 가구는 잘게 쪼개지며 개인들은 더 넓은 주거 공간을 요구하는 셈이다. 박재용 현대건설 상품기획팀장은 “미래에는 혼자 원룸에 살더라도 넓은 평형을 소유할 가능성이 높다”고 풀이했다. 인구와 가구의 변화가 앞으로 아파트의 미래를 어떻게 바꿔놓을지 관찰거리로 남는다.

아파트 공간에 대한 선호도 변화도 중요한 변수다. 아파트의 매력은 무엇보다 압도적인 편리와 안전에 있다. 주차장, 육아·난방 시설이 주는 생활의 편리함과 집단 거주가 주는 안전성 때문에 아파트의 인기는 시들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다. 실제로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자료를 보면, 주거침입 범죄를 경험한 비율은 2008년 기준으로 아파트가 1.1%로 단독주택의 6.2%보다 크게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박인석 명지대 교수(건축학)는 “한국에서 아파트가 가진 편의는 정확히 말하면 아파트 단지가 주는 장점이다. 그 편의가 크기 때문에 ‘아파트 단지 공화국’의 위상은 한동안 유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에서는 아파트 공간의 단절과 건조함에 지친 도시인의 취향 변화에 주목한다. 조한 홍익대 교수(건축학)는 “아파트 단지는 극단적으로 개인 공간과 공용 공간의 분리를 가속화했다. 또 아파트 단지 안의 인공적 ‘생태’공원은 사회적·생태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다”며 “최근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질적 가치에 대한 욕구는 주거 시장에도 영향을 주어, 경제적 가치 등 양적 가치로서의 주거 공간이 아닌 사회적·생태적인 질적 가치의 주거 공간을 찾는 강력한 욕구가 발생하고 있다”고 풀이했다. 아파트의 편리와 구속 사이의 길항 관계 역시 앞으로 눈여겨볼 대목이다. 주택금융공사의 설문을 보면, 20대 가구주 중 주택 유형으로 아파트를 선호하는 비율은 66.3%로 전체 세대 가운데 50대(60.8%) 다음으로 낮았다. 30대(74.4%)나 40대(67.9%)보다는 아파트에 대한 선호도가 낮았다.

사고파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

마지막으로 아파트의 경제적 가치에 대한 기대도 또 하나의 요소다. 우리나라에서 아파트의 인기가 높은 이유 가운데 가장 흔히 얘기되는 것이 높은 환금성이다. 쉽게 말해, 자동차는 사고 쓰면 가격이 떨어지지만, 아파트는 오래 소유해도 오히려 가격이 올라 쉽게 팔 수 있다는 뜻이다. 아파트에 대한 이런 오랜 관념은 우리나라에서 예상을 벗어난 적이 거의 없다. KB국민은행 주택가격지수 기준으로 서울의 아파트 가격이 2001~2010년 147% 오르는 동안, 단독주택은 76% 올랐을 뿐이다. 문제는 그 경험을 신뢰할 수 있느냐다. 그에 대해서는 회의론이 지배적이다. 심지어 정부도 이를 믿지 않는 분위기다. 지난 5월1일 정부가 낸 건설경기 활성화 방안의 제목은 다름 아닌 ‘건설경기 연착륙 및 주택공급 활성화 방안’이었다. 정부가 걱정하는 것은 건설경기가 내려앉는 것이 아니라, ‘너무 빨리’ 내려앉는 것이다. 정부 역시 부동산 거품을 천천히 빼는 것이 정책 목표라는 뜻이다. 선대인 김광수경제연구소장은 대표적인 회의론자다. 그는 “현 정부는 2008년 경제위기 이후 공공부채를 410조원이나 늘려가며 부동산 분야 구조조정을 미뤄왔다. 부동산 시장의 거품이 걷잡을 수 없는 수준으로 늘어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면, 거품 붕괴의 전망은 우울하다.

주거공간으로서 아파트는 여전히 매력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만 투자 대상으로서의 아파트는 이미 그 운명을 다했을 가능성이 크다. ‘아파트 독재의 종말’을 조심스럽게 점치는 이유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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