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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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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치기가 엎은 아이들의 밥상

방학 중 결식아동 급식비 ‘0원’ 예산안 통과로

겨울이 더 추워진 진안군 마이용 센터 아이들…

내년부터 굶을 위기의 아이들 전국 40만여 명
등록 2010-12-23 02:08 수정 2020-05-02 19:26

마을이 끝나는 좁은 들판 위로 느닷없는 돌산이 거대하고 멀끔하게 솟아 있다. 말의 귀를 닮았다 하여 마이산이다. 굽이치던 금강은 마이산 자락에서 용담호수를 만들어 쉬었다 간다. 산과 호수를 훑고 내려온 겨울 삭풍은 전북 진안군 진안읍 군하리 읍내 사거리를 칼처럼 가로지른다. 오후 1시30분이 되면 아이들은 바람을 뚫고 진안초등학교 교문을 빠져나온다. 그 가운데 몇몇은 또박또박 걸어 ‘마이용 아동지원센터’를 찾는다. 마이산과 용담호에서 머리글자를 따온 ‘마이용 센터’는 민간이 운영하는 무료 아동돌봄 시설이다. 센터 맞은편에는 초·중등 보습학원이 있다. ‘공부하는 습관을 길러주는 학원’이라고 펼침막을 내걸었다.

배를 채우며 사랑도 채운다

» 지난 12월15일 오후 5시30분, 전북 진안군 마이용 아동센터 어린이들이 삼삼오오 둘러앉아 저녁을 먹고 있다. 아동센터에 다닌다는 이유로 아이들은 학교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기도 하지만, 아이들은 학교보다 센터에서 보내는 시간을 더 좋아한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 지난 12월15일 오후 5시30분, 전북 진안군 마이용 아동센터 어린이들이 삼삼오오 둘러앉아 저녁을 먹고 있다. 아동센터에 다닌다는 이유로 아이들은 학교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기도 하지만, 아이들은 학교보다 센터에서 보내는 시간을 더 좋아한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마이용 센터 아이들에겐 공부하는 습관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신발을 벗자마자 아이들은 주방으로 달려간다. 냉장고 문을 열어본다. 먹을 것을 찾는다. “선생님, 저희 언제 밥 먹어요?” 아이들은 이미 답을 알고 있다. 오후 3시30분에 간식, 오후 5시30분에 저녁을 먹는다. 정해둔 시간이 있지만, 아이들은 항상 먹을 것을 보챈다. 박지영 센터장은 그 마음을 안다. “사람의 정이 그리운 아이일수록 식탐이 많아요.” 진안에서 나고 자란 박 센터장도 어린 시절 ‘생활보호대상자’였다. 1년에 이사를 두세 번씩 다녔다. 집에 가도 함께 밥 먹을 사람이 없었다. 그리운 것은 밥이 아니라 가족이었다. 마이용 센터의 아이들이 그리워하는 것도 비슷하다. 아이들은 밥을 먹으며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간직한다. 밥은 배를 채우는 동시에 마음을 채운다.

마이용 센터 아이들에겐 공부하는 습관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신발을 벗자마자 아이들은 주방으로 달려간다. 냉장고 문을 열어본다. 먹을 것을 찾는다. “선생님, 저희 언제 밥 먹어요?”

매일 오전 11시, 17인분의 국과 반찬이 마이용 센터에 배달된다. 국은 찜통에 담고 4가지 반찬은 찬합에 담아 배달된다. 아이들의 저녁 끼니다. 마이용 센터에 다니는 아이는 모두 26명이다. 개인이 기부한 30평짜리 허름한 주택을 개조한 마이용 센터는 오후 5시30분에 가장 활기 넘친다. 저녁 식사 시간이다. 아이들은 17인분의 국과 반찬을 나눠 먹는다. 쌀은 센터 운영비를 쪼개 마련한다. 끼니때가 되면 센터 선생님들은 밥을 짓고 국을 덥히고 반찬을 나눠 담는다. 지난 12월15일 저녁상에는 자장밥, 멸치볶음, 김치 등이 올랐다. 16일 저녁 메뉴는 된장국, 닭볶음, 동그랑땡 등이었다.

26명이 17인분의 식사를 나눠 먹는 사연은 복잡하고 기묘하다. 학기 중에는 학교 급식으로 아이들의 점심을 해결한다. 아동지원센터는 방과후 돌봄센터이므로 원래는 저녁 급식을 챙기지 않는다. 저녁이 되기 전까지만 아이들을 돌보는 게 ‘정상 업무’다. 그런데 집에 가도 밥을 먹을 수 없는 아이가 많다. 지연(가명)이는 할머니와 함께 산다. 날품을 파는 할머니는 하루 2만~3만원을 번다. 할머니는 지연이에게 매일 저녁상을 차려줄 돈과 기력이 없다. 유진(가명)이의 엄마와 아빠는 이혼했다. 유진이를 키우는 엄마는 직업이 없는 기초생활수급권자다. 현숙(가명)이는 엄마·아빠 모두와 함께 살지만, 부모 모두 밤늦도록 배달일을 한다. 집에 가도 가족이 없다.

농촌의 빈곤은 이미 보편적이다. 진안군을 통틀어 방학 중 급식을 지원받는 18살 이하 청소년은 578명이다. 이 가운데 초등학생이 309명이다. 진안군 초등학생의 30% 정도가 방학 때 급식 지원이 끊어지면 밥을 굶어야 한다.

“그런 아이들을 ‘저녁 시간 됐으니 집에 가라’고 보낼 수 없잖아요.” 박 센터장은 궁리 끝에 ‘야간보호 프로그램’을 만들어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지원을 받았다. 여러 조건을 따질 수밖에 없어 ‘반드시 저녁을 챙겨줘야 하는’ 아이 수를 17명으로 정해 올렸다. 그 돈으로 토착 사회적 기업인 ‘나눔푸드’에 도시락 비용을 낸다. 그렇다고 17명만 가려 먹일 수는 없었다. 저녁이 필요한 아이들 모두 둘러앉아 밥을 먹는다. 아이들이 매일 먹는 끼니에는 나랏돈이 한 푼도 들어가 있지 않다. 그마저도 내년 3월부터는 중단해야 할 판이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지원이 내년 3월부터 끊어진다. 원래 3년 동안 지원받는 프로그램이었는데 통사정을 해 올해로 5년째 받아왔다. 더 이상 연장할 방도와 염치가 없다.

그 걱정만 해도 머리가 아프지만 발등에 떨어진 불은 이번 겨울이다. 겨울방학이 되면 아이들은 학교 대신 센터로 나온다. 아침 9시에 센터로 나온 아이들은 그때부터 “밥을 언제 먹느냐”고 작은 시위를 벌인다. 아침을 먹지 못한 것이다. “일용직·임시직일수록 출근 시간이 빠르니까 한부모 가정의 아이들은 식사를 거르고 아침 8시부터 센터 앞에 와서 기다린다”고 박 센터장은 말했다. 갈급한 아이들이 있으므로 결국 점심시간을 앞당겨 오전 11시 무렵에 먹는다. 아이들이 방학 때 먹는 점심은 아침을 겸한다. 점심을 못 먹는다면 아이들은 방학 내내 아침과 점심을 굶게 될 것이다.

도움받을 사람은 많고 세금 낼 사람은 적은 지방

» 지난 12월16일 저녁 식사용으로 배달된 된장국과 반찬(왼쪽), 허름한 주택을 개조한 아동센터 벽에 지역 문화단체가 벽화를 그렸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 지난 12월16일 저녁 식사용으로 배달된 된장국과 반찬(왼쪽), 허름한 주택을 개조한 아동센터 벽에 지역 문화단체가 벽화를 그렸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방학 때 센터로 배달되는 점심 도시락은 15인분이다. 방학이 되면 기초생활수급권자 자녀의 도시락은 집으로 배달된다. 나머지 차상위계층 아이들 것만 센터로 온다. 집으로 가는 도시락을 센터로 옮기려 해도 가난한 조·부모는 “집에 온 것을 왜 가져가느냐”며 손사래를 친다. 가난한 아이의 도시락은 가난한 어른이 먹고, 센터의 가난한 아이들은 서로 나눠 먹는다. 방학 때는 쌀 20kg이 열흘 만에 동이 난다. 방학 때도 쌀은 센터 비용으로 구한다.??? 진안군에서 그 비용은 소수자를 위한 혜택이 아니다. 농촌의 빈곤은 이미 보편적이다. 진안군을 통틀어 방학 중 급식을 지원받는 18살 이하 청소년은 578명이다. 이 가운데 초등학생이 309명이다. 진안군 전체 초등학생은 1095명이다. 진안군 초등학생의 30% 정도가 방학 때 급식 지원이 끊어지면 밥을 굶어야 한다.

방학 중 급식은 나라에서 지원받는다. 급식 비용은 중앙정부가 37.5%, 기초단체인 군에서 37.5%, 광역단체인 도에서 25%를 분담한다. 지난 2년 동안 그랬다. 2009·2010년, 중앙정부는 방학 중 결식아동 급식비를 지원했다. 지난 12월8일, 한나라당의 날치기 예산 통과 때문에 그 돈이 모두 사라졌다. 경기침체 여파로 지방 재정이 어려운 것을 감안해 내년에도 정부지원금을 내려보내기로 국회 상임위에서 결정했는데, 날치기에 급급한 나머지 최종 예산안에 반영하지 못했다. 멍청하고 무심한 정치인들 탓에 내년부터는 방학 중 급식 예산에 나랏돈이 한 푼도 투입되지 않는다. 이번 겨울방학부터 아이들은 아침을 겸한 점심을 걱정하게 생겼다.

중앙정부가 돈을 내지 않겠다면 지방정부가 모두 부담하면 되지 않을까? 실은 참여정부 시절인 2005년부터 결식아동에 대한 방학 중 급식 예산을 지방정부가 모두 부담하기로 결정했다. 그 결정부터 잘못이었는지도 모른다. 지방정부는 그럴 능력이 없었다. 전북은 전국 광역단체 가운데 재정자립도가 가장 낮은 축에 속한다. 2010년 전국 16개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전북(17.3%)은 전남(11.5%)에 이어 뒤에서 두 번째로 낮은 재정자립도를 기록했다. 전국 평균은 52.2%고, 서울은 83.4%에 이른다. 서울은 몰라도 전남·전북은 중앙정부의 지원이 절실하다는 이야기다. 특히 전북은 인구 대비 기초생활수급권자 비율이 전국에서 가장 높다. 2008년 자료를 보면 인구 대비 수급권자 비율이 6.7%에 이른다. 전국 평균은 3.2%다. 전북은 무주택자 비율도 인구 대비 68.8%로 전국 최고다. 모든 수치로 보아 전북은 가장 가난한 지방정부다. 진안군은 전체 인구 2만7432명 가운데 6.6%인 1805명이 수급권자다. 가난한 사람이 많으면 도움받을 사람은 늘고 세금 낼 사람은 적어진다. 지방정부도 덩달아 가난해진다.

“더 조정할 예산이 없어요”

아무리 가난해도 지자체장의 ‘복지 의식’이 투철하면 다른 곳에 쓰일 예산을 급식 지원에 쓸 수 있지 않을까? 전북은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전북도와 전북교육청이 협력해 몇년 전부터 초·중등 무상급식을 했다. 무상급식을 시행하는 초·중등학교의 비율이 올해에 이미 64%에 이르렀다. 전국 최고 수준이다. 내년부터는 모든 학교에서 무상급식을 할 예정이다. 가능한 재원을 최대한 끌어모아 급식 분야에 이미 집행하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진안군은 모범으로 통한다. 토착 사회적 기업인 ‘진안 나눔푸드’와 연계해 전북에서는 유일하게 집집마다 도시락을 배달하고 있다. 다른 기초단체에선 급식표를 나눠주거나 급식용 식당을 지정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무상급식 비용을 끼니당 3천원씩 책정하는데, 진안군은 자쳬 예산으로 내년부터 끼니당 3500원으로 올리겠다는 계획도 세워두었다.

“이제 더 조정할 예산이 없어요.” 12월15일 오후에 만난 진안군청 관계자가 말했다. 진안군 세입의 절대다수는 중앙정부에서 내려보내는 ‘교부세’다. 2010년의 경우, 지방세 수입이 54억원인 데 비해 중앙정부가 내려보낸 교부세가 1050억원이었다. 중앙정부가 내려보내는 돈에는 꼬리표가 달려 있다. 어디에 써야 할지 정해서 내려온다. 다른 곳에 쓸 수 없다. 방학 중 급식에 대한 중앙정부의 지원이 줄어든다 해서 다른 항목의 예산을 빼낼 수 없다. 군 자체 수입만으로는 융통성을 발휘할 여지가 적다. 무리하게 아동급식 예산을 확충하면 노인복지 예산이 그만큼 축난다. 복지예산만 무턱대고 늘리면 농가 지원 사업에 구멍이 생긴다. 이미 진안군은 내년 살림을 계획하면서 ‘군 자체 예산’을 써야 하는 사업을 많이 줄인 상태다. 방학 중 급식 예산의 37.5%에 해당하는 중앙정부의 지원이 끊긴다면 고스란히 급식 사업의 축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중앙정부 지원 몫만큼 도나 군이 부담해야 할 텐데 지금으로선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진안군청 관계자는 말했다. 국회 예산이 날치기 통과되면서 방학 중 급식 예산이 날아갔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아직 도에서는 별다른 지시가 없다. 도 차원의 대책이 서면 진안군도 긴급 대책을 마련하게 될 것이다. “만일 예산 규모를 줄이게 된다면…, 급식받는 아이 수를 줄여야겠지요. 그런데 급식을 안 받아도 괜찮은 아이들은 정말 없는데….”

불안정한 대기업 후원도 대안은 못돼
» 30평짜리 아동센터에는 고학년방, 저학년방, 주방, 사무실, 화장실 등이 있다. 박지영 센터장이 아이의 숙제를 살펴보고 있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 30평짜리 아동센터에는 고학년방, 저학년방, 주방, 사무실, 화장실 등이 있다. 박지영 센터장이 아이의 숙제를 살펴보고 있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지방정부의 곳간이 비었다면 민간에서 도움을 주는 것은 어떨까? 지역 토착 공공급식업체인 ‘진안 나눔푸드’는 2005년에 만들어졌다. 진안 나눔푸드는 원재료의 70%를 진안군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쓴다. 진안군의 기초생활수급권자·차상위계층 등에게 일자리를 주고 그들이 만든 음식을 다시 진안군의 빈곤계층에게 배달한다. 전국적으로도 찾아보기 힘든 모범 사례다. 그런데 진안 나눔푸드의 공공급식 사업은 매년 1억5천만원씩 적자를 내고 있다. 2005년 이후 도시락 한 개당 단가를 3천원으로 고정했지만, 물가가 올라 재료를 구하는 데만 개당 2천원이 넘게 든다. 여기에 인건비를 더하면 금세 손해다. 최우영 나눔푸드 상임이사는 “하는 수 없이 출장뷔페, 홍삼 판매 등으로 적자를 메우고 있다“고 말했다. 나눔푸드가 문을 닫으면 진안군 전체의 공공급식이 중단된다.

마이용 센터는 대기업의 후원도 가끔 받는다. 그러나 “들쭉날쭉하고 안정적이지 않다. 그나마도 최근에는 기회가 줄고 있다”고 박 센터장은 말했다. 기업은 대외 홍보 효과가 큰 일회적 물품 지원을 선호한다. 장기 지원이라고 해봐야 1년 정도다. “기업은 이윤을 많이 남길 경우에만 후원을 하려 드니까 경제가 어려울수록 지원도 줄어들기 마련”이라고 박 센터장은 말했다.

“만일 예산 규모를 줄이게 된다면…, 급식받는 아이 수를 줄여야겠지요. 그런데
급식을 안 받아도 괜찮은 아이들은 정말 없는데….”
-진안군청 관계자

막막한 가운데도 박 센터장에겐 분명한 사실이 하나 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센터 문을 닫을 수는 없다. 아이들은 학교보다 센터를 더 좋아한다. 저녁 무렵, 집으로 돌아가는 것조차 아이들은 싫어한다. 계속 센터에 남아 있겠다고 보챈다. 그래서 장난이 심한 아이에게 주는 벌칙은 ‘가장 먼저 집에 가기’다. 머리에 이가 자꾸 생기는 호철(가명)이는 센터에 와서 머리를 감는다. 의사표현을 하지 않던 지연(가명)이는 센터에 와서 친구들과 어울려 웃기 시작했다. 학습장애가 있는 연주(가명)는 센터에서 글을 쓰고 읽는 것을 조금씩 익혀가고 있다. 학교 정규수업이나 방과후 교실에선 불가능한 일이다. 일제고사 시행 이후 시골 학교일수록 교과 성적을 올리는 데만 혈안이 돼 있다. 학생의 성적이 교장의 승진과 연결된다. 교장은 가난한 아이들에게 자꾸 공부만 시킨다. 아이들은 센터에 와서 비로소 마음의 안정감을 찾는다.

얼마 전, 센터에 도둑이 들었다. 알고 보니 초등학교 때 센터를 다녔던 어느 중학생의 짓이었다. 읍내 고등학생 형들의 꼬임에 넘어가 센터를 털었다. 훔쳐간 것은 새로 사둔 학용품이었다. 경찰에 붙잡혀온 아이는 반성문을 쓰며 울었다. 아이를 혼자 길러온 할머니도 센터를 찾아와 무릎 꿇고 울었다. 박 센터장도 울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에도 아이가 정 붙일 곳이 있었다면 상황은 달랐을 것이라고 박 센터장은 생각한다. “가난한 아이들은 무력한 엄마·아빠를 보고 자라니까 쉽게 포기해요. 학교에선 오직 성적만 따지니까, 저희라도 아이들에게 의욕을 불어넣어야 하는데….”

아이들, ‘형편대로’ 굶어야 하나

아이들은 밥을 먹으며 관심을 얻고 자존감을 기른다. 밥을 주는 어른이 없으면 가난한 아이들은 비뚤어진 길을 따라가기 마련이다. 가난하지만 어떻게든 아이들을 굶기지 않으려 애썼던 전북 진안의 노력이 정부와 한나라당의 무개념 날치기 앞에서 수포로 돌아가고 있다. 지난 12월15일 윤증현 재정부 장관은 “형편대로 복지를 즐겨야 한다”고 말했다. 전북 진안군 마이용 센터 아이들은 형편에 따라 굶게 생겼다. 곽정숙 의원(민주노동당)이 12월17일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10년 여름방학 때 전국적으로 48만3917명의 초·중·고생들이 급식 지원을 받았다. 마이용 센터의 26명과 더불어 그들 모두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겨울방학에 들어간다. 누가 밥을 줄 것인가.

진안=안수찬 기자 ahn@hani.co.kr



진안군 마이용 지역아동센터 아이들
“장난치며 밥 먹을 수 있어서 좋아요”

전북 진안군에는 1095명의 초등학생이 있다. 이 가운데 30%에 해당하는 309명의 초등학생은 방학 때 급식을 받아 먹는다. 급식이 없으면 방학 때 끼니 해결이 어렵다. 방학 중 급식 대상자 309명 가운데 244명은 지역아동센터에서 하루를 보낸다. 진안군에는 13곳의 아동센터가 있다. 전북 진안군 마이용 지역아동센터에는 26명의 아이들이 있다. 원래 초등학생만 돌보는 곳이지만, 형편이 아주 어려운 3명은 중학생이 되었어도 계속 센터에 나온다. 아래 이름은 모두 가명이다. 학년은 따로 밝히지 않는다. 남매·자매·형제인 경우도 적잖은데 역시 밝히지 않는다. 아이들의 진짜 이름과 나이가 무엇이든 그들에겐 밥 먹을 권리가 있다. (붉은색은 기초생활수급권자 자녀, 분홍색은 차상위계층 자녀다. 가족 형태에 따라 부모·부자·모자·조손 가정을 구분했다)
» 붉은색은 기초생활수급권자 자녀, 노란색은 차상위계층 자녀다. 가족 형태에 따라 부모·부자·모자·조손 가정을 구분했다.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붉은색은 기초생활수급권자 자녀, 노란색은 차상위계층 자녀다. 가족 형태에 따라 부모·부자·모자·조손 가정을 구분했다.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빈곤층 초등학생 돌보는 지역아동 터
부모가 낸 세금을 아이들에게 돌려라

1980년대 야학·빈민 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공부방’을 만들었던 것이 오늘날 지역아동센터의 모태다. 2004년 아동복지법에 관련 규정이 만들어지면서 ‘합법적’ 아동 돌봄 시설이 됐다. 이후 빈곤계층 초등학생에 대한 복지사업은 아동센터를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다. 2010년 현재 전국적으로 3500여 곳이 있다. 무상으로 운영하는 대신 정부 지원을 받는다. 30명 미만을 수용하면 월 300만원의 정부 보조금을 받는다. 내년부터는 20만원씩 더 받게 됐다. 지자체에서 시행하는 학교 무상급식을 제외하면, 아동센터에 대한 지원은 빈곤층 초등학생 복지의 핵심이다.
정작 아동지원센터는 시름시름 앓고 있다. 월 300만원의 지원으로는 시설 운영조차 힘들다고 관련자들은 말한다. 돌봄 교사 2명을 의무적으로 고용해야 한다. 숙제 지도, 생일잔치, 문화활동, 간식, 공과금 등에 들어갈 돈을 마련하려면 인건비를 줄이는 수밖에 없다. 아동센터 교사들의 평균임금은 월 70만~80만원 정도다. 진안군 마이용 센터의 경우, 센터장이 월 110만원, 사회복지사가 80만원을 받으며 일한다.
농·어·산촌일수록 아동센터가 많다. 서울의 아동센터가 350여 곳인데, 인구가 서울의 5분의 1인 전남·전북에 각각 300여 곳의 아동센터가 있다. 시골의 출산율이 도시보다 높기 때문은 아니다. 최우영 진안 나눔푸드 상임이사는 “경제적 문제로 가정이 붕괴되면 아이를 시골 노인에게 맡기고 엄마나 아빠가 도시에서 돈을 버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이는 거대한 악순환의 시작이다. 도시에서 돈을 벌어 도시에 세금을 낸다. 노모가 맡은 손자·손녀의 복지는 지방정부가 부담한다. 그런데 지방정부가 거둬들일 세금이 시골에는 없다. 세금을 그러모은 중앙정부는 뒷짐을 진다.
외국에선 초등학생 복지를 학교에서 모두 해결하는 경우도 있다. 방과후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방식이다. 국내에서도 지자체별로 비슷한 시도가 늘고 있다. 문제는 국내 방과후 프로그램이 교과 수업을 보충하는 형태라는 데 있다. 박지영 마이용 센터장은 “가난한 아이들에게 절실한 것은 교과학습이 아니라 자존감을 키워줄 수 있는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이라고 말했다. 아이들이 학교보다 센터를 좋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난 12월16일, 박 센터장은 크리스마스 선물로 뭘 받고 싶은지 아이들에게 물었다. 겨울점퍼·패딩조끼·목도리·부츠 등이 가장 많았다. 책가방·필통·학용품이 그다음이었고, 게임기·팽이세트 등 장난감류가 뒤를 이었다. 이 겨울을 따뜻하게 나는 것이 아이들의 가장 큰 소망이다. 063-432-1318로 연락하면 산타 할아버지를 기다리는 아이들과 이야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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