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민주당 지지층 이사가고 쫓겨나고

2008년 총선에서 한나라당 ‘뉴타운’ 공략 답습,
지지층인 무주택자 움직일 만한 선거 전략 내놓지 못해
등록 2010-02-12 11:32 수정 2020-05-03 04:26

2008년 18대 총선의 판세를 가른 것은 뉴타운 공약이었다. 서울이 특히 그랬다. 뉴타운 약속의 효과는 대단히 컸다. 당시 서울 지역 당선자 명단과 그들의 공약을 비교하면 알 수 있다. 서울 48개 지역구 가운데 뉴타운 공약이 등장한 지역구는 26곳이었다. 또 이들 지역구에서 뉴타운 공약으로 당선된 사람은 19명이었다. 뉴타운 열풍은 한나라당이 서울에서만 40개 지역구를 싹쓸이할 수 있었던 1등 공신으로 꼽힌다.

1월24일 정세균 민주당 대표가 뉴민주당 플랜 교육분야 정책을 발표한 뒤 서울 관악구 은천동 세 자녀 가정을 찾아 교육비 문제를 함께 이야기하고 있다. 한겨레 김봉규 기자

1월24일 정세균 민주당 대표가 뉴민주당 플랜 교육분야 정책을 발표한 뒤 서울 관악구 은천동 세 자녀 가정을 찾아 교육비 문제를 함께 이야기하고 있다. 한겨레 김봉규 기자

뉴타운 광풍, 중앙당 차원 원칙 부재

적지 않은 민주당 후보도 비슷한 공약을 내세웠다는 사실이다. 원주민 정착률을 높여야 한다거나, 공영개발을 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기도 했지만 포장은 똑같이 ‘뉴타운’이었다. 민주당이 뉴타운 광풍에도 불구하고 서울에서 그나마 7명의 당선자를 낼 수 있었던 것도 사실 뉴타운 바람에 편승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2009년 초 용산 참사에서 드러났듯 일방적인 뉴타운 개발이 세입자의 주거 환경이나 생존권을 위협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민주당 내부에서 근본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총선 기간 내내 민주당은 뉴타운 광풍에 대해 중앙당 차원에서 별다른 원칙을 제시하지 않았다. 각 지역과 후보의 판단에 맡겼다. 후보들이야 표만 된다면 뭐든 한다는 태도를 취했다. 유인태 전 의원은 그런 행태를 두고 “부끄럽고 참담하다”고 고백했다.

물론 뉴타운 광풍처럼 개발 이슈가 선거의 주요 변수로 등장할 때 이를 외면하거나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이 쉬운 선택은 아니다. 개발에 대한 기대감에 따라 실제로 표가 움직이기 때문이다. 18대 총선에서 중랑을의 진성호 한나라당 후보는 중화 뉴타운 추진을 지원한다는 공약을 내세워 국회부의장까지 지낸 5선의 김덕규 민주당 후보를 가볍게 따돌렸다. 도봉갑 신지호 한나라당 후보도 비슷한 방식으로 열린우리당 의장과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김근태 민주당 후보를 제쳤다.

문제는 뉴타운 사업에서 소외돼 있는 더 많은 무주택자를 움직일 만한 선거 전략이 크게 눈에 띄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부유층과 저소득층이 ‘계급배반’ 투표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계급적 이해관계에 따라 투표할 준비가 돼 있다면, 민주당 등 진보·개혁 정당이 주로 공략해야 하는 대상은 지지층인 저소득층이었다. 민주당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서울 518개 동네에서 전통적으로 민주당 지지율이 가장 높게 나오는 곳인 종로구 창신2동 사례가 참고가 된다. 2004년 총선 때 열린우리당이 새롭게 출범하며 44%를 가져갔고, 새천년민주당은 18%를 얻었다. 둘을 합치면 62%였다. 열린우리당이 전국적으로 참패한 2006년 지방선거 때도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은 각각 26%와 24%를 얻어, 합치면 50%대의 지지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뉴타운 개발 바람이 몰아친 2008년 총선 는때 결국 47%를 얻으며 50% 선이 무너졌다.

민주당의 지지율이 계속 떨어지는 동안 창신2동의 투표율도 함께 떨어졌다. 2004년 60%, 2006년 51%, 2008년 47%였다. 민주당 지지층이 점점 투표를 멀리했다는 뜻이다. 자유선진당과 친박연대 등이 선거에 뛰어든 만큼 민주당에서 빠져나간 지지층이 모두 한나라당으로 옮겨간 것은 아니었지만, 민주당으로서는 ‘표밭’에서 지지층이 이탈하는 결과를 감수해야 했다. 창신2동 전체 유권자의 60%는 뉴타운이 추진되면 오히려 쫓겨나야 할 무주택자였다.

민주당의 반성은 2008년 총선이 끝난 뒤 시작됐다. 2009년 1월 용산 참사가 터지자 민주당은 참사의 근본 원인으로 지적된 뉴타운 및 재개발 정책의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뉴타운 태스크포스(TF)단’을 발족했다. 이미경 사무총장을 위원장으로 한 뉴타운 TF에는 김희철·박영선 등 서울 지역 국회의원과 국회 국토해양위 소속 의원들이 참여했다.

재벌·투기 세력 비판하던 ‘뉴타운TF’

민주당은 뉴타운 TF에서 △세입자 보호장치 강화 △소형 가옥주의 재산권 보호장치 강화 △순환형 재개발사업 추진 의무화 △공익적 재개발 확대 및 국가의 지원과 책임 강화 대책 등을 마련하기로 했다. 각 과제별로 세부 계획까지 비교적 촘촘히 세웠다.

출범 초기만 해도 뉴타운 TF는 재벌 건설사와 투기 세력을 강력하게 비판하는 등 도시 서민과 세입자를 위한 대책 마련에 상당한 의지를 보였다. 같은해 2월에는 ‘뉴타운·재개발 제도개선특별위원회 구성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하기도 했다. 무분별한 개발 담론을 극복하기 위한 민주당의 노력은 당 안팎에서 상당한 호평을 받았지만 결실을 맺는 데는 실패했다. 뉴타운 TF에 참여했던 당 관계자는 “나름대로 의욕을 갖고 시작했는데, 뉴타운 국회 특위 구성 등에 대해 한나라당이 소극적으로 나오면서 여야 간 협상이 잘 안 됐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뉴타운 TF는 그 이후 다시 잠잠해졌다. 초기의 의욕과 호응을 정치적 성과로 이어가는 데 미숙했던 것이다. 이것이 18대 총선 이후 민주당이 ‘지지 계층’을 위해 본격적으로 머리를 맞댄 최초이자 마지막 시도로 평가된다.

최근 교육 및 일자리 부문의 정책 비전을 담은 뉴민주당 플랜이 속속 발표되고 있지만 큰 관심을 끌지 못하는 이유도 실천 계획이 의심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민주당 지지 기반이라 할 수 있는 저소득층 대책이 미흡한 사실도 눈에 띈다. 개혁 성향인 최문순 의원은 1월25일 뉴민주당 플랜 총론과 교육정책이 발표된 직후 “지난 10년간 심화된 빈부 격차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민주당이 새로운 수권 세력이 되려면 분배를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2010년 6월 지방선거까지 이제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남은 기간 민주당이 지지 계층을 위한 획기적 아이디어를 내놓을 확률은 그렇지 못할 확률보다 높아 보인다. 만약 새로운 아이디어가 없으면 하던 대로 할 수밖에 없다. 서울 지역 구청장 선거를 준비하는 민주당 관계자는 말했다.

“고정 20%를 상대로 선거전 펼칠 수밖에”

“1인 가구를 포함한 저소득층이 주요 지지층이라는 사실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찾아가도 만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사를 자주 다니기 때문에 지역 현안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다. 공식적인 선거운동 기간은 짧고 공략해야 할 유권자는 많은데, 그렇다면 투표 참여가 불투명한 80%의 유권자보다 투표에 고정적으로 참여하는 나머지 20%의 여론 주도층을 상대로 선거전을 펼칠 수밖에 없지 않나.”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