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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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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지도층, 100여억원 몰래 빼간 야만의 밤


부산상호저축은행, 영업정지 전날 밤에 VIP 100여명만 불러 100억원 이상 인출…금감원은 편법 인출 알고도 방조·묵인했나
등록 2011-04-30 11:00 수정 2020-05-03 04:26

은 부산상호저축은행이 영업정지 통보 하루 전인 2월16일 저녁 100여 명의 고액 고객(이하 VIP)에게 영업시간 외에 특정 시간과 지점에서 편법적으로 예금 100억원 이상을 인출해준 사실을 확인했다. 또한 은행 쪽이 VIP들에게 특혜를 주는 과정에서 금융감독원 등 금융 당국이 영업정지 정보를 결과적으로 ‘사전 유출’했거나 적어도 사전 정보 유출의 위험을 인지하고도 이를 방조 또는 묵인한 듯한 정황도 확인했다.

지난 4월 중순 영업이 끝난 시각, 부산저축은행 초량동 본점의 모습. 영업정지 전날인 2월16일 밤에도 이처럼 문을 닫은 채 VIP들을 구제하려는 편법인출 영업을 했다. 박승화 기자

지난 4월 중순 영업이 끝난 시각, 부산저축은행 초량동 본점의 모습. 영업정지 전날인 2월16일 밤에도 이처럼 문을 닫은 채 VIP들을 구제하려는 편법인출 영업을 했다. 박승화 기자

100여명 특혜주려 1만여명 배신해

“ㄱ고객님, 부산상호저축은행입니다. 인감과 통장을 들고 은행으로 나와주셔야겠습니다.” ㄱ씨는 2월16일 저녁에 벌어진 일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뭐야?” 보이스피싱(사기전화)인 줄 알았다. 시계는 저녁 7시를 가리켰다. 영업 마감을 3시간이나 지난 시각이었다. 들려오는 목소리는 차분하고 다급했다. “고객님, 저희가 내일 영업정지를 받을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ㄱ씨는 부산상호저축은행과 벌써 십수 년째 거래해온 터였다. “○억원을 예금하고 계시죠. 후순위 채권은 ○억원을 갖고 계시고요. 저희가 내일 영업정지를 받게 되면 후순위 채권은 보호해드리지 못하게 됩니다. 다만 지금 나오시면 예금은 해약해드리고, 고객님의 다른 은행에 송금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ㄱ씨는 곧바로 자신이 아는 부산상호저축은행 고위 관계자에게 전화를 돌렸다. “잠시만 나와서 기다리시죠. 저희가 조치를 취해드리겠습니다.” 날벼락이었다. ㄱ씨는 일단 ○억원이 들어 있는 자신의 통장과 나머지 가족 명의의 통장 두 개를 더 챙겼다. ㄱ씨가 부산 동구 초량동의 부산상호저축은행 본점에 도착하니 저녁 8시가 넘었다. 은행 입구는 셔터를 내린 상태였다.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섰다. 들어가보니 고객으로 보이는 대여섯 명이 미리 와 있었다. 그 자리에서 돈을 찾을 수는 없었다. 영업 마감으로 계좌거래가 막힌 상태였다. 저녁 8시30분이 조금 안 된 시각, 영업이 재개되고 계좌거래가 열렸다. ‘그들’만을 위한 영업이 시작됐다.

지난 2월17일 아침 7시30분, 부산상호저축은행에 영업정지 조처가 내려졌다. 순식간에 예금자보호법에 따라 보호받는 5천만원의 테두리 바깥에 있는 예금액 1천억원이 날아갔다. 일시적으로 돈이 묶인 사람은 30만 명, 직접적으로 피 같은 예금을 날린 피해자는 1만 명이 넘었다.

1천억원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 하루 전인 16일 저녁, 서울 여의도. 금융위원회 등 금융 당국 고위 관계자와 부산상호저축은행 대주주 등이 영업정지 문제를 논의하고 있었다. 같은 시각 부산. 부산상호저축은행 고위급 관계자 손에 1만여 명의 예금주 가운데 ‘지옥 탈출용 열차’ 티켓을 선물할 1%, 100여 명의 이름표가 들려 있었다. 이들 고액 예금주를 부산상호저축은행에선 ‘VIP’ ‘가장 선량한 고객’이라고 부른다. ‘일반’ 고객 1만여 명이 다음날 쓰나미처럼 몰려올 불행을 예감할 수 없던 그 순간, 은행의 안내로 ‘그들’은 자신의 재산을 지켰다. 같은 시각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감독’을 위해 부산상호저축은행 초량동 본점 건물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금감원 관계자는 ‘그들’의 공모에 손을 쓰지 못했거나 않았다.

법조계·의료계·재계 등 사회지도층

부산상호저축은행 관계자, 금융 당국(금융감독원, 금융위원회 등) 관계자, VIP로 돈을 인출받은 ㄱ씨 등의 말을 종합해보면, ㄱ씨처럼 영업시간 외에 부산상호저축은행 본사가 있는 초량동 본점과 화명동 지점 2곳에 직접 다녀간 VIP는 적어도 30여 명이다. 이들은 영업이 끝난 뒤인 저녁 7시부터 밤 9시 사이에 부산상호저축은행 쪽으로부터 개별 연락을 받고 일시적으로 재개된 영업장에서 고액의 예금을 해약해 다른 통장으로 송금받았다. 이들은 △개인당 인감을 달리한 통장(대개는 가족 통장) 2개 이상 △각각 5천만원 이상(최소 1억원 이상)의 예금 △후순위 채권으로 인한 손실 3억원 이상 등을 기본 조건으로 한 법조계·의료계·재계 등을 망라하는 지역 재력가이자 이른바 ‘사회지도층’ 인사였다. 은행 대주주, 임원, 여신·수신 실무 책임자 등의 주선으로 예금했다는 공통점도 있었다.

지난 4월21일 부산저축은행 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 회원들이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서 이번 사태에 대한 공정한 수사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지난 4월21일 부산저축은행 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 회원들이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서 이번 사태에 대한 공정한 수사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최소 30여 명이라는 수는 고액 예금주들이 1인당 최소 2개 이상 통장을 보유한 사실을 고려하면 거래계좌 기준으로 100명을 넘어선다고 은행 관계자는 전했다. 한 사람이 여러 개의 통장을 보유하는 이유는 1억원이 넘는 돈을 예금하는 예금주에게 가족 명의로 분산투자를 권하는 저축은행의 관행 때문이다. 이날 VIP들이 찾아간 예금액은 100억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은행 관계자의 증언이 있는데도 정확한 편법 인출 규모를 확정할 수 없는 이유는 VIP 정보는 은행 고위 관계자들이 각자 관리하며 공유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4월 중순에 만난 부산상호저축은행 관계자는 “초량동 본점에서만 ‘선량한 고객’(VIP의 다른 명칭)들이 찾아간 금액만 20억원이 훨씬 넘는다”며 “화명동 지점에서도 초량동 본점에 준하는 금액이 빠져나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VIP의 수와 찾아간 금액 등은 이 신건 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영업정지 하루 전 영업시간 오후 4시 이후 인출 현황 자료’를 분석해보면 좀더 뚜렷해진다. VIP를 불러들인 부산저축은행 초량동 본점과 화명동 지점 2곳을 기준으로 2월16일 영업시간 이후 인출 총액은 164억원이었다. 바로 전날인 2월15일 28억원(보통예금을 해약한 146억원 1명 제외), 한 해 전인 지난해 2월16일엔 15억원이 영업 외 시간에 인출됐다. 이 사실을 비교해보면 지난 2월16일에는 평상시보다 최대 10배 많은 돈이 빠져나갔다. 액수로 치면 140억여원이다. 은행 관계자가 말한 인출액 100억원 이상과 맥이 닿아 있다. 같은 기준으로 영업시간 외 거래를 한 고객 수도 증언을 뒷받침한다. 바로 그날 영업시간 외 초량동 본점과 화명동 지점에서 거래한 고객 수는 382명이었다. 바로 전날 177명이나 한 해 전 163명에 비해 두 배가 넘는 수다. 정상치보다 200여 명이 많다. 200여 명은 은행 관계자 증언에서 나온 수인 100여 명보다 훨씬 더 많다. 이는 영업정지를 알고 예금을 해약한 예금자 수가 은행 관계자가 밝힌 것보다 더 많을 수 있음을 방증한다.

은행과 금감원, 유출 책임 미루기

“일부 고객이 먼저 빼간 게 알려지면 우리는 맞아 죽을지 몰라요.”(부산상호저축은행 한 지점의 창구 직원)

영업정지가 있은 지 두 달이 지난 4월 중순에 찾아간 부산상호저축은행의 한 지점 분위기도 흉흉했다. 보장되는 예금 5천만원 가운데 가지급금 2천만원이 지급되고 있었다. 한 고객의 고성이 영업창구를 울렸다. 한 직원이 자신을 포함한 은행 직원들도 예금이 묶인 피해자라는 사실을 설명하고 나서야 억울함을 토로하던 성난 고객은 발길을 돌렸다. 이렇듯 계속되는 사회적 파장을 고려하면 금융 당국의 부산상호저축은행 영업정지 건의 비공개는 당연한 듯하지만, 영업정지 하루 전 상황은 그렇지 않았다. 이날의 상황을 보면 금융 당국이 영업정지라는 핵심 정보를 사전에 유출했거나 적어도 정보 유출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부산상호저축은행과 금융 당국 관계자들에 따르면, 지난 2월16일 오후 5시께 금융위는 부산저축은행 대주주인 박아무개씨 등에게 긴급회의에 참석하라고 통보했다. 회의 내용은 영업정지에 관련된 것이었다. 문제는 회의 참석 요구 2시간여 만에 ㄱ씨 등 VIP는 ‘은행 영업정지 가능성이 높으니 예금 인출에 대비하라’는 부산상호저축은행 쪽의 통보를 받고 은행으로 모였다는 사실이다.

영업정지를 주제로 회의가 열린다는 정보가 금융위·금감원 등 금융 당국에서 나왔는지, 금융 당국 관계자들과 회의하던 은행 관계자 입에서 직접 누설된 것인지 당사자들의 증언은 엇갈린다. 한 금융 당국의 관계자는 “영업정지 건에 대해서는 고의적으로 정보를 누설할 리 없다”며 “재정 문제 등을 얘기하는 과정에서 은행 쪽에서 미리 알 수 있으니 이를 악용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부산상호저축은행 관계자는 “우리 쪽에서 VIP들에게 연락한 것은 맞지만, 영업정지에 대한 정보는 금감원과 인맥이 닿아 있는 부산의 법조계 인사를 통해 회의 시간 전에 전달받았다”며 “우리가 불법적으로 정보를 누설했다고 금감원 쪽에서 책임을 떠넘기려 한다”며 정보 유출의 책임은 금융 당국에 있다고 주장했다. 두 당사자의 증언을 종합하면, 금융 당국과 은행 어느 한쪽에서 거짓말을 하는 셈이다. 금융 당국과 은행 둘 다 유출 통로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인출 금지 공문 뒤에도 거래 계속

회의가 열린 뒤 주요한 순간마다 VIP들이 있는 본점과 지점으로 회의 상황이 전달된 사실도 파악됐다. 부산상호저축은행 쪽이 저녁 7시부터 연락을 돌린 VIP들에게 곧바로 인출을 해주지 않고 저녁 8시30분까지 그들을 기다리게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인출이 시작된 저녁 8시30분은 금융 당국 쪽에서, 부산상호저축은행이 스스로 영업정지 신청서를 제출하도록 부산상호저축은행 대주주 등에게 요구한 시점이기도 하다. 부산상호저축은행 관계자는 “8시부터 금감원·금융위의 고위급 관계자들과 우리 쪽 대주주 등의 회의가 있었다”며 “회의 시작 30분이 지난 뒤 영업정지 신청서를 내라고 저쪽(금감원)에서 요구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여기서 정보 누설의 책임 공방은 한 번 더 반복된다. 금융 당국의 한 관계자는 “신청서를 낸다는 것 자체를 알려 불법을 방조했을 리 없다”고 말했다. 은행 관계자는 “그 시각쯤 일부 고객이 금감원으로부터 은행이 영업정지를 신청하고 망한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예금 해약을 거세게 요구했다”고 말했다.

지난 4월21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한 저축은행 피해자 모임의 회원이 전.현직 금융위원장의 무책임한 답변에 항의하고 있다.

지난 4월21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한 저축은행 피해자 모임의 회원이 전.현직 금융위원장의 무책임한 답변에 항의하고 있다.

회의 진행 시간의 흐름에 따른 은행과 VIP들의 긴박한 움직임만으로도 금융 당국은 책임을 회피할 수 없을 듯하다. 하지만 책임의 무게는 그보다 무겁다. 취재 결과, 금융 당국이 부산상호저축은행의 편법 인출을 몰랐을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이는 정황도 드러났다. 영업정지 신청서를 제출할 것이라는 정보가 유출되고 저녁 8시30분께 영업이 재개되자 은행 일부 직원이 본인 예금을 해약하고 일부 VIP들의 예금 20여 건을 해지하려다가 은행 간부의 제지를 당하는 혼란스런 상황, 그 시각 같은 건물 안에선 금감원 직원들이 금융 ‘감독’ 업무를 수행 중이었다. 금감원은 이미 지난해 여름부터 직원 3명을 은행 감독·감시를 위해 직접 파견해 두고 있었으며, 이들의 업무는 주로 부산상호저축은행의 유동성 부족으로 인한 모니터링을 하는 것이었다.

이뿐만 아니다. 고액 인출 등의 혼란 와중에 금융 당국이 부랴부랴 인출 금지 공문을 내렸다는 증언도 나온다. 당시 본점에서 근무하던 한 은행 직원은 “밤 9시께 금감원 쪽에서 급하게 공문이 내려와 그 시간 이후로 인출을 해주면 향후에 금감원의 조사를 받을 것이고 형사처벌이 따를 것이라고 공지했다”며 “하지만 그 시간은 이미 VIP들이 예금을 인출한 뒤였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금감원 직원이 본점에 있었고, 인출 사실 등을 충분히 알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금융 당국의 경고성 공문은 효과가 없었다. 금융 당국의 엄포를 비웃듯 거래는 밤 10시가 넘어 다음날 새벽 2시까지 계속됐다. 직접 지점을 찾지 못할 때에는 인터넷뱅킹을 이용해 인출하기도 했다. 이날 창구 영업시간 이후 인터넷뱅킹으로 초량동 본점과 화명동 지점에서 9억6천만여원이 인출됐는데 평소 인터넷뱅킹 거래가 2억원을 넘지 않는 것에 비하면 비정상적으로 높은 수치다. 한편 금감원 관계자는 “당일 금감원에서는 공문을 보낸 적이 없다”고 은행 쪽의 증언을 부인했다. 이 대목 역시 은행과 금감원의 말이 엇갈린다.

반복되는 사태에도 직무유기

문제는 이런 행태가 저축은행의 부실 논란이 있을 때마다 반복돼왔다는 점이다. 2002년 경인저축은행 영업정지 때도 거액 인출 사례가 있어 금융 당국이 직접 조사한 바 있다. 그 뒤 저축은행의 영업정지가 있을 때마다 일부 VIP의 예금 인출 의혹은 끊이지 않았다. 지난해에는 전일상호저축은행에서 영업정지 당일 거액의 돈이 비정상적으로 인출됐다는 의혹이 제기돼, 금감원이 직접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당시 김종창 금감원장은 “영업정지 사실이 사전에 알려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랬다면 대량 인출 사태가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원장의 말은 금융 당국의 ‘사실상’ 정보 누설과 함께 소수의 VIP를 대상으로 비밀리에 이뤄진 이번 부산상호저축은행의 전모를 보면 사실에 부합한다고 하기 어렵다.

금융위 등 금융 당국은 왜 지난 2월17일 금융위 회의를 통해 영업정지를 전격적으로 의결하지 않고 굳이 하루 전날 영업정지 정보 유출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부산상호저축은행에 영업정지 신청서 제출을 지시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영업정지 처분 뒤 피해자들의 소송을 우려해서다. 금융 당국의 한 관계자는 “사전에 저축은행에서 신청한 것으로, 서류상 남으면 금감원은 소송 책임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라며 “그렇게 요구하는 법적 근거는 없고 관행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금감원 관계자는 “다음날 금융위원장, 금감원장, 한국은행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회의가 열려도 안건이 모두 가결되는 것은 아니므로 사전 정보를 유출했다고 볼 수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런 해명과 달리 부산상호저축은행 관계자들은 “신청서 제출이 관행이라고 말하는 금감원 관계자도 부산저축은행의 상황에서 신청서가 제출되면 영업정지가 거의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음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금융 당국 관계자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더라도 금융감독기관이 소송 회피를 위해 행정 편의를 따랐고, 이런 몸사리기가 결과적으로 고액 예금이 편법적으로 인출되는 사태로 이어진 셈이다. 특히 금감원은 당시 현장에서 편법 인출 상황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지만, 이를 예방하지도 현장에서 저지하지도 못했다. 상황이 벌어진 뒤에도 적절한 조사 및 시정 조처를 하지 않았다. 총체적인 관리·감독의 실패라고 할 수 있다. 금감원의 고위 관료는 “영업정지 전날 영업시간 이후 인출이 매우 많았다는 사실은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다른 업무가 많아서 당시 상황에 대한 조사를 마무리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을 믿더라도, 이는 엄청난 직무유기다.

처벌 근거도 찾기 어려워

“맞아 죽을지 모른다”는 은행 직원들의 말처럼 일반인들의 법감정으로는 영업정지 정보를 흘린 자나 그 정보로 일부 고객에게 미리 돈을 빼준 자, 이를 방조한 자 등은 엄중히 처벌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실상 그들을 처벌할 근거 규정을 찾기는 어렵다. 금융비리 사건에 정통한 한 검찰 관계자는 “일단 민사적으로나 형사적으로 문제 삼기가 쉽지 않다”며 “관련 법률에 제재 조항이 있으면 모르겠는데, 그것은 더 들여다봐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도덕적으로 문제가 심각하고 은행 이용자 전체에게는 공분을 일으킬 만한 일이어서 이번 기회를 법제도 개선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며 “은행법이나 상호저축은행법, 새마을금고법 등 은행기관을 규율하는 법에 내부정보 유출 등을 제재하는 조항을 담아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글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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