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장애인의 성적 권리 담론은 2005년 일본 책 가 번역되면서 비로소 공론화됐다. 책은 장애인의 성적 소외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합법적인 성 구매 제도(공창제)와 섹스 자원봉사 등을 소개했다. 장애계에선 찬반의 파장이 컸다.
2007년 장애 청년들이 직접 네덜란드와 독일의의 장애인 성 서비스 실태를 둘러보기도 했다. 장애인 대상의 성 서비스가 일반적 ‘매매춘’과 비슷하다는 점, 네덜란드 장애인 상대 성노동자의 경우 사전에 철저한 준비로 뇌성마비·척수마비 등 장애인 고객의 욕구에 맞춰 성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 등이 특징적으로 전해졌다.
장애여성공감(이하 공감)은 지난 6월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독일·노르웨이·덴마크의 장애인 성 서비스 기관, 장애단체 등을 방문했다. 장애인 고객을 받고 있는 탄트라 마사지 업소, 성노동자 권리옹호 단체, 장애여성 단체, 장애인자립생활센터 등이 포함됐다. 성 서비스 담론을 중심으로 국내에 소개된 해외 사례를 여성적 시각에서 살펴보기 위함이다.
장애 여성은 섹스보다 관계를 원한다우선, 성적 권리 문제에서 남녀차는 있는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한마디를 독일 방문길에서 들었다. 마티아스라는 장애 남성이 전해준 “장애 남성은 섹스를 안 하는 것보단 나쁜 섹스가 낫다고 하고, 장애 여성은 나쁜 섹스를 하기보단 안 하는 게 낫다고 한다”는 말이다. 마티아스는 베를린에 있는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성격의 기관인 ASL에서 ‘섹시빌리티’(Sexybility)라는 자조 모임을 결성해 장애인 간 성 정보 교환과 토론을 지속하고 있다. 모임에서 장애 남성은 주로 성노동자와의 원활한 소통과 업소의 접근성에 관한 경험을 나누기 원하고, 장애 여성은 성적 두려움을 없애고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삼는다고 한다. 장애인 대상의 성 서비스가 이미 이뤄지고 있는 독일에서도 이렇게 남녀차는 갈린다.
우리나라 장애인의 성적 권리에 대한 논의는 지나치게 장애 남성 중심적이다. 장애인 성과 관련된 책과 영화에서 주체로 등장하는 이는 장애 남성이며, 이들의 시각과 주장이 지배적이다. 이 때문에 성적 권리의 박탈을 설명하는 기준과 근거가, 때로 비장애 남성의 성적 향유 방식 내지 사회적으로 특별히 허용되는 남성 일반의 성문화가 되곤 한다.
하지만 장애 여성의 입장은 다르다. 성적 권리보다 성적 착취와 폭력의 대상이 되는 문제를 먼저 제기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성 서비스를 통해 (성기 중심적) 섹스를 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닌, 안전하고 평등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권리나 인권침해·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에 대한 요구다. 성적 권리를 이야기하는 주체의 문제로, 여성의 권리가 덜 주목받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하는 이유다.
일부 국내 장애인들에게서 주목받는 독일의 장애인 성 서비스 기관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서비스는 대부분 성구매 형태를 띤다. 독일은 2002년부터 성매매가 합법화된 나라여서 장애인이 성구매 과정에서 어떻게 차별받지 않을 것인가에 대한 목소리가 높다.
독일에는 성적 치유를 목적으로 장애인 성 서비스에 개입하는 ‘장애인 자기결정 연구소’(ISBB) 같은 기관도 있었다. 이른바 ‘에로틱 워크숍’을 통해 남녀 ‘섹스 동행자’가 장애인에게 성 상담과 치료, 섹스 서비스 등을 제공한다. 하지만 이 경우도 결국 돈을 매개로 성이 제공되고 서비스 과정에 ‘성제공자’라는 타인이 개입한다는 점에서 또 다른 성매매라는 시각이 있다.
우리는 독일에서 장애를 가진 레즈비언과 소녀를 위한 장애여성조직 ‘바이버네츠’(Weibernetz)를 만났다. 이들은 장애인 성 서비스에 대해 장애인이 제 몸을 긍정하면서 자긍심을 높이고 권리를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보면서도 섹스 행위 자체는 성매매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장애인을 대상화할 위험이 큰 성 서비스복지 선진국이라 불리는 노르웨이나 덴마크는 더 단호했다. 덴마크여성협회는 장애인의 성 보조기구 구매를 포함해 섹스할 권리를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섹스 자체를 권리로서 확보하는 것엔 반대한다.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에서 만난 잉거마리 교수(장애학)는 “장애인의 성적 만족을 위한 요구가 성서비스 제공자들(의 권리)을 더 취약한 상황으로 몰고, 장애인 스스로도 성적 권리의 범주를 제대로 판단하기 어렵게 만든다”고 말한다. 두 나라는 성구매는 불법이나 성판매는 합법이다.
현재 성 서비스 담론의 핵심은 중증장애 남성의 성적 욕구를 어떻게 해소할 수 있고, 누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지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하다. 장애인은 성적 만족을 얻기 위해 반드시 타인에게 의존해야 한다는 것을 스스로 전제하는 건 아닌가? 그리고 장애인의 성적 권리가 다른 이들의 권리 혹은 다른 측면의 권리보다 우위에 있어야 하는가? 옳은 답을 찾기 위해선 비장애·남성·이성애 중심으로 구성된 성적 만족의 각본부터 재검토해야 할 것이다. 장애인의 주체성을 의심하고 대상화하는 다른 복지 서비스처럼 장애인의 성이 또다시 ‘서비스 형태로 제공받아야 하는 무엇’이 돼버리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서 말이다.
배복주 장애여성공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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