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진보 지식인은 생각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진보 지식인의 다수는 판단한다. 이제는 드러내어 비판해야 한다고. 그러나 진보 지식인의 일부는 고심한다. 그것이 이 거대한 딜레마를 해결하는 데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고.
은 한국 사회를 대표할 만한 진보 지식인에게 북한의 3대 권력승계에 대해 물었다. 모두 226명에게 10개 문항에 걸친 긴급 설문조사를 했고, 설문 의뢰 48시간 만에 67명이 응답했다. 현안에 대한 즉각적 입장 표명을 꺼리는 지식인 집단의 특성을 고려할 때, 대단히 신속하고도 광범위한 회신이었다. 북한 권력승계에 대한 진보 지식인의 관심은 ‘이례적인’ 수준으로 고조돼 있었다.
“강하게 비판해야” 83%, “입장 표명 바람직 않아” 7%
응답자의 면면은 진보 지식인 집단을 얼추 아울렀다. 사회학(14명), 경제학(12명), 역사학(11명), 정치학(7명), 법학·법조인(7명), 문학(3명), 언론·영상학(3명), 그리고 시민사회단체 지도급 인사(10명) 등이 설문에 응했다. 그 결과 통계적으로 엄밀하진 않지만, 북한 체제에 대한 한국 진보 지식인의 일반적 생각을 드러내는 자료가 만들어졌다. 그들의 날카로운 이성의 저류에는 북한에 대한 깊은 회의, 미래에 대한 암울한 전망, 그러나 전략적·이성적 판단을 놓쳐선 안 된다는 끈질긴 집념이 함께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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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권력분산 등의 원칙에 비춰 비판적 입장을 표명하고,
이번 기회에 진보가 북한 문제를 털고 가야 한다.” -고세훈 교수
“북한의 (권력)세습을 비판하지 않는다면,
삼성이나 교회의 세습도 비판할 수 없다.” -김두식 교수
“박정희 독재를 비판한 논리와 마찬가지로 북한의
독재 체제를 비판해야 한다.” -신광영 교수</font>
북한 권력의 3대 승계에 대한 입장을 3단계로 나눠 물었다. 우선 응답자 개인의 생각을 확인했다. ‘북한 권력의 3대 승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자, 표1과 같이 모든 응답자가 “(매우 또는 다소) 비판적”이라고 답했다. “알 수 없다” “매우 긍정적” “다소 긍정적”이라는 답은 아예 없었다. 5점 척도로 묻는 설문에선 보통 극단적 답변이 적은데, “매우 비판적”이라는 답변만 81.5%였다. 진보 지식인의 절대다수는 북한의 부자 세습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다만 그 입장은 관련한 다른 질문에서 미묘한 변화를 일으킨다. ‘북한 권력의 3대 승계를 강하게 비판해야 하는지’를 묻는 질문에서 “(매우 또는 비교적) 그렇다”고 답한 이가 83.1%였다. 앞선 질문이 ‘생각’을 묻는 것이라면, 이 질문은 공개 발언 등으로 ‘행동’할 것인지 묻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한다는 입장이 여전히 다수를 차지했지만, “(전혀 또는 비교적) 그렇지 않다”고 답한 이도 10.8%로 나타났다. 표2에서 볼 수 있듯이, “알 수 없다”는 답변자(4.6%)를 보탤 경우, 드러내어 공공연히 북한을 비판하는 일에 회의적인 지식인은 15%가 넘는다.
표3은 진보 진영이 어떤 입장을 취해야 좋은지 물어본 결과다. “당연히 북한을 비판해야 한다”는 답변이 66.2%로 다수지만, “어떤 입장 표명도 바람직하지 않다”(7.7%)도 적지 않았다. ‘기타’ 의견을 밝힌 이가 26.2%나 됐는데, 북한 권력승계를 비판하는 데 ‘전략적 사고’를 주문한 내용이 많았다. 이 지점에서 한국 진보 지식인 내부의 긴장이 형성되고 있는 셈이다.
“민주주의·권력분산 등의 원칙에 비춰 비판적 입장을 표명하고, 이번 기회에 진보가 북한 문제를 털고 가야 한다”(고세훈 고려대 공공행정학 교수), “북한의 (권력)세습을 비판하지 않는다면, 삼성이나 교회의 세습도 비판할 수 없다”(김두식 경북대 법학 교수), “박정희 독재를 비판한 논리와 마찬가지로 북한의 독재 체제를 비판해야 한다”(신광영 중앙대 사회학 교수) 등의 입장이 많았다.
북한 체제에 대한 선긋기냐, 상황 관리냐
비슷한 맥락에서 북한 체제에 대한 한국 진보 진영의 ‘선 긋기’를 주장한 이도 적지 않았다. “헌법적으로 국가 형태는 군주국과 공화국이 있고, 군주국의 특성은 통치자의 혈연에 따른 세습과 종신제다. 북한은 공화국이 아니라 군주국이다.”(임지봉 서강대 법학 교수) “조선 인민이 지도자를 선출하고 스스로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는 최소한의 가능성마저 봉쇄했다. 이건 진보도 혁명도 아닌, 인민주권을 찬탈하는 행위다.”(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당연한 (민주적)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부자 세습과 같은) 특별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면, 그런 사회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금태섭 변호사)
그러나 또 다른 이들은 민주주의 원칙에 따른 ‘규범적 비판’이 만능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심상용 상지대 교수(사회복지학)는 “북한 체제를 ‘부정의’한 전체주의 국가와 동일시해 권력세습을 비판하는 것은 ‘국가 간 관계’에서 일종의 내정간섭”이라며 “민족 내부 관계이면서도 국가 간 관계인 남북 문제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찬반 논란보다는 상황 자체를 관리해가는 자세가 더 중요하다”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어느 학자는 “북한의 권력승계를 적극적으로 비판하는 것이 과연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긍정적일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역시 익명을 요구한 어느 변호사는 “과거에도 북한은 멸시와 조롱의 대상이었으므로, 권력승계를 빌미로 더 많은 멸시와 조롱을 보내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며 “멸시와 조롱을 보내면 통일은 멀어질 뿐이므로, 북한 지도부와 소통하려는 노력을 접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반면 한정숙 서울대 교수(사학)는 “현실 개선에 효과가 없을 수도 있지만, 진보의 역사적 정당성을 후대에 남기기 위해서라도, 북한의 권력세습이 잘못이라는 점은 분명히 밝히고 넘어가야 한다”며 “그런 비판과 별개로 정부 차원의 외교적 대응은 차분하고 냉철하게 추진하면 된다”고 밝혔다.
북한 문제 전문가로 통하는 지식인들은 일종의 ‘전략적 분업’을 주문했다. “북한을 비판하는 문제와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는 문제는 다르다. 개인·진보진영·시민사회단체·정부의 입장을 각각 다층적으로 조정해야 한다.”(박순성 동국대 정치학 교수) “진보 진영은 민주주의 원칙에 입각해 강력히 비판하되, 대북정책은 3대 세습 여부와 상관없이 화해협력·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계속되어야 한다.”(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49.3%, ‘중국식 1당 지도 체제’ 바람직
거대한 딜레마에 대한 고심을 토로하는 경우도 많았다. 김귀옥 한성대 교수는 “통일을 이루려면 (북한의) 민주화의 진전이라는 조건이 필요하지만, 중국 등에 복속되지 않고 그 체제 자체를 존속시키는 것도 중요한데, 이를 위해선 내부 권력 갈등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3대 권력승계가 민주화에 역행하는 것이긴 하지만, 권력승계 실패로 인한 체제 붕괴 역시 통일에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김명인 인하대 교수(국문학)도 비슷한 고민을 갖고 있다. “민주주의의 일반 원칙에 근거해 비판해야 하지만, 북한의 현재 조건에선 (부자 세습이 아닌) 다른 선택은 자멸과 다름없다”는 것이다.
3대 부자 세습이 아니라면, 다른 권력 이행 경로가 있을까? 응답자들은 집단지도 체제 또는 중국식 1당지도 체제를 과도기 삼아 궁극적으로 다원주의 정치체제로 변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3대 승계는 불가피한 선택인지’ 묻는 질문에 한국 진보 지식인의 53.8%가 “(전혀 또는 비교적)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표4 참조). 김일성의 집권, 김정일의 권력승계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김정은의 권력승계가 더 부정적이라고 생각하는 이도 50.0%에 이르렀다(표5 참조). 다른 방법이 없지 않다고, 다른 길을 택해야 한다고, 진보 지식인들은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바람직한 권력 교체 방식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49.3%가 “중국식 1당 지도 체제”를 꼽았다. 21.7%는 “복수의 지도자가 이끄는 집단지도 체제”를 골랐다. “부자 세습을 통한 통치 체제”를 고른 이는 아무도 없었고, “다당제·직접선거 등에 기초한 다원주의 정치체제”를 꼽은 이는 11.6%였다. 서구 민주주의 방식은 아니라 해도, 중국식 1당 체제 또는 집단지도 체제의 방식으로 부자 세습을 피해야 한다는 뜻이다. 상당수의 ‘기타’(8.7%) 의견도 “집단지도 체제를 과도기로 삼아 궁극적으론 다원주의 정치체제로 이행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정건화 한신대 교수(경제학)는 “과도적으로는 권력세습을 피하는 중국식 1당지도 체제를 구축하되, 장기적으로는 다원주의 정치체제로 나아가는 것이 옳다”고 밝혔다.
그러나 북한이 택한 경로는 그런 바람과 다르다. 어찌될 것인가? ‘김정은의 권력승계 과정이 원만할 것인지’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32.4%가 “(전혀 또는 비교적)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알 수 없다”는 답도 43.1%였다. ‘김정은의 권력 기반이 안정적일 것으로 보는지’ 묻는 질문에도 응답자의 52.3%가 “(전혀 또는 비교적) 그렇지 않다”고 답했고, “알 수 없다”는 답변 역시 36.9%에 이르렀다.
세습권력의 이행이 불안정할 것이라는 게 중론인 셈인데, 그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에 대해선 전망이 엇갈렸다. 박상표 국민건강을 위한수의사연대 정책국장은 “3대에 걸친 권력세습이 북한의 몰락을 초래할 기폭제가 될 가능성이 있다”며 “진보 진영도 민주주의·인권·평화의 측면에서 북한의 급변에 대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반면 이일영 한신대 교수(경제학)는 “3세(김정은) 유일 체제가 성공적으로 정착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지만, “혈통의 범위를 상당히 확대한 집단지도 체제로 이행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이런 맥락에서 “비판 이후를 생각해야 한다”는 주문이 많았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정치학)는 “현재의 과도기를 외부에서 흔들면 오히려 군부의 입지만 강화될 것”이라며 “김정은을 포함한 북한 지도부가 개혁·개방을 모색하도록 우리가 ‘출구’를 외부에서 터줘야 한다”고 밝혔다.
북한의 변화에 개입할 여지를 터야
문제는 그럴 능력이 한국 정부에 있는지다. 조흡 동국대 교수(영화영상학)는 서독-소련의 관계와 한국-중국의 관계를 비교했다. 조 교수는 “후계자 문제를 포함해 예기치 못한 사태가 북에서 일어나도, 이명박 정부가 이에 개입할 여지가 전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1989년 통독 당시 동독은 소련에 매우 중요한 ‘블록국가’였다. 그럼에도 소련이 통독을 용인한 이유는 서독에 있었다. 미국이 소련과 교역을 중단한 시기에도 서독-소련은 긴밀한 교역관계를 가졌고, 그 결과 소련은 서독을 믿을 만한 상대로 보아 동·서독 통일을 양해했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지금 북한은 중국에 매우 중요한 ‘블록국가’지만, 친미·친일·반중 외교만 펼치는 이명박 정부는 과거 서독과 같은 역할을 할 만한 비전과 능력이 없다”고 밝혔다.
조대엽 고려대 교수(사회학)는 정부에 대한 기대 대신 시민사회의 역할을 주문했다. “현 정권의 대북정책은 (남북관계를) 한국이 주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기조를 갖추고 있지 못하므로, 오히려 우리 시민사회의 ‘용량’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정부 차원의 대책이 아닌 ‘시민사회 통일론’을 주장하고 있는데, “시민사회 주도의 남북 교류·화해 사업을 확장하는 일은 여기에 필수적”이라고 밝혔다. 규범적 판단은 분명하지만, 전략적 행동에 대한 고심이 깊어간다. 북한을 향한 한국 진보의 언어는 여전히 명쾌하지 못하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3대 세습 평가 ①강한 비판
<font size="3"><font color="#C21A8D">무엇으로도 정당화할 수 없다</font></font>
주진오 상명대 교수·역사학
이번 권력승계로 북한은 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아니라 ‘왕국’이 됐다. ‘지도자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온갖 특혜와 보호 속에 성장한 사람을 한 나라의 가장 위대한 지도자로 갑자기 등장시키는 현실을 무슨 말로 용납할 수 있겠나.
이에 대해 침묵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권력세습을 비판하는 것이 반북·반통일이라거나 보수의 논리에 동조하는 것이라는 발상이야말로 한국의 진보 지식인들이 국민으로부터 신뢰받지 못하는 이유다. 북한의 독재 체제와 관료제는 기득권 수호를 위한 권력자 동맹에 불과하다. 체제에 아무 기여도 하지 않은 김정은을 최고 지도자로 세습시킨 것은 북한의 한심한 정치 현실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무역학
북한 체제의 이념적 지향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겠지만, 정치권력의 세습은 이와는 전혀 별개의 문제로,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이는 인류가 이뤄온 사회발전의 근본 원칙을 위배하는 것이다. 철인독재가 불가능한 현실에서 개인의 자의적 지배로 인한 폐해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제도에 의한 지배이고, 지배 세력의 교체다.
북한이 서구적 의미의 민주주의 원칙을 따라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겠으나, 현재 북한의 3대 세습 시도는 그 무엇으로도 정당화할 수 없다. 만일 북한 체제가 붕괴한다면 그것은 외부 요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부 요인에 기인한 것이며, 그 시기가 먼 미래가 아닐 수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 작금의 사태다.
조국 서울대 교수·법학
미국의 압박 등으로 북한이 국가 존립의 위기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단지 외적 조건 탓이라고만 할 수 없다. 사회주의적 기준으로 봐도 북한 정치체제의 억압성과 경제체제의 비효율성이 문제다.
북한의 현 정치체제와 이데올로기를 볼 때, 수령의 혈통이 아닌 자를 최고 지도자로 받들지 않으면 내부의 권력투쟁이 격화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 점에서 김정은의 권력승계가 체제 안정과 지배 엘리트의 단결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인 것으로 ‘이해’가 간다. 그러나 ‘이해’가 간다 해서 ‘용인’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td></tr></table></td></tr><tr><td height="23px"></td></tr></table><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100%"><tr><td height="22px"></td></tr><tr><td bgcolor="#DFE5CE" style="padding: 4px;"><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100%" bgcolor="#EBF1D9"><tr><td class="news_text03" style="padding:10px">
3대 세습 평가 ②전략적 접근
<font size="3"><font color="#008ABD">국가 대 국가, 냉정한 접근을</font></font>
문정인 연세대 교수·정치학
북한의 권력승계는 이미 예상했던 일이다. 국제적 규범에 의해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수령 1인지도 체제를 유지해온 북한의 특수성을 무시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한·미·일이 북한을 제재하는 상황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군부를 중심으로 자력갱생하는 길을 찾을 수밖에 없다.
이 문제를 빌미로 현재 (권력승계라는) 과도기를 겪고 있는 북한을 외부에서 흔들 경우, 군부의 입지만 강화되고 한반도의 긴장도 더욱 높아질 것이다. 따라서 김정은을 포함한 수권 세력들이 개혁·개방을 모색할 수 있도록 외부에서 출구를 터줘야 한다. 이를 통해 북한이 시장 요소를 도입하고 그 내부에 중간계층이 자리잡을 수있도록 (한국의) 지혜로운 대북 정책 운용이 필요하다
박노자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북한은 사회주의를 가장하지만, 실제 사회주의와 어떤 공통점도 없다. 중국식 1당 과두정치로 넘어갔으면 좋았을 텐데 아직 시기상조인 것 같다. 그러나 한반도의 현실 정치를 고려할 때, (권력세습을) 비판하더라도 여러 요소를 고려해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김일성의 건국 신화를 주된 이념으로 삼고 김씨 가문의 1인 세습독재에 익숙해진 사회에서는 권력세습을 피하기가 너무나 어렵다. 한반도 미래의 차원에서 우리는 평양 김씨 족벌 체제와 일단 ‘관계’를 만들고 관리하고 그 체제의 개혁을 조심스럽게 유도해야 한다.
심상용 상지대 교수·사회복지학
남북관계는 민족 내부 관계인 동시에 국가 간 관계다. 북한의 권력세습은 부정의하므로 정치윤리 차원에서 용인되면 안 된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국가 간 관계에서 권력세습 비판은 일종의 내정간섭인 측면이 있다.
북한에 대한 윤리적 차원의 판단은 다중적일 수밖에 없다. 민족관계를 염두에 두면, 남북관계의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관리가 중요하다. 게다가 최근 남북관계에선 (내정간섭을 피해야 하는) 국가 간 관계의 측면이 더 강해지고 있다. 우리로서는 있는 그대로 현실을 받아들이고 상황을 관리해나가는 자세가 중요하다. 권력승계에 대해 찬반 주장을 펼치는 것은 남북관계가 민족 내부 관계인 동시에 국가 간 관계라는 점을 무시한 비현실적 접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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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세습 평가 ③반면교사
<font size="3"><font color="#991900">여기도 ‘작은 김정은’이 많다</font></font>
김종엽 한신대 교수·사회학
민주주의 관점에서 권력세습을 비판하는 것은 옳다. 그러나 북한의 민주화는 북한의 민중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다. 한국은 궐기대회 따위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향한) 지속적인 문화적 영향을 줄 수 있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북한 권력세습에 대한 비판은 한국에서 벌어지는 세습·상속 일반에 대한 비판으로 연결돼야 한다.
한국에는 ‘작은 김정은’이 많다. 교회 세습, 재벌 세습, 학교 재단 세습 등이다. 이들이 바로 한국 보수의 중요한 진지를 이루고 있다. 얼마 전,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자녀 특채 문제도 ‘공직 세습’의 경향에서 불거진 것이다. 각 분야에 걸친 한국 사회의 세습은 그 정도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우석훈 성공회대 외래교수·경제학
무엇인가를 자식에게 물려준다는 발상 자체가 현대가 아니라 ‘전근대’의 것이다. 그런 점에서 북한을 비판하는 한국 우파, 특히 대형 교회들은 남의 흠만 들춰보고 있다. 한국 대형 교회 가운데 절대다수가 2·3세에게 대물림되고 있다.
박정희와 김일성은 체제 경쟁 과정에서 각각의 방식으로 압축성장과 속도전을 펼쳤다. 권력을 중앙으로 집중시키기만 했지, 권력을 분산하는 시스템은 전혀 마련하지 못했다. 그 결과가 한국의 교회·재벌 세습, 그리고 북한의 부자 세습으로 이어지고 있다. 북한의 세습은 그 체제 안에서 합법적이지만, 한국의 재벌·교회 세습은 종종 불법적이다. 상속세·증여세를 회피하는 편법·불법 증여 방식이다. 물론 사태의 경중에선 북한의 권력세습이 더 중하다. 좋다 나쁘다를 떠나, “이게 뭐지” 하는 생각이 들 뿐이다.
조돈문 가톨릭대 교수·사회학
한국 진보 진영의 분열이 더욱 심화·고착화될 위험이 있다. 지난 지방선거를 거치며 의제화됐던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통합 논의에 북한 권력승계 문제가 새로운 걸림돌로 등장했다. 세습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면, 이에 대한 맹목적 방어도 강화돼 합리적 토론이 불가능해지고, 진보 양당의 통합까지 저해할 수 있다.
북한에 대한 한국 우파들의 경멸이 심해지고, 보통 시민들의 혐오감도 커질 것이다. 이 때문에 한국 정부의 (인도적) 북한 지원은 더 어려워지고, 통일에 대한 사회 전체의 선호 여론 역시 하락할 것이다. 북한 권력세습이 한국 사회의 전반적 보수화에 일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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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에 응해주신 분들(총 67명·가나다순)
<font color="#333333"><font style="font-size: 11px;line-height:8px">강신준 동아대 교수(경제학), 고세훈 고려대 교수(행정학), 권용립 경성대 교수(정치학), 금태섭 변호사, 김균 고려대
교수(경제학), 김기식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김귀옥 한성대 교수(사회학), 김누리 중앙대 교수(독문학), 김두식 경북
대 교수(법학), 김득중 국사편찬위원회 연구사, 김명인 인하대 교수(국문학), 김민철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운영
위원장, 김상조 한성대 교수(무역학),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 김세균 서울대 교수(정치학), 김연명 중앙대
교수(사회복지학), 김종남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 김종엽 한신대 교수(사회학), 김종철 연세대 교수(법학), 김진방 인
하대 교수(경제학), 김한종 한국교원대 교수(역사교육학), 김형기 경북대 교수(경제학), 남재일 경북대 교수(신문방송
학), 노중기 한신대 교수(사회학), 류동민 충남대 교수(경제학), 문정인 연세대 교수(정치학), 박노자 오슬로국립대 교
수(한국학), 박상표 국민건강을위한수의사연대 정책국장, 박순성 동국대 교수(정치학),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박태균 서울대 교수(국제학), 박홍규 영남대 교수(법학), 신광영 중앙대 교수(사회학), 신주백 연세대 국학연구원 연
구교수(사학), 신진욱 중앙대 교수(사회학), 심상용 상지대 교수(사회복지학), 안병우 한신대 교수(사학), 안병욱 가톨
릭대 교수(사학),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우석훈 성공회대 외래교수(경제학), 유팔무 한림대 교수(사회학). 윤상철
한신대 교수(사회학), 윤소영 한신대 교수(경제학), 이명원 문학평론가, 이용선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공동대표, 이
일영 한신대 교수(경제학), 이종구 성공회대 교수(사회학), 이태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이해영 한신대 교수(국제
관계학), 임지봉 서강대 교수(법학), 임현진 서울대 교수(사회학), 장상환 경상대 교수(경제학), 장유식 변호사, 정건화
한신대 교수(경제학), 정근식 서울대 교수(사회학), 정대화 상지대 교수(정치학),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정치학), 조국 서울대 교수(법학), 조대엽 고려대 교수(사회학), 조돈문 가톨릭대 교수(사회학), 조흡 동
국대 교수(영화영상학), 주진오 상명대 교수(사학), 천준호 한국청년연합(KYC) 대표, 최갑수 서울대 교수(사학), 한상
권 덕성여대 교수(사학), 한정숙 서울대 교수(사학)</font></font>
</td></tr></table></td></tr><tr><td height="23px"></td></tr></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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