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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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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에 전자파 경고문을 넣자

전자파 유해성 연구 결과 잇따르자 미국·프랑스·독일 등에서

의무표시제, 어린이·청소년 사용규제 확산…

한국 정부는 여전히 소극적 대처
등록 2010-10-14 07:59 수정 2020-05-02 19:26
미국 샌프란시스코시 의회가 이동통신업체들에 전자파 인체 흡수율을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하는 조례를 가결한 지난 6월15일 한 시민이 ‘알 권리’(RIGHT TO KNOW)라는 문구가 적힌 배지를 달고 지지 의사를 밝히고 있다.THE NEW YORK TIMES/ JIM WILSON

미국 샌프란시스코시 의회가 이동통신업체들에 전자파 인체 흡수율을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하는 조례를 가결한 지난 6월15일 한 시민이 ‘알 권리’(RIGHT TO KNOW)라는 문구가 적힌 배지를 달고 지지 의사를 밝히고 있다.THE NEW YORK TIMES/ JIM WILSON

프랑스 정부는 지난 7월12일 어린이·청소년의 건강을 위해 휴대전화 사용을 규제하는 법률을 공포했다. 이 법은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에서 휴대전화 사용을 금한다. 14살 이하 어린이·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휴대전화 광고도 금지한다. 휴대전화에서 나오는 전자파에 취약한 연령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조만간 구체적인 시행령을 만든 뒤 법을 집행할 예정이다. 애초 정부는 12살 이하 어린이를 상대로 휴대전화 사용을 규제하려고 했으나, 의회는 14살까지 그 폭을 넓혔다.

독일에서는 SAR 수치가 0.6W/㎏ 이하인 휴대전화에

‘블루에인절’(Blue Angel) 마크를 부여하고 있다.

또 연방방사능보호청은 청소년의 경우 가급적

유선전화를 사용하도록 권유하고 있다.

이에 앞서 미국 샌프란시스코시는 이동통신업체가 휴대전화를 팔 때 ‘전자파 인체 흡수율’(SAR·Specific Absorption Rate)을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하는 조례를 지난 6월 통과시켰다. SAR는 휴대전화를 사용할 때 발생하는 전자파가 신체조직에 흡수되는 정도를 수치화한 것이다. 지금까지는 소비자들이 휴대전화를 구입할 때 SAR를 매장에서 직접 확인하기 어려웠다. 구입 전에는 홈페이지를 일일이 방문해 확인하는 방법밖에 없고, 구입한 뒤에라야 SAR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이 조례는 내년 2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녹색소비자연대 김시형 이사가 지난 6월23일 서울 역삼동에서 전자파 인체 흡수율을 의무적으로 공개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날 녹색소비자연대는 ‘유해 전자파로부터 국민 건강 지키기 운동 발대식’을 열고 전자파 피해를 막기 위한 정부 대책을 촉구했다.연합 도광환

녹색소비자연대 김시형 이사가 지난 6월23일 서울 역삼동에서 전자파 인체 흡수율을 의무적으로 공개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날 녹색소비자연대는 ‘유해 전자파로부터 국민 건강 지키기 운동 발대식’을 열고 전자파 피해를 막기 위한 정부 대책을 촉구했다.연합 도광환

독일의 ‘블루에인절’ 마크, 영국의 경고문

독일에서는 SAR 수치가 신체조직 10g 평균 0.6W/kg 이하인 휴대전화에 ‘블루에인절’(Blue Angel) 마크를 부여하고 있다. 또 연방방사능보호청은 SAR 수치가 낮은 휴대전화를 살 것과 청소년은 되도록 유선전화를 사용하고, 휴대전화 신호가 약한 곳(신호를 잡기 위해 더 강한 전자파가 나옴)에서는 휴대전화 사용을 자제하도록 권하고 있다. 영국은 이미 2001년 이후 모든 휴대전화에 ‘과도한 사용에 따른 건강 위험’을 알리는 경고문을 끼워서 판매하고 있다.

선진국에서 규제가 확산되는 것은 휴대전화 전자파의 유해성을 경고하는 연구 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이 휴대전화를 사용하기 시작한 1980년대부터 전자파가 뇌암과 편두통, 불임 등의 질병을 유발한다는 주장이 제기돼왔다. 유럽 이동통신사인 오렌지는 지난해 연구보고서를 통해 “남성이 바지주머니에 휴대전화를 넣고 다닐 경우 성기능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밝혔다. 2008년에는 영국의 신경외과 전문의인 비니 쿠라나 박사가 “휴대전화를 10년 이상 지속적으로 사용해온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악성 뇌종양에 걸릴 확률이 두 배 이상 높다”고 발표했다. 그는 휴대전화 사용이 흡연이나 석면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서 가능한 한 휴대전화 사용을 피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2004년에는 유럽연합(EU) 7개국 12개 연구팀이 EU의 지원으로 4년간 실시한 연구에서 “세포가 휴대전화에서 나오는 전자파에 노출될 경우 세포 DNA가 손상되는 ‘유전자 독성효과’가 나타난다”고 밝혔다. 즉, 전자파의 영향으로 세포의 유전자가 변이를 일으켜 암 등 각종 질환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환경부는 지난해 발표한 ‘비자발적 전자파 노출인구 건강영향평가 연구’ 용역보고서를 통해 초등학교 5~6학년 학생 256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휴대전화 사용으로 집중력 저하(16.6%), 눈의 통증(12.9%), 육체적 피로(12.7%), 어지러움(11.3%), 기억력 감퇴(10.5%) 등을 겪었다”고 밝혔다. 연세대 의대 의학공학교실 김덕원 교수팀은 청소년과 성인 각 21명(남 23명, 여 19명)을 대상으로 우리나라 이용방식인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휴대전화의 전자파에 15∼30분씩 노출시킨 결과, 성인은 별다른 영향이 없었으나 청소년은 손바닥에서 땀 분비량이 증가하는 증상이 일부 확인됐다고 2006년 밝힌 바 있다.

일부 기업도 전자파의 유해성에 대해 우려를 표시한다. 일본의 최대 휴대전화 회사인 NTT도코모는 연차보고서에서 회사의 위험 요인으로 전자파를 꼽고 있다. “미디어나 그 밖의 보고서에 따르면 휴대전화 등 무선기기가 방출하는 무선주파는 보청기나 페이스메이커(심장박동기) 등을 포함한 전자의료기기 사용에 장애를 유발한다. 또 암이나 시각장애를 유발할 뿐 아니라 휴대전화 사용자와 주변 사람에게 건강상 악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어린이가 사용할 때는 위험이 더욱 커질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물론 이 보고들은 최종 결론에 도달한 것은 아니고 보고서의 조사 결과에 이의도 있으나, 무선전기통신 기기가 사용자에게 초래하거나 초래하리라 예상되는 건강상의 위험은 (이동전화 가입) 계약 수 감소, 이용량 감소, 자금조달 수단 감소, 연이은 소송 등을 통해 도코모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외국의 휴대전화 전자파 규제 상황

외국의 휴대전화 전자파 규제 상황

휴대전화 회사가 지원한 연구는 무해성 주장

하지만 상당수 휴대전화 제조업체와 이동통신사들은 “휴대전화 전자파의 위험에 대한 명확한 증거가 없다”며 여전히 안전하다고 강조한다. 일부 연구 결과 역시 이들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2004년 당시 정보통신부 산하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과 전자파학회가 주최한 ‘전자파 인체 영향 연구 결과 발표회’에서 국내 연구팀은 “휴대전화 전자파가 인체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최근에는 미국 사우스플로리다대학(USF) 연구진이 지난 1월 쥐 96마리를 하루 두 차례 1시간씩 휴대전화에서 나오는 것과 비슷한 전자파에 노출한 결과 알츠하이머 증세가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같은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휴대전화 관련 기업들은 휴대전화 전자파 유해성에 동의하지 않는다. 게다가 1990년대부터 세계적으로 도입된 SAR 기준이 있어 무해하다는 것이다. SAR 기준은 한국과 미국은 신체조직 1g 평균 흡수되는 전자파가 1.6W/kg 이하, 유럽에서는 10g 평균 2.0W/㎏ 이하의 휴대전화만 판매하도록 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논란이 지속되고 오랜 시간이 흐른 뒤
휴대전화 전자파의 유해성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질 경우
이미 많은 피해자가 발생한 뒤라는 점이다.
담배와 석면의 유해성 논란 과정은 이를 잘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5월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가 발표한 ‘인터폰 연구’ 결과는 이같은 논란을 잠재워 줄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이 연구는 국제암연구소가 2000년부터 영국, 캐나다, 프랑스, 독일,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덴마크, 핀란드, 이탈리아, 이스라엘, 노르웨이, 스웨덴 등과 함께 휴대전화 전자파와 암의 연관성을 규명하기 위해 실시한 것이다. 하지만 국제암연구소는 모호한 결론으로 혼란만을 가져왔다. 한 가지 결론은 뇌종양의 일종인 수막종과 신경교종 환자를 분석한 결과 10년간 휴대전화를 사용한 환자와 전혀 사용하지 않은 환자 사이에 큰 차이가 없어 연관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다른 결론은 하루에 30분 이상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사람이 사용하지 않는 사람보다 신경교종에 걸릴 위험이 40%, 수막종에 걸릴 위험은 15% 정도 높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국제암연구소는 “오랜 기간 많은 휴대전화를 사용한 사람들에 대한 연구가 더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처럼 엇갈리는 연구 결과들이 나오는 데 대해 연구 지원금의 출처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국립암센터의 명승권 전문의는 미국의 버클리대학 보건대학원 연구팀과 함께 지난해 10월 (Journal of Clinical Oncology)에 발표한 논문에서 “각 연구들이 연구 지원금의 출처에 따라 연구 방법과 그 결과가 달라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를 지적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 예로 국제암연구소의 ‘인터폰 연구’와 스웨덴 하델 박사팀의 연구를 들었다. 논문은 “국제암연구소가 주관한 ‘인터폰 연구’는 휴대전화 제조업체들의 단체인 MMF로부터 연구비를 지원받았는데, 연구 결과는 휴대전화 사용자가 암 발병률이 0.83배로 낮았다”며 “반면 스웨덴의 하델 박사팀은 정부와 암 관련 단체로부터 연구비를 지원받는데, 그 연구 결과에서는 발병률이 1.15배 높다는 부정적인 결과가 나왔다”고 밝혔다. 인터폰 연구에는 지난 5월까지 총 1920만유로(약 300억원)가 들었는데, 이 가운데 550만유로(약 86억원)가 MMF를 비롯한 휴대전화 관련 업체로부터 지원됐다. 2004년 휴대전화 전자파가 무해하다는 결론을 내린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등의 연구도 SK텔레콤 등 이동통신 3사가 후원했다.

명승권 전문의는 또 “1999년부터 2008년까지 발표된 연구 결과 23편을 분석한 결과, 신뢰할 수 있는 ‘눈가림법’을 사용한 8편의 연구 논문에서는 10년 이상 휴대폰을 사용한 사람의 경우 암 발생률이 30% 높았다”고 밝혔다. 눈가림법은 조사 대상자가 환자군에 속하는지 일반 대조군에 속하는지를 연구자가 모르게 하는 것으로, 정보를 편견 없이 수집해 정확도와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사용하는 조사 방법이다.

주요 휴대전화 관련업체의 전자파 인체흡수율(SAR) 정보공개 현황

주요 휴대전화 관련업체의 전자파 인체흡수율(SAR) 정보공개 현황

담배·석면 유해성 입증의 교훈

문제는, 이런 논란이 지속되고 오랜 시간이 흐른 뒤 휴대전화 전자파의 유해성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질 경우 이미 많은 피해자가 발생한 뒤라는 점이다. 담배와 석면의 유해성 논란 과정은 이를 잘 보여준다.

흡연은 1910년대에야 건강에 해롭다는 사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1912년 미국의 애들러(Adler)가 임상 경험을 통해 흡연이 폐암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는 것 같다는 일종의 연구가설을 발표한 것이 처음이다. 이후 연구자들이 꾸준히 흡연과 폐암의 연관성을 연구하면서 그 가설을 뒷받침했다. 반면 담배회사들은 자체 연구를 통해 1954년 “담배가 건강에 해를 주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일부 연구자 역시 흡연과 폐암이 항상 연관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받는 스트레스나 개성 등 다른 요인이 암 유발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논란을 거듭하던 흡연의 유해성이 공식적으로 드러난 것은 1964년 1월11일 미국 공중위생국이 ‘흡연과 건강’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흡연은 암을 유발한다”는 결론을 발표하면서다. 이후 담배회사들이 흡연의 유해성을 알면서도 숨긴 것은 물론, 니코틴 중독 효과를 높이기 위해 암모니아 화합물을 첨가제로 사용해왔다는 사실이 1994년 내부고발자에 의해 밝혀지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세계보건기구가 1974년 권고한 내용을 받아들여 1976년에 처음으로 담뱃갑에 ‘건강을 위하여 지나친 흡연을 삼갑시다’라는 경고 문구를 넣었다.

‘소리 없는 살인자’라 부르는 석면 역시 그 위험성이 드러나는 데 30년가량이 필요했다. 석면은 1930년대부터 전차·군용기에서 단열재로 쓰이던 것이 일반 건축자재·방화재에까지 확산됐다. 석면은 흡입해도 바로 발병되는 것이 아니라 평균 20~30년의 잠복기간을 거친다. 이 때문에 환자는 뒤늦게 발생했고, 정부 대책은 그때서야 나왔다. 1983년 아이슬란드를 시작으로 영국(1992년)·독일(1993년)·프랑스(1997년) 등이 석면 사용을 금지했고, 2005년에 유럽연합 가입국 모두가 석면 사용을 금지했다. 미국도 1989년부터 단계적으로 규제를 강화하다 1993년 전면 금지했다. 우리나라 역시 2007년 건축용 석면 자재와 브레이크석면 자재의 사용을 금지한 것을 시작으로 2009년에 이르러 모든 종류의 석면 사용을 막았다.

“어린이와 청소년의 경우 머리 크기가 작아

전자파가 성인보다 깊숙이 침투한다.

이 때문에 많은 주의가 필요한데도 선진국과 달리

정부는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 연세대 의대 김덕원 교수

연세대 의대 김덕원 교수(의학공학)는 “흡연에 대해 20세기 초부터 유해성 논란이 있었지만 이후 수십 년간의 연구를 통해 유해성이 입증된 뒤에야 규제가 시작됐다”며 “휴대전화 전자파가 인체에 유해할 가능성도 여전히 있는 만큼 사전 예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더욱이 전자파 유해성을 증명하는 데는 담배보다 더 많은 비용과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김 교수는 “흡연의 경우 흡연 기간, 하루 흡연량 등 통계가 뚜렷해 통계적으로 암 발생률 등을 조사할 수 있었다”며 “전자파는 그 세기와 노출 시간을 명확하게 구분하기 힘들어 확실한 결론을 내는 데 훨씬 오랜 기간이 걸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인식에 따라 스위스 연방보건국은 “휴대전화 전자파와 뇌종양의 연관성은 아직 연구 중이지만, 유효한 연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전자파 노출을 최소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권고하고 있다. 캐나다 토론토시도 지난해 휴대전화 사용의 잠재적 위험성이 확인될 때까지 어린이와 청소년의 휴대전화 사용 시간을 제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시 보건국은 보고서를 통해 “특히 12살 이하 초등학생은 되도록 유선전화를 사용하고 불가피할 경우에만 휴대전화로 통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휴대전화를 써야 할 경우라도 통화 시간을 줄이고 헤드셋 등 보조기구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청소년은 휴대전화 사용을 자제하라는 내용을 담은 영국 정부의 경고문

청소년은 휴대전화 사용을 자제하라는 내용을 담은 영국 정부의 경고문

국내선 전자파 흡수율 확인하기도 어려워

국내 휴대전화 사용자는 해마다 늘고 있다. 지난 9월 방송통신위원회는 휴대전화 사용자가 5천만 명을 돌파해 실제 인구(약 4800만 명)보다 많다고 밝혔다. 휴대전화 사용 시간 역시 세계적으로 긴 편이다. 지난해 KT경제경영연구소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월평균 휴대전화 사용 시간은 320분으로 발신자 과금 시스템을 사용하는 나라 가운데 가장 길었다. 프랑스(246분), 영국(192분), 일본(139분) 등이 뒤를 이었다.

특히 사용자가 계속 늘어가는 스마트폰은 기존 피처폰에 비해 SAR가 높은 편이다. 팬택의 스카이 베가(1.3W/kg), 모토롤라의 모토로이(1.18W/kg)·모토글램(1.39W/kg) 등도 높은 편이다(‘전자파 인체 흡수율에 주목하라’ 기사 참조).

이처럼 전자파의 유해성에 대한 우려가 크고 사용시간도 길어지지만 소비자들이 가장 기본적인 휴대전화의 SAR조차 쉽게 알기 어렵다. 미국에서는 각 휴대전화 회사가 연방통신위원회(FCC) 홈페이지를 통해 제품별 SAR를 알리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휴대전화 제조회사마다 제각각의 방식으로 공개하고 있어 소비자가 품을 들여야만 확인이 가능하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홈페이지에서만 SAR를 공개하고 있고, 애플은 홈페이지에서 ‘중요한 제품 사용설명서’를 내려받아야만 SAR를 확인할 수 있다. 팬택은 일부 제품(스카이 웹홀릭 등)에 대해서는 아예 공개조차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는 SAR 공개가 의무 사항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2003년 SAR 공개를 의무화하는 ‘전파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당시 정부와 휴대전화 관련 업체들은 “SAR를 강제적으로 공개할 경우 전자파 유해성에 대해 지나친 불안감을 증폭하고 제조업체 간 예기치 못한 피해 사례가 나타날 수 있다”고 반대했다. 결국 법안은 통과되지 못했다. 이후 7년간 SAR 공개 관련 법안은 다시 발의되지 않았다.

국내 한 연구소에서 생쥐를 대상으로 휴대전화 전자파가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는 연구를 하고 있다. 국립암센터의 명승권 전문의는 “지원금 출처에 따라 연구 결과가 다르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고 밝혔다.한겨레 박종식

국내 한 연구소에서 생쥐를 대상으로 휴대전화 전자파가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는 연구를 하고 있다. 국립암센터의 명승권 전문의는 “지원금 출처에 따라 연구 결과가 다르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고 밝혔다.한겨레 박종식

정부는 현행 SAR 기준이 안전하다는 입장만을 고수하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 관계자는 “2000년 이후 ‘전자파 영향 및 표준화 연구’ ‘안전한 전자파 환경 조성 연구’ 등을 진행했지만 휴대전화 전자파가 인체에 유해하다는 결론이 없다”며 “연구는 계속할 계획이지만, 규제에 대해서는 아직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환경부 역시 마찬가지다. 환경부 관계자는 “현재 송신탑 전자파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며 “송신탑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먼저 마련한 뒤 휴대전화 전자파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한 전자파 전문가는 “옛 정보통신부 시절 휴대전화 전자파에 대한 논란이 생길 수 있는 연구 결과가 도출되면 관련 기관의 심의를 거치도록 해 연구자들이 부담감을 느껴 객관적인 자료가 나오기 힘들었다”며 “현 방송통신위 역시 과거 정통부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어린이·청소년 사용규제 시급

국내 전문가들은 ‘사전 예방주의 원칙’에 입각해 규제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국립암센터의 명승권 전문의는 “국민 건강에 위협을 줄 수 있다는 연구가 나오고 있고 안전이 100% 보장이 안 된다면 사전 조처를 취해야만 한다”며 “우리도 외국처럼 SAR를 의무적으로 표기하거나 경고문구를 표시하게 하는 방식으로 위험을 사전에 예방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린이와 청소년의 휴대전화 사용 규제가 시급하다는 지적도 있다. 연세대 김덕원 교수는 “어린이와 청소년은 머리 크기가 작아 전자파가 성인보다 깊숙이 침투한다”며 “이 때문에 많은 주의가 필요한데도 선진국과 달리 정부는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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