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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눈으로 유럽 성 서비스를 보다



‘장애여성공감’ 활동가들이 돌아본 유럽의 장애인 성 문제…

세심한 서비스 있지만 남성·성기·이성애 중심은 한계로 남아
등록 2010-09-30 03:56 수정 2020-05-02 19:26
장애여성공감 활동가들이 지난 6월 독일의 ‘장애인 자기결정 연구소’(ISBB)에서 진행하는 ‘에로틱 워크숍’을 참관했다. ‘섹스 동행자’라 불리는 성 서비스 제공자와 장애인이 어우러져 대화와 춤, 마사지 등을 나누며 제 몸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캠프 뒤 장애인이 원하면 돈을 지불하고 성관계를 갖기도 한다. 장애여성공감 제공

장애여성공감 활동가들이 지난 6월 독일의 ‘장애인 자기결정 연구소’(ISBB)에서 진행하는 ‘에로틱 워크숍’을 참관했다. ‘섹스 동행자’라 불리는 성 서비스 제공자와 장애인이 어우러져 대화와 춤, 마사지 등을 나누며 제 몸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캠프 뒤 장애인이 원하면 돈을 지불하고 성관계를 갖기도 한다. 장애여성공감 제공

국내에서 장애인의 성적 권리 담론은 2005년 일본 책 가 번역되면서 비로소 공론화됐다. 책은 장애인의 성적 소외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합법적인 성 구매 제도(공창제)와 섹스 자원봉사 등을 소개했다. 장애계에선 찬반의 파장이 컸다.

2007년 장애 청년들이 직접 네덜란드와 독일의의 장애인 성 서비스 실태를 둘러보기도 했다. 장애인 대상의 성 서비스가 일반적 ‘매매춘’과 비슷하다는 점, 네덜란드 장애인 상대 성노동자의 경우 사전에 철저한 준비로 뇌성마비·척수마비 등 장애인 고객의 욕구에 맞춰 성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 등이 특징적으로 전해졌다.

장애여성공감(이하 공감)은 지난 6월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독일·노르웨이·덴마크의 장애인 성 서비스 기관, 장애단체 등을 방문했다. 장애인 고객을 받고 있는 탄트라 마사지 업소, 성노동자 권리옹호 단체, 장애여성 단체, 장애인자립생활센터 등이 포함됐다. 성 서비스 담론을 중심으로 국내에 소개된 해외 사례를 여성적 시각에서 살펴보기 위함이다.

장애 여성은 섹스보다 관계를 원한다

우선, 성적 권리 문제에서 남녀차는 있는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한마디를 독일 방문길에서 들었다. 마티아스라는 장애 남성이 전해준 “장애 남성은 섹스를 안 하는 것보단 나쁜 섹스가 낫다고 하고, 장애 여성은 나쁜 섹스를 하기보단 안 하는 게 낫다고 한다”는 말이다. 마티아스는 베를린에 있는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성격의 기관인 ASL에서 ‘섹시빌리티’(Sexybility)라는 자조 모임을 결성해 장애인 간 성 정보 교환과 토론을 지속하고 있다. 모임에서 장애 남성은 주로 성노동자와의 원활한 소통과 업소의 접근성에 관한 경험을 나누기 원하고, 장애 여성은 성적 두려움을 없애고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삼는다고 한다. 장애인 대상의 성 서비스가 이미 이뤄지고 있는 독일에서도 이렇게 남녀차는 갈린다.

우리나라 장애인의 성적 권리에 대한 논의는 지나치게 장애 남성 중심적이다. 장애인 성과 관련된 책과 영화에서 주체로 등장하는 이는 장애 남성이며, 이들의 시각과 주장이 지배적이다. 이 때문에 성적 권리의 박탈을 설명하는 기준과 근거가, 때로 비장애 남성의 성적 향유 방식 내지 사회적으로 특별히 허용되는 남성 일반의 성문화가 되곤 한다.

하지만 장애 여성의 입장은 다르다. 성적 권리보다 성적 착취와 폭력의 대상이 되는 문제를 먼저 제기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성 서비스를 통해 (성기 중심적) 섹스를 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닌, 안전하고 평등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권리나 인권침해·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에 대한 요구다. 성적 권리를 이야기하는 주체의 문제로, 여성의 권리가 덜 주목받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하는 이유다.

일부 국내 장애인들에게서 주목받는 독일의 장애인 성 서비스 기관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서비스는 대부분 성구매 형태를 띤다. 독일은 2002년부터 성매매가 합법화된 나라여서 장애인이 성구매 과정에서 어떻게 차별받지 않을 것인가에 대한 목소리가 높다.

독일에는 성적 치유를 목적으로 장애인 성 서비스에 개입하는 ‘장애인 자기결정 연구소’(ISBB) 같은 기관도 있었다. 이른바 ‘에로틱 워크숍’을 통해 남녀 ‘섹스 동행자’가 장애인에게 성 상담과 치료, 섹스 서비스 등을 제공한다. 하지만 이 경우도 결국 돈을 매개로 성이 제공되고 서비스 과정에 ‘성제공자’라는 타인이 개입한다는 점에서 또 다른 성매매라는 시각이 있다.

우리는 독일에서 장애를 가진 레즈비언과 소녀를 위한 장애여성조직 ‘바이버네츠’(Weibernetz)를 만났다. 이들은 장애인 성 서비스에 대해 장애인이 제 몸을 긍정하면서 자긍심을 높이고 권리를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보면서도 섹스 행위 자체는 성매매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장애인을 대상화할 위험이 큰 성 서비스

복지 선진국이라 불리는 노르웨이나 덴마크는 더 단호했다. 덴마크여성협회는 장애인의 성 보조기구 구매를 포함해 섹스할 권리를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섹스 자체를 권리로서 확보하는 것엔 반대한다.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에서 만난 잉거마리 교수(장애학)는 “장애인의 성적 만족을 위한 요구가 성서비스 제공자들(의 권리)을 더 취약한 상황으로 몰고, 장애인 스스로도 성적 권리의 범주를 제대로 판단하기 어렵게 만든다”고 말한다. 두 나라는 성구매는 불법이나 성판매는 합법이다.

현재 성 서비스 담론의 핵심은 중증장애 남성의 성적 욕구를 어떻게 해소할 수 있고, 누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지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하다. 장애인은 성적 만족을 얻기 위해 반드시 타인에게 의존해야 한다는 것을 스스로 전제하는 건 아닌가? 그리고 장애인의 성적 권리가 다른 이들의 권리 혹은 다른 측면의 권리보다 우위에 있어야 하는가? 옳은 답을 찾기 위해선 비장애·남성·이성애 중심으로 구성된 성적 만족의 각본부터 재검토해야 할 것이다. 장애인의 주체성을 의심하고 대상화하는 다른 복지 서비스처럼 장애인의 성이 또다시 ‘서비스 형태로 제공받아야 하는 무엇’이 돼버리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서 말이다.

배복주 장애여성공감 대표



독일 장애인 성 서비스 단체 ‘자기결정 연구소’ 소장 인터뷰
“‘섹스 동행자’가 우리를 구제하는 건 아니다”
독일 장애인 성 서비스 단체 ‘자기결정 연구소’ 소장 로타 샌포트도

독일 장애인 성 서비스 단체 ‘자기결정 연구소’ 소장 로타 샌포트도


독일의 ‘장애인 자기결정 연구소’(ISBB·www.isbbtrebel.de)라는 기관은 장애인의 성적 욕구와 관련된 고민을 상담해주고 이성과의 교제 방법 등도 가르친다. 소장인 로타 샌포트 자신도 30여 년 전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장애인이다. 이곳에서 상담 과정의 하나로 2박3일간 열리는 ‘에로틱 워크숍’ 때는 에로틱한 글을 읽거나 포르노그래피를 보고 ‘섹스 동행자’들과 만난 뒤 원하면 성관계를 가질 수 있다. 비용은 장애인이 지불한다. 샌포트 소장을 전자우편으로 인터뷰했다.

장애인 자기결정 연구소는 어떤 일을 하나.
1996년 장애인을 대상으로 섹스 상담을 시작한 이후 현재까지 250여 명이 개인적으로 우리의 ‘섹스 동행자’ 프로그램을 이용했으며, 이 가운데 75%가 지적장애인이다. 우리 프로그램은 성적 서비스에 누군가 돈을 내야 한다는 사실만 빼면 모든 면에서 전통적 성매매와 다르다. 재정적으로 어려운 게 가장 힘들다. 우리가 엄청난 복지 혜택을 제공하지는 않지만, 장애인의 독립적인 삶을 돕기 위해 활동하고 있다. ‘대안 사창가’가 아니라, 장애인들의 ‘성적 해방’이 필요하다.
그동안의 운영 성과는.
무엇보다 상담을 받은 장애인의 삶의 질이 높아진 게 중요하다. 프로그램에 참가한 뒤 장애인이 더 주체적으로 되고 자신감이 높아지고 자기 비하가 줄어들었다. 장애인도 성적 욕구를 표현할 수 있는 인간적 권리를 가졌다는 사실을 대중이 받아들이게 된 것도 성과다.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나.
정부는 우리 연구소가 방해받지 않고 운영되도록 허용한다. 경제적 지원은 없는데, 우리가 독립적 기관으로 남기 원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장애인단체들과 언론이 우리를 이상적으로 도와준다. 정부 차원에서 장애인을 위한 비슷한 서비스가 시도됐지만 모두 실패했다.
프로그램이 비윤리적이라는 논란은 없나.
처음에는 조용히 일을 시작했고 안정적이지도 않았지만, 일부의 공격에 대응하는 데 자신을 얻게 됐다. 이제 독일에서는 보수적인 일부 부모들의 단체를 빼고는 누구도 우리 프로그램을 ‘비윤리적’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어머나, 이제 장애인까지 섹스하기를 원하는구만”식의 반응도 일부 있지만, 장애인의 성적 욕구를 해소시키려는 우리의 용기를 존중하고 인정하는 사람이 더 많다.
섹스 서비스 제공자에게 특별히 교육하는 게 있나.
가장 중요한 것은 장애인이 자신의 행복을 결정할 수 있는 이성적 존재라는 사실이다. 섹스 서비스 제공자는 우리를 도와주지만, 우리를 구제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주도하지 않고 장애인이 행위의 주체가 되도록 도와야 한다. 이런 쪽으로 생각을 바꾸는 게 힘들고 오랜 시간이 걸린다.
어떤 사회적 분위기가 연구소 프로그램이 가능하게 만들었나.
장애인이 개인적으로 얼마나 발전했고, 사회로부터 얼마나 사회·경제적으로 독립적이고 자기 확신을 갖고 있는지 알리려고 노력했다. 독일에서는 40대 이상이 성생활에 새로 흥미를 갖기 시작하는 등 성생활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는데, 이런 분위기를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우리 연구소와 성매매 여성의 협조가 독일에서는 합법적이라는 점도 프로그램 정착에 도움이 됐다.
장애인의 성적 욕구 해소 문제를 다룰 때 가장 중요한 점은.
장애인 스스로 이런 과정을 헤치고 나아가야 한다. 사랑, 깊은 관계, 만족스러운 섹스는 누구도 사줄 수 없는 삶의 한 부분이다. 우리 연구소가 만족스러운 섹스를 팔 수는 없다. 우리는 그저 인간이 어떻게 그것을 얻을 수 있는지 현실적으로 가르쳐줄 뿐이다.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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