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은 졌다. 아니, 미력하다. 박창근 관동대 교수(토목공학)는 “검증을 하고 논쟁을 하자면, 정부 쪽에서 제대로 설명 못하는 게 많다”고 말한다. 수량 확보론이 궁색해지면 홍수 예방론, 홍수 예방론이 막히면 수질 개선론으로 갈아탄다는 식이다. “그러면서 결국 다목적 공사라고 한다.” 가장 객관적일 줄 알았던 ‘과학’도 이 정부 앞에선 부정되고 무기력하다. 이런 식이다. 2001년부터 정부는 유엔이 한국을 ‘물 부족 국가’로 지정했다고 선전해왔다. 하지만 유엔은 그런 용어를 쓰지 않는다. 전문가들의 반발에 2006년부터 사용되지 않았다. 죽은 문구를 현 정부가 ‘4대강 살리기’에 갖다붙였다. 4대강 사업은 논리가 아니라, 정권의 기호이며 신념인 셈이다. 공사는 저 홀로 질주하고 있다.
은 가장 왕성하게 강을 찾고 제 몸을 공사 저지의 보루로 삼는 4대 종단 성직자, 개신교 양재성 목사·불교 지관 스님·원불교 강해윤 교무·천주교 서상진 신부를 한자리에 모았다. 경내를 뛰쳐나간 이유를 묻기 위함이다. 이들은 되레 물었다. “국민 여러분, 4대강 가보셨나요? 제발 어디든 한 번만 가봐주세요, 어디든 한 번만…. 간절히 바랍니다.”
부처님의 내장을 긁어내는 처참한 전쟁터
양 목사= 지난해 12월부터 4대강을 두세 번씩 다녔다. 보 준공 현장은 어마어마한 아파트를 짓는 모습이고, 강바닥 전체를 파헤쳐 난도질해놨다. 피가 거꾸로 솟았다. 이러면 안 된다는 시대적 명령, 생명의 명령이랄까. 끝까지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강 교무= 인간이 모피를 얻으려고 동물의 껍질을 벗겨놓은 듯한 느낌에 소름이 끼쳤다. 찌릿했다. 제발 많은 분들이 현장에 가보면 좋겠다. 전 국토에 걸쳐 대규모 공사를 순식간에 해대면서 재앙이 되겠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서 신부= 남한강 두물머리에서 자며 일주일에 한 차례씩 미사를 드리고 있다(서 신부는 답사 동안 안면 동상에 걸리기도 했다). 강가에서 황혼이 질 때의 아름다움과 점차 그게 사라지는 처절함을 본다. ‘보’라고 해서 조그만 것을 상상했는데, 막상 보면 운동장보다 거대하다.
지관 스님= 남한강 현장에서 잠을 자면 아침 7시부터 이튿날 새벽 5시까지 공사한다. 불교 경전에 우주는 불신이고 나의 몸이라 했는데, 포클레인이라는 괴물이 말 그대로 부처님의 내장을 긁어내고 핏줄을 끊는 처참한 전쟁터가 됐다.
양 목사= 개신교에서도 자연 자체가 하느님의 몸과 같다. 강은 하나님의 혈관이다. 혈관이 막히면 자연은 죽지 않겠나. 하느님께서 창조하고서 경탄해 마지않았다는 자연을 잘 보존하고 지켜나갈 사명이 인간에게 있다. 4대강 사업은 하느님의 자연 세계를 부수고, 창조 질서를 파괴하는 일이다. 성서와 신앙적 기조가 분명한데, 더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나.
이들도 보기 전 잘 알지 못했다. 직관의 힘이다. 유마힐도 아닌데, 강이 아프니 이들이 아프다. 세속에선 공허하기만 한 ‘생명이 파괴된다’는 이유다. 서 신부는 “대자연의 아름다움조차 신앙적·영성적 바탕”이라고 말한다. 감사하고 찬미만 하기에도 과분한 ‘불신’이자 ‘창조 질서’다. 그 안에 숨들 가득하다.
강 교무= 풀, 동물, 인간, 지상의 많은 생명체가 끊임없이 호흡하고 그 기운이 하늘·강·바다로 순환한다. ‘관계’이며 ‘은혜’라 부른다. 이것을 단절시키면 재앙이 올 수밖에 없다. (대통령의) 5년 단임으로는 안 보이지만, 긴 시간 사는 종교인들이 보면 너무 명백하다.
양 목사= 하나의 개체 생명이 따로 존재할 수 없다. 지구 생태가 하나의 생명체다. 자연의 신비와 거룩함이 이 생명들에 있는데, 저마다 존중받아야 할 권리를 함부로 무시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20~21세기 인류의 가장 큰 범죄는 자연의 신비를 벗기고서 개발 대상으로만 삼는 태도다. 이 사업으로 돈을 버느냐를 따지는 것은 세상이고, 기독교는 그 일로 생명이 풍성해지느냐를 물어야 한다.
종단 4개가 ‘강’처럼 제각기 흘러 거대한 물줄기로 만나는 형국이다. ‘홍수’가 되어 정권을 겨냥한다. 절규를 듣지 않기 때문이다. 수경 스님은 “정부가 종교인을 어린애 취급한다”고 말한 바 있다.
서 신부= 주교단 성명 이후 정부가 ‘잘 설득이 안 됐으니 성실하게 답변하고 진실을 알려라’ 이런다. 성실하게 답변하라는 말에 정말…(서 신부는 헛웃음을 토했다). 공동선에 위배된다고 지적하는데, 정치적이거나 잘 몰라 하는 소리라는 거다. 그러면서 주교단과 만나자고 요청해온다. 소통이나 대화가 아니다. 설득이고 강요하겠다는 거다.
지관 스님= 종교인들은 이명박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이 되도록 돕고 싶다. 청와대 수석, 장차관 국실장이 불쑥 수경 스님이 있는 여강선원에 찾아온다. 우린 별말을 안 한다. 첫째 당신들이 뭘 결정할 수 있느냐, 두 번째 우리 의견을 듣고 과연 대통령에게 직언할 수 있느냐 묻는다.
양 목사= 대통령과 가까운 유명세 있는 큰 교회 목사님을 찾아가기도 했다. 4대강 사업은 당대뿐 아니라 후손 대대로 욕먹는다, 그러니 정말 대통령을 사랑하신다면 못하게 막는 것이 돕는 일이다, 부탁도 해봤다. 그분들 말씀이, (정권) 초기엔 좀 들었는데 지금은 안 듣는다는 거다.
지관 스님= 대통령이 4대강 사업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 같다. 진지하게 국정운영을 책임지는 분이라면, 맹목적이고 배타적인 신앙관이 없다면, 종교계가 이렇게 나선 것을 귀담아들어야 하지 않나. 그분의 독선과 독단이 심지어 자신이 해야 할 사업이란 계시를 받은, 신앙적 믿음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양 목사= 기독 신앙을 제대로 갖고 있다면 할 수 없는 사업이다. (한 성직자는 “신의 계시라기보다, 악마가 씌인 것”이라고 말했다.) 종교인들만이 아니라 모두를 무시하고 있다. 아이가 울고 있는데 엄마가 왜 우는지 모르고 더 때리는 격이다. 종교는 가장 마지막 선에서 더는 침묵할 수 없어 움직인다. 정치가 해도, 시민운동이나 전문가가 해도 안 되니까 나선 건데 이조차 듣지 않는다.
서 신부= 선거관리위원회가 종교계의 반대 움직임조차 불법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새만금 방조제 준공식(4월27일)에서 4대강 사업을 홍보한 대통령이야말로 불법 아닌가. 우린 사제선언(3월8일)을 통해 4대강 사업 반대 후보를 지지하겠다고 표명했다. 정치 개입 논란을 제기하던데, 그거야말로 종교인까지 정치판에 끌어들여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것이다. 특정 후보나 정당을 지지하려는 게 아니다. 민의를 듣는, 올바른 후보를 뽑자고 말할 뿐이다.
강 교무= 새만금 준공식을 기해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가 사업 반대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회갈등 비용을 허비했느냐고 말한다. 정부는 이젠 꿈과 환상이 펼쳐진 것처럼 홍보한다. 완전한 왜곡이다. 사회갈등 비용은 갈등을 제공한 이가 먼저 책임져야 하는 거 아닌가. 모두 전가한다. 당시 반대 운동 덕분에 해수 유통이라도 되고 있다. 이조차도 곧 막힐 텐데, 배출구가 막힌 사람의 내장이 썩는 것처럼 그렇게 전북 내륙이 모두 죽을 게 자명하다(원불교 총본산은 전라북도 익산에 있다). 처음에는 농지다, 관광단지다 하면서 수조원을 부어넣지만 아직도 앞으로 어찌될지 모른다. 결국 관광만 남는 것 아닌가. 되레 4대강의 미래를 본다. 뱃놀이하자고 이 거대한 파괴를 하는 건가.
공공연히 입에 오르는 ‘심판의 날’‘생명’은 종교적 양심을 깨웠고, 양심은 지방선거를 앞둔 민심을 깨우려 한다. ‘심판의 날’이 공공연히 종교인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서 신부는 “법의 구속과 사회적 의무의 규정을 회피하기 위해 저지르는 부정행위와 기만적 술책들은 정의의 요구와 양립될 수 없는 것이므로 단죄되어야 한다”는 가톨릭 교리서(1916항)를 들려준다.
그러나 두 가지 한계가 밑동에 깔려 있다. 기도만 하면 심판은 이뤄지는가? 4대강만 살리면 모든 생명은 구원받는가?
한 성직자는 “4대 종단이 규합해 야권 연대를 요구해야 한다”고 했고, 한 성직자는 “공사 현장에서 거대한 인간띠를 만들어 변화를 꾀해야 한다”고도 했다. 성직자에게 ‘유권자의 전략’을 묻고 ‘책임’을 묻는 건 잔인하다. 하지만 ‘침묵’하라는 건 더 잔인하다.
서 신부= 정치가 올바른 길을 가면 종교도 제 길을 간다. 한 발이 묶인 관계인데 종교는 당연히 올바른 정치를 촉구할 수밖에 없다. 개별 종단, 사익만 좇는 이단이 아니라면 어느 종교인들 가만히 있겠나.
양 목사= 종교와 정치가 확연히 구분될 수 있는 사회란 가장 이상적이거나 가장 망할 사회 둘 중 하나다. 인간은 옷 입고 밥 먹는 것부터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오히려 비정치적이어야 한다는 논리에 계속 속고 속이는 건 아닌지 묻고 싶다.
강 교무= 우리의 탐욕이 이 정권을 만든 것이기도 하다. 그 결과 자연을 완전히 망가뜨릴 삽질을 하게 됐다. 스님들 오체투지는 자연에 대해 우리 자신부터 참회하겠다는 뜻 아닌가. 그게 종교인의 양심일 것이다.
결국 ‘생명’이다. 그 단어야말로 ‘정치적’이다. 생명에 대한 이해, 이를 관장하는 정치·사회의 합의 과정 모두 민주적일 때 생명은 온전히 지켜진다. 그것이 교란되는 시대, 개인과 집단의 성찰이 교합할 수밖에 없다. 반대론자들에게, 30조원어치 4대강 사업이 주는 유일한 미덕이다.
양 목사= 대중의 생태의식을 고양하지 못하면 제2, 제3의 4대강 사업은 또 나온다. 정권 하나 바꾼다고 해서 해결될까. 뉴타운 재개발도 비슷하다. 근본적으로 이 사회의 물량주의, 성장지상주의, 심지어 자본주의와도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 개신교도 지난 20여 년 동안 대형 교회 같은 물량주의에 이끌렸다. 하지만 이번을 계기로 생명과 평화에 주목하는 큰 흐름이 생겼다.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을지 기대가 많다. 그 끝이 참 궁금하다. 하지만 여기서 한 걸음 나아가지 못하면, 다시 자본주의·성장주의가 계속될 거다.
지관 스님= 그야말로 파괴적 물신주의다. 4대강 찬성 논리를 보면, 당장 아들딸의 돈도 아닌 제 주머닛돈이다. 하지만 그게 아주 요지부동도 아니다. 낙동강이 공사 전후 어떻게 변했는지 지율 스님이 찍은 사진을 경내에 전시했는데, 한 할머니가 보고서 “아, 내 손자·손녀들이 이젠 이 강을 볼 수 없는 거냐”며 비참해하더라.
서 신부= 나 또한 탐욕에서 자유롭지 않다. 하지만 탐욕에 빠졌을 때, ‘너 좀 탐욕스러워’ ‘너 지금 잘못하고 있어’ 지적을 받을 때 수용하느냐 거부하느냐란 차이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래서 종교도 계속 자성하고 쇄신하려 노력한다. 정부도 그래야 한다. 종교가 깨끗하다 해서 목소리를 내는 게 아니다.
“방주를 만들어야 할 때”생명을 ‘탐’할 순 없는 노릇인가. 35년 ‘낙동강 지킴이’로 활동해온 김상화씨는 “강은 땅과 물과 주변의 모든 생명체가 공동으로 참여해 있는 합성어”라고 말한다. 산과 들과 갯벌과 바다를 연결하는 자연의 메신저이기도 하다. 강을 파괴하면 다른 요소들도 파괴된다. 물을 생명의 원천으로 삼는 인간은 두말할 나위 없다. 물질적 가치가 궁금한가? 가령 습지는 농·어업, 쉼터 등 인간에 복무하는 ‘직접 사용가치’는 물론 외부 생태계 유지, 홍수 조절, 지하수 재충전 등 ‘간접 사용가치’, 그리고 생물 다양성, 자연유산 따위 ‘비사용가치’로 가득하다. 4대강에선 대량 준설로 이 모든 가치가 일순에 파괴된다. 1990년대 영국 왕립조류보호협회에서 아프리카 나이지리아 북부의 하데지아 응구루 습지를 보호하는 활동을 지원하려고 회원들로부터 기금을 모았다. 80만달러가 답지했다. 습지 생태의 가치가 최소 그 정도라면 더 명확히 전달될까, 억지일까.
강 교무는 “요즘 성경을 재밌게 읽고 있어요. (자연을 파괴하는 위기감에) 방주를 만들어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라고 말한다. 양 목사는 “방주는 나만 살겠다는 건데, 지구 전체를 방주로 해야 다 살지요”라며 웃는다. 진리와 진리가 닿는 한, 교리는 옷가지에 불과하다.
원불교 쪽은 2차 교무선언을 준비 중이다. 동참하겠다는 이들의 요구가 끊이지 않는다. 천주교 쪽도 2차 사제선언을 예고했다. 당장 5월24일 4대 종단 성직자들의 합동기도회가 예정돼 있다. 하지만 좌담자들은 ‘더 큰 연대’를 절박하게 모색하려 했다. “4대 종단 최고 책임자가 만나 대통령 면담을 요청해야 한다” “광화문에서 성직자들이 일주일 단식기도를 해야 한다”는 의견이 오가더니, 결국 5월4일로 ‘향후 대책’을 논의하기 위한 저녁 모임을 잡는다. 5월을, 6월을 내다볼 수 없다.
서 신부는 “이 운동을 하면서 재정적 비용을 치르는 것은 물론, 종교적·영적으로 해야 할 수많은 일들을 포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관스님은 “그렇게 효율을 강조하는 정부가 성직자들이 거리로 나오는 게 비효율이란 건 왜 모르는지 묻고 싶다”며 “밖으로 나오지 않게 통합·소통하고 평안함을 줘야 하는 게 대통령이 큰 머슴으로서 할 일”이라고 말했다.
한 성직자가 말했다. “정부가 수백억 들여 2년간 설득했는데 여전히 70%가 반대하는 거 아닙니까. 전문가 5천 명이 대책위를 꾸려 반대하고 있잖아요. 이젠 종교계 목소리까지 점점 더 높아지는 거잖습니까. 그럼 더는 설득하는 게 아니라 설득을 당해야 할 시점 아닌가요. 멋있게 ‘문제 있다’ ‘중단하겠다’ ‘더 연구해보고 조사해보고 하겠다’ 하면 박수받지 않겠어요?”
하지만 이들이 박수를 치는 일은 물론, 경내로 돌아가기까지도 많은 시간이 걸릴 듯하다.
강의 위기는 생명의 위기고, 생명의 위기는 인권과 민주주의의 위기다. 그래서 이들은 “국민 여러분이 제발 4대강으로 한 번 달려가셔야 한다”고 부르짖는 것이다.
글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참고 자료: (김상화·미들하우스), (마이크 아크리먼 외·따님), (이본 배스킨·돌베개), (홍성태·현실문화)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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