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31일 밤 12시에 공모를 마감한 뒤 박용현 편집장과 최근 소설가로 등단한 유현산 전 편집팀장, 한페이지단편소설(1pagestory.com) 운영자이자 소설가인 서진씨가 예심을 통해 큰 손바닥 부문 11편, 작은 손바닥 부문 8편을 가렸고, 본심은 김선주 전 논설주간, 소설가이자 시인인 유용주씨, 문학평론가 신형철씨가 맡았습니다. 지난 11월10일 최종 심사회의를 열고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수상작을 결정했습니다.
큰 손바닥 부문 당선작에는 300만원, 가작에는 100만원, 작은 손바닥 부문 가작에는 50만원의 상금이 주어집니다. 또한 모든 수상자는 일정 기간 필자로 기용됩니다.
이번호에 를 표지이야기로 소개한 데 이어 다음호에는 , 그 다음호에는 을 싣습니다.
손바닥 문학상 공모는 내년에도 계속됩니다. 많은 응모 바랍니다. _편집자
올해 손바닥 문학상은 두 부문으로 분리해 공모했다. ‘큰 손바닥’ 부문은 일반 단편소설 분량의 원고를, ‘작은 손바닥’ 부문은 흔히 엽편(葉篇) 혹은 장편(掌篇)이라 부르는 콩트 분량의 원고를 받았다. 단편과 콩트는 분량이 다를 뿐 아니라 장르의 본질 자체가 다르므로 당연히 심사와 시상도 분리해 진행했다.
‘큰 손바닥’의 노동과 가족과 전쟁큰 손바닥 부문에서는 11편이 본심에 올라왔다. 단순히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과 소설이라는 물건을 제작하는 일은 썩 다르다. 사람이 아니라 캐릭터가 있어야 하고, 줄거리가 아니라 플롯이 있어야 하고, 문장이 아니라 스타일이 있어야 한다. 이 점에 둔감한 작품들은 소중한 진심이 느껴져도 일단 내려놓았다.
심사위원들이 진지하게 의견을 나눈 작품은 6편 정도였다. 박목우씨의 은 전쟁으로 고통받은 이라크 국민에게 바쳐진 사랑 이야기다. 문장을 세공하는 데 들인 노력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가독성에 문제가 있다는 평, 소설을 쓰기 위해 확보돼야 할 산문적 거리가 확보돼 있지 않아 감상적이라는 평이 있었다.
윤희정씨의 에는 반도체 회사에 근무하다 백혈병에 걸린 인물과 이를 은폐하는 거대기업의 냉혹한 간부가 나오지만 서술은 제3자에게 맡겼다. 덕분에 생경함을 눅이고 울림을 높일 수 있었다. 삼성반도체 산재 사건을 다룬 것임을 알겠거니와, 현실을 직시하고 용기 있게 재현하려는 의지는 언제나 이렇게 감동적이다. 그러나 서술이 소박해서 소설로서의 긴장이 약했다.
박지현씨의 는 17살 소년의 가출과 실종을 다룬다. 심사위원들은 이 소설을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중산층 가족의 아들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묻는 소설로, 혹은 가족 구성원의 실종 이후에도 삶이 계속된다는 사실의 쓸쓸함을 되새기는 소설로 읽었다. 그러나 어떻게 읽어도 소년의 고민이 지나치게 추상적이라는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김인씨의 은 가족 내 근친상간이라는 소재에 도전했다. 진지하고 집요한 태도가 미더웠고 마치 천운영의 소설을 읽는 듯 여운도 강렬했다. 2인칭 시점의 서술 운용 방식이 근년에 밀리언셀러가 된 작품을 연상시킨다는 평도 딱히 비판은 아니었다. 그러나 다른 공모라면 모르겠으되 ‘손바닥 문학상’이 지금 굳이 선택해야 할 작품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기민호씨의 는 어느 구청을 배경으로 몇몇 인물의 이야기를 느슨하게 펼쳐놓고 이를 노련하게 엮어나가는 한바탕 소동극이다. 여느 소동극이 그렇듯이 ‘그래서?’라는 반문을 남기는 허탈감이 찾아오기도 했지만, 소설가 김종광을 연상시키는 입담이 우리를 충분히 즐겁게 했고, 손쉽게 선악과 미추를 분별하지 않으면서 삶의 역동적 현장을 따뜻하게 응시하는 시선이 우리의 마음을 움직였다.
김소윤씨의 는 만큼 소재가 강렬하지도, 만큼 입담이 능란하지도 않았다. 대한민국 20대의 내면을 서울 노량진 고시촌을 배경으로 보여주는 방식도, 그 인물의 불안정성을 인물 자신에게만 벌레가 보이는 신경증으로 설명하는 착상도 딱히 신선하다고 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 작품은 모든 면에서 가장 진솔했고(인물), 안정적이었으며(서술), 시의적절했다(주제).
절제의 묘미가 아쉬운 ‘작은 손바닥’
특히 소설 후반부에서 ‘커다란 나무에 점점이 매달린 붉은 꽃들’의 이미지가 ‘붉은 꽃이 화려하게 피어나 방 안을 가득 채우는’ 이미지로 이어지는 대목은 아름답다. 그 뒤에 주인공이 ‘나는 작은 벌레다’라고 말할 때 이 ‘벌레’는 더 이상 그로테스크하고 절망적이기만 한 벌레가 아니다. 바로 이런 것이 ‘소설적인’ 도약이다. 다른 작품들에는 이런 도약의 순간이 없었다. 우리는 김소윤씨의 손을 잡기로 결정했고 더불어 기민호씨의 어깨를 두드려주기로 했다.
공모 첫해인 탓이겠지만 작은 손바닥 부문에는 응모작이 많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이 장르의 본질을 이해하고 있는 응모작은 더더욱 적었다. 줄여 쓰고 짧게 쓰는 게 핵심이 아니다. 이 장르는 날카로운 잽이어야 하고, 우아한 측면 승부여야 한다. 결정적인 말은 하지 말아야 하고, 이야기는 적당한 순간에 슬그머니 놓아버려야 한다. 그런데 많은 작품이 짧은 분량 안에 정의로운 메시지를 단선적으로 눌러 담는 데 몰두하고 있었다.
마지막에 함께 논의한 임상태씨의 는 알레고리를 도입했지만 메시지가 진부하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여서 윤희정씨의 을 수월하게 가작으로 뽑았다. 현실 비판적인 언급들을 그다지 폼 나지 않는 주인공에게 맡겨 아이러니의 효과를 잘 살려냈고, 주인공의 진지하지 않은 비분강개를 “글쎄요… 저는 티비 검침원일 뿐입니다”라는 말로 무심히 받아치면서 이 장르의 묘미가 어디에 있는지를 산뜻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작은 손바닥 부문의 응모작들이 내년에는 더 풍성해지면 좋겠다. 분량 제한은 제약이면서 동시에 기회다. 체호프나 카프카의 사례가 보여주듯 원고지 20매는, 날카로운 현실 풍자에서부터 형이상학적 문제 제기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테마가 움직일 수 있는, 생각보다 꽤 넓은 운동장이다. 번득이는 재능은 오히려 이 장르에서 더 빛날 수 있다. 이 매력적인 장르를 대상으로 하는 희소한 공모에 더 많은 독자가 관심을 갖길 바란다.
심사위원 김선주·유용주·신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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