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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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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정당이란 큰 집을 짓자”

참여연대 김기식 정책위원장
“자유주의·진보 세력이 모여 역동적으로 경쟁하는 체제 돼야 대선 승리 가능”
등록 2010-06-11 22:57 수정 2020-05-03 04:26

‘이명박 정권 심판’이라는 목표로 시민사회가 선거 연합 형태의 정치에 적극 개입한 첫 선거인 6·2 지방선거 직후, 참여연대 김기식 정책위원장을 만났다. 김 위원장은 “국민이 승리한 선거”라고 평가하면서 “선거 연합을 넘어 미국 민주당식의 연합정당 모델을 정치권과 시민사회, 지식인 사회 모두가 고민해야 할 때”라고 제안했다. 민주당·국민참여당·민주노동당·진보신당 등 자유주의 세력과 사민주의적 진보 세력이 ‘큰 집’을 짓고 그 내부에 모여 역동적으로 경쟁하면서 대안과 미래 비전을 만들라는 주문이다. 인터뷰는 6월3일 서울 종로구 통인동 참여연대에서 이뤄졌다.

참여연대 김기식 정책위원장

참여연대 김기식 정책위원장

-이번 지방선거를 평가한다면.

=국민이 승리한 선거다. 민주당이나 후보에 대한 지지라기보다는 이명박 정권의 오만과 독선을 심판하겠다는 국민의 의지가 표출됐다고 본다.

-선거 연합, 후보 단일화와 관련해 아쉬운 대목도 있지 않나.

=‘연합’과 ‘연대’라는 틀로 야권이 승리했다. 선거 연합은 한나라당 심판의 필요조건임이 확인됐다. 그런데 가능성과 함께 한계를 드러내면서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점도 보여줬다. 이 문제를 노회찬 문제로 좁혀 평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충분조건은 무엇이라고 보나.

=변화와 혁신이다. 이번 선거는 정치사적으로 볼 때 정치권의 세대교체라는 의미가 있다. 송영길·안희정·이광재·김두관 등 40대가 주로 당선됐다. 한나라당 서울시장 경선의 주인공도 모두 40대였다. 새로운 미래에 대한 유권자들의 요구가 표출된 것이다. 정당이 새로운 이념과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니 그나마 새 인물을 선택함으로써 변화 욕구를 드러낸 것 아닌가.

40대의 야성 회복이라는 측면도 잘 봐야 한다. 이른바 ‘386 세대’라는 40대는 1987년 이후 일관되게 민주주의를 향한 투표 행태를 지속해왔다. DJ 집권과 노무현 당선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에서는 양극화 현실에 실망해 이명박과 한나라당 지지로 돌아섰다. 40대만 놓고 보면 선거 직전 여론조사에서 오세훈과 김문수 지지율이 한명숙과 유시민보다 10%가량 높았는데, 출구조사 결과를 보면 거꾸로 10%포인트 차가 난다. 숨어 있던 10%를 감안하더라도 무려 20%가 이동한 것이다. 이들은 ‘스윙보터’다. 어느 한 편에 고정되지 않고 정치 상황과 이슈에 따라 선택을 달리하는 유권자다.

진보·개혁세력이 다음 대선에서 미래 비전과 대안을 보여주지 못하면 이번에 심판 동력에 힘을 실어줬던 40대가 계속 지지할지 회의적이다. 40대 표심을 잡기 위해 선거 연합을 넘어서는 비전과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 혁신을 통한 대안과 미래 비전 마련이 충분조건을 채울 것이라고 본다.

-선거 직후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 야권통합론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논의가 탄력을 받을 수 있을까.

=혁신과 미래 비전이 전제되지 않은 연합이 2012년에도 지금 같은 결과를 낼 수 있을까. 이번 선거는 중간평가 성격이어서 심판을 위한 연합전선으로도 유의미한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다음 대통령 선거는 심판의 의미보다는 미래를 선택하는 측면이 강하다. 유력한 한나라당의 대선주자인 박근혜는 이명박과 정치적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MB 심판’만으로는 박근혜라는 산을 넘을 수 없다. 심판과 함께 미래 비전 동력이 없으면 대선에서 이길 수 없다는 절박감이 논의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선거 연합을 넘어서는 비전과 대안에 대해 뭔가 구상하고 있는 것이 있나.

=이번 선거에서 드러난 연대의 성과를 기반으로 하나의 연합정당을 만들고 그 틀 속에서 여러 정파가, 이념적으로는 자유주의 세력부터 사민주의적 진보 세력까지 역동적으로 경쟁하게 되면 혁신과 미래 비전의 동력이 생기지 않겠나. 미국 민주당의 경우 리버럴(자유주의)부터 프로그레시브(진보주의)까지 다양한 세력이 그 안에서 헤게모니 경쟁을 벌이면서 역동성을 만들어낸다.

-진보 정당마저도 갈라져 있는 상황인데, 진보정당부터 민주당까지 포괄하는 연합정당이 실현 가능한가.

=현 분립 구도에서의 연대는 틀·내용·인물을 고착해놓은 조건에서 일종의 정치 협상을 통해 권력 지분을 나누는 합의 방식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 상호 경쟁이 억제되는 측면이 있다. 이런 식으로는 새로움을 창조하는 데 부족함이 있다고 본다. 선거 연합보다는 연합정당 모델이 야권의 정치 지도자 성장을 위해, 내용적인 변화를 위해, 실행력을 담보하기 위해 바람직하다. 솔직히 다음 대선에서 야권이 집권할 수 있는 유일한 전략이라고 본다. 민주당 대선 주자들이 마의 30%를 넘기는 어렵다. 선거 연합을 통해 민주당 30, 유시민 10, 진보 정당 5를 더한다는 식의 산술 합산은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한나라당과의 경쟁에서 필패할 것이다.

-독자 노선을 걸어온 진보 정당에 어떤 실리가 있나. 수십 년 이어져온 민주대연합론의 재판이라는 비판에 직면할 텐데.

=2012년 민주정치 세력이 승리해 집권하려면 현재의 틀을 넘어선 비전과 가능성을 보여주는 자기 혁신이 절박한 과제로 다가올 거다. 진보 정당도 마찬가지다. 민주노동당은 ‘반MB’라는 국민의 바람에 부응해 명분을 얻었고 기초단체장 3석 등 실리를 얻었으나, 민주당의 기득권을 인정한 위에서 파이를 나누는 정도였다. 독자적 진보 정당의 한계를 보여줬다. 진보신당은 더 어려워졌다. 정당으로서 존재감이 의문시되는 상황이다. 정치인 팬클럽을 넘어선 정당으로서의 자기 무게감이 있느냐는 평가에 직면할 것이다. 진보 정치 노선을 포기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연합정당론이 오히려 진보 정치를 유지·강화할 수 있는 현실적인 전략이라고 본다. 독자 정당으로 지난 10년 실험의 성과와 한계가 분명해지지 않았나. 진보 정치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서라도 현실적으로 통합해야 한다. 큰 틀에 참여해 그 안에서 자기 파이를 키우고 진보 정치의 외연을 확장할 현실적인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진보 정치의 미래를 놓고 논쟁이 있을 텐데, 연합정당론이 낄 자리가 있을지 모르겠다.

=당장 연합정당을 만들자는 얘기는 아니다. 그런 방향으로 꾸준히 고민하고 토론하자는 것이다. 기존 정당으로는 답이 안 나온다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자유주의 세력은 사회경제 영역에서 사민주의적 요구를 수용해야 한다. 사민주의적 진보 세력은 민주 영역에서 자유주의의 진보성을 인정해야 한다. 나는 대통합정당이 자유주의와 사민주의를 공유하면서 이념적으로 조화를 이룰 수 있다고 본다. 그동안 진보 정치 세력은 자유주의를 신자유주의와 동일시하면서 배척했다. 민주당도 무상급식 공약에 대한 유권자의 지지에서 보듯 사회경제적 영역에서 사민주의를 대안으로 고민해야 한다. 서로가 상대방의 이념적 경향에 수용적 태도를 보여야 한다. 빵 없이 자유 없고, 자유 없이는 빵도 없다.

-정치권이나 시민사회 인사들을 많이 만나 의견을 나눠봤을 텐데, 동의하는 이가 많나.

=논리나 명분으로 될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가능성은 있다. 권력 의지 때문이다. 민주당이, 진보 정당이 이런 길 말고 집권 가능한 다른 경로가 있나? 진보 정치를 확대할 다른 길이 있나? 정당의 존재 이유인 집권 의지, 권력 의지 때문에 진지하게 고민하리라고 본다. 민주당이 집권을 포기하고 기득권에 안주하겠다면 그대로 있어도 된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진보 정당의 경우 내부의 원리주의자나 정파운동 구도가 큰 벽인데, 이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정치 지도자들의 결단으로 풀어내야 한다. 심상정 사퇴의 메시지도 거기에 있다고 본다.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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