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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참여정부의 일그러진 영웅



인수위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던 과학자의 기고… “황우석을 영웅으로 만든 책임 피할 수 없어”
등록 2010-05-21 18:15 수정 2020-05-03 04:26
참여정부 초기부터 황우석 박사가 뜬 것은 불행의 씨앗이었다. 2005년 10월19일 서울대 세계줄기세포허브 개소식에서 황우석 박사와 악수하고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 청와대사진기자단

참여정부 초기부터 황우석 박사가 뜬 것은 불행의 씨앗이었다. 2005년 10월19일 서울대 세계줄기세포허브 개소식에서 황우석 박사와 악수하고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 청와대사진기자단

내가 노무현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가 청문회 스타로 떴을 때다. 그 뒤 노무현은 연속 세상의 주목을 끌었다. 3당 통합에 반대해 그를 정치에 입문하게 한 김영삼과 결별했다. 김대중과도 거리를 두고 국민통합추진회의를 만들었다. 그와 뜻을 같이한 내 제자 김원웅·원혜영 등이 만든 불고깃집 ‘하로동선’에 갔다면 노무현을 만났을 것이다. 부산서 거푸 낙선의 고배를 마신 노무현은 내가 사는 서울 종로구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나는 그의 열렬한 팬이 됐지만 만날 기회는 없었다. 인도 여행길에 노무현이 크게 보도된 그곳 신문을 갖고 와 그에게 부쳐준 일은 있다.

인수위 3분의 2 이상 개발주의자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캠프에서 뛰던 과학자 박기영을 우연히 만났다. 그는 20년 전 고등학교 교사 때 나와 함께 책을 읽은 인연이 있었다. 노무현이 당선됐을 때 나는 박기영에게 당선자 주변에 과학자가 별로 없으니 이런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라고 명단을 보냈다. 박기영은 내가 추천한 사람 둘에 나까지 넣어 인수위 자문위원을 하라고 했다. 선거 때 입이 가벼운 노무현을 찍지 않았는데 인수위에 들어가는 것은 달갑지 않았다. 그러나 5년 동안 노무현 정부의 과학정책에 영향을 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갖고 자문위원 제안을 받아들였다.

인수위에서 나는 환경·과학팀에 배치됐다. 내가 아는 문제들, 환경·과학관, 과학 대중화, 생명윤리 등에 관해 열심히 써냈다. 그러나 내 주장들이 인수위 보고서에 반영됐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었다. 무엇보다 노무현이 추진하던 새만금 개발을 뒤집어보려고 동지들을 규합해보았지만 3분의 2 이상이 개발주의자임을 확인하고 단념해야 했다.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고 노무현에게 정책기획위원 임명장을 받았다. 나는 정책기획위원으로서 아무 일도 할 수 없음을 깨닫고 깊은 좌절감을 맛보았다. 1년 만에 위원장이 바뀌면서 구조조정이 있었고 사표를 내달라는 연락이 왔다. 미련 없이 사표를 썼다. 한참 뒤 중앙인사위원회가 희망하는 자리를 써서 내라는 서식을 보냈다. 나는 회신을 하지 않았다.

참여정부 출범 때부터 황우석이 뜨기 시작한 것은 불행한 일이었다. 전두환 정부 때까지 올라가는 생명공학 개발 정책은 노무현 정부에서 파탄을 예고했고 나는 허약하기 짝이 없는 비판 캠프의 선봉에 있었다. ‘사이비 과학자’ 황우석을 과학 영웅으로 만든 것은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 박기영을 포함한 ‘황금박쥐’였지만 최종 책임은 노무현에게 있었다. 2004년 나는 한국생명윤리학회장으로서 황우석의 줄기세포 연구의 윤리적 문제점을 물고 늘어졌다. 황우석 사건이 터졌을 때 나는 외국에 있었다. 황우석의 몰락을 가져온 문화방송 이 방영된 직후 귀국한 나는 에 쓴 글에서 정부의 책임을 통렬하게 비판했고, 에 ‘노무현과 황우석’이라는 글로 직격탄을 날렸다. 나는 거기 끼지 못했지만 2001년 생명윤리자문위원회가 어렵사리 만들어낸 인간 체세포 핵이식 연구의 잠정적 금지를 담은 생명윤리 법안을 노무현 정부가 받아들였다면 황우석 사건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생명윤리 법안을 받아들였다면…

노무현 정부는 진보 진영의 큰 기대 속에 태어났다. 노무현은 신선하고 파격적이었으나 우리에게 큰 실망을 안겨줬다. 반미는 말만 앞섰고 실제로는 친미였다. 이라크 파병이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은 불가피했을 것이다. 많은 실패에도 불구하고 국가 균형발전을 위한 노력과 남북 화해의 진전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말기에 주변 단속을 잘 못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제 공과를 따지고 싶지는 않아도 이명박에게 정권을 내준 책임만은 묻고 싶다. 나는 노무현과 대화한 일이 없다. 퇴임 뒤 봉하마을에 찾아가 막걸리와 담배를 나누며 좋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그런 기회를 놓쳤으니 가슴이 아프다.




송상용 한림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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